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토크]
[메신저토크] <클로버필드>,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2008-02-13
글 : 이동진 (영화평론가)
글 : 김혜리

불편한 편의점님(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모퉁이 만나빵집님(lifeisntcool@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불편한 편의점님의 말(이하 편의점): 대화명을 보아하니 둘 다 출출한가봐요. ^^

모퉁이 만나빵집님의 말(이하 빵집): 오늘 제일 먼저 이야기할 <클로버필드>가 아무 의미도 없는 제목이잖아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제작자 J. J. 에이브럼스 사무실 근처 도로 이름이라면서요?

편의점: 심지어 그 도로는 클로버데일인데, 오타가 나서 이 제목이 됐다는 말도 있던데요.+_+

빵집: ^^ 저도 그래서 그냥 어린 시절 자주 가던 빵집 이름을 썼습니다. 그 만나빵집 고기만두 참 맛있었는데. ^0^

편의점: 어쩜. 혹시 동네에서 유독 맛있지 않았어요? 2층에 이발소는 없었고요? ^.~

빵집: ^0^어째 그 집만 장사가 잘되더라. 혜리씨 대화명은 “앙꼬없는 찐빵”의 비슷한 말?

편의점: <클로버필드>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엔젤>, 오늘 이야기할 네편의 영화를 늘어놓고 보니 <클로버필드>엔 클로버가 안 나오고 잔혹한 이발사는 이발은 생전 안 하고 면도만 하고, 슈퍼맨은 초능력이 없고, <엔젤>의 소설가는 재능이 없더라고요. -..- 그래서 이렇게 작명했습니다. 자, 그럼 <클로버필드>부터 우리도 핸드헬드 메신저 시작해볼까요?

김혜리 “한 청년의 손에 우연히 들려 있던 한대의 캠코더로만 촬영된 척하는 영화죠.”
이동진 “<클로버필드>의 내적 측면에서 무엇보다 높이 살 만한 것은 사실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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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창을 흔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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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에고. 성격있으시네. ^^

편의점: <클로버필드>를 보고 웃음이 났던 점이 있어요. 영화 보기 전에 다들 그렇게나 많이 “클로버필드가 대체 뭐야?”라고 웅성거렸는데, 영화를 정작 보고나도 클로버필드가 뭔지 누설하려야 할 수 없다는 거! 왜냐하면 영화에 클로버필드가 전혀 안 나오니까요. --;

빵집: 파이프를 그려놓고 제목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붙인 르네 마그리트와 정반대되는 경우죠. ^^ 클로버필드의 정체 말고도 누설할 게 없어요. -_- 무지 멀미난다, 해피엔딩이 아니다, 뭐 이런 정도 외에는.

편의점: 하도 쉬쉬해서 얼핏 보면 스포일러를 죽어라 피해다녀야 할 영화 같았는데 보고나니 스포일러가 불가능한 영화잖아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쇼크니까요. <클로버필드>의 예산은 300억원 정도인데요. 재난블록버스터들과 비교하면 추운 예산이죠. 겨울 재난영화답다고 할까요?

빵집: 착한 예산이죠. ^^ 할리우드 평균제작비의 절반 이하를 들여 만든 메이저 스튜디오의 장르영화가 이토록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개봉 전부터 돈을 이미 벌고 시작하는 경우도 없을 거예요. J. J. 에이브럼스가 대단한 기획자인 건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아요. 내가 스튜디오 사장이면 매일매일 업어주겠다.

편의점: 캠코더로 촬영된 테이프가 사후에 발견된 척하는 설정이니 보기엔 30달러도 안 든 것처럼 보이는 반면 관객에게 느껴지긴 1억5천만달러짜리 아닌가요? 체감되는 재난의 크기가 굉장해서….

빵집: 저는 그 정도로 느껴지진 않던데요? 절약 되게 했구나 싶던데. ^^ 이 영화의 내적 측면에서 무엇보다 높이 살 만한 것은 그 사실감이었어요. 정말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재난이 오면 저렇게 오겠구나, 저렇게 느끼겠구나 싶었죠. 전말이 어떤 것인지, 이게 어떻게 시작된 재앙인지, 내가 괴물을 제대로 보긴 본 건지도 모르면서 쫓기고 도망치다 최후를 맞기 십상이겠죠.

편의점님: <클로버필드>는 재앙을 당한 한 청년의 손에 우연히 들려 있던 한대의 캠코더로만 촬영된 척하는 영화인데요. 보면서 서툴러 보이기 위해서 또 얼마나 능란해야 하는지 생각했어요. 숏과 역숏, 설정 숏, 시선 매치 등 영화 숏의 연결법을 다 피해가면서 내용은 교묘하게 연결시켜야 하잖아요.

빵집: ‘정교하게 의도된 혼란’인 셈인데, 저는 아무리 그래도 진짜 혼란을 찍은 아마추어의 영상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세밀하게 의도된 혼란이라는 느낌이 강했죠. 그 점에선 연출에 관해 그리 놀랍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제가 정말 감탄한 것은 이 영화의 컨셉과 기획이었을 뿐이죠.

편의점: <클로버필드>의 하이 컨셉은 한마디로 익숙한 요소의 낯선 조합이에요. 거대한 대상을 친밀한 레벨에서 찍는다는 것, 환상의 괴물은 홈비디오에 찍히지 않는다는 통념을 흔든 것이 충격적으로 어필하는 거죠.

빵집: 장르의 혁신은 대부분 그렇게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할 때 가능해지죠. 장르영화란 기본적으로 사실감과는 거리가 있잖아요? 정형화된 관습들과 이야기의 틀을 가지고 70∼80%를 만들고 나머지 20∼30% 정도를 새로운 것들로 채우는 게 장르영화인데, <클로버필드>는 장르의 틀 자체를 다시 사고하니까요.

편의점: 근데 <클로버필드>의 컨셉은 반복되기 어려운 것이라 혁신이라 부르긴 조금….

빵집: 맞아요. 이 영화의 성과는 두번 반복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장르 자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괴수 장르의 역사를 쓸 때 언제나 거론될 수밖에 없겠죠.

편의점: 이 영화의 발상은 촬영방식을 그냥 한번 바꿔본 것만은 아니죠. 현대의 시청각 문화와 행태를 잽싸게 낚아챈 기획이에요. 추락한 자유의 여신상 머리 앞에서 도망치기에 앞서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는다거나 피난을 가면서도 남들한테 보여주겠다고 캠코더 녹화를 멈추지 않는 모습이 심하게 비현실적으로 보이진 않았거든요.-_-

빵집: 그게 놀라운 점이죠. 바뀐 패러다임 자체를 반영했다고 할까요. 기억하는 대신 기록하고, 간직하는 대신 공유하는 세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작품이라고 봤어요. 맥루한적인 의미에서, 말 그대로 테크놀로지를 눈과 손과 뇌의 확장으로 삼는 세대에 대한 영화라는 거죠.

편의점: 그렇지만 지엽말단적 궁금증은 남죠. 세상에 이렇게 오래가는 백만돌이 배터리가 있나, 이렇게 긴 테이프가 있나 등등. -..- 제작자의 전작과 상통하는 점도 많아요. 이 영화의 중요한 트릭 중 하나는, 행복했던 휴일의 영상 위에 재난의 도큐먼트가 덧씌워져서 간헐적으로 과거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점인데요. 플래시백을 이용해 사건 진도와 캐릭터 깊이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하는 건 전작에서 보여준 J. J. 에이브럼스의 성향이죠.

빵집: 그게 참 의도가 너무도 여실한 장면들이라는 거. ^^

편의점: 또 피가 낭자한 장면도 없죠. <로스트>도 괴수를 안 보여주면서 “괴수 온다!”를 반복하는 괴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빵집: 그렇다면서요? ^^ 그래도 이 영화는 괴수가 한번 정면에서, 그것도 클라이맥스에서 나오긴 하잖아요? 장면 자체로 보면 그 직후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더군요. 괴물에게 청년이 일격을 당한 뒤 캠코더의 오토 포커스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초점이 맞다가 안 맞기를 반복하잖아요? 그 장면만큼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클로버필드>를 보면서 제가 마음에 걸렸던 점이 있어요. 이 영화는 말하자면, 판타지 가득한 장르를 리얼리티로 혁신한 경우로 보이는데, 그런 장르의 새로운 시선도 중요하지만 저는 장르영화에서 장르 고유의 매력과 오락도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머리론 충분히 그 의미가 설득되는데 눈이나 피부로는 동의가 안 되는 영화였어요. 이를테면 의미를 부여하기 좋다는 점에서 평자들에 의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될 소지가 있다고 느꼈죠. 에인트잇쿨닷컴의 해리 놀스 글을 읽어봤는데 바로 그런 함정에 빠진 글이라는 느낌이었어요. 몇년이 흐른 뒤 이 영화에 대해 지금처럼 떠들썩한 평가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전 부정적이에요.

편의점: 떠들썩할 뿐 모두 호평은 아닐 거예요. ^^

빵집: 아뇨. 미국 평단의 글을 읽어보면 엄청나게 의미를 부여하는 평들이 많아요.

편의점: 전 이 영화가 거칠게 말해, 도그마 선언의 안티테제 같은 게 아닐까 싶었어요.

빵집: 재밌는 지적이네요.

편의점: 디지털 필름메이킹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 급진적 영화를 생산할 수 있는 양식이라는 희망적 예언들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클로버필드>는 가난하고 진실한 영화의 외관조차 거대예산 할리우드 오락영화가 가로챌 수 있고 디지털영화의 놀라운 즉물성과 기록성, 리얼리티가 완벽한 환상의 기구로 기능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라는 점에서 비평가가 주목할 만하다고 봐요.

빵집: 할리우드는 언제나 새로운 기술이나 재능에 대해 놀라운 소화력을 보여왔잖아요? 할리우드영화의 대안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테크닉조차 이를테면 그게 시네마베리테적인 촬영방식이든 점프컷을 일부러 드러내는 불연속 편집법이든 그 모든 대안적인 기술조차 오락으로서의 볼거리를 좀더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술로 할리우드가 소화해 결국 활용한다는 거죠. 참 무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편의점: ^_^ 그럼 멀미도 깰 겸 클래식한 뮤지컬의 세계로 가서 안정을 취해볼까… 했더니….T-T

빵집: 했더니?

편의점: 가수가 목을 따고 있군요. -..-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이하 <스위니 토드>)입니다.

이동진 “기본적으로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의 미술은 분명히 캐럴 리드의 <올리버!>에 빚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팀 버튼 영화로 한정하면, <가위손>과 <슬리피 할로우>의 잔영이 짙더군요.”
김혜리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의 제1주제는 물론 인간혐오지만 멜로드라마로서도 애달픈 바가 있었어요. 방백을 하듯, 복수에 눈먼 남자 곁에서 화답없는 구애의 노래를 부르는 헬레나 본햄 카터가 어느 때보다 심금을 울렸고 러빗 부인에 대한 고아 소년의 사랑도 그랬죠.”

빵집: 헐헐, 말 그대로 목을 따는군요.

편의점: 넵, 이발하는 장면은 하나도 없답니다. 일단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어둑어둑하더니 딱 한 시퀀스 빼고는 계속 컴컴합니다. 한국 극장 화면이 워낙 좀더 어둡다는 이야기도 있지만요. <스위니 토드>는 선배가 대화를 리드해주심이? ^^

빵집: 정말 원해요? <스위니 토드>를 보면서 오랜만에 초등학교 6학년 때를 떠올렸어요. 제8회 세계여자농구대회가 열려서, 농구의 농 자도 모르는 제가 친구들과 잠실까지 갔는데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사인을 받았어요. 우승한 캐나다팀 버스에 몰려든 사람들 틈에 끼어 아무에게나 무작정 수첩을 내밀었는데 알고 보니 실비아 스위니라는 선수의 사인을 받았더랬죠. 운 좋게도 그 대회 MVP였다죠, 스위니가. 리드 끝. (먼 산)

편의점: +_+ 설마 했지만 그렇게 먼 산까지 가실 줄이야….

빵집: 걍 없던 걸로 해줘요. --; 이 영화에선 미술적인 측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하나 더, 조니 뎁. ^^

편의점: <스위니 토드>의 런던 거리는 말하자면 올리버 트위스트의 분위기죠.

빵집: 딱 그렇죠. 좀더 음울한 느낌이 강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미술은 분명히 캐럴 리드의 <올리버!>에 빚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편의점: 산업혁명 초기의 폐해가 극에 달해 민생 구제한다고 만든 구빈원의 주거환경도 이 영화 속 대사대로 “아이들조차 술을 못 마시면 못 잘” 정도로 끔찍했던 시대죠. 그런가 하면 캐릭터의 외모는 <유령신부>의 인형들과 비슷하죠. 한쪽 벽이 비스듬한 창으로 이뤄진 다락방 공간도 팀 버튼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것이고요. 스위니 토드의 딸 조안나의 모습은 <슬리피 할로우>의 크리스티나 리치랑 거의 쌍둥이 같던걸요.

빵집: 팀 버튼 영화로 한정하면, <가위손>과 <슬리피 할로우>의 잔영이 짙더군요.

편의점: 칼날에 얼굴을 비춰보는 조니 뎁이라니 <가위손>의 미국판 포스터가 그대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에드워드와 달리 스위니는 인간에게 희망을 걸지 않죠. 전자가 어른아이였다면 스위니는 살아 있는 주검이라고 할까요.

빵집: 이른바 ‘칼의 노래’를 부르면서 “이제 내 팔이 완전해졌도다”라고 조니 뎁이 노래하는 장면은 진짜 인상적이었습니다.

편의점: 아, 이 영화가 그리려는 세계는 이것이구나, 하는 직감을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빵집: <클로버필드>의 캐릭터들은 휴대폰과 캠코더로 눈과 손을 대신하는 것에 비해 이 고전적인 인물은 칼로 손을 대신하고 있습죠. 게다가 그 칼은 그의 유일한 친구이기까지 하니….

편의점: ‘동업자’인 파이가게 러빗 부인도 칼질깨나 하시잖아요? 그런데 전 칼로 목을 긋는 행위보다 희생자가 머리를 아래로 하면서 바닥에 떨어지는 장면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영화에서 보통 동일한 행위가 반복되면 편집으로 생략하잖아요? 근데 팀 버튼은 그걸 매번 꼬박꼬박 보여주더군요.

빵집: 문제의 그 장면을 무슨 각운처럼 노래의 소절마다 반복하며 시청각적 리듬을 만들죠. 목을 베고 목이 부러지는 게 영화의 리듬이 되는 뮤지컬이라니 세상에나….-..- 피의 빛깔은 일부러 약간 비현실적인 톤을 띠게 한 것 같지 않아요?

편의점: 체리빛이죠? 딸기 무스 케이크에 얹는 시럽처럼요. 행위가 거침없을 뿐 보통의 호러만큼 잔혹한 느낌은 없어요.

빵집: 스위니 토드는 정말 모처럼 보는 ‘순수’한 캐릭터예요.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다 발라내고서, 오로지 분노로만 채워 빚은 것 같은 캐릭터잖아요.

편의점: 물론 사리를 따지자면 왜 원수를 놓아두고 무고한 민중에게 칼을 휘두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선 그런 게 통하지 않죠. --;

빵집: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순히 복수극이 아니라 이 세계 자체에 대한 환멸을 담고 있다는 거죠. 영화에서 목을 마구 벨 때 살려주는 딱 한 사람이 가족과 함께 온 남자인데, 저는 처음에 가족과 함께 와서 불쌍해서 살려준 줄 알았어요. 그랬더니 나중에 “연고가 있는 사람을 죽이면 잡히게 되지”라는 대사가 나오더군요. 이 무서운 프로페셔널리즘이라니…. -.-

편의점: 그 맥락에선 재밌는 장면이 하나 더 있어요. 재밌죠. 공범이자 스위니 토드를 짝사랑하는 러빗 부인이 스위니의 첫 살인을 알아차리고 “미쳤냐”고 소스라치다가 “그는 내 과거를 알았어”라는 한마디에 “아, 난 또…, 그럼 뭐!” 하고 표정이 밝아지면서 대뜸 넘어가잖아요.--;

빵집: 스위니만큼 무서운 분이죠… 진짜 천생연분인데…. *.* <올리버!> 이야기도 했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캐럴 리드의 영화를 또 한편 떠올렸어요. <제3의 사나이>요. 그 영화엔 관람차 위 악당 오슨 웰스가 저 아래 꾸물거리는 인간들을 보면서 “벌레 같은 인간들 좀 죽인다기로서니…”라는 유명한 대사를 하잖아요? 높은 곳에서 인간들이 꾸물거리는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내뱉는 염세적인 폭력성 같은 게 이 영화에 그대로 담겼다고 봤어요. 뭐, 이발소도 2층이고…. 다섯손가락의 옛날 노래에 <이층에서 본 거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그 노래가 섬뜩하게 느껴지넹. -.- 이 영화가 인간을 얼마나 염세적으로 보고 있는지는 인간의 살이 파이용 고기로 마구 다져져서 믹서로부터 밀려나오는 장면이 시각적으로 요약하고 있죠.

편의점: 고기도 고기지만 강간이나 정신병자의 머리를 잘라 가발로 파는 에피소드 등이 인간을 도구로 보는 당시 세태를 반영하고 있어요.

빵집: 이 영화에서 염세적 세계관을 갖지 않은 인물은 순진한 청년 선원 안소니밖에 없죠.

편의점: 그래요. 혹시 그래서 극중에서 그가 나오는 부분이 제일 재미가 없는지도…. -..- <스위니 토드>의 제1주제는 물론 인간혐오지만 멜로드라마로서도 애달픈 바가 있었어요. 방백을 하듯, 복수에 눈먼 남자 곁에서 화답없는 구애의 노래를 부르는 헬레나 본햄 카터가 어느 때보다 심금을 울렸고 러빗 부인에 대한 고아 소년의 사랑도 그랬죠. 특히 음악과 관련해서는 두 캐릭터가 가장 호소력 있었어요.

빵집: 동의해요. 조니 뎁도 참 탁월하죠?

편의점: 예.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가 언뜻 떠올랐답니다. 몇몇 익살스런 순간에는 저러다 잭 스패로우님이 오시는 거 아닌가 불안하기도 했지만요. -_- 명창은 아니어도 메마른 목소리와 표정이 영화판 뮤지컬에서 스위니 토드를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아요.

빵집: 뮤지컬에서 노래는 가창력이 아니라 연기력으로 부르는 거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어요.

편의점: 그래도 무대 뮤지컬에서는 배우의 가창력이 불안하면 객석이 바늘방석이거든요. 전 실제로 관람하다가 불안해서 나온 적도 있어요.

빵집: 영화야 뭐, 다시 부르면 되니까요. ^^

편의점: 게다가 믹싱도 되고 음향은 자동으로 고루 울려퍼지죠. 클로즈업을 비롯한 카메라앵글, 모든 영화적 장치가 표현력을 보태주고요.

빵집: 게다가 조니 뎁은 테너가 아니고 바리톤이니까 삑사리날 염려도 없고. ^^ 그런데 전 기대가 너무 커서 이 영화가 생각만큼 아찔하게 좋을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형식의 힘이 아주 중요한 작품인데, <클로버필드>에서도 느꼈듯 대중영화에서 형식의 힘은 러닝타임에 반비례하잖아요. <스위니 토드>는 중반 이후 복수극이 무차별 살육극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느낌이 들고, 긴장감도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살짝 지루하기도 했어요. 아주 살짝. ^^

편의점: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지루할 수 있을 거예요. 벨벳 드레스를 입고 걷는 것처럼 묵직한 느낌이죠.

빵집: 팀 버튼 영화 중에선 뭘 젤 좋아하십니까요?

편의점: <피위의 대모험>과 <에드 우드>, 그리고 <슬리피 할로우>입니다.

빵집: 셋 다 좋죠. 전 이상하게도 <빅 피쉬>가 제일 좋아요. 하나 더 꼽는다면 <가위손>. 이렇게 고르고 나니 내가 착한 척하는 것 같당.^.~

편의점: 흑흑 그러게요. 그러고보니 전 주연배우가 아동성추행혐의로 고발된 영화와, 주인공이 복장도착자인 영화에, 목없는 기사 영화를 골랐군요? -..-

빵집: ^^(독자들께선 그동안 감추어졌던 김혜리씨의 무의식을 읽고 계십니다.) <빅 피쉬>는 삶이 이야기 자체일 수 있다는 생각을 너무나 멋지고 환상적으로 표현한 걸작이라는 느낌입니다. &#54284;타스틱하고 엘레에강스하고 뤄맨틱한 작품이죠, 눼. ^^

편의점: <빅 피쉬> 이후 팀 버튼 영화들은 훌륭하다는 뜻과는 다른 차원에서 흥미로워요. 언제나 모퉁이에 소외되어 있는 존재의 성정을 나이 들어서도 간직하면서도….

빵집: 모퉁이 만나빵집에서 만두를 먹으며 소외되어 있는 바로 그 존재! ^^

편의점: 연륜과 함께 생겨난 새로운 예술적 호기심, 원숙함, 둥글어진 모서리를 숨김없이 포용하는 영화적 그릇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로 모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찌보면 그만큼 자신의 에센스를 보존하기 위해 고집을 피우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거예요.

빵집: 맞아요. 그런 변화가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연상시키는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내 어머니의 모든 것>부터 알모도바르 영화를 보면 혜리씨가 방금 말한 내용을 그대로 적용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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