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꽃과 뱀> <가학의 성>의 이시이 다카시 감독의 영화세계
2008-04-03
글 : 김도훈

타란티노가 <킬 빌>에서 루시 리우의 이름을 오렌 이시이로 지은 이유? 아주 타란티노답다. “좋아하는 감독 이름 중에 이시이가 많기 때문”이다. 그가 좋아하는 세명의 이시이는 이시이 소고, 이시이 데루오, 그리고 이시이 다카시다. 각기 다른 개성의 세 이시이는 모두가 타란티노의 미학적 형님들이다. <역분사 가족>과 <고조>의 이시이 소고는 영화의 관습을 파괴하고 재조립하는 실험가다. 2005년에 작고한 이시이 데루오는 컬트의 제왕이다. 30년대 도호에서 나루세 미키오의 조연출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액션과 섹스와 시대극을 넘나들며 <공포기형인간> 같은 흥미로운 B급영화들을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이시이 다카시. 그는 색정광의 제왕이다. 아니. 오시마 나기사처럼 정치적으로 근사하고 미학적으로 수려한 고급 성애영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시이 다카시는 사도마조히즘(SM)과 폭력과 강간으로 가득한 섹스영화를 만든다. <일본영화 백과사전: 섹스영화들>의 저자 토머스 바이서에 따르자면 그것들은 “웰메이드 쓰레기 영화”다.

<꽃과 뱀>

70년대 관능만화계의 거성

이 기묘한 섹스와 폭력의 황제가 탄생한 배경에는 70년대 닛카쓰 로망포르노 시대와 관능만화의 시대라는 두 가지 조류가 얽혀 있다. 77년 닛카쓰에서 일하던 이시이 다카시는 결혼과 동시에 닛카쓰를 나와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강간당하는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천사의 내장>을 통해 관능만화계의 거성으로 떠올랐다. 전후 버블경제의 정점에 치솟았던 70년대 일본인들의 성 모럴은 급격하게 다양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상 체위로 범벅된 이성적인 섹스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시이 다카시의 <천사의 내장>은 시대가 요구하던 욕망을 대리충족해줄 수 있는 가장 뜨거운 물건이었다. 그리고 TV의 시대를 맞아 영화계에 닥친 재정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값싸고 효율적인 ‘로망포르노’ 장르를 발명한 닛카쓰에 이시이만큼 훌륭한 이야기의 샘도 없었을 것이다. 이시이 역시 각본가로서 금세 로망포르노의 세계에 적응했다. <천사의 내장> 시리즈는 원래부터가 대본을 집필하듯이 그린 작품이었고 그 자체로도 근사한 콘티북이었다. 모든 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각본가로 활동하던 이시이는 1988년에 <천사의 내장: 붉은 현기증>으로 마침내 감독의 자리에 올랐고, 일종의 여성전사 익스플로이테이션 <검은 천사> 시리즈, 좀더 진지하게 버블경제가 몰락한 일본사회를 돌아보는 스릴러 <고닌> 시리즈 같은 V시네마 계열 수작들을 만들며 미이케 다카시와 쌍벽을 이루는 ‘영화계의 괴인’으로 칭송받았다.

미이케 다카시와 쌍벽을 이루는 ‘괴인’

이시이 다카시의 극단적인 미학은 본격적인 SM영화 <꽃과 뱀> 시리즈로 거의 완성의 경지에 오른 듯하다. 일본의 사드백작이라 불리는 SM소설가 단 오니로쿠(박스 참조)의 원작을 영화화한 <꽃과 뱀>은 SM의 잔혹한 세계를 숨이 막힐 것 같은 유미주의적 손길로 그려낸다. 그러나 한 가지 꼭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국내 개봉할 <꽃과 뱀>이 시리즈의 후속편인 <꽃과 뱀2: 파리/시즈코>라는 것이다. 수입사인 부귀영화의 설명에 따르면 “심의 때문에 1편을 수입하지 못한 탓”에 2편에 1편의 제목을 붙여 개봉하게 됐단다. “2편도 심의가 힘들었는데 알다시피 1편은 더하다. 편집을 하게 되면 영화가 거의 남지 않는다. 그래서 2편만 수입했지만 1편도 개봉하지 않은 상태에서 <꽃과 뱀2>라는 제목을 달기는 좀 곤란했다.” 납득할 만한 이유다. 재벌 남편과 결혼한 유명 탱고 댄서 시즈코가 남편의 빚을 갚기 위해 언더그라운드 SM클럽의 노예가 되어 온갖 몹쓸 짓을 당한다는 내용의 <꽃과 뱀>은 폭력적인 SM 플레이가 한치의 두려움도 없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한국 심의위원들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하게 만들 만큼 거침없이 노골적이다.

일본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2004년 개봉한 <꽃과 뱀>은 도쿄 긴자시네파토스 개관 이래 최대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됐고 비디오와 DVD가 10만장이나 팔려나갔다. 전작의 성공에 고무된 이시이가 일본 최대의 섹스심벌인 여배우 스기모토 아야와 또다시 손잡고 만들어낸 속편이 국내 개봉을 앞둔 <꽃과 뱀>이다. 미술평론가 도오야마 다카요시(시시도 조)의 젊은 부인 시즈코(스기모토 아야)는 천재 작가 이케가미(엔도 겐이치)에게 천재적인 재능을 다시 일깨우라는 남편의 부탁으로 파리로 향한다. 시즈코가 파리에서 발견한 남자는 알코올로 자신을 파괴하며 7년간 그림 한점 그리지 못한 초라한 미술가다. 실망한 시즈코가 그림을 하나라도 그리면 후원 여부를 재고해보겠다고 통보하자 이케가미는 답한다. 당신을 그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시즈코는 젊은 남자의 정념에 끌린 채 옷을 벗고 묶이고 강간당하며 그림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보며 이케가미의 재능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이케가미의 동생은 파리의 암흑시장에 오빠의 그림을 팔고 싶다고 말하고, 시즈코는 그림을 들고 암흑시장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시즈코 자신이 모델인 SM 그림 몇점이 경매에 올라 있다. 시즈코는 이케가미의 작품이 진품이라는 것을 밝히려 하지만 오히려 위작으로 판명난다. 파리의 암흑시장에서 위작임이 들켰을 때의 형벌? 그림과 똑같은 굴욕적인 SM 고문을 수많은 손님들 앞에서 당해야 한다.

<프리즈 미>
<프리즈 미>

여성의 강인함에 대한 기묘한 예찬

이시이 영화에서 SM의 대상은 언제나 여성이다. 그녀들은 폭행당하고 강간당하고 고문당하고 종종 살해당한다. 하지만 <꽃과 뱀>이 변태 영감들의 애욕으로 빚어진 반여성적 섹스영화인가. “아니”라고 대답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가련한 여자가 남자들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한다는 개념만으로 이시이를 거부한다면 말없이 거부하면 된다. 이걸 저질 섹스영화라고 일컫는다면 그 또한 자유이며 어떤 면에서 이건 확실히 저질 섹스영화가 맞다. 하지만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해보자면, 이시이의 영화는 오히려 여성의 강인함에 대한 어떤 기묘한 예찬에 가깝다. 국내 개봉한 <프리즈 미>는 어린 시절 자신을 강간한 남자들을 차례차례 죽여서 냉장고에 얼리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구원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은 이시이가 아니라 차가운 현실의 세상 그 자체다. 이시이 영화에서 진짜 폭력과 성의 희생자는 남자들이다. 이시이의 여자들은 고통과 죽음에 기묘하게 매혹되고, 결국 종말은 자신의 죽음 혹은 살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 “여주인공, 남자에 의해 마조히스틱적으로 훈련받는 여자는, 사실 영화 속 내내 남자들을 컨트롤한다. 모든 여자에게 주어지는 모욕에도 불구하고 이것이야말로 근원적인 진실이다.”(영화평론가 이즈미 에버스) <천사의 내장>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나미 쓰지야는 언제나 남성으로부터 강간을 당한다. 하지만 <천사의 내장>은 여성을 남성의 욕망에 헌신하는 암캐로 그리는 법이 없다. 이시이는 <천사의 내장>이라는 제목을 “은유적으로, 용기를 가진 진정한 여자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확실히 그러하다. 제목 <천사의 내장>은 여자(천사)의 성기(내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로 다시 번역하자면 Angel Guts이며, 여기서 gut은 내장이라는 의미인 동시에 용기와 결단력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혹은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이시이 다카시의 영화가 SM 제작사가 만든 자위용 포르노그래피와 다른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작품들이 순수한 정념에 관한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단 오니로쿠의 원작부터가 그렇다. 그의 원작은 드라마틱하고 화려하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섹스를 담는다. 비주얼리스트인 이시이 다카시는 그보다 더 나아간다. 그는 자신의 만화가 지닌 스타일을 스크린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카메라는 종종 보통 영화에서라면 도무지 사용될 리 없는 괴상한 앵글을 구사하고,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피와 땀으로 범벅돼 일그러진 황홀경의 얼굴을 잡아낸다. 적은 제작비 탓에 로케이션과 세트는 열악하지만 대신 이시이는 그걸 역으로 이용한다. 단순한 세트는 언제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극단적인 조명과 그림자로 가득하다. <꽃과 뱀>의 암흑시장은 실재하지 않는 장소다. 연극의 무대이며 판타지의 배경이다. 이시이는 SM이라는 폭력적 성행위의 중독자가 아니라 성적인 환상의 조율자다.

“내 영화는 포르노가 아니다, 의사소통이다”

2007년 신작인 <가학의 성>은 여전히 파괴적인 섹스영화인 동시에 좀더 현실적으로 여성의 내부에 잠입하려는 이시이의 탐험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혐오>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인기 여배우가 현실과 영화를 혼동하며 미쳐가는 과정을 그린다. 여배우 나미(기타지마 마이)는 기자 카츠라기(다케나카 나오토)와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녀는 현재 <레프트 어론>이라는 제목의 신작에서 교코라는 여배우 역할을 맡고 있으며, 역시 배우인 남편 요스케(나가시마 도시유키)는 극중에서 신인 여배우와 불륜을 저지르는 쿄코의 남편을 연기한다. 문제는 요스케가 실제로도 영화에 출연하는 신인 여배우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너무나도 서로를 닮은 삶과 영화 사이에서 고통을 겪는 나미는 기자 카츠라기에게 <레프트 어론>의 촬영과정을 설명하던 중 자기도 모르게 자신과 교코의 삶을 혼동하기 시작하고, 인터뷰는 점점 무시무시한 현실의 비극을 암시하며 반전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꽃과 뱀>

<가학의 성>에는 기이할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자신을 성적으로 환대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야속함과 증오심으로 나미는 밤거리에 나가 몸을 팔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십대 아이돌 시절을 기억하는 한 남자 앞에서 그 시절의 옷을 입고 가라오케로 노래를 부른다. 비록 그 장면은 무시무시한 욕정과 피비린내나는 비극으로 종결되지만 나미가 춤을 추고 노래하는 순간의 열정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혹은 감상적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녀는 섹스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자 하지만 현대 일본의 남녀는 끝없이 서로를 밀쳐낼 뿐이다. “내 영화는 포르노가 아니다. 남녀의 관계이며 의사소통이다. 일본 남녀 사이의 희망없는 간극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나는 섹스를 이용한다. 섹스는 현대적 관계의 거울이다.”

일본영화의 반쪽을 재발견하는 쾌락(혹은 고통)

이시이 다카시에게는 주류 영화계 내부로 소속되고 싶은 열망이 없다. 그는 심지어 미이케 다카시처럼 가끔 지상으로 올라와 돈과 빛을 받고 싶은 생각도 없는 듯하다. 그는 그저 정열적으로 “웰메이드 쓰레기” 영화를 만든다. 그는 절대 지상의 빛을 받을 수 없는 극단적인 사디즘과 마조히즘적 성애야말로 인간의 쾌락과 고통을 동시에 껴안는 소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허공에 묶여서 매달린 채 온몸으로 물을 쏟아내는 여인의 몸. 그 몸을 지켜보고 신음하고 탐하며 소리치는 사내들의 몸. 그것은 쾌락과 고통으로 동시에 관객의 가슴을 찌른다. 만약 당신이 그의 영화를 보며 쾌락을 느낀다면 당신은 정상이고,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정상이다. 이시이 다카시의 영화에서 고통과 쾌락은 양면의 종이다. 한면에 피가 배면 다른 면에도 피가 밴다. 지금 이시이 다카시의 영화를 본다는 것. 그것은 인디 소년소녀들의 샤방샤방한 연애담 속에서 진정한 일본영화의 반쪽을 재발견하는 쾌락(그리고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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