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추격자>
2008-02-29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추격자>가 승승장구하는 분위기다. 개봉 1주 만에 100만명을 돌파한데다 잘 만든 영화이고 굉장히 센 영화라는 입소문이 관객을 부르는 모양이다. 화제가 되는 영화인 만큼 영화에 관해 궁금한 것도 많고 해석도 분분한데 <씨네21>은 이번호에 나홍진 감독을 모시고 Q&A 시간을 가졌다. 지면으로나마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됐길 기대하는데 그래도 100% 만족스럽지 않을 분들을 위해 진짜 Q&A 시간도 마련할 생각이다. 조만간 <씨네21>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가 나가면 신청해서 나홍진 감독과 만나는 기회를 잡으시길 바란다.

스릴러로서 <추격자>의 장점은 충분히 언급된 것 같다.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장치들이 영리하게 사용됐고 관객이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에너지를 발휘하는 배우들도 칭찬받을 만하다. 이렇게 많이 얘기된 부분을 제외하고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중호의 이중적 모습이다. 영화 초반부에 여관에서 두 남자가 한 여성을 희롱하려다 중호(김윤석)에게 맞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중호는 매매춘 알선업자인 동시에 여성의 보호자로 등장한다. 물론 보호라고 해도 좋은 의미는 아니다. 자기 물건에 흠집을 내려는 놈들 혼내주고 적당히 돈 뜯어내면 그만이다. 중호가 사라진 여인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것도 누군가 그녀들을 팔아치웠을 것이란 이유다. 내 물건을 훔쳐서 팔아먹은 놈을 잡아야겠다는 그의 의지는 단순하지만 맹렬하다. 중호에게 이것은 먹고사는 문제이고 투자한 돈을 회수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호는 몸이 아파 쉬겠다는 미진(서영희)에게도 빨리 나가서 돈 벌어오라며 윽박지른다. 악독한 사업가인 그가 절박하게 미진을 찾아 헤매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데 <추격자>의 아이러니가 있다. 미진의 딸은 아직 엄마를 찾아다닐 만큼 자라지 않았고 경찰로 대변되는 사회는 미진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미진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은 중호의 몫이다. 직업은 포주이나 기능적으로 그는 미진의 아버지나 남편이다. 그렇다는 걸 못박기라도 하듯 곧이어 영화는 미진의 딸을 중호의 옆좌석에 앉힌다. 엄마를 잃고 슬퍼하는 소녀의 눈망울 앞에서 중호의 마음은 조금씩 흔들리는데 그렇다고 <추격자>가 나쁜 아버지가 착한 아버지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는 중호의 눈물이 진정한 회개와 반성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냥 화가 나고 개고생한 게 억울해서 그런 것인지 단정짓지 않는다. 중호의 내면에서 미진을 사지로 몰아넣은 나쁜 아버지와 미진의 딸에게 엄마를 찾아주려는 착한 아버지가 싸우고 있을 것이란 암시만 준다. 둘 가운데 한쪽에 기울지 않는 팽팽한 균형이 <추격자>의 좋은 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난 다음 중호가 어떻게 살지는 관객 각자가 상상할 몫으로 남는다.

아무튼 <추격자>가 센 영화라는 말을 듣는 것은 망치와 정이 나와서만은 아닐 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추격자>는 서울이란 대도시에서 여성이 처한 삶의 조건을 보여준다. 으슥한 주택가 골목을 혼자 걸어가야 하는 것이 섹스산업 종사자만은 아니다. 당장 퇴근하면서 밤길 걷기가 두려워진다는 현실적 문제가 관객의 격렬한 반응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영화는 과연 누가 우리를 보호해줄 것인가를 묻는다. 공권력은 시장 경호에만 신경쓰고 있고 가족 혹은 개인은 보호할 능력이 모자라는데…. 누군가 피 흘려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극장에서 확인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물론 그래도 내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길 수 있다는 건 확실한 위안이다. <추격자>에 관객이 몰리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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