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 현장을 가다
2008-01-03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사진 : 이혜정

“봉준호 감독님 콘티북은 거의 만화책이에요.” 배두나의 말을 의심하진 않았지만 직접 보니 특별한 감탄이 필요하긴 했다. 단정하고 굵은 선의 데생이 깔끔하기도 했지만 컷마다 장면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믿고 따라올 만하지?’라고 말하는 듯. 봉준호 감독의 그림 콘티는 현관 입구에 비닐 커버와 더불어 붙여져 있었다.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한 일본인 스탭이 “쓰고이!”(멋있지)라고 엄지를 치켜들고 지나간다. 콘티만큼 신기했던 건 간식대 위에 대롱대롱 줄지어 달린 일회용 컵들이었다. 빨래집게 같은 것에 물려 매달린 하얀 컵들에는 사인처럼 휘갈겨 쓴 스탭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하루에 일회용 컵 하나 사용은 비용 절감보다는 환경에 대한 배려였다. 4가지로 분류해놓은 쓰레기봉투 중에는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의 구분도 있었다.

8월 한여름 도쿄의 주택가, 히키코모리의 집

도쿄의 후지미가오카역에서 10분을 걸어들어간 주택가는 고요했고 정갈했다. 그 한가운데 낡고 야트막한 집이 불쑥 나타났고, 집보다 더 높이 쌓아올린 조명용 철제가 기묘한 인사를 해왔다. 8월23일 오후 7시는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여름 한철의 온도가 슬슬 식어가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괴물> 이후 신작 <흔들리는 도쿄>의 촬영 이틀째가 마무리돼가는 시간이었다. 정확히 12시간 전에 모든 스탭과 똑같이 전철을 타고 집합해 일을 시작한 감독의 신경이 피곤에 물들어갈 만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건 명확한 약속없이 수습기자적 정신으로 쳐들어간 것을 곧 후회하게 할 만한 시간임을 의미했다. 집 내부는 10년째 칩거 중인 히키코모리(바깥세상과 철저히 차단된 채 방 혹은 집에만 틀어박혀 살아가는 사람)의 세상다웠다. 갖가지 잡지들과 배달받은 피자 박스들이 차곡차곡 정돈돼 있었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절대부피 때문에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 사이사이로 온갖 촬영 기자재와 스탭이 박혀 있으니 몸과 옷깃을 부딪치며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이란 말을 하루에 50번쯤 반복하게 된다는 걸 믿게 됐다. “안녕하세요?”라는 봉 감독의 인사를 반갑게 받았으나 현장을 둘러본 건 불과 1분쯤? 바깥으로 철수했다가 재진격을 시도했으나 거긴 남양주종합촬영소가 아니라 일본인 스탭으로 둘러싸인 도쿄 로케이션이었다.

<유레루>를 보던 봉 감독의 눈을 번뜩이게 한 건, 오다기리 조의 까칠한 구레나룻이나 근사한 몸매가 아니라 어수룩한 형 역의 가가와 데루유키였다. 가가와의 훗날 ‘증언’과 일치하는 바, 봉 감독은 영화제에서 만난 <유레루>의 니시카와 미와 감독에게 가가와와 작품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고, <흔들리는 도쿄>의 시나리오를 쓸 때 가가와를 떠올리며 히키코모리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가가와를 캐스팅한 건 행운이었지만 동시에 촬영 스케줄이 꼼짝없이 정해져버렸어요. 영화와 연극 일정이 빡빡해서 1년 중에 시간이 비는 때가 8월 말이 유일했으니까요. 가가와를 세팅하고 나서 아오이 유우가 했으면 좋겠는데, 반신반의했죠. 워낙 바쁠 텐데다가 스케줄 조정도 어렵고. 운이 좋았어요. 다케나카 나오토가 조연으로 나오게 된 것도. 원했던 베스트 라인업으로 다 됐으니 굉장히 기뻤을밖에요.”

봉준호 감독의 첫 해외 진출

<흔들리는 도쿄>는 프랑스의 콤데 시네마와 일본의 비터스 엔드, 그리고 국내의 스폰지가 공동제작하는 옴니버스 <도쿄>(가제) 중 한편이다. 미셸 공드리의 <인테리어 디자인>과 <폴라X>(1999)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레오스 카락스의 <오물>이 나머지 짝을 이룬다. <사랑해, 파리>처럼 여러 감독이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펼치는 컨셉이다. 봉 감독은 <괴물> 후반작업 중이던 2006년 초에 제안을 받았다. 그해 칸영화제에서 만나 프로젝트를 구체화했지만 “느리게 진행되면서 감독 라인업도 이렇게 저렇게 바뀌면서” 진통을 겪었다는 건 영화 제작과정, 특히 합작에서 충분히 상상 가능한 흐름이다. <괴물> 이후 장편으로 정해놓은 <머더>(가제)의 제작일정 때문에 도쿄 프로젝트의 승선 여부를 최종 결정해야 할 그해 말, 미셸 공드리가 참여하면서 비로소 감독 세팅이 마무리됐다. 봉 감독의 해외 프로젝트 참여는 처음이다. 아니, 해외 촬영을 단 1회도 해본 적이 없다.

“<살인의 추억> 이후 일본에서 장편 제안이 꾸준히 왔고 그중 한두편은 작품 자체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시스템이나 분위기 등에 대한 생소함과 두려움 때문에 결국은 거절하고 말았”던 그로선 남다른 결심인 셈이다. “옴니버스에 대한 관심, 30분짜리로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감, 2000년 도쿄영화제 때부터 가기 시작한 도쿄에 대한 친숙함과 묘한 긴장감”이 그를 자극했던 것이다. 요는 21세기 서울을 한강과 괴물로 재편해 바라보았던 그가 도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물론 감독으로서 그의 몫은 해석보다는 재창조다. 공정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의 도쿄 해석부터 더듬거려볼밖에. 시나리오의 첫인상은 이미지가 지문을 매끄럽게 대체한 일본 단편소설 같았다. 자의식어린 인물과 친절한 심리묘사가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단편소설을 생각해보면 더욱. 히키코모리(가가와 데루유키)는 왜 10년째 스스로를 유리한 채 사는지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TV와 잡지로 외부세계를 간접 향유하며, 모든 음식을 배달시켜 먹되 배달원의 눈빛과 마주치지 않는다. 이런 행동에서 그의 심리를 짐작할 뿐이다. 그녀(아오이 유우)의 내면도 이미지로 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녀는 몸 곳곳에 버튼을 그려놓았다. headache, hysteria, loneliness 등등. 자판기의 내면화, 그에 따른 수동화한 인격? 히키코모리가 일본적 현상이라면 도심 곳곳에 즐비한 각종 자판기와 구간마다 차이나는 전철 요금을 기막히게 자동화해놓은 티켓자판기 역시 일본적 이미지다. 이들을 이어주는 건 익살맞을수록 귀여운 다케나카 나오토다. 세명 모두 이름을 부여받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것 역시 감독이 도쿄를 쳐다보는 어떤 시선에서 나온 것 같다.

“도쿄는 거대한 도시고 인구밀도도 높고, 집은 좁잖아요. 그런데 이들은 서로 닿지 않으려는 느낌이 강해요. 좁은 지하철 안에서도 서로 부딪치려 하지 않고, 식당에 가면 혼자 먹는 자리가 많고 또 혼자 먹는 게 일반적이고. 외로워 보인다는 인상이 많았죠. 히키코모리는 그 궁극의 모습이랄까. 그런 히키코모리에게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가장 드라마틱할까, 생각하다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히키코모리에게 가장 안 어울리는 일이 뭘까 하는 식으로 생각을 발전시켜나갔어요.”

히키코모리가 되려는 그녀의 집

같은 달 25일 오전, 우리로 치면 분당쯤 되는 도쿄 외곽에 도착하니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나오는 마츠코의 집을 딱 옮겨놓은 듯한 허름한 아파트가 덩그러니 서 있다(봉 감독을 돕고 있는 요시미 조감독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조감독이었다고 누군가 귀띔해주었다). 주위 주택과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컨테이너 박스 같은 녹슨 집. 그곳에 아오이 유우가 산다. 이날은 일본 저널을 상대로 한 현장공개가 잡혀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상적인 건 영화 내부가 아니라 영화 외부였다. 촬영장의 주인과 손님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고 완벽한 3자로서 지켜봐야 했던 애매한 위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인(제작사)과 손님(일본 영화저널)은 서로에게 지극히 공손했다. 기자들은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개별적으로 집합했고, 오후 3시30분께 단 20분 주어진 점심시간에 개별적으로 잘 대처했다(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기자들로 붐볐고, 도시락은 순식간에 동났다). 그리고 포토라인이 그어진 여름 한낮의 뙤약볕에서 오후 내내 불평없이 버티어냈다. 대절한 버스, 준비된 식사 등 한국의 현장공개 상태와 거의 정반대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미끄러져가는 신사협정다운 양자의 태도는 처음 고무적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해진 라인 밖에서는 감독과 배우와 스탭이 무엇을 놓고 어떻게 소통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기다린 시간의 10분의 1 정도 되는 시간이 주어진 기자간담회에는 배우들만 참석했다. (후자는 외국 감독에 대한 배려라고 보더라도) 불평이나 불만 대신 당연한 표정을 짓는 일본 기자들. 아직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영화에 대한 탐색과 탐구라기보다 구경에 가까운 풍경이라는 편협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한국 영화저널의 미래를 본 건 아닐까). 서로에 대한 간섭을 극도로 꺼리는 영화 밖 풍경에서 봉준호 감독이 <흔들리는 도쿄>를 준비하면서 가장 염두에 뒀던 영화 안 화두가 겹쳤다. “도쿄 사람들은 왜 그토록 외로워 보였을까, 도대체 무엇을 겁내는 걸까? 움츠려 있는 듯한…. 제 딴에는 그런 것에 집중했어요.”

이날 촬영의 핵심은 자기 공간을 탈출한 히키코모리가 또 하나의 히키코모리가 되려는 그녀의 손을 낚아채는 순간이다. 아주 거칠게, 그러나 아주 간절하게 그녀의 팔을 붙잡는 히키코모리. 그 순간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든다. 타인에 대한 애절한 간섭이 외로운 도쿄 사람들에게 절실하다고 봤던 걸까. 그리고 혹시 이건 봉준호 최초의 본격 로맨스는 아닐까? “별로 로맨스적이지 않은데. 하하. 사랑영화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완성된 영화를 보더라도 로맨스나 멜로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요. 도쿄에 관한 영화, 내가 느끼는 일본 사람에 관한 영화일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가와이(귀엽다)하긴 해요. 하하.”

히키코모리가 집 밖으로 나오기로 결심하는 순간, 영화도 주인공도 고난의 행군을 맞는다. “집 내부에서 뱅뱅 돌던 영화가 밖으로 나오면 로드무비가 되니까 어려움이 많은 거죠. 아오이 유우가 있는 곳까지 가야 하니까, 도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장면도 있고. 카메라는 계속 남자주인공을 따라다니는데 화면의 느낌이나 색채의 톤, 광선의 느낌은 또 달라지거든요. 광선이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해요.”

봉준호 감독 자신도 지난 한철 도쿄 한복판에서 힘겨운 로드무비를 겪었다. <흔들리는 도쿄>의 후반작업이 끝나는 대로 남은 겨울은 서울을 떠나 <머더>의 시나리오를 써야 하고, 그 다음에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하는 <설국열차>를 만들어야 하지만 외국, 특히 일본에서의 긴 작업을 받아들일 여력이 생겼다. “생소함이나 두려움 때문에 거절해왔지만 이제 좋은 장편 제안을 받으면 일본에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죠. 100분짜리 영화인데 촬영횟수 얼마를 보장하면 할 수 있겠다 같은 거.” <흔들리는 도쿄>가 히키코모리와 그를 동시에 변화시킨 걸까.

두명의 파트너, 미셸 공드리와 레오스 카락스의 영화는?

<도쿄>의 월드 프리미어는 내년 칸영화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프랑스 제작사 콤데 시네마의 계획이기도 하지만 미셸 공드리와 모처럼 연출을 맡은 레오스 카락스의 신작들이 보탬이 될 것이다. 외로움의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매만지는 미셸 공드리는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의자’이고 싶어하는 도쿄 여인을 등장시킨다. 영화를 만드는 아키라와 그의 여자친구 히로코가 고향 친구인 아케미의 집에 찾아든다. 도쿄의 전형적인 원룸에 얹혀 지내면서 세명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는데 아케미의 남자친구 다케시의 등장으로 동거는 더욱 불편해진다. 허무해지는 시간과 공간 속에 가슴이 뻥 뚫린 채 도쿄 거리를 걷는 히로코에게 이상한 조짐이 나타난다. 쓰마부키 사토시, 후지타니 아야코, 가세 료, 이토 아유미, 오오모리 나오 등이 출연한다.

레오스 카락스의 <오물>에서 도쿄는 공포에 질려 있다. 작고 거무튀튀한 몸체에 하나의 눈과 붉은 수염을 지닌 끔찍한 괴물이 출몰하는 것이다. 미디어는 그를 오물의 결정체라고 칭하는데 그의 언어는 너무 괴상해서 파리의 변호사 볼란드만이 알아들을 수 있다. 그가 일본으로 건너와 괴물의 심문을 진행하고 대중은 비난과 옹호로 갈린다. 레오스 카락스 영화에서 늘 그랬듯 드니 라방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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