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임순례] “내 생애 가장 즐겁게 만든 영화다”
2008-01-15
글 : 주성철
사진 : 이혜정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로부터 무려 6년 뒤, 임순례 감독이 여자핸드볼팀 이야기로 돌아왔다. 모두가 알고 있는 실화의 현장으로 뛰어든 그는 리얼리티를 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자신의 마이너한 감성을 좀더 대중적 화법으로 펼쳐 보이는 작업에 고심했다. 삶의 안팎에서 위기에 처한 ‘비인기종목’ 선수들을 관조하는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은 여전하고, 아줌마가 중심이 된 선수들의 좌충우돌하는 입담과 퍼포먼스도 발군이다. 지난 10년간 단 3편이라는 과작(寡作)의 감독인 그는 <우생순>을 통해 언제나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었다는 욕심에 한발 가까이 다가섰다.

-<무림고수>를 준비하다가 <우생순>에 뛰어들게 된 상황은.
=<무림고수>는 시나리오 초고까지 나왔는데 캐스팅이 잘 안 됐다. 아무래도 스타 캐스팅에 힘썼는데 하필 그즈음 원했던 배우들이 다 군대를 가더라. (웃음) 그렇다고 제대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다른 대안이 없었고, 마침 심재명 대표가 은메달을 딴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팀 이야기를 꺼냈다. 나 역시 그 경기를 인상적으로 봤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세친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비교해볼 때 <우생순> 역시 자신과 어떤 접점이 있다고 본 건가.
=심재명 대표와 내가 초점을 잡은 건 아테네올림픽이라는 상황과 나이 많은 아줌마 선수들이라는 두 가지였다. 사실 상업적으로는 판단이 잘 안 섰는데, 어쨌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범주에는 들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자들 이야기고, 종목도 비인기종목이고, 결혼해서 나이도 많고 애도 있는 사람들이 고생해서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이야기 아닌가. 지금껏 내가 해왔던 영화들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냐’라는 얘기를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세상 모든 사람 다 그렇게라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고, 언제나 그들을 감싸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현 작가의 시나리오는 어땠나.
=초고를 보고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늘 직접 시나리오를 써왔기 때문에 전문 시나리오작가들은 장르적인 관습에 더 치중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초고를 보면서 그런 우려가 많이 없어졌고, 장르적인 규범에 충실하면서도 내가 포용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아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으레 이런 영화를 할 때는 심판의 편파판정을 부각하고 수세에 몰린 한국팀을 통해 애국심을 자극하는 게 유혹적인 방식인데 그것도 피해가려고 애썼다. 게다가 실제로 요즘 남자핸드볼팀이 베이징올림픽 예선을 치르면서 편파판정으로 재경기를 갖게 되지 않았나. 하지만 한국 선수들도 덴마크 선수들도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는 건 그날 경기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 거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됐나.
=<세친구>는 가제가 그대로 영화제목이 된 어이없는 경우다. 보통 가제를 지어놓으면 거기 기대게 되니까 ‘앞으로 절대 가제는 정해두지 말자’는 결심을 줬던 영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딱 좋았던 경우다. 나현 작가가 초고에 붙인 제목은 <질 수 없다>였다. 난 괜찮았는데 당시 <하면 된다>나 <이대로, 죽을 순 없다> 같은 영화도 있어 뭔가 액션영화 아니면 형사 누아르물 같은 냄새가 난다 해서 반대가 많았다. 내가 낸 의견을 모조리 다 무시당했는데, <내 인생의 스카이슛> 아니면 영화의 느낌을 그대로 이미지로 표현한 <내 인생의 슬라이딩 바운드슛> 같은 거였다. 배우들이 몸을 굴리면서 최고로 위험한 상황에서 넣은 멋진 슛이기 때문에 의미상으로는 좋았지만, 한글로 풀어서 ‘넘어져서 구르다 넣는 슛’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호응을 못 얻었다. 그러다 기획실 직원 모두에게 100개 정도씩 써내라고 한 것 같은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다득표를 했다. 당시 <내 생애 최악의 남자>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같은 제목들이 있어서 난 반대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같은 영화와도 헷갈려서 사실 제목 외기조차 힘들었다. <질 수 없다>와 더불어 또 좋았던 제목은 김현철 PD가 낸 <대한민국 여자핸드볼>이었는데 <대한민국 헌법 제1조>랑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도 거절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했던 제목들이 하나같이 다 거절될 만했다. 그러다 결국 보도가 나간 다음에는 못 고치는 상황이 됐다. (웃음)

-2004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좀 애매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복고적 느낌을 살릴 수 있는 확실한 과거도 아니고, 분명 현재 또한 아니고.
=그게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조사를 해보니 그 경기를 본 사람들이 참 많긴 한데, 사람들은 그보다 오히려 2년 전의 일인 2002년 월드컵의 디테일들을 더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축구는 워낙 친숙하기도 하고 그 장면들을 워낙 많이 보여줬으니까. 2002년 월드컵은 이탈리아전에서 누가 골을 넣고 연장전에 무슨 일이 있었고 하는 걸 잘 기억하는 사람들이 2004년 핸드볼은 억울한 오심과 승부 던지기 등 큰 덩어리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결국 문제는 완성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영화를 잘 만들지 못하면 기억하는 사람이건 못하는 사람이건 실망할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현장에서 의견을 조율할 때 배우들과 조용히 대화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클럽과 비교해도 촬영 무대 자체가 넓으니까 그러지 못해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태릉선수촌의 실내 연습장면은 그냥 크게 육성으로 해도 됐는데, 결승전이 열리는 인천 삼산체육관은 워낙 넓어서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무선 마이크를 썼다. 모니터와 배우 사이의 거리가 수십 미터가 되다보니 배우들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데만 몇분이 걸렸다. 배우들이 모니터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 거리 때문에 실제로 그럴 상황도 못 됐다. 너무 바빠서 보러 왔다갔다 할 시간이 없는 거다. 게다가 필요할 때 내가 배우들쪽으로 걸어가는 것도 시간이 걸리니까, 누군가는 농담 삼아 코트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지휘하거나 힐리스(바퀴 달린 운동화)라도 신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웃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이크에다 대고 공개적으로 배우들의 단점을 지적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게 적응이 안 됐다. 차마 마이크로 못할 얘기는 직접 걸어가서 했는데, 그러면 배우들은 ‘얼마나 심한 얘기를 할 생각이기에 마이크 안 쓰고 직접 오는 걸까’ 하면서 조마조마했다더라. 그래서 그때마다 내가 걸어오는 시간이 무료해서 ‘그녀가 온다 어쩌고저쩌고’ 하는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다. (웃음)

-실화를 다루다보니 취재를 통해 얻어진 디테일들이 눈에 띈다. 경기를 위해 생리를 지연시키려고 약을 먹다가 불임이 된 얘기, 태릉선수촌에서 밥 먹을 때 여자역도부와 충돌한 얘기 같은 것들 말이다.
=선수들 개개인의 얘기들은 아무래도 취재를 통해 구성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식당에서 충돌하는 얘기는 나도 재밌게 들었던 터라 꼭 넣으려 했다. 사실 식당에서 대립하는 건 역도부가 아니라 하키부다. 태릉선수촌에서 하키와 핸드볼은 늘 라이벌이라고 하더라. 둘 다 비인기종목이면서 대회 성적도 좋고 또 단체 경기다. 핸드볼팀은 하키팀이 늘 엎드려서 경기한다고 ‘땅개’라고 놀리고, 하키팀 역시 핸드볼팀에 늘 찬밥 신세라고 ‘한대볼’이라고 부른단다. 그래서 양쪽이 집단적으로 충돌하는 장면을 설정했는데, 여자 보조출연자들 중에 운동선수 간지가 나는 분들이 드물더라. (웃음) 영화에서 역도부로 나온 친구도 단역배우인데 살을 좀 빼서 몸이 탄탄해지면 하키부로 가겠다고 했고 의욕을 보였다. 그래서 한달 동안 열심히 운동했는데 역시 그 간지가 안 나오더라. 그래서 결국 역도부로 가자고 했고 장미란 선수 같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웃음)

-경기장면 연출시의 앵글이나 편집은 의도적으로 TV 중계화면을 피한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떤 원칙이 있었나.
=촬영, 조명감독과 함께 테스트 촬영을 많이 했는데 익숙한 중계화면은 좀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프라인이 거의 늘 보이고 양쪽 골대를 풀숏으로 보여주는 가운데 가끔 골대 뒤에서 줌으로 당기거나 하는 정도다. 물론 사람들의 기억이 있는 만큼 중계화면을 생각 안 한 건 아니지만, 경기의 박진감을 제공하는 게 우선이라면 과연 관객은 무엇에 더 시선을 줄까 하는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관객은 결과를 아니까 선수들의 기량이나 멋진 슛보다는 어떤 상황에 직면한 배우들의 다양한 표정을 가장 보고 싶어할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풀숏은 지나치게 설명적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래서 카메라가 선수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원했고, 스테디캠으로 경기장 안에 들어가 선수들을 담아내려 애썼다. 그런데 워낙 움직임이 빠른 스포츠다 보니 경기 중에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조은지, 이렇게 끊기는 것없이 배우들을 쫓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애초 생각보다 좀더 디테일하게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긴 하다.

-클라이맥스가 궁금했다. 결승전에서 졌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고, 결승전이 또한 영화의 클라이맥스일 것이 뻔하기에 어떻게 마무리할지가 궁금했다.
=결승전 엔딩에 대한 고민은 시나리오 때부터 고민이 많았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미숙이가 공을 집어 들고, 슛 자세를 취하고, 스틸이 걸리면서 끝난다. 완성된 영화와는 다른 거지. 그런데 시나리오 모니터를 해보니까 ‘거기서 끝내면 관객이 배신감을 느낀다’는 의견이 많았다. 뒤 장면을 더 보고 싶어한다는 거다. 그런데 난 사람들이 결과를 다 아니까 슛 자세에서 끝나는 게 더 깔끔하고 세련된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다 촬영에 들어간 건데 김현철 PD와 박상현 조감독은 계속 승부 던지기 이후의 장면들을 찍어야 한다고 부탁했다. 그런데 사실 스케줄상 찍을 여건도 안 됐던 터라 촬영 마지막 날 오전까지 그 앞 장면까지 끝나게 되면 반나절 정도 그 장면을 찍겠다고 했다. 그런데 보통 스케줄이 조금씩 오버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 장면을 찍을 의지가 나에게는 별로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두 사람이 어찌나 애를 썼던지 정말 시간이 조금 남았다. (웃음) 스테디캠으로 한두 테이크 정도 갈 거였는데 덴마크 선수들이 집에 간다는 거 통사정해서 붙들어두고 2∼3시간 정도 촬영했다. 그런데 나중에 편집 때 보니까 나도 그 장면이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감정을 너무 자극하는 쪽으로 가지 말고 담백하게 끝내자고 생각한 건데, 관객이 원하는 걸 보여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거다.

-당신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늘 대화장면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나 할까. 요즘 한국영화들이 소홀히 처리하는 장면들이라는 생각도 하는데, 그런 장면의 비밀이라고 한다면. (웃음)
=처음 듣는 얘긴데. (웃음) 아마 그런 장면들을 좋게 느꼈다면 이런 걸 거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은 별로 없다. 그냥 정보나 기분을 주고받는 거지. 그런데 정말 막다른 처지에 처하게 되면 진심이나 진정성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같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성우(이얼)가 옛 친구에게 “하고 싶은 일(음악) 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라고 하면서 주고받는 대화들, <우생순>에서 혜경(김정은)이 미숙(문소리)을 대표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주고받는 대화들, 빚에 좇기다 선수촌까지 승필(엄태웅)을 힘들게 찾아온 규철(박원상)이 주고받는 대화들, 모두 극한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 영화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그렇다. 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던 거다. 그럴 때 끼어들기보다는 가만히 쳐다보게 되는 거니까.

-이번 영화로 늘 얘기해왔던 대중과의 접점, 연출의 유연성이라는 점에서 만족하는 편인가.
=사실 몰라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꾸준히 가졌던 생각이다. <세친구>도 1, 2년 뒤에 다시 보니까 너무 답답하고 경직돼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저렇게까지 심하게 고집스럽게 찍을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 거다. 그보다는 유연하게 만들자고 결심해서 반성하고 만든 게 <와이키키 브라더스>다. (웃음) 물론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그런 고민을 하다가 호흡이나 미장센의 구성에서 좀 답답한 부분들을 느끼긴 했다. 굳이 고집스럽게 버틸 필요가 있을까, 카메라가 배우를 따라가도 되고, 컷을 더 나눠도 되고, 정서를 해치지 않으면서 말과 표정을 더 재밌게 담아낼 수도 있는데 굳이 저럴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한 거다. 그 사이 인권영화 프로젝트 중 한편인 단편 <그녀의 무게>를 하면서도 관객으로서의 고민을 했다. 그래서 <우생순>은 ‘너무 낯뜨거운 거 아닌가’, ‘유치하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꺼리는 게 이전보다는 좀 적어졌다고나 할까. 점점 ‘그렇게 하면 왜 안 돼?’ 하는 식의 생각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이후 <무림고수>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나? 차기작 계획이 있다면.
=<무림고수>를 계속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생순>은 디렉팅을 하면서 쾌감을 느껴본 영화였다. 현장에서 코믹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코믹한 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더라.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라 코미디영화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렇다고 <색즉시공> 스타일의 코미디를 하지는 못할 거고, 윤제균 감독님도 맡겨주시지 않겠지만(웃음), 이제 연출할 때도 재미있고 보는 사람도 재미있는 그런 영화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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