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크레더블 헐크>의 에드워드 노튼이 사는 법
2008-06-06
글 : 오정연

1. (영화 속 캐릭터) 악인 vs 선인

조금 얄밉게 말해볼까. 이중인격을 연기하는 살인범(<프라이멀 피어>)? 이건 사실 ‘자신이 천재임을 증명하고픈 꼬마 배우의 묘기대행진’을 위한 완벽한 레퍼토리일 뿐이다. 더듬거리는 말투로 눈을 조금 풀고, 입을 헤벌린 상태에서 눈을 뒤집고 욕을 내뱉는 모드로 순식간에 전환하면 그만 아닌가. 정작 중요한 건 그 이후다. 묘기는 결국 연기임을 증명해야 한다. 에드워드 노튼은 그걸 했다. 맷 데이먼에게 돌아간 역을 위해 보았던 <레인메이커>의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으로 흥행가도를 달리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고사했던 역할로 이름을 알린 직후, 그는 피고인에서 변호사로 순식간에 자리를 바꿨다. 너무 심심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찼던 약혼녀를 다시 받아들이는 뉴욕의 순정파 변호사(<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그리고 평생 래리 플린트의 곁을 지켰던 정의로운 변호사 앨런(<래리 플린트>). 괴물 흉내를 내는 인간과 인간으로 변하는 괴물, 어느 쪽이 더 신기한가. 이 두명의 변호사는 후자가 훨씬 진귀한 광경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래리 플린트를 위한 앨런의 마지막 무대는 “모든 변호사들이 꿈처럼 여긴다는 대법원”. 밤새워 준비한 대사를 더듬더듬,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하는 변호사 앨런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용기를 낸 평범한 누군가의 모습, 그대로다. 실수 때문에 더욱 사랑스러운, 너와 나를 닮은 그의 모습은 이후 감독 데뷔작 <키핑 더 페이스>에서도 엿볼 수 있다.

<프라이멀 피어>
<파이트 클럽>

그리고 또 다른 극단. 머리를 밀고, 수염을 기르고, 15kg의 근육을 불린 뒤 나치 문양 문신을 새긴 것은, 개인적 경험 때문에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어버린 데릭(<아메리칸 히스토리 X>)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캐릭터에 접근하는 것은 완벽하게 봉쇄된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문은 여러 개가 있다. 어떤 문은 의상이고, 어떤 문은 외모이며, 어떤 문은 억양이 될 수 있다. 결국 모든 문을 열어야 하지만 어떤 문을 먼저 열 것인지는 결정해야 한다. 데릭의 경우는 육체의 문이었다.” 이때부터 노튼의 외모는 영화 속 그의 캐릭터가 어떤 극단인지를 짐작게 하는 약간의 힌트가 되어준다. 머리카락이 짙고 덥수룩한 수염(<라운더스> <25시> <이탈리안 잡>)까지 길렀다면 그의 어수룩한 귀여움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버릴 것. 어쨌거나 <아메리칸 히스토리 X>가 도식적인 구성으로 치기를 부린 범작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노튼의 과감한 변신은 또 한번 관객을 홀리는 데 성공한다. 첫 영화에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가 또 한번 오스카 후보 지명에 성공한 것이다. 극영화 필모그래피가 네편에 불과한 서른살의 젊은 배우는 이때부터 “우리 시대의 배우”라는 수사를 부여받는다. 출연작들 사이의 넒은 간극뿐 아니라, 한편의 영화 속 큰 보폭은 노튼만의 장기 중 하나다. <프라이멀 피어>에서는 천사와 악마를,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는 과격한 테러리스트와 성실한 가장 사이를 오가던 그가 <파이트 클럽>을 택한 건 그러므로 당연한 결론이다. 노튼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이중인격을 중요한 반전으로 택한 이 영화에서 그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순진무구한 내레이션을 도맡아 관객과 극중 자신의 캐릭터 모두를 가뿐히 속인다.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노튼의 ‘변신쇼’를 보고 있자면, 이 괴물의 아픈 과거가 궁금해질 법도 하다. 그러나 “배우들이 대중 앞에서도 ‘어둠의 왕자’처럼 구는 걸 이해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그렇게 어두운 영혼의 소유자라면,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그처럼 괴롭힌다면, 대체 왜 그런 영화를 찍는 건가?”라고 시니컬하게 반문하는 이 남자의 영혼에 대해서라면, 주제넘은 고민은 금물이다. “메소드 연기는 내게는 그리 유용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배우의 가장 위대한 재능은 상상력이다. 누군가의 감정을 관찰하고 그것을 내 식으로 표현하는 것,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데릭 역시 그렇게 접근했다. 난 그런 종류의 분노나 좌절, 폭력적인 경향을 경험한 적이 없다.”

2. (공인으로서) 셀러브리티 vs 배우

“지하철을 탈 수 없게 된다면 심장마비에 걸릴지도 모른다.” 파파라치와 타블로이드와 염문설로 점철된 할리우드의 셀러브리티로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거부해온 그가 <아메리칸 히스토리 X> 관련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나 뉴욕으로 이주한 지 십여년, 익명성의 도시 뉴욕은 그에게 있어 마음의 고향과도 같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끌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뉴욕을 자신만의 긍정주의로 묘사한 <키핑 더 페이스>를 첫 번째 연출작으로 택했으며, 향락의 도시 할리우드는 일터로 족할 뿐 거주할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거듭 밝히는 건 그 때문이다.

위키피디아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코트니 러브(<래리 플린트>),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샐마 헤이엑(<프리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사고친 후에> 등 주드 애파토우 사단의 영화 몇편을 프로듀싱한 제작자 샤우나 로버트슨이 그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노튼은 정말 똑똑하고 기사도적이다. 도덕과 신의로 말하자면 내가 이쪽 업계에서 만난 모두를 능가한다”고 말하는 코트니 러브의 밴드 ‘홀’이 노튼의 기타 연주와 함께 공연한 바 있고, 노튼이 <프리다>에 넬슨 록펠러 역할로 카메오에 가까운 분량으로 출연하거나, 시나리오를 비공개적으로 손본 것은 여자친구 때문이었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러나 노튼은 그러한 자신의 연애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한번도 없다. “연기자가 자신의 사생활을 대중과 공유해야 한다는 의무 따위는 어떤 계약서에서도 본 적이 없다. 솔직히 나는 배우들이 좀더 많은 이들에게 ‘그건 정말이지 당신이 알 바 아니군요’라고 정중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익명성에 대한 그의 결벽증은 단지 사생활에 대한 보호본능 때문만은 아니다. 다섯살 때 베이비시터가 출연하는 뮤지컬을 보러 갔을 때부터 무대를 꿈꿨고, 유년기와 사춘기에는 연극 캠프 혹은 연극반 활동을 이어갔으며, 고등학생 때 이안 매켈런의 모노드라마를 관람한 뒤 “그런 종류의 소통 혹은 재현이 굉장히 심오한 수준으로 가능함을 깨달았다”는 노튼에게 익명성은 배우의 필요 조건이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된다고 내 영화를 보러오진 않는다. 영화광들은 레이프 파인즈나 대니얼 데이 루이스처럼 언제나 새로운 얼굴로 충격을 주는 배우를 보고 싶어한다. 나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극진한 팬이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처럼 짜릿한 순간은 누군가가 나에게 ‘그는 정말 귀여워’라고 말할 때가 아니라, ‘그가 그 역할이었다는 걸 전혀 몰랐어’라고 말해줄 때다.”

2002년 NBA 경기장에서 레이커스를 응원하는 모습

한때 노튼이 아파트를 함께 쓰고 있다고 소문이 돌았던(물론, 그는 그 소문에 대해 제대로 밝힌 바 없다) 드루 배리모어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이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노튼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단단한 호두 같아.” 그의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이 오롯한 공간을 갈구하는 배우로서의 단단함을 보여준다면, 열혈 민주당 지지자로서의 행보는 ‘연예인’이 아닌, 사회와 관계를 주고받는 ‘예술인’으로서 그의 의지를 증명한다. 그는 뉴욕 주지사 엘리엇 스피처의 강력한 지원자였고, 각종 사회활동에 상당한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9·11 이후에는 중동평화기금을 모교인 예일대에 기부한 바 있다. 9·11 이후 미국 혹은 뉴욕을 살아가는 모두의 마음의 풍경이 돌이킬 수 없이 변했음을 드러낸 스파이크 리의 신작 <25시>에 평소 개런티의 20분의 1을 받으면서 기꺼이 출연했다. “어쨌거나 우리(배우) 모두는 광대에 불과하다”는 그의 말은 푸념일까 긍지일까. 무대 뒤의 광대는 누구보다 슬플 수 있지만, 무대 위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은 광대에게 허락된 권력인 법. 노튼은 그 양면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비교적 일찍 터득한 셈이다.

3. (영화인으로서) 배우 vs 작가, 감독

<프라이멀 피어> 시절부터 에드워드 노튼은 감독이고 작가이며,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순서대로 이뤄지지 않는 촬영을 통해서 애런의 두 가지 인격이 조금씩 비율을 달리함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신별로 비율을 표시한 카드를 참고했다. 학구적이고 정치적이기로 유명한 <시네아스트>는 1999년 12월, 8페이지에 걸쳐 노튼과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는데, 사생활과 과거가 아닌 연기론과 영화 작업에 대한 심도있는 질문에 그가 물 만난 고기처럼 흥겨워하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당시 <시네아스트>는 “브래드 피트, 조니 뎁,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의 매끈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얼굴은 10대 소녀들의 벽을 장식할 뿐이다. 그러나 노튼은 다르다. 귀여움의 세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잘생긴 것도 아니며, 영화배우의 명백한 카리스마를 지닌 것도 아니다. 할리우드의 젊은 동료들은 절대 감당할 수도, 근처에도 갈 수 없는 능력을 그는 지녔다”며 배우로서 그의 위치를 공들여 상찬했지만, 노튼은 자신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해리슨 포드, 톰 행크스처럼 존재 자체가 자연적인 아이콘인 배우들이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같은 이유로 그들을 찾고, 그런 역할을 할 때에 안정감을 느낀다. 나는 다르다. 절대 일관성 따위와는 관계가 없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당시, “현재로선, 연출이란 그저 단어일 뿐이다. 물론 내가 거기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이라며 나름의 겸손을 표시하던 노튼이, 더 넒은 무대를 향한 호기심을 드러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00년 <키핑 더 페이스>로 감독으로서 신고식을 치른 그가 공식적으로 배우, 제작자 이외의 크레딧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시나리오작가로서 <인크레더블 헐크>, 편집자로서 <다운 인 더 밸리> 두편뿐이다. 그때마다 노튼은 자신의 중간 이름을 따서 에드워드 해리슨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현재 촬영 중인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인 <마더리스 브루클린>(또, 뉴욕!)에는 에드워드 노튼이라는 이름 그대로 시나리오작가와 감독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가 <프리다>와 <스코어>의 시나리오에 작가 수준으로 개입했고, <래리 플린트> <아메리칸 히스토리 X> 등에서는 감독의 편집실에 상주하다시피 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연출자의 고집을 지닌 배우만큼 다루기 고약한 존재가 있을까. “그는 감독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그의 질문들은 매우 유효하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다.”(<레드 드래곤> 브렛 래트너), “지성과 본능 사이에 균형을 갖췄다. 매우 똑똑하고 분석적이지만, 본능에 대한 문 역시 닫아두는 법이 없다.”(<래리 플린트>에서 배우 노튼을 연출했고, <키핑 더 페이스>에 노신부로 출연하여 감독 노튼의 연출을 받았던 밀로스 포먼 감독) 노튼과 작업했던 많은 감독들의 발언을 통해, 이처럼 지적이고 분석적인 배우가 얼마나 감독들에게 달갑잖은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토니 케이 감독은 제작사인 뉴라인과 노튼을 상대로 소송을 냈을 정도. 그에 따르면 노튼은 “자신의 분량을 늘리는 데에만 관심을 둔, 자아도취적인 아마추어리즘의 소유자”였다. 감독이 7개월에 걸쳐 완성한 90분 버전의 편집본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노튼이 감독을 따돌린 채 <프렌치 커넥션> <지옥의 묵시록>의 편집자와 함께 두 시간짜리 개봉버전을 새로 완성했다는 것. 이에 대해 노튼의 입장은 건조하다. “그간 나는 많은 감독과 협력작업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감독의 편집본은 매우 실험적이었지만, 우리가 애초에 생각했던 영화와는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너무 짧아서 데릭의 심적 변화를 전혀 설명할 수 없었다. 뉴라인과 나는 매우 당황했고, 새로 편집을 손보기로 했는데, 단지 스튜디오가 감독을 대하는 태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본인들조차 진위를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데이비드 핀처로부터 현장에서 최대치를 뽑아내는 법을, 밀로스 포먼으로부터 편집의 테크닉을 배웠다는 노튼이 데뷔감독의 치기어린 실험에 만족하지 못했던 상황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노튼이 시나리오작가이자 제작자로 나선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빚었던 감독의 불화는 한차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박스 기사 참고).

연출 데뷔작 <키핑 더 페이스> 촬영현장
<인크레더블 헐크>

사생활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성격파 배우가 노튼이 처음은 아니다. 예일대에서 역사를 전공했으며, 도시 개발사업을 하는 외할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몇년간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익힌 일본어가 수준급으로 알려진 노튼처럼 웬만한 학벌과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배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노튼의 선배 카멜레온 격인 로버트 드 니로며 할리우드의 지성파(?) 배우의 대명사 격인 조디 포스터 역시 띄엄띄엄 자신의 연출작 필모를 더해가고 있지 않던가. 그러나 어둡고 성난 젊음의 대명사였던 드 니로는 세월이 그 모난 구석을 귀여움으로 채우기 전에는 스크린 위에서 범인(凡人)을 연기할 수 없었고, 완벽에 가까운 똘망똘망함과 긍지가 얼굴에 가득한 포스터의 그녀들 역시 허허실실 실수를 반복하는 우리 모두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들의 연출작은 호의적인 평단의 반응과 별개로 어둡고 묵직했다. 그러므로 드 니로와 숀 펜을 거쳐 도착한 그의 재능은 마음만 먹으면 한없이 가볍고 덤벙대는 평범함을 걸칠 수 있다는 데 있다. 서른살의 노튼이 완성한 <키핑 더 페이스>는 로맨틱코미디의 팔랑함과 편애에 가까운 뉴욕 사랑, 무엇보다 영화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젊은 영화인의 패기를 갖췄다. 걸작은 아니지만 애써 걸작을 넘보지 않는 겸손이 깊고, 자신의 깜냥을 인지한 데뷔작은 이후를 기약하기에 손색이 없다. 노튼의 예일대학교 동갑내기 동기였고, <키핑 더 페이스>의 시나리오를 쓴 스튜어트 블룸버그는 말한다. “누구든 에드워드를 진짜로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사랑스러운 모범생 타입의 괴짜임을 알 것이다. 나에게는 그가 영화에서 그렇게 무서워질 수 있다는 게 충격이다! 실제로 그는 온통 유머뿐인 인간이다.” 두 얼굴의 사나이가 두 얼굴 모두를 통제하는 데 유머처럼 효과적인 무기가 또 있을까. 여지껏 그가 보여줬고, 앞으로 보여줄 얼굴 모두를 우리가 신뢰하고 또 기다리는 이유다.

에드워드 노튼과 제작사의 불화설?

일체의 프로모션에 불참, 노튼은 약속 이행 중…

2003년 리안-에릭 바나 콤비의 사색적인 <헐크>가 거둔 실패는 참담했다. 영화팬과 원작팬 모두를 헐크로 만들 정도로 분노를 샀고, 북미에서 거둔 1억3200만달러의 수익은 1억3700만달러의 제작비에도 못 미쳤다. 마블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의 <헐크>는 테스트 주행인 셈이다. 우리는 그 영화를 통해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지를 확실히 파악했다.” <헐크>에 비해 원작 코믹북과 TV시리즈에 가깝다는 <인크레더블 헐크>는 한결 화끈하고 빠르며, 덜 자기반영적일 것으로 보인다. 루이스 리테리어(<트랜스포터>) 감독에 따르면, <헐크>에서 에릭 바나를 보기 위해 10분, 헐크를 보기 위해 40분을 기다려야 했다면, 이번 영화는 3분 만에 헐크가 등장한다. 권력을 얻기 위해 일부러 유전자 조작을 가한 에밀 브론스키 장군이 변신한 어보미네이션과 헐크의 결투가 벌어지고, 배너 박사의 뜨거운 연애도 진행된다. <헐크>와 같은 제작사에서 태어난 <아이언맨>에 열광했던 관객이라면, 토니 스타크로 카메오 출연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모습도 놓칠 수 없다. 공개된 예고편에 대해서는 원작의 팬들까지 웬만큼 만족감을 표한 상태다.

현재로서 녹색괴물의 가장 무서운 적수는 올해 봄부터 흘러나온 에드워드 노튼과 제작사의 불화설 정도다. 일찍이 <엑스맨> <엘렉트라> 등 마블 원작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던 젠 펜이 일년 동안 세번에 걸쳐 완성한 시나리오가 촬영시작을 3개월 앞둔 시점까지 부족하다고 느꼈던 제작사와 감독은 주연배우에게 시나리오 수정을 부탁하는 파격을 감행한다. 그는 한달 만에 새로운 버전을 내놓았고, 마블의 제작이사 케빈 페이지는 “에드워드는 연기자가 아니라 시나리오작가로 따로 캐스팅하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고 만족을 표했다. 문제는 완성된 버전이 불만족스러울 경우 일체의 프로모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일찌감치 밝혔던 노튼은 좀더 길고 디테일한 편집본을, 마블은 좀더 빠르고 날렵한 편집본을 원했던 것이다. 감독까지 노튼의 편에 섰지만, 승리는 마블한테 돌아갔다. 실제로 <인크레더블 헐크>의 주연배우 에드워드 노튼은 영화의 홍보가 한창인 지금 함구 중이다. 지난 4월 <토털필름>은 제작자이자 주연배우이며 시나리오작가로 마블의 운명을 짊어진 노튼을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똑똑하고 섹시하고 샤프한 100인의 명단’ 중 첫머리에 올렸고, 덕분에 노튼과의 긴 인터뷰에 성공했지만, 여기서 노튼은 철저하게 시나리오작가의 위치를 지켰다. <일루셔니스트> <페인티드 베일>에서 노튼과 함께했던 프로듀서 밥 야리는 “에드워드를 상대한다는 건 배우, 프로듀서, 감독, 그리고 영화에 열성적이고 모든 것을 신경쓰는 누군가를 한꺼번에 대면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묘한 코멘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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