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버> Shiver
이시드로 오르티즈/ 스페인/ 2007년/91분/월드 판타스틱시네마
스페인 호러물에서 아이들은 자주 어둠 속을 방황한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아이들(<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이 그랬듯, 이들에게는 찬란한 햇빛보다 서늘한 그림자가 더 친숙한 듯하다. <쉬버>의 등장인물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인 10대 소년 산티는 아예 햇볕을 오래 쬐면 온몸에 반점이 생기고 고통을 느끼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다. 그는 굳이 몸을 숨겨 태양을 피하지 않아도 될 산속 시골 마을로 전학을 간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에게 어둠은 안식처가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다. 마을의 숲에서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산티는 점점 더 가깝게 다가오는 위험에 두려움을 느낀다.
<쉬버>는 숲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의 관습을 꼼꼼히 차용한다. 카메라를 들고 숲 속을 배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블레어 윗치>가, ‘보이지 않는 살인자’란 설정에서는 <프레데터>가 겹쳐 보인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마지막까지 이야기와 소재 면에서는 눈에 띄는 창의적 시도가 엿보이지 않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쉬버>는 관습의 장점을 살리면서 예측 불가능한 위험 요소를 곳곳에 심어놓아 이야기의 진부함을 만회한다. 대상을 바짝 쫓는 <블레어 윗치>의 캠코더 촬영 기법은 등장인물과 관객의 거리를 좁히고, 오직 청각으로만 추측할 수 있는 공포의 주체는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발한다. <카날 플러스>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며 TV 연출자로 이름을 알린 이시드로 오르티즈 감독은 영화의 스타일이나 공포를 조성하는 장치 또한 호러영화에서 이야기만큼 중요한 요소임을 알려준다. 배우 주니오 발베르데의 창백한 외모는 병약하고 예민한 주인공 산티에 안성맞춤이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파노라마 부문 상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