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토크]
[메신저토크] “사실적인 톤이 갑자기 만화적으로 변해요.”
2007-12-12
글 : 이동진 (영화평론가)
글 : 김혜리

이동진: “무엇보다 <데스 센텐스>를 우스꽝스럽게 만든 요소는 장면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폼 잡는 대사들이었어요. 맥락이 없으니 황당해지죠.”
김혜리: “평범한 중년 사내가 갑자기 훈련된 킬러처럼 총격을 벌이다 홍콩 누아르 풍 비장한 대사를 뇌까리죠. 사실적인 톤이 갑자기 만화적으로 변해요.”

오존:다음 영화는 제목도 울적한 <데스센텐스>입니다. 찰스 브론슨 주연의 <데스 위시>의 원작이 된 소설의 직계 속편이 이 영화의 원작이네요?

고고: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 내용이더라고요.

오존: 영화로 치면, 올해 들어 <브레이브 원>에 이어 ‘DIY(Do It Yourself) 처형’을 다룬 복수극이고요. 교과서적으로 행복한 가정의 장남이 주유소 매점에 들렀다가 신입자 신고식하던 갱 패거리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한 가정의 세계가 그야말로 확 뒤집어집니다. 특히 보험회사 중역으로 온건하게 살아온 아버지 닉(케빈 베이컨)에게 그렇습니다.

고고: 처음에 홈비디오 속 행복하기 이를 데 없는 가정 묘사가 나올 때부터, 저거 몇분이나 갈까, 싶더라고요. -_-#

오존: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야 인생의 대차대조가 얼추 맞을 듯하게 불길하죠? 그런 도입부는 2000년대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좀 안이했던 것 같습니다.

고고: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 건만, 그렇게 시침 떼면서 묘사하고 있는 것 보면 좀 딱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 저는 이 영화가 일단 너무나 말이 안 되는 게 걸리더라고요. 중요 등장인물 중 행동이 최소한의 논리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닉은 갱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자신에게 총질을 하는데도 그 다음 장면에서 버젓이 출근을 하고, 갱들은 최소한의 ‘조직’적 원칙도 없이 거의 자폭적이고,

오존: 경찰은 완전히 무능한데다가 언제나 두발 늦게 도착하죠? ^.~

고고: 경찰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거나 빈정대기나 하죠. 게다가 둘째아들은 왜 갑자기 저녁 잘 먹고서 사고 현장에 간 뒤 나중에 찾아온 아버지에게 “더 잘난 형 대신에 내가 죽었으면 하고 바라셨죠?”라고 투정을 하냐고요.

오존: 그나마 영화 초반 가족 사이의 갈등 요소로 깔아놓은 복선이 그것이었거든요.

고고: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면, 말 그대로 ‘그나마’죠. -..- 무엇보다 <데스센텐스>를 우스꽝스럽게 만든 요소는 장면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폼 잡는 대사들이었어요. “네 자신을 봐. 우리와 똑같아. 괴물이 되어버렸지” 같은 클라이맥스 대사는 그 자체론 의미심장할 수 있지만, 그게 맥락없이 튀어나올 땐 얼마나 황당해지냐는 거죠.

오존: 오우삼스러운? *.*

고고: 삼이 형 화나겠다. ^^ “한번 깨진 것은 되돌릴 수 없어요. 세상은 온통 카오스죠”라는 닉의 대사도 맥락을 보면 얼마나 한가하냐고요…. -.-

오존: 이 영화는 세 토막으로 볼 수 있는데요. 처음부터 장남의 비극까지가 1막, 아버지의 복수와 갱들의 재보복까지가 2막, 그리고 닉이 머리까지 밀고 결전을 벌이는 마지막까지가 3막이라 칠 때, 3막 이 시작하는 언저리에서 영화가 갑자기 둔갑하는 인상이었어요. 사실적인 톤을 유지하던 극중 세계 자체가 만화적으로 변했다고 할까요?

고고: 아무리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캐릭터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통일성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였죠.

오존: 단적인 예로 총을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는 중년 사내로 설정된 닉이, 갑자기 훈련된 킬러 같은 솜씨로 갱과 총격을 벌이잖아요? 그러다가 홍콩 누아르풍 비장한 대사를 뇌까리고. 어떻게 보면 후반부에서 촬영과 조명, 신체 훼손 묘사는 거의 호러에 가까웠습니다. 글쎄요, 만약 감독이 한 남자의 세계가 복수로 인해 완전히 달라진 느낌을 만들려고 목표했다면 성공한 건지도 모르죠.

고고: 그걸 목표로 했다고 해도 저는 성공했다고 보질 않습니다. ^^ 전체 구도로 보면, 가족을 잃은 두 남자가 복수의 화신이 되어서 서로 극단으로 치닫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 한쪽의 양감이 전혀 없어서 설정의 처절함이 거의 살지 못했죠. 괜찮은 액션 디테일은 없지 않았어요. 작심하고 찍은 듯한 주차타워 액션장면이 그랬죠. 차들을 일부러 흔들어 경보기들이 이곳 저곳에서 울리도록 한 장면이나 차 안에서의 육박전 실감은 좋더라고요. 근데, 스포일러라 밝힐 수는 없지만, 영화의 핵심적인 모티브 중 하나는 <세븐데이즈>와 상당히 흡사하더라고요? 협박을 받은 가족이 다칠까봐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가서 안도하는 장면은 <폭력의 역사>와 똑같고요. <세븐데이즈>야 우연의 일치지만, <폭력의 역사>는 분명 베끼거나 무의식적으로 영향받은 장면 같아요. 뭐, 머리 스스로 삭발하는 장면은 <지 아이 제인>이죠. 다만, 머리를 말끔하게 밀지는 못하는 것으로 변주했다고 할까? -..-

오존: 그 대목에 이르러 급작스럽게 사실성이 확 높아졌죠? ^^

고고: 성격파 배우는 괴로운 면이 있어요. 케빈 베이컨은 매번 이렇게 힘든 배역만 하는 듯. 과거엔 게리 올드먼씨께서 그리도 고생하셨는데…. T-T

오존: 미스터리입니다. 케빈 베이컨은 왜 이리 작품운이 없는지 말이죠. 무슨 기량 테스트 같아요. “이래도 잘해볼 수 있나?” 하는 식의. 갱의 아버지로 출연한 존 굿맨도 나름 미스터리가 있어요. 굿맨은 안 그래도 턱이 무척 두터운데 왜 모두들 앙각으로 촬영을 하는 걸까요. T-T

고고: 정말 케빈 베이컨은 대표작을 꼽기 힘들더라고요. <일급살인>이나 <할로우맨>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오존: 최근에는 <미스틱 리버>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출연한 <퀵 실버>라는 좀 덜 알려진 청춘영화가 있는데 그걸 보고 한동안 많이 설&#47132;더랬죠. +_+<풋 루스>야 다들 기억하실 테고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대>라는 로맨틱코미디와 <크리미널 로>에서도 매력적이었어요.

고고: <풋 루스>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대>는 저도 생생해요. <미스틱 리버>에서도 좋긴 했지만, 그 영화에서는 다른 분들이 워낙 발군이셔서.

오존: 여전히 저나 제 세대 여성에겐 ‘오빠’ 이미지가 강한 배우인데 <데스센텐스>를 보니 얼굴은 젊어도 목은 나이를 못 속이더군요.

김혜리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의 줄거리는 ‘척하면 삼천리’에요. 하지만 코미디가 참신하고 총명한 대사가 많아요. 두 주인공 캐릭터도 개성있고요.”
이동진 “로맨틱코미디는 그럼 용서가 되죠. 그런데 확실히 요즘 프랑스 영화에서 ‘프랑스적’인 것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고고: 오늘 영화들은 손과 목이 진실을 말해주네요. ^_^ 암튼, 6단계를 거쳐서라도 베이컨 형님이 다시 부활하길 간절히 빌면서, 다음 영화 이야기할까요? 저는 시사를 놓친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입니다.

오존: 예. 프랑스 로맨틱코미디인데요. 조금 오해할 수 있는 번역제목인 듯해요. 원제는 “손 좀 빌려줘요”라는 뜻이네요. 영화를 보고나니 “도와줘요”와 “손 잡고 싶어요”라는 두 가지 해석이 다 들어맞네요.

고고: 헉, 또다시 손이닷. 로맨틱코미디에 그런 한글 제목 붙이는 게 유행인 듯. ‘~하는 법’과 ‘~되나요?’ 시리즈가 막상막하의 유행이죠.

오존: 그렇네요!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의 줄거리는 척하면 삼천리입니다. 43살의 조향사 독신남(알랭 샤바)이 그를 결혼시키려 안달난 다섯 누이와 어머니를 무마하기 위해 동료의 실업자 여동생 엠마(샬롯 갱스부르)를 고용해 피앙세로 둔갑시킵니다. 가족에게 소개한 다음 결혼식날 신부가 나타나지 않는 연극을 해 다시는 결혼 말이 안 나오도록 술수를 쓰는 겁니다. 엠마쪽은 아기 입양을 위해 수입이 필요하고요. 예상하시겠지만, 가짜 연인 계약을 한 두 사람은 취향이 극과 극이에요. 남자는 후각이 민감한 향수 제조자인데 여자는 약품을 많이 쓰는 고가구 복원이 직업이고요. 음악 취향은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과 비틀스로 갈리죠.

고고: 허, 설정이 어쩌면 그리도!

오존: 그러나! 결국 둘 사이가 어떻게 될 거라는 건 아시겠죠?

고고: 지 알고 내 알고….

오존: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즐거이 속으러 극장으로 가는 거죠. 그리고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속아줄 만큼의 재미가 제법 있답니다.

고고: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와는 화법이 좀 다를 듯?

오존: 특정 문화권에서만 통하는 얘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를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인물들이 보여주는 세대 차이, 삶의 방식에 대한 기본적 관용과 입양문제 등에 대한 열린 태도는 프랑스다운 것이겠지만요.

고고: 확실히 요즘 프랑스영화에서 ‘프랑스적인 것’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오존: 음, 요약하자면 이 영화에서 로맨스쪽은 “다 알죠?” 하는 투로 다소 헐렁하게 진행됩니다. 남녀의 마음이 변하는 결정적 계기도 어물쩍 넘어가죠. 그러나 코미디 부분에선 참신하고 총명한 대사가 많아요. 무엇보다 두 주연의 개성을 잘 살린 캐릭터가 있고요. 작은 역할의 인물들이 재미난 농담을 짭잘하게 보탭니다.

고고: 아, 그러면 로맨틱코미디는 용서가 되지요.

오존: 이 영화에서 중요한 나사는 루이스네 식구들이 엠마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이에요. 이런 장치는 한국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도 있었죠.

고고: <당신이 잠든 사이에>와도 상통하네요. ^^

오존: 이 영화가 로맨스로서 갖는 약점은, 두 주연이 각각은 훌륭하지만 서로 사랑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에요.

고고: 그건 치명적이지 않아요?

오존: 그런데 결론은 안중에도 없고 과정을 즐기는 영화라 그런지 “그렇다치고”라고 양해가 되더라고요. -..- 물론 좀 투덜거리긴 했어요. 43살이나 된 돈 버는 독신남이 왜 살림 치다꺼리를 누이와 어머니에게 넘겨서 불만을 사는지, 또 결혼이 정말 싫으면 어른답게 설득하지 왜 거액으로 사람까지 쓰면서 민폐를 끼치는지 한심하잖아요. 그런데 샬롯 갱스부르는 좋아하시나요? 이 영화에서 그녀가 분하는 엠마는 코미디로서는 배우 평소 모습에 충실한 편이에요. 대사는 예리하지만 사내아이 같으면서 연륜이 주는 쓸쓸함도 잘 드러내서 배우의 매력을 고루 맛볼 수 있죠. 주름도 아름다운 여성들이 있는데 갱스부르도 그런 부러운 그룹에 속하는 여배우인 듯.

고고: 저는 초기의 소년 같으면서 귀여운 갱스부르도 좋았지만 <러브 에세트라> 같은 영화에서의 갱스부르도 좋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작품에서도 직업이 미술품 복원사였군요.

오존: 덧붙이자면, (선배는 심드렁하시겠지만) 이 영화에서 갱스부르의 패션은 그야말로 무심한 듯 근사합니다. 주로 코트 두벌에, 면으로 된 상의, 바지를 입는데 인물 성격과 어울리면서 배우의 몸에 스륵 감겨 있는 느낌이에요. 저로서는 <레이디 채털리>와 더불어 올해 가장 눈길이 머물렀던 영화 속 여성 의상이었습니다.

고고: 심드렁한 쪽이라면, 혹시 멋진 요리까지 나오지 않수? -.-

오존: 와인은 조금 나오는데, 식탁에서 워낙 말들이 많아요. 요리는 눈길도 못 줬네요. 데이트 프로그램으로 적절한 영화를 찾는 관객에겐 안전한 선택이 될 법한 영화였습니다. …. 선배, 영 시큰둥하시네요. 그러지 말고, 손 좀 빌려주세요. 네? ^.~

고고: 밤이 깊어가니 목이 뻣뻣해지면서 손도 무거워지네요. 역시 손과 목은 나이를 속일 수 없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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