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7-2008 추천 OST] <숏버스> 外
2008-03-25
글 : 박혜명
글 : 최하나
글 : 안현진 (LA 통신원)

따뜻한 속내, 사려 깊은 인디록

<숏버스> Shortbus | 와이드미디어| V.A.

알몸으로 뒤엉킨 세 남자가 항문(!)을 악기 삼아 미국 국가를 연주한다. 이미 이 한 장면만으로 <숏버스>는 논란의 장작더미 위에 올랐다. 비난과 선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각된 것은 언제나 헐벗은 몸뚱리였지만, 정작 속내를 들여다보면 영화의 감성은 서로의 고독을 어루만지는 따뜻하고 소박한 포옹에 가깝다. <숏버스>의 O.S.T에서 혈관을 부풀게 할 신음 따위를 기대해선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 사려 깊고 따스하며 때로는 애잔한 느낌의 인디록이 앨범을 관통한다. 전체적인 감수성을 대표하는 것은 스콧 매튜라는 인디 뮤지션. 이름이 낯설다면 <공각기동대> <카우보이 비밥> 등을 떠올려보시길. 간노 요코가 작곡한 숱한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에 보컬로 참여했으니, 목소리만큼은 생경하지 않을 것이다. 스콧 매튜가 영화를 위해 선물한 5개의 곡이야말로 앨범의 보물이다. <Upside Down> <Surgery> <Language> <Little Bird> 등 어쿠스틱 기타와 우쿨렐레의 맑은 음성, 감성적인 보컬이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어디 그뿐일까. 요 라 탱고, 아주레 레이, 애니멀 컬랙티브 같은 미국 인디음악의 재능들을 비롯해 영화에서 섹스 테라피스트를 연기한 숙인 리의 <Beautiful>, 세스 역할로 출연한 제이 브래넌의 <Soda Shop> 등 즐거운 발견이 멈추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낮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앨범에 일종의 쇼크 효과로 등장하는 것은 스웨덴 밴드 The Ark의 <This House>와 <This Piece of Poetry Is Meant to Do Harm>. 듣는 순간 차분하게 정돈됐던 가슴이 예상치 못했던 흥겨움으로 들뜨게 될 것이다.

강추 트랙: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In the End>다. 뉴욕의 퀴어 아이콘인 저스틴 본드가 부른 영화 버전과 스콧 매튜의 어쿠스틱 버전을 비교 감상해보길.

통념을 깨고, 혁신적으로!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 미발매(해외 구매) | 조니 그린우드

폴 토머스 앤더슨이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음악감독으로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를 떠올린 건 영국 감독 사이먼 푸멜의 다큐멘터리 <보디송>(2003) 때문이다. <보디송>은 인간의 몸이 행하는 사회적, 개인적, 예술적 행위들을 국적·인종·형식 불문하고 다양하게 담아낸 다큐. 내러티브에 대한 구상없이 움직이는 모든 몸들을 82분간 전시하는 영상이다. 그린우드의 음악은 영상만큼 극단적이고 실험적이다. 하드밥과 기타록, 일렉트로니카와 월드뮤직의 기묘한 접합과 분리. 우리가 아는 모든 익숙한 화성과 코드 진행은 다 깨어지고 혼미한 정신만 남는다. 기본적으로 전통 오케스트레이션 편성에 기댄 <데어 윌 비 블러드> 음악도 마찬가지다. 신경질적인 것을 넘어서서 공포와 혼란을 조성하는 불안정한 화성의 현악음들. 자기혐오로 가득한 어느 석유 재벌의 성공 스토리를 끔찍하게 옥죄는 선율. 화면을 덮친다 싶을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 이 음악은 전통적인 극영화 계보에서 가장 혁신적인 스코어 중 하나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가랑비가 옷 적시듯 스크린으로 스며들어야 미덕처럼 여기는 영화음악에 대한 통념을 깨고 그린우드의 음악은 관객의 관성적 사고를 방해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영화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강추 트랙: <There Will Be Blood>. 로커 출신 뮤지션의 장엄한 오케스트레이션 편곡과 의미심장한 테마 작곡 능력이 모두 엿보이는 곡이다.

감독이 추천하는 90년대 팝송 모음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Definitely, Maybe | EMI 발매 | V.A.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는 한 남자가 세 여자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이야기다. 이 우유부단한 남자의 취미는 음악을 듣는 것. 그것은 감독 애덤 브룩스의 취미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음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사운드트랙까지 써내려가기도 한다는 감독은 이 영화의 O.S.T에 자신의 90년대 애호 팝송들을 듬뿍 집어넣었다. ‘로록’이라 장르명을 스스로 내세웠던 나른하고 사이키델릭한 몰핀의 <In Spite Of Me>, 극도로 우울한 트립합 사운드로 중독성을 갖는 매시브 어택의 <Safe From Harm>, 영국의 백인남성 3인조 애시드재즈그룹 스테레오 MC’s의 스타일리시한 <Connected>, 깔끔하고 리드미컬한 애시드재즈 솔로 파인리 쿼위의 <Even After All> 등 선곡 취향이 돋보인다. 또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의 <Everyday People>이라든지 오티스 레딩의 <Cigarettes And Coffee> 같은 기념비적인 1960년대 펑크/솔뮤지션들의 음악도 들을 수 있고, 플레이밍 립스(<Yoshimi Battles The Pink Pobots, Pt. 1>)와 배들리 드론 보이(<The Time Of Times>) 등 신세기에 등장한 기발한 인디록 사운드도 들을 수 있다.

강추 트랙: 빌리 홀리데이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백인 재즈보컬이자 송라이터 마들렌 페이루가 부른 촉촉한 <The Summer Wind>. 눈을 감고 들으면,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스치는 낭만적인 여름밤이 떠오를지도. 2006년 앨범 ≪Half The Perfect World≫의 수록곡이다.

아마존이나 이베이 이용자라면!

국내에는 미발매됐으나 추천하고 싶은 O.S.T 3선

당신은 아마존이나 이베이 애용자인가? 국내에 수입조차 되지 않은 음반이라도 사겠다는 의지가 당신에게 있다면, 아래의 사운드트랙들을 추가로 추천한다. 배송비 및 배송기간 등 여러 기회비용을 고려해 3장의 앨범을 엄선했다. 구입은 아마존이나 HMV 등을 통하면 된다.

<컨트롤> Control | 워너뮤직 | V.A.
맨체스터 사운드의 원조 조이 디비전의 이언 커티스를 다룬 영화 사운드트랙으로서, 모범답안과도 같은 음반이다. 조이 디비전의 눈물나는 명곡들 <Love Will Tear Us Apart> <Dead Souls> <Atmosphere>가 실렸고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버즈콕스, 이기팝,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의 대표곡들도 실려 있다. 뉴오더가 영화의 스코어를 맡아 사이키델릭한 인스트루멘털곡을 3곡 작곡했으며 영화 캐스트 버전의 <Transmission>도 감상할 수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
사랑없이 살지 못하던 여자 마츠코의 일생. 뮤지컬 형식을 빌어 화려하면서도 엽기적인 감각을 곁들여 풀어낸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군침 흘린 관객도 꽤 되지 않았을까. 사운드트랙은 영화 삽입곡과 스코어를 분리한 두 종류로 발매됐는데 ≪혐오스런 마츠코의 곡들≫(스코어)보다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노래들≫(삽입곡)을 추천한다. 보니 핑크의 <Love Is Bubble>, 요시카의 <Here, Always> 같은 젊은 J팝들과 전설의 엔카 가수 와다 아키코의 <古い日記>, 마이클 부블레의 <Feeling Good> 등 재즈, 엔카, 팝, 록, 힙합의 다양한 장르곡들이 완성도 높은 셀렉션을 통해 실렸다.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 버브 | V.A.
소피아 코폴라의 동시대적인 패션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운드트랙. 80~90년대의 대표적인 뉴웨이브, 포스트펑크, 드림팝,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 갱 오브 포의 <Natural’s Not In It>, 큐어의 <All Cats Are Grey>, 바우와우와우의 <Fools Rush In> <I Want Candy> 등이 있고 라디오 디파트먼트나 킬러스 같은 최근의 펑크밴드들의 곡도 실렸다. 유쾌함과 나른함을 오가는 매우 자극적인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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