[인터뷰]
[아베 슈지, 오쿠다 세이지] “제작위원회 방식이 시너지로 작용한 것 같다”
2007-11-28
글 : 정재혁
사진 : 이혜정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속편>의 프로듀서 아베 슈지, 오쿠다 세이지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폐막작 <올웨이즈 속·3번가의 석양>의 두 프로듀서 아베 슈지와 오쿠다 세이지가 영화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올웨이즈 속·3번가의 석양>은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의 속편으로 11월3일 일본에서 개봉해 첫주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작품. 전편인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은 2006년 일본에서 개봉해 35억엔 이상의 수익을 올린 히트작이다. 이 영화는 흥행은 물론 비평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어 일본아카데미영화상 14개 부문을 석권했으며, 일본의 언론은 단카이 세대(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로 1940~50년대생)를 영화관으로 불러왔다는 점에서 영화의 산업적 의미를 부여했다.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시리즈는 현재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일본 영화계의 상징적인 작품이다. 영화제작사인 로보트가 민영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일본TV>와 손을 잡고, 역시 3대 메이저 배급사인 도호의 배급망을 통해 영화를 공개하고 있다. 이들의 조합은 단순한 투자와 제작, 제작과 배급이란 관계를 넘어 제작위원회란 조직으로 묶여 있다. 현재 일본영화 제작의 보편적인 틀이기도 한 이 방식은 영화 제작사와 방송사, 배급사와 (원작의 소설, 만화가 있는 겨우) 출판사가 영화 기획단계부터 함께 이야기를 진행하는 형태로,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은 이 시스템이 가장 잘 발현된 경우라 평가받고 있다.

이 시리즈의 프로듀서인 아베 슈지와 오쿠다 세이지도 현재 일본 영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로보트의 대표인 아베 슈지는 이와이 &#49804;지 감독의 <러브 레터> <피크닉> <언두>를 제작했으며, TV방송사와 영화사의 관계가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춤추는 대수사선>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가 제작한 <춤추는 대수사선>의 스핀오프 작품 <교섭인 마시타 마사요시>와 <용의자 무로이 신지>는 각각 2005년 흥행순위 3위와 5위에 올랐다. 오쿠다 세이지 프로듀서는 <후지TV>에 이어 최근 영화쪽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일본TV>의 영화편성부장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지브리의 모든 애니메이션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언덕 위의 포뇨>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2006년과 2007년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을 비롯,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데스노트> 시리즈,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과 <안경> 등에 제작위원으로 크레딧을 올렸다.

최근 일본영화에선 감독의 이름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감독의 시나리오로 완성되는 작품보단 원작 만화,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자, 제작위원회가 기획한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일부에선 이에 대해 신인 감독의 발굴이 어렵다, 일본영화의 거품이 꺼질 것이다고 비판하지만, 일련의 기획영화가 현재 일본영화 시장을 끌고 가고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일본영화의 호황은 거품일까, 아닐까. 아베 슈지, 오쿠다 세이지 프로듀서에게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시리즈를 비롯, 현재 일본영화 시장에 대해 물어보았다.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의 속편은 전편 기획단계부터 계획된 건가.
=아베 슈지: 아니다. 전편을 만들고 이후에 속편을 기획했다. 물론 전편이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속편을 만든 건 아니다. 아무리 전편이 성공했다고 해도 속편을 쉽게 만들 순 없다. 속편을 만든 결정적인 동기라면 관객의 반응이다. 흥행성적보다는 많은 관객이 감동깊게 봐줬다는 점, 80대 할머니가 손자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왔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관객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속편을 만들어도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전편의 경우 관객층은 어땠나.
=오쿠다 세이지: 단카이 세대가 많았다. 그러다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젊은 관객도 오기 시작했고.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이 흥행에 성공할 거라 예상했나.
=아베 슈지: 단카이 세대는 영화관에 가장 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건 단카이 세대를 위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시대극이나 중년 남자를 겨냥한 영화는 있었지만, 역시 영화라면 여자들을 위한 작품이나, 데이트용 무비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단카이 세대를 위한 영화를 만든다면 그들이 보러 올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시리즈는 원작이 있고, 제작위원회에 TV방송사가 참여한 형태의 작품이다. 이는 최근 일본영화의 대세인데, 이 시스템이 갖는 힘이 뭐라고 생각하나.
=오쿠다 세이지: 우선 그 시스템에도 두개의 패턴이 있다. TV방송사가 제작위원회에 그냥 참여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과 TV시리즈를 영화화하는 것. 하지만 어떤 형태라 해도 기획이 좋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베가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을 영화로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리는 모두 보고 싶었다. 좋은 원작에 방송사가 참여하고, 유명한 배우가 출연한다고 해도, 즉 히트 공식을 다 갖췄다고 해도 무조건 흥행을 하는 건 아니다. 좋은 내용의 기획과 그걸 진실되게 전달할 마음이 없으면 영화는 흥행하지 못한다.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에 한정하지 않고, 일본 영화계 전반에 대해 묻고 싶다. 가령 <춤추는 대수사선>은 TV방송사가 제작위원회에 참여한, 일종의 상징적인 작품처럼 보인다.
=오쿠다 세이지: 우선 놓쳐선 안 될 부분이 있다. <춤추는 대수사선> 시리즈는 일본에서 자국영화도 재미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준 작품이다. <춤추는 대수사선> 이전에 일본에서 대작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사전에 대량으로 영화사에서 표를 예매하곤 했다. 하지만 <춤추는 대수사선> 이후엔 관객이 직접 영화표를 구입하게 됐다. 제작위원회 방식의 특징이라면 일단 여러 회사가 기획단계부터 참여한다는 것. 보통 책에는 그런 이유로 프로젝트가 빨리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의견 수렵이 어렵다고 써 있다. 물론 서로의 권리만 주장하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 대체적으로 잘된 작품을 봐도 제작위원들이 같은 방향을 보고 진행한 것들이다. TV방송사가 제작에 참여한다고 해도 직접 영화를 만들 순 없지 않나. 서로의 역할분담이 잘될 때 작품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본다.

-만드는 입장에선 어떻게 느끼는지 듣고 싶다.
=아베 슈지: 우리(로보트)가 처음 만든 영화가 <러브 레터>다. 12년 전이었는데 <후지TV>와 함께한 작품이다. 당시엔 일본영화에 대한 관객동원 수준이 정말 바닥이었는데, 12년간 계속 방송사와 함께 영화를 만들며 여러 가지를 학습한 것 같다. 일단 일본영화도 재밌어졌다는 인식이 생겼으니 결실도 있는 것 같고. 우리 세대 이전엔 제작위원회란 게 없었고 우리 세대 이후에 그 스타일이 보편화되었다. 생각해보면 제작위원회가 일종의 시너지로 작용한 것 같다. <일본TV>, <후지TV>, 출판사, 도호 같은 배급사 등 각각의 회사가 자신의 힘을 내서 프로모션을 한달까. 서로의 밸런스가 있어서 흥행작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10년간 서로의 역할을 학습하며 노하우를 얻었다. 이 방식이 긍정적으로 발전한다면 일본 영화계 전반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TV방송사가 제작위원회에 참여한 것도 그 무렵인가.
=오쿠다 세이지: 그건 아니다. TV는 훨씬 전부터 제작에 참여해왔다. <남극이야기>도 있었고. 아마 엔터테인먼트를 만들던 초기부터가 아닐까.

-최근 TV방송사의 역할이 두드러져 보이는 건 역시 마케팅적인 요소 때문인 것 같다. 가령 <일본TV>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가 개봉할 때 <일본TV>에선 쇼 프로그램을 비롯, 다양한 형태로 영화의 프로모션을 진행하더라. 이 프로모션이라는 게 예전에 TV에서 영화를 홍보하던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게 분량도 많고. 일부에선 이에 대해 비판도 있는 것 같은데.
=아베 슈지: 하지만 그렇다고 TV가 ‘올마이티’는 아니다. 옆에 <일본TV> 총책임자분이 계시지만, 그걸 잠시 잊고 말하면(웃음), <일본TV>에서 참여한 영화는 <일본TV>에서만 프로모션이 가능하다. 다른 TV 채널에선 하지 못한다. <일본TV>를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은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알 길이 없다. <후지TV>도 마찬가지다. 사실 TV방송사라고 해도 <후지TV>와 <일본TV>가 아니면 프로모션의 의미도 없고, 아 <TBS>도 있다. 결국 TV를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하냐가 문제라고 본다.
=오쿠다 세이지: 비판이라고 하면 드라마를 영화화하는 쪽이 많지 않나 싶다. 드라마를 영화화할 때는 방송사가 주도해서 제작위원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일본TV>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웃음) <위험한 형사> 시리즈를 비롯, 예전엔 했었지만 6~7년 전부턴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드라마의 영화화는 드라마가 강세인 <후지TV>가 거의 주도하고 있다.-편집자).
=아베 슈지: 하지만 나는 왜 비난하는지 모르겠다. 히트한 작품을 영화로 하는 게 뭐가 나쁜지. 히트하면 할수록 비난을 많이 하는데,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 나는 영화와 음악이 여러 의미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영화에서만 고전, 클래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은 클래식, 민요, 대중음악 모두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나. 영화도 엔터테인먼트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한다. 왜 예술적인 것만 추구하라고 하는지, TV방송사가 만든 건 영화가 아니라고 하는지,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물론 안일하게 만드는 것, 드라마의 흥행성을 바탕으로 대충 만드는 건 나쁘지만 퀄리티가 나쁘지 않다면 드라마의 영화화도 전혀 나쁠 게 없다고 본다.
=오쿠다 세이지: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의 시대 설정이 1959년인데, 당시는 일본영화가 피크를 기록한 때다. 이때는 노래가 히트하면 그걸 영화로 만들기도 하고, 문예작품도 많이 나왔다. 그야말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관객이 보고 싶은 게 다양하기 때문에 영화도 다양한 장르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근에는 하나의 작품이 히트하면 그와 비슷한 영화가 쏟아지지만, 일단은 여러 가지 영화가 나오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오쿠다 프로듀서는 <카모메 식당>과 <안경> 제작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다. <카모메 식당>은 2006년 단관 계열 영화 중 최고 히트작이고, <안경>도 미니시어터 수준 영화론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일본은 미니시어터 계열 영화의 기반이 튼튼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론 어떻다고 느끼나.
=오쿠다 세이지: 일단 <카모메 식당>은 내가 핀란드를 너무 좋아해서 시작한 작품이다. (웃음) 주인공인 고바야시 사토미는 <일본TV>가 3번째로 만든 영화 <전학생>의 주인공이기도 했고. 고바야시와 이번 <올웨이즈 속·3번가의 석양>에 나오는 모타이 미사코는 언젠가 꼭 함께 일을 해보고 싶은 배우였다. 작품의 주제도 마음에 들었고. 음…, 단관계로 기획된 영화는 크게 기대를 걸지 않는다. 정확히 대중영화와 어떻게 달리 마케팅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르긴 하지만 뭐라 말하기 어렵다. (웃음) 요즘엔 단관계로 개봉하는 작품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극장에 걸리는 횟수는 준다. 멀티플렉스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단관계의 영화들은 모닝쇼나 레이트쇼로 하루에 한번밖에 상영이 안 되기도 한다. 예전에 비해서는 단관 계열 영화의 환경이 나빠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베 프로듀서께 묻고 싶다. <러브 레터> 이후 2007년 현재 일본 관객의 성향이 변했다고 생각하나.
=아베 슈지: 확실히 변한 건 있다. 예전엔 외화와 일본영화의 구별이 확연했다. 데이트를 할 때도 외화가 멋쟁이 같은 느낌이었고, 일본영화는 왜 보냐는 식의 반응이 컸다.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도 초기엔 전부 제목이 영어다. <러브 레터> <언두> <피크닉> 등. 외화처럼 보이고 싶은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영화도 재밌다고 생각하니까.

-이번 영화제의 상영작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다. 특히 최근 들어 일본에선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만화가 원작인 영화에서 만화의 역할, 힘은 무어라 생각하나.
=아베 슈지: 나는 기본적으로 만화를 영화화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찬성론자가 아니다. 만화는 어디까지나 보완적인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고, 영화의 오리지널리티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의 영화를 기획할 때 만화는 공통언어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 같다. 관객에게 접근하기 쉽다는 것, 또 일본 만화가들이 가진 스토리텔링 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쿠다 세이지: 결국 원작 만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만드느냐가 문제인 것 같다. 원작만화가 있는 경우 팬들이 많아서 그들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위험이 크다. <데스노트> 시리즈도 그랬고, 언제나 클레임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영화가 만화를 바탕으로 더 나은 내용의 작품을 만든다는 건 어렵지만, 결국 문제는 거기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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