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밤을 향해 쏴라. <고고 70>은 70년대 ‘닐바나’(Nirvana)라는 ‘고고클럽’을 중심으로 화려한 밤문화를 이끌었던 록밴드 ‘데블스’의 이야기다. 데블스는 보컬과 기타를 맡았던 리더 김명길이 이끌던 당시 실제 밴드 이름이다. 더불어 신민아가 연기하는 ‘미미’가 속한 ‘와일드 캐츠’ 역시 여성 댄스 그룹으로 시민회관과 닐바나 등에서 고고춤을 보급한 실제 주역이기도 하다. 기지촌 클럽을 전전하던 보컬 상규(조승우)는 기타리스트 만식(차승우)과 6인조 그룹 데블스를 결성,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 출전한다. 화려한 무대매너로 눈길을 끈 이들은 한 팝칼럼니스트의 눈에도 띄어 고고클럽 ‘닐바나’에서 활동을 시작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함께 상경한 미미 역시 ‘미미와 와일드 캣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당대 춤과 패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점차 밴드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상규로 인해 멤버들간에 불화가 생기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재로 멤버가 사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게다가 긴급조치 9호로 무대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하릴없이 보내던 상규는 멤버들을 규합해 ‘데블스 리사이틀’로 다시 한번 열정의 무대를 꿈꾼다.
음악평론가 신현준이 쓴 <한국 팝의 고고학>에 따르면 데블스는 ‘록그룹’이 아니라 흑인음악에 충실했던 ‘솔그룹’이었다. 그것 역시 참 흥미로운 대목이다. 더불어 “그룹사운드라는 단어에 충실하게 누구 한명이 설쳐대는 음악이 아니라 멤버가 똘똘 뭉쳐서 응집된 사운드를 들려준 존재로 유명”했던 그룹이다. 물론 흑인음악을 연주한 그룹답게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이리저리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고 각종 묘기도 보여주는 등 쇼맨십이 풍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말하자면 데뷔작 <바이 준>(1998)은 물론 이후 <후아유>(2002)와 <사생결단>(2006)을 통해 탁월한 음악적 감각을 보여주기도 했던, 학창 시절 실제 밴드를 조직해 활동할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은 최호 감독이 오랜 조사를 거친 끝에 그 70년대의 기억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는 실존 밴드 데블스를 끌어오되 멤버 이름들을 바꾸고 구체적인 사건들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면서 <고고 70>을 완성했다. 지난 5월28일 모든 촬영을 끝내고 현재 후반작업 중인 <고고 70>은 우리가 익히 알지 못했던 왕년의 신나는 음악적 활력을 재현함은 물론,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활활 타올랐던 당시 화려한 밤문화의 겉과 속을 그리고 있다. 여기 전주에서 서울로 이어진 그 신나는 촬영현장의 열기를 담아본다.
“망했다. 왜 하필 오늘 취재 오신 거죠?”
_4월24일 구치소 촬영신
실제 닐바나는 1971년에 생겼다. 그러니까 그때는 야간통행금지가 있고 장발단속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암울한 시대였다. 물론 그럴수록 청춘의 열기는 더 활활 타올랐지만. 하여간 지난 4월24일 전주 촬영 분량은 장발단속에 걸린 데블스 멤버들이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 구치소에 갇히는 우울한 날의 기록이다. 전북경찰청 기동수사대 내 안 쓰는 구치소를 빌려 촬영된 이 장면에서 조승우와 차승우는 실제로 머리카락이 잘린다. 구치소의 철창을 보고 있자니 실제 데블스의 2집 앨범이 떠오른다. 철창에 갇혀 있는 듯한 멤버들 사진으로 인해 일명 ‘철창 음반’이라 불린 그 앨범 말이다. 당초에는 머리카락 자르는 시늉만 할 생각이었지만 스크린에서 그들의 잘려나가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보게 된 것이다. 취재를 위해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두 승우는 한목소리로 말한다. “망했다. 왜 하필 오늘!(취재를 오신 거죠?)”
구치소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동원된 인원은 총 182명, 여기저기 잘린 머리카락들이 널브러져 있고 압수된 기타가 잔뜩 쌓여 있는 우울한 구치소 풍경이라지만 고고족들이 차려입은 형형색색의 옷들은 오히려 유쾌하다. 무채색의 구치소 내부에서 빛나는 그들의 의상은 그 자체로 전복적이다. 또한 하나둘 끌려오는 사람들은 실제 데블스와 더불어 닐바나에서 활동했던 키브러더스, 템페스트, 피닉스 멤버들이다.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채 끌려온 피닉스의 보컬은 바로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아들이자 신대철의 동생이며 신석철의 형인 신윤철이다. 또한 방준석 음악감독은 한대수로 모습을 비추고(그런데 이 장면은 변동이 생겨 결국 빠지게 됐다), 밴드 멤버의 사망으로 인해 새로이 밴드에 들어와 트럼펫을 불게 되는 이는 바로 배우 임하룡의 아들 임영식이다. 아마도 완성된 영화를 본다면 그렇게 실제 한국 음악계의 몇몇 인물들이 깜짝 등장하는 장면에서 몇번 ‘뒤집어’질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실제 사실에 바탕을 둔 영화 속 이모저모에 대해 1960과 1970 두편으로 나뉘어 나온 저서 <한국 팝의 고고학>을 뒤적여본다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전혀 고루하지 않게 그 시절 흥미로운 얘기에 흠뻑 빠져들게 될 테다.
이날 장면은 김병서 촬영감독의 카메라와 여경보 기사의 스테디캠이 구치소 내부 풍경을 훑는 것은 물론, 먼저 와서 잡혀 있던 상규가 뒤에 잡혀 들어온 또 다른 밴드 멤버 만식과 막내 준엽을 쳐다보는 장면이다. 상규 옆에서 사람 좋은 얼굴로 만식과 준엽을 쳐다보는 이는 바로 데블스의 드러머 ‘동근’으로, 과거 ‘3호선 버터플라이’에 몸담았고 현재는 ‘문샤이너스’에서 드럼을 맡고 있는 손경호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 멤버 이름이 모두 최호 감독이 과거 몸담았던 밴드 멤버들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1982년인가 고등학교 때 밴드를 했다. ‘악장가사’라는 이름의 밴드였는데 성동구에 있는 고등학교 밴드 중에서는 꽤 실력있는 팀이었다. (웃음) 나는 드럼을 맡았는데 영화 속 데블스 멤버 이름들을 모두 그때 그 친구들 이름에서 가져왔다”는 게 최호 감독의 얘기다.
여기 새로운 인물들을 또 소개하자면, 만식을 연기하는 차승우와 준엽 역의 홍광호 역시 눈여겨볼 배우들이다. 1997년 ‘노브레인’을 결성해 활동했던 차승우는 현재 ‘문샤이너스’의 보컬 겸 메인 기타로도 활동 중이다. 올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도 오를 그는 <고고 70>을 통해 배우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자신이 빠진 뒤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2006)에 출연했던 노브레인과는 비교하기가 좀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는 <고고 70>에서 주인공에 가깝다. 홍광호는 또 어떤가. 뮤지컬 <명성황후> <미스 사이공> <스위니 토드> 등에서 맹활약한 그는 업계의 알 만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현재 뮤지컬계의 가장 뜨거운 블루칩이다. 그 역시 <고고 70>이 영화배우로서는 데뷔작이다. 그런 화려한 커리어가 무색하게 그들은 이날 머리카락이 잘리고야 말았다. 막내라서 사랑을 독차지하는 듯 홍광호는 연기를 할 때마다 이곳저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급기야 오만상을 찡그리며 머리카락이 잘리는 그를 향해 스탭 누군가가 소리친다. “야 너 머리 잘릴 때 표정이 완전 죄민수야 죄민수.”
줄리아나에 왕년의 닐바나를 재현하다
_5월3일 고고클럽 촬영신
5월3일에는 고고클럽 촬영이 있었다. 엘루이호텔 지하 1층에 자리한 줄리아나가 영업을 중단한 지 어언 1년, 미술팀의 갖은 노력 끝에 그곳은 이제 <고고 70>의 핵심 무대 닐바나로 변모해 있었다. 무대도 새로 만들고 모든 것을 그때 그 시절 닐바나로 꾸몄다. <한국 팝의 고고학>에 따르면 당시 그룹사운드를 위해 태어난 새로운 음악 공간이 바로 ‘고고클럽’이다. 회현동 오리엔탈호텔에 자리해 있던 닐바나는 1970년대 멋쟁이 젊은이들이 춤을 추던 나이트클럽이다. 지금의 나이트클럽과 비교하자면 기본적으로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생음악이 연주되는 댄스클럽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고고클럽은 12시가 되면 문을 걸어 잠그고 4시까지 논스톱 고고 파티를 벌였다. 싫건 좋건 4시까지는 밖에 나가지 못하니 음악에 대한 평가일랑 접어두고 일단 그 음악에 몸을 내맡기는 게 중요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종의 불법영업이지만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바꾸기 힘든 은밀한 해방구였다. 한때 화려한 명성을 자랑했던 이곳 줄리아나가 그렇게 왕년의 닐바나로 다시 변한 것이다.
역시 고고클럽 촬영의 핵심은 데블스의 공연과 미미와 와일드 캐츠의 흥겨운 무대다. <그리운 건 너> <너만 알고 있어> 등 데블스는 당대 가장 개성 넘치는 밴드였다. 어쩌면 최호 감독이 그들에게 ‘꽂힌’ 것도 주류 록음악과는 조금 차별화된 솔음악을 추구한 그들의 개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 데블스의 리더 김명길은 가수 이은하의 <아리송해> 등을 편곡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변칙적이기까지 한 독특한 톤과 리듬으로 이은하를 당대 최고로 조율했던 솜씨는 영화 속에도 담긴다. 신민아는 영화에서 ‘멀리 기적이 우네’라는 한마디로 모두가 어깨를 들썩일 만한, 이은하의 <밤차>를 부르는데 이은하의 일명 ‘찌르기춤’ 역시 신민아의 몫이다. 당시 그 춤은 ‘디스코’ 문화 그 자체였다. 물론 그 뒤에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전지현의 ‘테크노 댄스’를 안무하며 한때 최고의 광고안무가로 이름을 날렸던 ‘더 댄스’의 곽용근 원장이 신민아의 율동을 지휘하고 있는 것. 촬영이 준비되는 내내 신민아와 그는 계속 동작을 맞췄다. 더불어 고고클럽을 가득 메운 엑스트라들을 향한 연기 지도도 잊지 않는다. “안무를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추시면 안 됩니다. 뭔가 새로운 걸 따라한다는 느낌이 중요해요. 진짜 세게 팍팍 추셔야 해요. 신나 죽겠다는 느낌 알죠?”
카메라 10대가 돌아가는 이 화려한 현장(다른 날 12대를 돌린 적도 있다)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방준석 음악감독이다. 마이크 체크부터 공연 지도, 무대 뒤에 숨어 있는 녹음장비들 점검까지 그는 이전에 참여했던 그 어떤 영화들보다 더한 강도로 <고고 70> 현장에 임하고 있다. “시대적으로 맞는 악기들부터 음향장비, 마이크, 심지어 기타선이나 케이블까지도 신경 썼다”는 그는 “모든 공연신은 요즘 라이브 공연처럼 녹음됐지만 당시에는 요즘 같은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이크들은 모두 숨겨져서 세팅됐고 모니터 시스템(본인들의 연주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은 아예 카메라에 안 보이게 무대 위에 정교하게 설치했다”고 말한다. 더불어 모든 공연신에 ‘프로툴’ 기반의(음악에서 중요한 MIDI 작업, 녹음작업, 믹싱, 마스터링, 그 모든 것을 한곳에서 할 수 있게 디자인해놓은 멀티태스크 음악프로그램) 녹음장비가 투입된 건 <고고 70>이 처음일 것 같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물론 촬영이 들어가기 전부터 그의 작업은 시작됐다. 최호 감독과 함께 ‘진짜 쏘울 밴드를 만들자’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 촬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즈음 이종호 PD 이하 몇몇 스탭들은 자연스레 춤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현장을 지켜보는 누구나 자연스레 몸을 들썩이게 될 정도로 무대는 화려하고 활력이 넘친다. 카메라 안의 사람이나 바깥의 사람이나 계속 몸을 흔들게 된다. ‘공연 실황 느낌을 주고 싶다’는 게 바로 최호 감독의 얘기고 쉼없이 돌아가는 10대의 카메라 역시 오직 그 목표를 향해 달린다. 그리고 학생은 물론이고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고 일을 마치고 온 공장노동자들까지 플로어를 가득 채운 젊은이들의 구성 또한 다양하다. 미미처럼 손목에 리본을 낀 채 음악에 몸을 맡긴 그들의 표정에서 너와 나의 구분이라든가 시대의 우울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그들은 귀로 듣고 몸으로 반응하면서 밤을 잊고 즐긴다. 경찰이 들이닥치면 밴드와 함께 잡혀갈 수밖에 없는 그들은 음악으로 하나된 공동운명체인 것. 그때의 밤문화는 그랬다. 시대는 한없이 우울했지만 음악과 함께 플로어를 달구던 그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고고 70>은 그렇게 지금의 우리를 70년대의 반짝반짝했던 밤문화 속으로 ‘고고’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