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북으로 먼저 소개된 헬보이는 미국의 블루 칼라 남성의 이미지에서 따왔음을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뿔과 꼬리와 붉은 몸을 가진 블루 칼라라는 것. 크고 단단한 몸에 우락부락한 인상. 다혈질에 누가 기분 나쁜 소리라도 할라치면 바로 튀어나올 것 같은 주먹. 하루의 따분한 일과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서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고양이가 잘 있나 확인한 다음 소파에 벌러덩 앉아 풋볼 채널을 보며 한손에는 캔맥주를 들고 들이켠다. 같이 사는 여자친구가 왜 짜증을 내는지 귀찮기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걸리는, 몸은 크지만 여전히 유치한 모습. 전편에 이어 익숙한 헬보이의 모습이다. 반신반의하던 스튜디오를 설득해 2004년 <헬보이>를 영화화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원작을 델 토로식 판타지 세계로 매끄럽게 편입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극장과 DVD시장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이후 델 토로 괴물들로 가득한 좀더 견고해진 판타지 세계 <헬보이2: 골든 아미>(이하 <헬보이2>)로 돌아왔다.
<헬보이2>는 나치와 과학자들로 가득했던 원작의 배경에서 벗어나 브룸 교수가 어린 헬보이에게 베쓰모라 왕국의 황금빛 무적기계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회상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B.P.R.D(Bureau of Paranormal Research & Defence)의 사고뭉치인 헬보이와 그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톰 매닝 요원이 끊임없이 티격태격하고 있다. 한편, 뉴욕의 경매장에서는 오랜 세월 금지되었던 무적기계 군대를 다시 깨워 인간에 의해 사라져가는 베쓰모라 왕국을 재건하려는 누아다 왕자가 윙크라는 괴물과 함께 나타나 봉인을 푸는 열쇠를 가지고 사라진다. 경매장이 귀엽지만 끔찍한 날개 달린 괴물에 의해 쑥대밭이 되자 출동한 헬보이팀은 끝내 뉴욕의 한복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이에 톰 매닝 요원은 분노한다.
델 토로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판타지 세계가 열린다
상관에게 늘 미움받고 한번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는 못하지만, 가죽 바지에 두꺼운 코트, 거대한 탄총을 들고, 한손에는 시가를 태우며, 총을 들고 필름 누아르의 주인공마냥 한껏 폼을 잡는 헬보이의 모습은 적어도 화면 밖 관객에게는 웃음과 함께 환호를 받을 만하다. 전편에서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존재로, 부서의 두뇌로서 기능하던 양서인간 아베 사피엔은 이번에는 누아다 왕자의 쌍둥이인 누아라 공주와 가슴 떨리는 사랑에 빠지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판의 미로…>에서 판으로 분한 바 있는 더그 존스는 아베 사피엔뿐만 아니라 챔벌레인, 죽음의 천사 등 세역이나 맡아 열연했다. 헬보이와 그의 여자친구 리즈는 론 펄먼과 셀마 블레어가 전편 그대로 맡아 연기했다. 베쓰모르 왕국의 비운의 남매인 누아다와 누아라에는 영국 보이밴드 Bro로 활약하기도 한 루크 고스와 또 다른 영국 배우 아나 월튼이 맡았다.
전편이 뉴욕 지하철과 하수도 안이라는 음지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번에는 열린 공간에서 B.P.R.D가 활약하고 있다. 헬보이팀이 쑤시고 다니는 뉴욕 시내 및 브루클린 다리 밑 어느 정육점 뒷문으로 통하는 트롤 마켓 등은 헝가리에서, 죽음의 천사와 무적의 기계군대가 잠들어 있는 게이트 외관은 아일랜드에서 촬영되었다. 트롤 마켓과 언더그 위의 돌로 만들어진 사람 모양의 문지기는 델 토로의 귀엽고 기이한 괴물들과 함께 놓칠 수 없는 볼거리들이다.
델 토로의 판타지 세계는 동화책 속의 나라처럼 마냥 따뜻하지도, 마냥 무섭지도 않다. 죽음의 천사는 기괴하고 잔혹하지만, 동시에 우아하고 아름답다. 이 모든 양면성이야말로 일관성있게 정교하게 고안된 공간에서 델 토로 세계의 규칙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세계가 이토록 매력적인 것은, 인간 자신에 의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믹> 작업으로 한창 지쳐 있었던 델 토로 감독의 비밀스런 행복은 <헬보이>의 새로운 이슈를 사다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창작자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판타지가 매력적인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헬보이2>의 라운드 테이블은 지난 6월의 마지막 날 LA 베벌리힐스의 포시즌 호텔에서 이루어졌다. 코믹북의 원작자인 마이크 미그놀라, 론 펄먼, 셀마 블레어, 더그 존스, 루크 고스, 안나 월튼과 함께한 이 자리에서는 델 토로 감독에 대한 그들의 존경뿐만 아니라 깊은 애정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인터뷰장에 들어섰던 더그 존스는 유난히 작은 얼굴에 큼직한 눈동자와 가늘고 긴 팔다리를 가진 배우였다. 점심시간이 막 끝난 뒤에 시작된 인터뷰라 커피를 찾는 그가 졸립다는 시늉을 내는데, 그 긴 팔과 긴 몸이 흔들리는 모양이 영화 속 캐릭터들의 움직임 그대로였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 판타지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긴 손가락으로 커피잔을 우아하게 들며 홀짝거리며 인터뷰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