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데스플레생 가(家)의 과거 복원 <사랑>
2008-05-05
글 : 장영엽 (편집장)

2007│아르노 데스플레생│65분│프랑스│오후 5시│CGV 4
오래된 집은 나름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자손 대대로 살아온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감독의 아버지는 몇 대에 걸쳐 살아온 집을 매물로 내놓고, 감독은 한 시대를 마감하는 데스플레생 가(家)의 과거를 복원하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복원 대상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난 감독의 할머니다. 그녀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진술, 자필 편지, 초상화 등을 통해 현재로 소환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아버지나 감독에게는 할머니를 떠올릴 만한 어떤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두 살이 되기도 전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기에, 아버지는 오직 상상 속에서만 그녀의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다. 데스플레생은 할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열렬한 애정을 <현기증>의 남자주인공 스코티가 아름다운 매들린에게 매혹됐던 감정과 비교한다. 그것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모호한 연모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도 사랑이라고 감독은 말한다. 한 사람이 혈연관계로 맺어진 이를 생각하는 방식은 매력적인 이성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애틋할 수 있다는 얘기다. 놀라운 건 특별한 사건이나 절정이 없음에도 영화의 진행에 따라 감정을 증폭시켜나가는 데스플레생의 솜씨다. 영화는 가족의 초상화나 장식용 가면처럼 집안의 사소한 소품들조차 따뜻하게 담아낼 줄 안다. 이는 감독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아르노 데스플레생에 주목해왔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몇 가지. <사랑>에는 그의 전작을 유추할 수 있는 무수한 실마리들이 숨어있다. 할머니가 죽은 후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양자로 받아들여졌다는 고백에서 <킹스 앤 퀸>(2004)의 입양 에피소드를,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파수꾼>(1992)을 떠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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