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밥 딜런적이지만 신선하게!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 소니BMG | V.A.
열말 제치고 우선 이름부터 나열해보자. 컨트리계의 전설 윌리 넬슨, 펄잼의 에디 베더 그리고 두말할 필요없는 소닉 유스, 윌코의 프론트맨 제프 트위디, 포스트펑크밴드 텔레비전의 보컬 톰 버레인, 페이브먼트의 보컬 스티븐 말크머스, 인디계의 매력적인 여신 캣 파워, 현재 인디신에서 제일 뜨거운 슈퍼스타 요 라 탱고, 천재 싱어송라이터 서프전 스티븐스, 예예예스의 보컬 카렌 오, <원스>의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 듀오, 잭 존슨 그리고 머큐리상 최우수 음반상에 빛나는 안토니 앤드 더 존슨스 등등. 인디·컨트리·블루스·얼터너티브·개러지계의 신·구스타들이 한데 모여 토드 헤인즈의 영화 <아임 낫 데어>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했다. 과거에도 음악신 스타들의 밥 딜런 트리뷰트는 있었다. 위의 뮤지션들이 커버한 33곡의 ≪아임 낫 데어≫ 사운드트랙이 매력적인 까닭은 <Like A Rolling Stone> <Blowin’ In The Wind> 같은 뻔한 트랙들을 가급적 피하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밥 딜런의 초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뮤지션들은 각자 자기 재능과 밥 딜런 곡의 본질 사이에서 길을 헤매지 않고 다양한 해석의 지점들을 찾아냈고, 토드 헤인즈와 뮤직 수퍼바이저 랜달 포스터는 앨범 전체의 수록곡 면면을 섬세한 스펙트럼으로 조율해냈다. <I Wanna Be Your Lover> <You Ain’t Goin’ Nowhere> 같은 희귀 음원의 트랙들과 <Maggie’s Farm> <Can You Please Crawl Out Your Window> 같은 타 뮤지션들의 커버곡으로 더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넘버들까지 모아 놓은 것. 그것은 토드 헤인즈가 여섯명의 배우에게 각각 다른 시기의 밥 딜런 이미지를 입혀 밥 딜런이라는 인물의 큰 그림을 맞춰보려 한 영화적 시도와도 당연히 부합한 것이다. 미국 최대 음악사이트 ‘올뮤직’의 앨범평은 이렇다. “밥 딜런의 음악 녹음이라는 파워를 견지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그것에 대한 신선한 해석의 입장을 지켜낸 음반. 이렇게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은 다른 앨범들은 거의 하지 못했던 일이다.”
강추 트랙: 특별히 두개. 소닉 유스가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으로 커버한 <I’m Not There> 그리고 2CD 마지막을 닫는 밥 딜런의 <I’m Not There>다.
첫사랑에 조응하는 사운드트랙
<이토록 뜨거운 순간> The Hottest State | 와이드미디어 | 제시 해리스
제시 해리스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노라 존스란 이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제시 해리스는 재즈/포크계열 뮤지션 노라 존스를 하루아침에 슈퍼스타로 만든 데뷔앨범 ≪Come Away With Me≫와 2집 ≪Feels Like Home≫의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다.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1집의 타이틀곡 <Don’t Know Why>의 작곡자이기도 한 제시 해리스의 제법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담백한 포크송이 배우 겸 감독 겸 소설가 에단 호크의 섬세함과 코드의 일치를 봤다는 건 별로 이상하지 않다. 자신이 쓴 동명 소설 <이토록 뜨거운 순간>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하면서 에단 호크는 “영화가 첫사랑에 관한 것이고, 첫사랑에는 사운드트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다. 스물한살 생일을 며칠 앞둔 청년 윌리엄의 뜨거운 첫사랑과 실연 그리고 성장. 감독 말에 따르면 “곁에 늘 라디오를 두고 살” 그 무렵에 누구나 듣고 또 들을 법한 곡들을 제시 해리스가 모두 썼다. 나른한 기타 소리, 노라 존스와 에미루 해리스를 비롯해 캣 파워, 파이스트, 맷 워드, 토니 셔 등 매력적인 인디포크 뮤지션들의 목소리가 오후 봄볕처럼 따사로운 조화를 이룬다.
강추 트랙: 제시 해리스가 직접 부른 심플한 기타 솔로곡 <It Will Stay With Us>. 노라 존스 스타일로 알려진 제시 해리스의 감성의 정수를 들려주는 트랙이다. “우리가 함께 느낀 모든 것들은 늘 우리와 함께 할 거예요. 늘 함께, 늘 함께, 우리와 있을 거에요.”
인도 여행의 길잡이는 역시 인도 음악
<다즐링 주식회사> The Darjeeling Limited | 유니버설뮤직 | V.A.
웨스 앤더슨도 취향이 분명한 감독 중 하나다. 타란티노만큼 유별난 과시를 하지는 않지만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로얄 테넌바움> 같은 전작에서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이면 이를 수긍하고도 남을 것이다. 앤더슨이 특히 좋아하는 뮤지션들, 가령 롤링 스톤스나 킨크스, 캣 스티븐스, 니코, 존 레넌 등 록신의 거물들은 멜랑콜리함과 블랙코미디가 버무려진 그의 영화에서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인물들이 인생을 깨우치고 조금 어른이 되는 순간을 대변해주곤 한다. 한심한 3형제가 인도 여행을 떠나는 영화 <다즐링 주식회사>의 음악적 선생님은 인도의 전통 음악. 웨스 앤더슨과 그의 절친한 뮤직 슈퍼바이저 랜달 포스터는 인도영화의 거장 샤티야지트 레이 영화에 쓰였던 음악들과 머천트-아이보리 필름이 제작한 영화들에 삽입된 인도 음악들을 무려 11곡이나 뽑아 <다즐링 주식회사> 사운드트랙 안에 넣었다. 킨크스(<Strangers> <Powerman>)와 롤링 스톤스(<Play With Fire>)를 삽입하는 것도 잊지는 않았지만, 이 앨범은 인도 음악에 애착이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히 어필할 게 분명하다. 덧붙이면 롤링 스톤스의 삽입곡이 앤더슨 영화의 O.S.T에 정식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강추 트랙: 3형제의 막내가 머물던 슈발리에 호텔의 방을 청승맞게 가득 채운 팝송, 인도 출신 피터 사르쉬테트가 1969년 발표한 곡 <Where Do You Go To>다.
심플하지만 중독적인 북구의 선율
<댄 인 러브> Dan in Real Life | EMI | 손드러 레케
예기치 못한 발견이었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 <졸업>에 기여한 바”에 비견될 만큼 영화의 심장과 직결되는 음악을 원했던 피터 해지스 감독은 수백장의 CD를 첩첩이 쌓아놓고 듣던 중 유독 손이 가는 뮤지션을 발견했다. 대가를 기대했던 그가 맞닥뜨린 이름은 바로, 손드러 레케(Sondre Lerche)였다. 발음조차 난해하기 짝이 없는 낯선 이름의 주인공은 노르웨이에서 건너온 스물세살의 파릇한 청년. 2002년 데뷔앨범 <<Faces Down>>으로 <롤링스톤>이 꼽은 그해의 베스트50에 이름을 올린 뒤 북구의 신성으로 불리던 레케는 곧장 할리우드 초대장을 받았다. “설탕을 뒤집어씌운 듯한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코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그가 완성한 것은 심플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을 중심으로 한 포크풍의 음악. 폴 사이먼과 엘리엇 스미스의 중간 어딘가에 떨어질 법한 <댄 인 러브>의 O.S.T는 로드 아일랜드의 별장을 무대로 가족간의 화합을 노래하는 영화의 푸근한 감성과도 완벽한 등호를 그린다. 음반에 수록된 16곡 중 진정한 정수는 레케가 새롭게 작곡한 4개의 보컬곡 <To be surprised> <I’ll be OK> <My Hands are shaking> <Hell No>. 담백하지만 중독적인 기타 선율과 레케의 부드러운 가성이 일품이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원곡을 재즈풍으로 편곡한 <Human Hands>, 열여섯살에 강아지를 위해 작곡했다는 사랑스러운 듀엣곡 <Modern Nature>(영화의 엔딩에 레케가 직접 출연해 연주하기도 한다) 등 그의 기존 앨범들에 실렸던 곡들 또한 이 새로운 뮤지션의 (어려운) 이름을 뇌리에 새기게 만든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에 비견되는 성취는 몰라도, 발견의 기쁨을 안겨주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강추 트랙: 오리지널 보컬곡 중 하나인 <To be surprised>. 비눗방울처럼 맑고 경쾌한 기타 선율이 잰걸음으로 달려가며 심박수를 높이고, 나른하면서도 달콤한 후렴구가 귀에 착 감겨든다.
달콤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의 전형
<인챈티드> Enchanted | EMI | 앨런 멘켄
앨런 멘켄은 뭐니뭐니해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가’다. <인어공주>(1989),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포카혼타스>(1995), <노틀담의 꼽추>(1996) 등 할리우드 2D셀애니메이션의 명가 디즈니를 빛낸 자식들 중 적어도 절반은 멘켄의 품에서 나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커리어를 시작한 멘켄의 활동 본거지는 그런데 사실 브로드웨이다. 그의 음악이 디즈니 특유의 언더스코어(인물들의 움직임에 정확히 일치된 음악) 전통을 이으면서도 뮤지컬적인 화법을 끌어와 애니메이션 장르를 화려하고 웅장하게 포장하는 스타일을 갖는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A Whole New World> <Beauty And The Beast> 등 심금을 울리는 발라드를 써내는 능력도 뛰어나다. <인챈티드>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그러한 멘켄의 특징을 집약시킨 또 하나의 디즈니 음악. 차임벨과 플루트, 현악이 어우러진 꿈처럼 달콤한 스코어는 디즈니의 과거 애니메이션 테마들을 수수께끼처럼 숨겨놓아 찾아 듣게 하는 재미도 있고, 여주인공 에이미 애덤스와 그의 친구들이 부르는 신나는 뮤지컬 사운드는 기분을 절로 띄워준다.
강추 트랙: 신예 싱어송라이터 존 맥러플린이 부른 발라드 <So Close>. <A Whole New World>의 계보를 잇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발라드 트랙이다.
행복 에너지 100% 충전!
<헤어 스프레이> Hairspray | 유니버설뮤직 | 마크 셰이먼
당신의 행복 지수를 절정으로 치솟게 할 앨범. 존 워터스의 1988년작 영화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다시 스크린으로 이식된 <헤어 스프레이>의 2007년판 O.S.T는 듣는 내내 발끝을 붙들어매기 힘들 만큼 쾌속의 유쾌함으로 끓어오른다. <Good Morning Baltimore> <I Can Hear The Bells> 등 대표적인 넘버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니키 블론스키의 목소리는 탄산음료처럼 청량하고, <하이스쿨 뮤지컬>로 이미 한 차례 검증받은 잭 에프런,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로 코믹한 방점을 찍는 존 트래볼타가 한데 어울려 순도 100%의 낙천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Ladies’ Choice> <The New Girl in Town> <Come So Far> 등 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세개의 곡이 수록됐고, 역으로 뮤지컬에는 사용되었으나 영화에서 생략됐던 <Mama, I’m a Big Girl>이 스페셜 트랙으로 추가됐다. 88년 원작 영화의 리키 레이크,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마리사 자렛 위노쿠어, 니키 블론스키까지 3명의 트레이시가 입을 맞추는 <Mama, I’m a Big Girl>은 스크린과 무대를 고루 밟았던 <헤어 스프레이>에 딱 걸맞은 마침표다.
강추 트랙: 엔딩곡인 <You Can’t Stop the Beat>로 그 이름 그대로 말초신경 끝까지 짜릿하게 자극하는 희열의 난장이다. 니키 블론스키, 잭 에프런, 아만다 바인스, 존 트래볼타 등 메인 캐스트가 총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