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선>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를 통해 액션영화 팬들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긴 추조룡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대중에게는 <매트릭스> 2, 3편에서 선글라스를 낀 보디가드 ‘세라프’로 익숙하지만, 그는 12살 때부터 스턴트맨 생활을 하며 대만과 홍콩의 무수한 액션영화에 출연하면서 잔뼈가 굵은 무술 스타 가운데 한명이다. 극악무도한 악역 연기가 많았던 탓에 인터뷰 전 살짝 긴장을 했지만, 추조룡은 상대방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와 매너로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좋은 배우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늘 최선을 다해야 하며,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도리어 인터뷰를 하게 되어 감사한다는 특별한 인사말을 남겼다. 3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지면 관계상 모두 실을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형제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유년 시절에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 같은데 성장 환경이 어떠했나.
=열세명의 형제가 있다. 나는 그 가운데 여덟 번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집안이 무척 가난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 직업을 가져야 했는데, 처음 일한 때가 5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불상을 조각하는 곳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9살 때는 집 근처에 있는 제과점에 들어가 빵 만드는 것을 배웠다. 일을 하면서 몸을 단련하는 데 열심이었기 때문에 무척 건강했고 자립심도 강했던 것 같다. 그렇게 지내다가 12살 때 스턴트 일을 하면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에 대한 회한은 없었나?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면 가난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얼마든지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다보면 타락할 수도 있다.
=그 당시 나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환경 탓인지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는데, 나쁜 길로 들어선 사람도 보고 마약에 빠져 인생을 망친 사람도 많이 보고 느낀 것이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을 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열심히 살았다.
-12살 때 처음 영화 스턴트 일을 시작했는데 주로 어떤 역할을 했었나? 또 그 나이로 위험한 일을 하는 데 제약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아동 학대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주로 여자아이 대역을 했다. 그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와이어를 조작하는 일을 하거나 위험한 장면에서 필요한 매트를 깔아주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스턴트 일을 하는 데 나이가 지장을 준 것은 없다. 나는 그 일이 너무 좋았고, 다른 일에 비해서 보수도 많고 자유로운 시간이 많이 주어졌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특별히 일을 못하게 하거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에 불편을 느낀 적은 없었다.
-단역이나 조연 시절을 거치지 않고 16살 때 곧바로 영화주인공으로 연기를 했다. 1986년에 나온 <적력반탄>(全力反彈)이란 영화인데 태권도가 소재였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이 영화에서 태권도가 선택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맞다. 태권도를 소재를 했기 때문에 영화 촬영을 위해서 태권도를 배우기도 했다. 주연을 하게 된 것은 운이 크게 작용했다. 스턴트 일을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었는데, 그때 주변 평판이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대만영화계는 오디션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대개의 경우 프로듀서나 감독이 추천하거나 마음에 들어하는 배우를 우선적으로 기용했기 때문에 평소 성실하게 일했던 것이 행운을 준 것 같다. 태권도가 소재가 된 것은 그 당시 대만 젊은이들에게 굉장히 인기있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또 젊은이들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지도 담겨져 있는 영화였다.
-<적력반탄>을 찍고 난 뒤 군복무를 하게 되었는데, 잘나갈 수도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불만 이 없었나? 배우로서 큰 기회가 왔던 때인데 어떻게 보면 치명적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한국의 경우 군면제를 받기 위해서 여러 편법을 동원하던 연예인들이 들통이 나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대만도 군복무가 의무적이다. 갑작스럽게 입대했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그러나 군대를 가는 것에 단 한번도 불만을 가진 적이 없다. 내가 무사히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오랜 시간 보호를 해주었는데, 2년 정도의 시간을 국가에 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대만도 의사와 짜고 진단 결과를 속이며 군대를 가지 않은 연예인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이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있겠지만, 국가에서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에 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만도 한국처럼 군복무를 저버린 연예인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을 받을 것 같다. 덧붙이자면 나는 군대를 갔다 와야 진짜 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복무가 끝나고 다시 영화계로 돌아왔다. 배우로 활동하는 데 홍금보와의 인연은 매우 특별한 것 같다. 홍가반 소속으로 활동했었는데, 어린 시절 대만에서 스턴트 일을 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었는가.
=홍금보는 인생의 스승 같은 분이다. 나는 그분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 70, 80년대 홍금보는 홍가반이라는 전문 무술팀을 운영했는데, 그와의 만남이 액션배우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87년에 대만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홍콩으로 건너가 홍가반에 들어갔었다. 주로 남자주인공의 위험한 장면에서 대역으로 연기를 했다. 홍가반은 홍콩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무술팀이라 대만에서 스턴트를 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대만영화의 경우 스턴트를 하게 되면 액션의 표면적인 것만 배우고 단조로운 대역 연기에 그치곤 했는데, 홍콩영화는 차원이 달랐다. 홍가반에서 일을 하면서 액션 연기를 위한 다양한 기교들을 보고 배울 수가 있었다. 특히 액션의 합을 짜는 데 굉장히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었기 때문에, 더 깊이있는 액션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홍가반이 추구하는 액션의 특징이나 색깔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성룡을 중심으로 한 성가반과 비교하면 어떤가? 팀끼리의 경쟁도 심했을 것 같다.
=홍콩에서 잘나가는 무술팀이 3개 있었다. 홍가반 성가반, 그리고 원화평의 원가반이 그것이다. 팀마다 스타일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홍금보는 사실적인 액션을 중요하게 여겼고, 성가반은 과장되고 코믹한 무술을 추구했다. 원가반은 이론적인 것에 강했다. 이런 동작을 위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하는 자세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술팀끼리 경쟁은 당연하다. 하지만 경쟁자를 누르고 우리가 올라서야 한다기보다 선의의 경쟁 성격이 더 강한 것 같다.
-스턴트만 하는 것과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나 스스로에게 크게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스턴트만 중심으로 할 때는 연기적인 면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배우를 겸하면서 캐릭터 속에 진짜 액션이 묻어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관객이 영화의 액션장면을 보면서 “저건 가짜가 아니라 진짜다”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감정적인 부분까지 표현하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동안 ‘예성’이라는 예명으로 영화 활동을 했다. 홍콩 반환 뒤에는 그 이름을 버리고 본명인 ‘추조룡’으로 활동하는데,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홍가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예명을 가지고 있었다. 홍금보가 직접 지어주거나 혹은 프로듀서가 이름을 붙여주곤 했는데, ‘예성’이라는 이름은 홍금보가 지었다. 처음에는 내 이름이 그렇게 사용이 된 줄을 몰랐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포스터에 쓰여 있는 이름 ‘예성’을 보고 바뀐 것을 알았다.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사용하다 홍콩이 반환되면서 내 이름을 찾았다. 홍금보에게 “이제 홍콩도 반환이 되었는데 본명을 찾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했었고 그 뒤 ‘추조룡’으로 활동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홍콩 반환이 되어 홍금보가 미국으로 가면서 홍가반을 해체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홍가반 시절에 얻은 이름이기 때문에 해체가 된 상황이면 홍금보에게 큰 실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출연 작품들을 보면 악역의 비중이 높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악랄하게 연기를 해서 무섭기도 하다.
=많은 영화들에서 악역 연기를 했다. 악역을 원해서라기보다 홍콩에서 영화를 찍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역할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악역이라고 해서 특별히 가리진 않았다. 매번 주어진 악역 연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비슷한 캐릭터라고 할지라도 다르게 표현을 하려고 고심했다. 영화를 본 관객이 내 연기를 보고 “정말 나쁜 놈이다”라고 한다면 대단히 기쁜 일이다. 그만큼 내 연기도 인정을 받은 것이니 말이다.
-출연한 영화들은 크게 시대극과 현대극으로 나뉜다. 액션배우로서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가.
=영화 출연을 할 때 먼저 보는 것은 대본이며, 내가 여기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지를 생각한다. 그래서 현대극이나 시대극이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대본을 보고 연기하는 캐릭터가 어떤 액션을 필요로 하는지를 연구하고, 충분히 연습한 뒤에 촬영에 들어가고 있다. 내가 연기할 캐릭터와 액션 스타일이 중요하지, 영화적 배경으로 인해서 더 선호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홍콩과 대만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매트릭스> 2, 3편으로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배우로서 큰 전환기를 맞이했는데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
=할리우드영화들은 국제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많은 예산을 들여서 영화를 제작한다. 그래서 홍콩에서의 영화 작업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옷을 만드는 것으로 비유를 한다면, 한벌의 옷을 만들기 위해 한 사람이 죽어라 일을 하는 것이 홍콩과 대만영화라면, 할리우드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자본의 여유가 있기 때문에 최선의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일을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또 배우로서는 연기하는 여건이 훨씬 좋았다. 배우협회에서 여러 가지 보장을 해주었고, 개런티도 홍콩영화보다 많았다. 한편의 영화를 찍고 그 다음 작품을 위해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편한 것 같다.
-오랜 시간 액션배우로 활동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철학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액션배우로서 한계를 두지 않고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늘 생각하고 고민한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연기를 해왔기 때문에 액션배우라는 수식어를 단번에 뗄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그런 굴곡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배역에 도전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꼭 배역에 한정된 것은 아니고 홍콩과 대만영화를 하고 또 할리우드영화를 하는 것처럼 기회가 된다면 한국 영화인들과도 일을 해보고 싶다.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