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박효주] 단역부터 한 계단씩
2008-03-13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추격자>에서 오 형사 역 맡은 박효주

“전엔 연락도 없다가 친구들이 수고했다고 연락하더라.” 흥행작 파워가 역시 대단한가보다. <추격자>에서 오 형사 역을 맡은 박효주. 영화만 해도 2002년 <품행제로>를 시작으로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불어라 봄바람> <슈퍼스타 감사용> <레드 아이> <파란자전거> 등에 출연했으니 풋내기 신인은 아닌 셈인데 이제야 여기저기서 알아보고 찾는단다. 지난해 드라마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의 다모 여진 역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끔찍한 상황을 지켜봐야만 하는 <추격자>의 오 형사 역으로 호기심을 증폭시킨 스물다섯살 여배우를 뒤늦게 만났다.

-<추격자> 개봉 전후로 인터뷰를 많이 했던데. 가장 궁금해하던 게 뭐던가.
=(샌드위치를 점심 대용으로 먹으면서) 개미슈퍼 앞에서 도대체 뭐하고 있었던 거냐. 정말 욕 많이 먹었다. 주위 사람들은 전화해서 화낸다. 오 형사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웃음) 사실 경찰서에서 이제 막 풀려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나.

-오 형사가 슈퍼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편집 과정에서 빠졌다.
=이미 미진은 죽어버린 상황 아닌가. 개연성보다는 중호의 허망한 감정이 더 포인트였다는 감독님 말에 동의한다. 사실 그 장면이 붙어 있었더라면 오 형사는 더 욕먹었을지도 모른다.

-배우 입장에선 그래도 자신이 의도했던 감정의 연속선이 끊어져서 아쉬웠을 것 같다.
=물론 그런 결과를 예상했더라면 주저앉아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진 않았겠지. 안타깝지만 최종 편집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장면은 성북동에서 찍었는데 사실 대학 다닐 때 자주 들르던 선배 집 앞이다. 개미슈퍼에도 여러 번 들러서 비빔면을 산 적 있고. 영화이긴 하지만 자주 애용했던 슈퍼에서 살인이 일어났다고 하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

-나홍진 감독은 스스로 배우들에게 직설적으로 주문했다고 했다. 그래도 여배우니까 좀 다르지 않았을까.
=젼혀. 지영민과 둘이 경찰서에 있는 장면 찍을 때는 아예 주기 둘쨋날이라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몸이 정말 안 좋은 상태이니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되는 날 아닌가. 사실 일찍 퇴근해도 되는 날인데 시장에게 똥 투척사건이 벌어지면서 과거 자료까지 밤새 훑어봐야 하니까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겠나. 아마 오 형사 입장에서는 이전까지 지영민이 여느 범죄자와 똑같다고 생각하다가 이 장면부터서 예민한 걸 건드리니까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원래 그렇게 말을 논리정연하게 잘하나.
=수다를 잘 떨긴 하는데.

-<추격자>를 찍으면서 케이블드라마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도 같이 촬영했다.
=<추격자>야 한달에 두세번 가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촬영을 하다보니 아, <추격자> 스케줄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싶더라. 처음엔 집중을 못하겠더라고. 폐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급박해서 집중력을 더 발휘한 것 같다. 준비가 철저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혼란스러워지잖나. 감독님도 꾸미지 말고 그냥 현장에 와서 느끼라고 했다. 설정 같은 거 별로 안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다행히 수사극이라 사건 진행에 따라 감정상태가 달라진다. 그전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연기하면 되니까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다. 다만 미행하다가 몸을 숨기는 간단한 장면이 있었는데 다들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나 혼자 맘에 안 들어서 운 적은 있다. 다 오케이인데 나 혼자 NG라고 한 거다.

-시나리오를 보고 선뜻 출연할 마음이 들던가.
=굉장히 인간적인 시나리오였다.

-인간적인 시나리오였다고.
=아. 따뜻한 의미 말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잘 그린 시나리오였다는 뜻이다. 읽고 나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고 헷갈리는데 화는 불같이 나더라. 감독님의 단편 <완벽한 도미요리>를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메시지도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완벽한 요리를 만들었지만 누구도 먹을 수 없는 요리였다는 메시지를 접하고서 배우의 완벽함이란 무엇일까, 내가 나를 너무 가둬둔 것 아닌가 뭐 그런 자문까지 했을 정도니까. 그래서 <추격자> 오디션 때도 붙기만 하면 귀도 열리고 콧구멍에 바람도 들어올 것 같고. 좀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근데 남방 하나 툭 걸치고 나와서 그런지 사실 영화 보면 실제보다 나이들어 보인다.
=칭찬으로 듣겠다. (웃음) 화장을 전혀 안 하고 찍었으니까 더 그렇지. 김윤석 선배님은 이전에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에 같이 출연했는데 오 형사 역을 찾는 감독님에게 추천을 하셨다더라. ‘82년생 박효주라고 있어. 근데 걔 좀 예뻐졌더라’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셨다는데, 사실 감독님이 찾던 오 형사는 얼굴이 예쁘면 안 되는 캐릭터였다.

-단역부터 시작한 셈이다.
=현장에서 배웠다는 거. 한두 장면 나오는 것부터 조금씩 순서들을 밟아온 경험들이 소중하다. 사실 <품행제로> 때만 해도 연기하는 배우보다는 촬영현장이 신기해서 좋았다. 모니터로 내 모습 곧바로 확인하는 것도 너무 좋았고, 아 저기 카메라가 있었구나 알아차리는 것도 재밌었고.

-오랫동안 발레를 한 것이나 모델 생활을 한 게 연기를 처음 접할 때 도움이 됐을 텐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낯설진 않은데 어떤 측면에선 완전히 다르다. 허리 때문에 결국 발레를 고3 때 그만두고 뭘 할까 하다가 장진 감독님의 ‘수다’에 들어가게 됐고 처음으로 단편 <극단적 하루>에 출연하게 됐는데 그때 정말 겁먹었다. 단 한번도 소리내서 감정을 드러내본 적은 없었으니까. 연극영화과 가겠다고 임원희 선배님한테 잠깐 연기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걸으면서 대사하라고 하면 맘대로 안 돼서 자주 울었다.

-인터뷰 끝나고 뭐하나.
=영화사와 미팅이 있다. 결과는 그런데 잘 모르겠다. 그냥 머리는 안 굴릴 거다. 굴려봤자 다 보이는데, 뭐. 어필도 못하고. 다만 조금씩 나를 열어서 보여주는 방법을 배웠으니 기대도 조금 있다.

스타일리스트 김지지, 의상협찬 지나킴, 액세서리협찬 옥셋, 최정인,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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