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삼인 삼색 중 <나의 어머니>를 완성한 튀니지 출신의 나세르 케미르는 과거와 대화하는 영매이며 이야기를 지어내는 셰라자드다. 영화는 간결하고 평온한 듯 보이지만 현실과 환상을 액자식 구조로 겹쳐 놓은 이미지들은 역동적이다. 그 안에는 능히 공감할 만한 삶의 기본적인 감정들이 있다. 전주를 두 번째 찾은 그에게 <나의 어머니>에 대해 물었고, 그는 한 문장씩 천천히 시(詩)적인 대답을 풀어냈다.
-디지털이 당신 영화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가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35mm 필름으로는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해준다. 디지털은 이미지와 소리의 관계를 필름보다 훨씬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해준다.
-<나의 어머니>는 어떤 구상을 통해 나온 영화인가
=여행을 많이 하다보니 어머니를 자주 찾아 뵐 수 없었다. 거기서 부재라는 비극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또 하나는 내가 하려던 어머니에 관한 사전을 만드는 일이 계기가 됐다. 사전은 너무 분량이 많아서 지금은 어머니에 관한 알파벳만 생각중이다. 영화 속 어머니는 실제 내 어머니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알파벳이라. 거기에는 어떤 낱말들이 등재되나
=아들, 기다림, 부재, 고독, 고통 그런 것 일거다.
-당신의 영화는 확실히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 구조를 연상시킨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광범위한 모든 형태의 서사를 다 포함하고 있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미로 같은 이야기도 있다. 찰나적으로 형태를 바꾸는 다양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라비안 나이트>는 하나의 세계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는 인종과 문화를 능가하는 어떤 공유점들이 있다. 왜 <아라비안 나이트>를 보면 주인공이 항상 아랍 사람들만은 아니지 않나. 중국인 공주가 나오기도 하는 등, 일종의 문화적 거리를 단숨에 뛰어 넘는 부분도 볼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부분의 서사가 천일야화 안에 이미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액자식 구조의 영화를 선호하는 건가
=현실과 허구의 관계는 항상 그런 식이다. 영화는 내 생각에 시나 문학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라비안 나이트>로부터 내가 배운 게 바로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이른바 장르적인 환상성으로 다루지 않고 마치 현실처럼 창조해내는 것이다. 미국식 판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건 역사가 짧은 미국인들의 방식이다. 미국의 역사는 사람의 인생에 비유할 때 아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이들은 원래 이 세계가 다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니까(웃음). 하지만 오래된 문명일수록 본질적인 것은 감추어져 있기 나름이다.
-<나의 어머니>에는 당신 본인도 출연한다.
=거기 출연한 어머니도 실제 내 어머니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돌아가신 건 아니다(웃음). 영화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감독이 전화로 받지 않나. 사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 살 수는 없는 법. 우리는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몰입해 있다가 뜻밖의 일을 접한다. 보이지 않는 다른 한쪽에는 언제나 영화 속 어머니처럼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삶 아니겠나.
-당신 영화는 시간적으로 과거와 교감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과거는 기억이 아닌가. 그리고 기억은 삶이고. 기억이 없는 사람은 그러니까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억을 소중히 하는 사람은 여러 세기를 사는 사람이다. (창 밖을 가리키며) 저기 보라. 좀 전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 사람. 나는 저 사람 이름도 모르고, 생각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지만, 나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앞에 놓인 책을 가리키며) 이 책은 8세기 전에 죽은 철학자가 쓴 것인데, 이걸 읽는 다는 것도 내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말이 된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현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명확하게 재단할 수 있겠나. 영화 속의 시간? 그 시간도 결코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내 작품의 시간은 그렇게 시작과 끝과 중간이 명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