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7-2008 추천 OST] <주노> <어톤먼트> 外
2008-03-25
글 : 박혜명
글 : 최하나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주노가 사랑한, 바로 그 노래

<주노> Juno | 워너뮤직코리아 | V.A.

성공의 연쇄 효과란 이런 것일까. <주노>의 센세이셔널한 히트는 O.S.T를 빌보드 차트 꼭대기에 올려놓았고, 그 결과 대다수의 미국 사람들조차 알지 못했던 한 언더그라운드 여성 뮤지션이 엘렌 페이지에 이어 행운의 스타덤에 올랐다. 72년생으로 몰디 피치스, Antsy Pants 등의 그룹에서 활동했던 킴야 도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전까지 그 어떤 차트에도 이름을 올려본 적 없던 도슨의 곡들이 <주노>의 전체적인 톤을 좌우할 만큼 다수(19곡 중 무려 8곡) 사용된 까닭은 도슨의 열성팬인 엘렌 페이지 덕. “주노라면 아마 몰디 피치스의 팬이었을걸요”라고 감독에게 던진 한마디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Sleep> <So Nice So Smart> <Tree Hug> <My Rollercoaster> 등 잔잔하고 서정적인 기타 선율 위로 도슨의 소녀적인 보컬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반짝인다. 그녀의 천진한 감성에 덧붙여 킨크스, 모트 더 호플 등 클래식 록이 에너지 충전의 역할을 담당했고, 캣 파워 같은 적당량의 세련된 인디가 풍미를 깊게 한 뒤, 70년대 동요(!)인 <All I Want Is You>가 엉뚱하고도 재치있는 레시피를 완성했다. 하모니카 소리와 휘파람이 여백을 채우고 롤러코스터와 뱀파이어, 자전거가 테마를 구성하는 <주노>의 O.S.T는 정말로 주노, 폴리가 서로에게 선물했을 법한 사랑스러운 컴필레이션이다.

강추 트랙: 영화 전체에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는 <Anyone else but You>로, 몰디 피치스와 엘렌 페이지 & 마이클 세라 커플이 부르는 두개의 버전이 나란히 수록됐다. 다소 간지러운 오리지널과 어설프지만 사랑스러운 캐스트 버전을 비교 감상해보시길.

이국적이되 진심을 담아

<연을 쫓는 아이> The Kite Runner | 유니버설뮤직 |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자신의 고향에 관해 서툰 영어로 한 단어, 한 단어 써내려간 소설이다. 부유한 집의 아들과 그 집 하인의 아들로 각각 태어나 형제처럼 가까웠던 두 소년의 이야기 <연을 쫓는 아이>는 독특한 형용어구라든지 심오한 묘사 대신 짧고 간단한 의미의 문장들의 담담한 이어짐만으로 읽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게 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주로 작업해온 스페인 음악감독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는 마크 포스터가 연출한 동명 영화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공용어인 다리어와 파슈투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콘스탄트 가드너>에서도 제3세계 지역인 아프리카의 토속 음악을 스코어로 구현하는 데 재능을 보인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의 음악가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등 알모도바르가 그려내는 깊고 따뜻한 여자들의 체취 혹은 세계 중심에서 벗어난 이국 땅의 흙 냄새에 민감한 음악가. <연을 쫓는 아이> 사운드트랙은 마크 포스터 감독의 바람처럼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이국적 정취와 서사적 느낌을 품으면서도 화려함에 취하지 않고 원작의 소박한 진심을 따라가고자 한다.

강추 트랙: <Fly A Kite>는 그런 음악적 의도와 영화의 휴머니즘적 메시지가 잘 결합된 아름다운 스코어 트랙이다.

미국 흑인음악의 진수

<아메리칸 갱스터> American Gangster | 유니버설뮤직 | V.A.

블랙 컴필레이션. <아메리칸 갱스터>의 O.S.T는 마치 미국 흑인음악의 역사를 개괄하는 듯하다. 음악으로 “블랙 갱스터영화의 정통성을 부여하려 했다”는 리들리 스콧의 말이 허세로 들리지 않을 만큼 30년대를 출발점으로 삼은 앨범은 솔, 블루스의 고전들을 충만하게 전시하고 그 위에 퍼블릭 에너미 등 동시대의 목소리를 첨가했다. ‘블루스의 왕’으로 추앙받는 존 리 후커의 <No Shoes>는 최면적인 그루브와 읊조리는 듯한 특유의 창법을 유감없이 만끽하게 하고, 5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가스펠 그룹 스테이플 싱어스의 <I’ll Take You There>와 멤피스 솔의 대가인 샘 앤드 데이브의 <Hold on I’m Comin’>은 매력적인 타임머신을 완성한다. 음악감독인 마크 스트레이텐펠트가 새롭게 작곡한 두개의 오리지널 연주곡 <Hundred Percent Sure> <Frank Lucas> 또한 백미. 갱스터영화에 맞춤 재단한 듯 비장한 긴장감으로 뉴욕 뒷골목의 공기를 붙들어놓는다. 비틀스의 원곡을 블루스로 리메이크한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는 팬들을 위한 깜짝선물이다.

강추 트랙: 솔 싱어이자 세션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떨쳤던 바비 워맥의 히트곡 <Across 110th Street>. 드라마틱한 오케스트라와 펑키한 리듬이 일품으로, <재키 브라운>의 오프닝에 사용되기도 했다.

다리오 마리아넬리라는 재능의 집약

<어톤먼트> Atonement | 유니버설뮤직| 다리오 마리아넬리

베토벤과 바그너, 차이코프스키. <오만과 편견> <그림 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 <브이 포 벤데타> 등의 음악을 작업하면서 다리오 마리아넬리가 영감을 얻기 위해 참고한 음악가들의 이름이다. 본래 영화음악이 클래식에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마리아넬리의 음악은 클래식을 닮은 영화음악이라기보다 영화음악에 가까운 클래식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근대 교향곡의 2악장처럼 서정적인 안단테로 메인 테마를 변주하고 있는 <어톤먼트>의 <Rescue> 같은 트랙이 대표적이다. <어톤먼트>의 O.S.T는 거의 모든 트랙에서 교향곡이나 협주곡 같은 고전음악의 유려한 형식적 흐름을 구현한다. 듣다보면 세계적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총애를 얻는 젊은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가 마리아넬리 악보의 어떤 부분에 마음이 움직였겠는지 납득되기도 한다. 동시에 마리아넬리는 영화에서 중요한 소품인 타자기의 음향을 관현악의 악기처럼 과감히 활용하기도 하고, 6분의 롱테이크가 인상적인 던커트 전장신에서 군인들이 부르는 합창곡을 그것과 별도로 흘러가던 배경음악 화성에 기묘히 일치시킴으로써 인물의 정서와 스크린 위의 풍경, 음악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경지를 이루기도 한다. 그의 음악은 고전적이면서도 과감하고, 격조있고 지적인 동시에 한없이 감정적이다. 미국의 최대 음악사이트 <올뮤직>은 “<어톤먼트>의 O.S.T는 영화음악 앨범을 별로 사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일 만한 힘을 가진 드문 음반”이라고 칭찬했을 정도다. 사실 당신은 <어톤먼트>의 세실리아와 로비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눈물이 멈추지 않아 음악을 들을 겨를이 없었을 터. 그렇지만 그토록 영화에 겸허히 흡수되어 있던 음악이, 음반을 통해 당신에게 영화 속의 거의 모든 장면을 되돌려줄 것이다. 당신이 이미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아주 작은 순간까지도. 실은 이것이 마리아넬리의 음악이 가진 진짜 힘이다.

강추 트랙: 1번 트랙 <Briony>. 타자기 소리와 장 이브 티보데의 피아노의 어우러짐이 놀랍다. 새로운 영화음악이자 클래식의 고귀함에도 뒤지지 않는, 다리오 마리아넬리라는 재능의 집약이다.

영국식 코미디의 리듬은? 글램록!

<뜨거운 녀석들> HOT FUZZ | 한이뮤직 수입 | V.A.

영국적인, 지극히 영국적인. 영국식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뜨거운 녀석들>의 O.S.T는 앨범 전체를 충성스레 고국의 뮤지션들에게 헌납했다. 그중 에드거 라이트가 무게중심으로 삼은 것은 다름 아닌 글램록. “터벅거리며 걸어가는 소리와 비트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장르의 농도가 짙은 경찰영화에 글램록을 부어넣은 그의 선택은 티렉스의 <Solid Gold Easy Action>, 더 스위트의 <Blockbuster>를 통해 일견이 가능하고, 70년대 글램록 컴필레이션 <Velvet Tinmine>에서 대놓고 빌려온 <Slippery Rock 70s> <Kick Out The Jams>에 이르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그 밖에도 킨크스, The Frateliis, 슈퍼그래스, Eels 등 주옥같지만 진부하지 않은 영국 밴드들을 골고루 포진시켰다. 이러니 다시 한번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름이 떠오를밖에. 장르를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기막힌 재기 외에도 두 남자는 자신의 영화를 빛나게 할 음악을 집어내는 안목 역시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강추 트랙: 전체 앨범 중 몇 안 되는 오케스트라 곡으로, 본드 시리즈의 작곡가 데이비드 아놀드의 <The Hot Fuzz Suite>다. 어쿠스틱에서 일렉트로니카와 재즈, 심지어 음산한 합창을 넘나드는 22분의 장대한 음악은 액션과 코미디, 스릴러를 뒤섞는 영화의 감성을 대변한다.

굴곡 많은 소녀의 삶을 좇아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 씨덱스 수입 | 올리비에 버네이

소녀의 삶은 굴곡도 많았나보다. 이란 출신의 여성만화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동명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의 음악은 기쁨과 행복, 호기심, 위기, 슬픔, 절망, 희망 등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면서 흘러간다. 10살이던 1979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혁명을 겪으면서 어릴 적 꿈들을 다 포기하고 타국으로 공부의 길을 찾아나섰던 그녀의 사춘기 혼란과 방황. <페르세폴리스>의 음악은 소녀의 섬세한 감정들과 비밀스런 기억을 모두 존중하듯, 그녀가 어린 시절 날마다 들었을 법한 페르시안 전통 사운드의 성격을 스코어 속에 고스란히 살려놓았다. 그리고 사춘기 이후 접했을 고전 프렌치팝의 요소를 세련되게 곁들였다. 영화 <록키>의 타이틀곡으로 쓰였던 <The Eye Of The Tiger>를 불어로 번안·편곡해 넣은 재치있는 트랙도 눈에 띈다. <페르세폴리스>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올리비에 버네이는 작곡가이자 다양한 악기 연주가. 작편곡 뿐 아니라 피아노, 베이스, 우켈렐레 그리고 모든 형태의 기타 종류를 다 연주했다. 앨범에는 2분 내외 스코어 트랙이 25개 들어 있다. 쉬운 감상용은 아니지만 유머와 진지함, 비애와 희망 등 대립되는 감정적 요소들을 스펙터클하게 충돌시키는 영리함이 정말 인상적이다.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하다.

강추 트랙: 앨범 안에서 장르적으로 가장 튀고 있는 프로그레시브 록넘버 <Master Of The Monsters>. 괴물들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뻔뻔하게 등장하곤 해서 실소를 자아내는 유쾌한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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