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올해는 이상하게 차분하다.”
2008-05-01
사진 : 오계옥
글 : 오정연
[인터뷰] 유운성 프로그래머

“올해는 이상하게 차분하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사무국 전체가.” 막판 준비로 여념이 없을 줄 알았던, 그러나 지극히 평온한 표정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첫마디다. 물론 1년 동안 공들여 준비한 차림을 향한 관객들의 열렬한 관심을 바라보는 뿌듯함은 예년과 다름없다. “예매율 현황을 보면 예년보다 전 섹션이 고르게 팔리고 있다. 아, 그리고 일본영화 <키사라기>는 영화제 역사상 최초로 전북대 문화관의 온라인 예매분을 매진시킨 영화다.” 관객으로 찾았던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나 <사탄 탱고>를 본 뒤, 만일 프로그래머가 된다면 우선적으로 모셔오고 싶었던 벨라 타르가 기어이 전주를 찾게 된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덤덤하다. “2년 전부터 하려고 했는데, 벨라 타르 쪽에서 계속 신작이 나오면 회고전을 하자고 해서 여지껏 기다린 거다.”

관객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보물을 추천하는 마음은 언제나처럼 간절하다. “<실비아의 도시에서>와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을 상영하는 호세 루이스 게린은 주목해야 할 게스트다. 20년간 영화를 만들어왔는데도 이상하게 국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경쟁작이었는데 최악의 평점을 받은 작품이더라.(웃음) 다른 부문이었다면 그런 평가를 받지는 않았을텐데. 현재 스페인 영화계에서 알모도바르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다. 여기에 올해 상영작 중 같은 카탈루냐 지방 출신인 페레 포르타베야 감독의 <바흐 이전의 침묵>까지 본다면, 현재 카탈루냐 영화의 경향을 살필 수 있을 거다.” 경쟁부문인 탓에 추천작을 말할 수는 없지만, <사이에서>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등 지난 몇년간 국내에서 화제가 됐던 개봉작이 첫선을 보이는 자리가 되어주었던 ‘한국영화의 흐름’ 섹션 역시 필견 리스트로 가득하다.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후보작을 봐야 했던 어려움은 있지만, 완성도가 모두 좋아서 선정 과정은 오히려 쉬웠다. 예년과 달리 전주에서 프리미어 상영되는 국내 장편을 개·폐막작으로 빼지 않았던 것은 “경쟁 부문에 좋은 작품을 몰아넣음으로써, 외국 심사위원들에게 보여질 수도 있고, 그로인해 다른 해외 영화제의 상영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포석 때문이었다고. 실험영화과 관객의 간극을 좁히는데 앞장서온 전주영화제의 간판 섹션 중 하나인 ‘영화보다 낯선’도 빠질 수 없다. 해마다 ‘의외의’ 인기를 누렸던 피터 쿠벨카, 피터 체르카스키, 하룬 파로키에 이어 올해 회고전의 주인공은 알렉산더 클루게다. “회고전을 개최하려고 오랫동안 준비했던 감독이다. 순서상으로는 파로키보다, 그에게 영향을 미친 클루게를 먼저 접하는 것이 맞지만,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는 지금 이 시점에서 소개하는 게 오히려 쉽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의연한 준비상황의 이면에도 아찔한 순간은 있다. 무조건 염려말라던 배급사가 ‘HD 테이프가 분실됐다’며 불과 2주전에 연락해온 라울 루이즈의 <렉타 프로빈시아>가 대표적인 예. 마침 영화가 방영됐던 칠레 방송국의 도움으로 “전세계의 유일한 완성본”을 우여곡절 끝에 수급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프랑스보다 칠레 쪽이 일처리가 훨씬 빠르더라. (웃음)” 물론, 이젠 모두 지난 일. 축제는 시작됐다. 준비한 사람도, 초대된 사람도, 무조건 즐기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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