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여자 김기덕’이 만든 영화 개봉 전에 본다
2008-10-13
글 : 박성렬 (객원기자)
독립영화전용관 개관 1주년과 전문배급사 창립 기념 영화제 ‘DiEx’ 10월10일부터

영화제로 기념하는 독립영화계의 겹경사다.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 개관 1주년과 이달 문을 연 독립영화 배급사 ‘키노아이’의 창립 기념을 맞이하여 ‘인디스페이스+키노아이 디지털영화제’(줄여서 DiEx)가 10월10일부터 닷새간 열린다. 장소는 인디스페이스, 씨너스 이체 AT9, 대전아트시네마, 부산국도&가람예술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주관하고 영회진흥위원회가 후원하는 이 영화제는 90분에서 100분 내외 7편의 독립장편영화(<슬리핑 뷰티> <하늘을 걷는 소년> <가벼운 잠> <사람을 찾습니다> <도화지> <딱정벌레> <아메리칸 좀비>)를 상영한다. 출품작에서 여성감독의 강세가 눈에 띈다. <슬리핑 뷰티>로 ‘여자 김기덕’이라 불린 이한나, <도화지>의 김선희, <딱정벌레>를 만든 김은희. 여기에 한국계 미국 여성인 <아메리칸 좀비>의 그레이스 리를 포함하여 7편의 출품작 중 4편을 여성이 감독했다.

김선희가 감독한 <도화지>는 학교의 밴드 활동을 중심으로 90년대 여자 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의 청춘을 그린다. 신입생 한상원은 대학가요제를 꿈꾸며 밴드에 합류하여 우정을 쌓아나간다. 서로 다투기도 하고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더욱 가까워지는 상원과 친구들이다. “난 꿈이 있으니까" 하고 힘찬 기합으로 꿋꿋하게 버텨나가는 소녀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도화지>에 곁들여진 90년대의 흥겨운 가요는 덤이다.

함께 도망친 여자에게 남자는 “잘될 거야”라고 한다. 그러나 여자의 불룩 솟은 배는 여성의 숙명적 고통을 암시한다. 성의 숙명 앞에 피눈물 흘리는 세 여성들이 <슬리핑 뷰티>의 주인공이다.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여성감독이 메가폰을 쥔 점이 흥미롭다. 2007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상영되면서 이한나 감독에게 ‘여자 김기덕’이라는 별칭을 쥐어준 작품이다. 김은희 감독이 만든 <죽음의 방식>은 죽음을 맞이하는 네명의 인물을 관찰하는 삼부작이다. 2007년 제작된 <죽음의 방식I>(부제: 딱정벌레에 관한 연구)는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 자살에 이르는 과정과 그 최후를 묘사함으로써 보고서의 서문을 연다.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의사와 불륜에 빠진 여성이 택하는 ‘죽음의 방식’을 담아냈다.

좀비라는 이름만 듣고 액션과 스릴러를 떠올렸다면 오해다. 전기톱과 총이 나오지 않는 <아메리칸 좀비>는 그 설정과 표현방식이 제법 별난 영화다. 그레이스 리 감독은 좀비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가상사회를 상정하고 편견과 차별에 꿋꿋이 맞서나가는 좀비들의 모습을 가짜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사회의 인정받는 일원이 되고자 분투하는 좀비들의 모습에 여성이면서 한국계인 감독의 정체성이 아른거린다.

독립영화의 막다른 위치를 의식한 탓일까. 이 영화제에는 구석에 몰린 삶을 조망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사람을 찾습니다>는 탐욕스러운 비열한의 모습을 통해 ‘개 같은 인간’이라는 알레고리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스릴러물이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원영은 내연녀와 불륜을 저지르고 생활기초 수급자를 착취한다. 그 와중에 마을에서는 개가 한 마리씩 사라진다. 폭력과 욕설, 과격하고 직설적인 표현 속에서 인간의 윤리를 성찰한다. 4년 전 단편 <비탈거미>를 만든 이서 감독의 복귀작이다. 1999년. 16살 한 소녀가 수면제를 복용하고 깊은 잠에 빠진다. 이 소녀가장이 죽음에 이르는 사정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 <가벼운 잠>이다. 실화에 상상력을 가미한 기본 설정 덕으로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의 HD영화 지원 작품에 선정되었던 이 영화는 소녀가장의 굽이진 삶과 소녀의 실낱같은 희망을 교차시킨다. <하늘을 걷는 소년>은 <해변으로 가다>의 시나리오와 <해적, 디스코왕되다>의 각색에 참여했던 노진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93분 길이로 2007년 발표된 이 영화는 소녀가장과 소년가장의 모험과 자립을 그린다. TV드라마 <궁S>에 출연한 허이재가 ‘처녀’역을 맡고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선우선이 ‘마리아’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DiEx는 독립영화계의 실험과 의기투합이 눈에 띄는 영화제다. 상영작 중 <슬리핑 뷰티> <하늘을 걷는 소년> <가벼운 잠>은 키노아이가 배급을 맡아 10월23일부터 인디스페이스 및 아트플러스 시네마 네트워크의 영화관들을 통해 개봉된다. 또한 10월16일부터는 씨네21i를 통해 온라인 시사가 1주일간 있을 예정이며, 개봉일 극장 개봉과 동시에 온라인 다운로드 상영이 시작된다. 자세한 영화 소개와 일정은 http://indiespace.tistory.com/39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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