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토크]
[메신저토크]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엔젤>
2008-02-13
글 : 이동진 (영화평론가)
글 : 김혜리

김혜리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비판과 계몽의 의욕이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슈퍼맨이 될 능력, 즉 위대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되풀이 강조하죠.”
이동진 “정윤철 감독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 미학적인 부분을 조금 희생하고서라도 윤리적인 부분, 메시지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대 인사에서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만든 영화, 거칠고 투박하고 노골적이고 뻔뻔한 영화’란 말을 남기기도 했고요.”

편의점: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오늘 시사가 있었죠? 정윤철 감독의 무대 인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이브 디 어스! 체인지 더 퓨처!”로 마무리지었죠? ^^ 영화는 슈퍼맨을 태운 우주선이 지구로 접근하는 CG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 우주적 출발은 <좋지 아니한가>와 같죠. <말아톤>에 나온 세렝게티도 그렇지만 정윤철 감독은 마음속에 ‘부감 앵글’이 내장돼 있는 듯. ^^

빵집: 워낙 메시지의 비전이 웅대한 영화잖아요. ^^ <지구를 지켜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시작하는 영화처럼도 보였어요. ‘선한 근심으로 만든 <지구를 지켜라!>’랄까요. ^^

편의점: 장준환, 정윤철 크로스!?

빵집: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많이 생각나더군요.

편의점: 그렇죠. 좀더 멀리 나아가면 부산국제영화에서 상영된 SF코미디 <대일본인>도!

빵집: 방금 거론한 세편의 한국영화들은 전부 일종의 과대망상을 지닌 인물을 다루고 있고, 그 인물들의 슬픈 과거사를 후반부에 펼쳐내는 공통점이 있습죠.

편의점: 그것 자체가 징후로서 비평가들이 이야기할 만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믿고 전심으로 임무를 다하는 남자(황정민)와 ‘기인 열전’ 비슷한 컨셉의 TV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회의주의적 여성 PD의 만남을 그립니다. 스토리 전개는 크게 예상을 벗어나진 않아요.

빵집: 초반 30분을 보고 나니까 영화를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나머지는 어떤 내용이 나올 수 있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중반 이후는 그 인물의 과거사에 얽힌 이야기로 풀어가는데, 사실 이 영화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초반에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종반에는 다만 그걸 더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뿐이죠. 차이가 있다면, 후반장면들은 결국 슈퍼맨의 초능력은 특출한 한 ‘개인’의 비범한 능력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선한 마음이라는 걸 직접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거죠.

편의점: 저는 이 영화의 메시지에 깊이 동조하며 봤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묘한 기분도 들었어요. 뒤집어보면,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을 돕고 공동체 미래를 염려하는 행위가 일종의 착란 증세나 초능력의 이름으로 영화에 등장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 약을 먹고 ‘정상’이 되면 지구의 미래에 대한 근심을 멈추고요.

빵집: 그런 설정이 역설적 사회비판이기도 한 거죠. 그 설정은 <페노메논>도 떠올리게 했어요. 그 영화에서는 존 트래볼타가 어느 날 갑자기 천재가 되는데 알고보면 그 천재성이 뇌종양의 부작용이거든요.

편의점: 회의적인 여성 저널리스트와 선량하고 천진한 마음으로 기적을 보여주는 남자주인공이 나오는 구도는 꽤 친숙하죠. 물론 이 영화는 원작 <슈퍼맨>의 슈퍼맨과 로이스 캐릭터를 반영한 점도 있겠지만요.

빵집: 일단 최근 사례로는 <식객>이 그랬죠. 이를테면 이 영화에서 전지현씨가 분한 캐릭터는 로맨틱코미디에 나오는 ‘사랑을 믿지 않는 이혼 전문 변호사’만큼이나 익숙한 느낌이 있어요. ^^

편의점: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비판과 계몽의 의욕이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슈퍼맨이 될 능력, 즉 위대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되풀이 강조하죠.

빵집: 그 점이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제일 아쉬운 부분이죠. 사실 정윤철 감독은 미학적인 부분을 조금 희생하고서라도 윤리적인 부분, 메시지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대 인사에서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만든 영화, 거칠고 투박하고 노골적이고 뻔뻔한 영화”란 말을 남기기도 했고요.

편의점: 그러다보니 후반부에서는 감흥을 유발하려는 리듬의 의도적 지연이 두드러지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빵집: 관객 입장에서는 그런 게 참 부담스럽게 느껴지죠. 전 기본적으로 예술은 간접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직접성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있다면, 그건 예술이 아닌 다른 곳에서 더 잘 해결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대사 자체가 담고 있는 아름답고 선한 뜻과는 별도로, 직접적으로 특정 대사들을 반복하면서 메시지를 심어주려고 하는 방식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편의점: 저는 한국영화에서는 왜 이렇게 이야기의 매듭이 굵어야만 할까 하는 자문을 했습니다. 인간은 같이 살아가기에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만큼 거대한 우연과 트라우마와 비극이 다 동원되어야 할까? 결과에 비해 뭔가 거창한 원인이 필요하다는 강박이 있는 듯해요. 명백한 불의에 항의하거나 삶 속에서 자연스레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발언하려면 그 핑계로 어마어마하게 큰 아픔이 있어야 관객이 납득한다고 보는 것 같다는 거죠. 마지막에는 극단적인 희생이 나오고요.

빵집: 동의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과거 속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현재의 과대망상이라는 정신질환이 그것을 위해 거론되고 있죠. 그런데, 사실 감독이 그토록 전달하고 싶어하는 메시지의 힘을 위해서라도, 다른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편의점: 사실 좀 겁날 수도 있죠. ^.~ 남을 도우려면 저 정도는 해야 하나, 난 아무래도 안 되겠다.

빵집: 사실 저는 정윤철 감독의 이전 두편의 영화들을 상당히 흥미롭게 보았는데, 이번 영화는 중언부언의 느낌과 직접화법 때문에 그리 인상적으로 보질 못했어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직접성은 메시지뿐만 아니라 유머 측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요. 예를 들어 휴먼다큐 제작을 3년 하느라 신물이 난 송 PD가 “성우의 목소리가 왱왱거려서 죽겠다”고 호소하자, 바로 성우의 보이스 오버로 ‘그건 뻥이 아니었다’고 덧붙이는 식이죠.

편의점: 정윤철 감독도 전작 두편과는 다르게 접근해보겠다는 결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드는 속도와 환경도 많이 달랐고요.

빵집: DJ DOC의 <수퍼맨의 비애>에서 나이트클럽 웨이터 ‘배트맨과 로빈’까지, 슈퍼맨 소재에 착안해서 끌어들인 유머들도 그렇게 신선하진 않았어요.

편의점: 그 배트맨 웨이터는 황정민 배우의 매니저가 분하셨더군요. <행복>에서도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죠. ^^

빵집: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 황정민씨가 연기한 캐릭터는 매우 위험부담이 높은 캐릭터죠. 전부 아니면 전무가 되기 쉬운 스타일의 캐릭터인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임수정씨나 <웰컴 투 동막골>의 강혜정씨는 그게 ‘전부’가 된 경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황정민씨는 뛰어난 연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전부’라는 확신을 주진 못해요. <행복>에서의 연기가 훨씬 더 좋았어요.

편의점: <검은집>과 <열한번째 엄마> 그리고 이 영화에서의 연기는 예전처럼 관객을 무시무시하게 몰입시키지는 않아요. 캐릭터에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인다고나 할까.

빵집: 송 PD가 어릴 때 동물 다큐 본 이야기하는 부분은 좋았어요. 사자로부터 토끼를 구해주지 않고 왜 계속 영화를 찍을까 원망했지만 이젠 그 다큐 감독도 괴로웠을 거란 걸 안다고, 그게 그 사람의 역할이라서 그랬던 걸 안다는 대사였죠. 그게 송 PD의 처지와 연결되며 뭉클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맹자’의 이야기도 떠올랐거든요. ^^ 화살 만드는 사람이라고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인자하지 못한 게 아닌데도, 화살 만드는 사람은 사람을 상하지 못하게 할까봐 걱정하며 만들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사람을 상하게 만들까 걱정하며 만든다는 구절이죠. 실제 삶에서 갑옷과 화살이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요.

편의점: 사실 이 영화에서도 “당신의 도움이 궁극적으로 남에게 좋을지 안 좋을지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이 슬쩍 나오지만 답은 파고들지 않았죠.

빵집: 회의주의자의 영화는 분명 아니니까요. 영화의 대중적인 힘을 믿고 사회적인 역할을 강하게 의식하는 영화니까요.

편의점: 마지막으로 이야기 나눌 <엔젤>은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작품입니다. 천방지축 베스트셀러 작가의 일대기죠.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작가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고요. 원작자 이름 보고 보도자료도 농담하는 줄 알았답니다. -.- 주인공인 엔젤은, 재능은 없지만 허영심과 자존심이 대단한 문학소녀인데요. 글쓰기가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정도죠. --;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가 쓴 로맨스 소설이 서점가를 강타하면서 자신의 통속소설 여주인공처럼 화려하지만 끝내는 불행해지는 인생을 삽니다.

빵집: 엔젤의 자신감은 정말 대단하죠? ^^

편의점: 시대극으로나 예술가영화로나 매우 특이한 작품입니다.

빵집: 저는 후자쪽으로 볼 때 좀더 흥미로웠어요.

편의점: 예술가 영화는 보통 일류, 그중에서도 비운의 천재를 즐겨 다루는데 <엔젤>은 당대엔 돈 많이 벌고 후세엔 아무도 모르는 삼류 작가를 그리잖아요. 솔직히 제가 늘 보고 싶던 소재였어요.

빵집: ^^ 더구나 극중에서 사랑하는 두 남녀 예술가의 예술관이 선명하게 대조되기도 하죠.

편의점: <엔젤>은 아주 개성적인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모든 작가들을 매우 심술궂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종 감독은 이 영화를 테크니컬러 시대 멜로드라마처럼 티를 내며 찍습니다. 스크린 프로세스처럼 한물간 기교를 거칠게 쓰고 대사나 조명도 신파조로 썼죠. 그 ‘투’가 과거 장르에 성실히 몰입했던 <파 프롬 헤븐>과 좀 다르죠.

빵집: 저는 이 영화의 장르에 대한 태도가 좀 애매하다고 봤어요

편의점: 부정적으로 보면 애매한 건데 저는 그 지점이 오히려 재미있었습니다. <엔젤>은 로맨스 장르에 대한 조롱인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반면 그 어리석어 보이는 주인공들의 감정 흐름에 나름대로 호응하게 되거든요. 같이 동정하고 긴장하고 기뻐하면서요. 멜로드라마와 멜로드라마에 대한 풍자가 동거하면서 각각이 나름대로 효과를 낸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빵집: 엔젤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관객의 마음이 그렇죠. ^.~

편의점: 맞아요 이율배반성은 엔젤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이기도 해요. 이 여자는 정말 밉상이잖아요? 패리스 힐튼과 비슷하달까요?

빵집: 밉상인데 이상하게 후반으로 갈수록 동정이 가죠.

편의점: 현실에서도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이 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짓만 하는데도 보호해주고 싶은.

빵집: 글쎄, 그런데 저는 그런 복합성이 오히려 ‘초점없음’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자주 있었어요. 멜로드라마에 대한 풍자든, 멜로드라마 그 자체에 대한 몰입이든, 스파크가 없는 영화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이 영화가 결국 뭘 이뤄내려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다양한 층위들이 중심없이 얼기설기 잇대어 있다고 할까요? -.-

편의점: 전 그 애매함이 실제로 애매한 정도의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들의 삶이 남기는 인상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좋았고요. 영국 시대극이 정통적으로 ‘잘 만들기’를 지향한다면, 프랑스 감독들의 시대극은 삐딱하고 참신하게 보는 법을 모색하는 듯해요. 지난해의 <레이디 채털리>도 그랬고 에릭 로메르의 시대극도 오래전부터 그랬고.

빵집: 종반부에 접어들고 나면 <엔젤>도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명확히 손에 잡을 수 있죠. 너무 확실히 손에 쥐어주니 문제이다 싶을 정도로요.

편의점: 어, 아까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 하신 말씀이랑 비슷하네요? ^0^

빵집: 엇, 그러고 보니 오늘 영화들은 하나같이 직접적이네요. 직접적으로 목을 연거푸 따서 보여주고, 직접적으로 재난의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해주고,

편의점: 음… 오늘 대화명을 혹시 ‘단도직입’으로 바꾸실래요? ^_^

빵집: 단도… 라니 무서운 사자성어다. -..- 헉! 사자성어, 이 말도 가만 보니 무섭네. T-T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