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남겨진 "일본 놈의 상처" <끝나지 않은 전쟁>
2008-05-04
글 : 이영진

63 Years On/2008/김동원/60분/한국/오후 8시/메가박스 5
중국의 웨이 샤오 란, 그녀는 남편과 다복한 17살 새색시였다. 네덜란드의 얀. 그녀 곁엔 음악으로 행복을 나누는 가족들이 있었다. 한국의 이수산. 그녀에게 아버지 술안주로 전복을 따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행복은 지속되지 못했다. 영문도 모르고 제국주의 전쟁에 성노예로 끌려간 ‘그녀들’은 이후 60여년 동안 치유불가능한 절름발이 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충격적인 건 하꼬방에서 황군들의 폭력을 견디며 죽지 못해 살아야 했던 이들이 비단 아시아 식민지 여성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인생은 거기서 끝났어요” 수녀가 되고 싶었으나 노리개로 전락했던 백인 여성 얀의 떨리는 증언은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만이 아님”을 일러주는 동시에 일본 정부가 추악한 과거를 부인하는 현실에서 그녀들의 내상(內傷)이 여전히 진행형임을 깨닫게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지급된 ‘돌격 1호’라는 이름의 콘돔처럼, 황군의 병참품 노릇을 요구받았던 그녀들의 증언은 끔찍하다. 누구에게도 위해를 가한적 없었으나 전쟁 후 ‘더러운 계집’이라는 불결한 낙인을 가슴에 얹고 살아야 했던 그녀들의 삶도 끔찍하다. 트라우마까지 유전받은 그녀들의 자식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 또한 끔찍하다. 비극을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죄과를 인정않는 복수의 가해자들을 바라보는 것도 끔찍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끝나지 않은 전쟁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현재의 침묵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던 전쟁에서 피를 흘려야만 했던 ‘그녀들’을 박제된 목소리로 간주하는 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 이수산 할머니의 몸뚱이에 남겨진 "일본 놈의 상처"가 뜨끔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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