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볼트> 제 이름은 볼트, TV쇼의 주인공인 하얗고 튼튼한 강아지예요
2008-10-30
글 : 안현진 (LA 통신원)
디즈니의 새 3D애니메이션 <볼트> 미리 보기

2008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버뱅크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2008년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개봉을 준비하는 3D애니메이션 <볼트>와의 조금 이른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브에나비스타 대로와 <ABC> 방송사 건물 사이, <환타지아 2000>의 미키가 쓰고 있었던 거대한 고깔모자가 우뚝 솟아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희망과 용기, 교훈을 주는 디즈니적 캐릭터가 태어나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즐거운 공간이었다. 다음은 슈퍼히어로라고 믿었던 하얀 강아지 ‘볼트’가 들려주는 애니메이션 <볼트>에 대한 이야기다.


안녕하세요. 저는 볼트예요. 화이트 저먼 셰퍼드(White German Shepherd) 종이죠. 눈처럼 흰 짧은 털에 뾰족하고 긴 귀를 쫑긋 세우고 있고요, 온순한 눈과 두툼한 발바닥을 가진 튼실한 견공이랍니다. 어디서 저를 본 것 같다고요? 당연하죠. TV쇼 <볼트>와 이번 크리스마스에 개봉하는 3D 애니메이션 <볼트>의 주인공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제가 TV쇼에 출연할 때만 해도 사랑스러운 페니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저를 속여왔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상대를 제압하는 ‘슈퍼짖기’라든지 총이든 자동차든 녹여버리는 ‘레이저빔’, 오토바이도 따라잡는 ‘슈퍼스피드’ 같은 능력이 모두 진짜인 줄 알던 옛날이 그립기도 하죠. 하지만 하룻밤 사이 할리우드에서 뉴욕으로 옮겨지는 사고를 겪으면서 저는 많이 성장했답니다. 처음엔 미치광이 과학자 닥터 칼리코의 계략인 줄로만 알았죠. 그땐 정말이지 어떻게 하면 페니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만 생각했어요. 세상을 구하고 페니를 지켜야 하는 데 말이죠. 이제와 생각해보니 터무니없었죠. 모두가 TV쇼를 위한 설정이었고 저만 몰랐던 거예요. <트루먼쇼>의 동물버전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 모든 시련과 모험을 통해서 깨달은 게 있답니다.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진리 말이에요. 할리우드에서 저를 기다리는 페니 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했죠. 그 일이 영화로 만들어지다니, 꿈만 같아요. 이런 영광의 자리를 있게 한 고양이 미튼스와 저의 능력을 믿어준 햄스터 라이노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네요. 아참참, 하마터면 이 자리에 나온 이유를 잊을 뻔했어요. 저의 고향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영화와 TV쇼까지 출연한 몸이지만, 사실 제가 어떻게 태어났냐면요….

햄스터 라이노는 존 래세터의 아이디어였어요

출발은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의 상상력이었어요. 모두가 각자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개를 캐릭터로 만들었고 거기서 제가 선택된 거죠. 화이트 저먼 셰퍼드가 꽤 희귀한 종인 덕분에 모델견이 스튜디오에 도착하던 날 많은 사람들이 흥분했다고 전해져요. 60명이나 되는 애니메이터들의 관찰과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녀석이 기고만장했을지 모르지만, 스튜디오에 초대된 동물이 그뿐만은 아니었어요. 원래는 토끼로 그려질 뻔했다는 라이노의 모델 햄스터는 아크릴로 만들어진 공 안에서 하루 종일 굴러다녔지요. 그 아이디어는 존 래세터가 생각해냈어요. 실제로 래세터는 투명한 아크릴 볼 안에 친칠라를 넣어서 기른다고 하더군요. 슈퍼바이징 애니메이터 클레이 케이티스는, 아크릴 볼 때문에 라이노 작업이 힘들었다고 토로했어요. 라이노가 뚱뚱한 편이잖아요. 아크릴 볼에 배가 닿는지 엉덩이가 닿는지 신경써야 했대요. 그에 비하면 저야 식은 죽 먹기였겠죠. 비록 3초짜리 장면 하나를 만드는 데 평균 일주일이 걸렸고, 귀의 각도, 눈을 뜬 정도, 입 모양부터 발가락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정하느라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지만요. 주인공인데 그 정도쯤이야 에헴.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디즈니 스튜디오에는 ‘펫 갤러리’가 있어요. 스탭들이 기르는 애완동물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이죠. 단순히 벽면 하나를 장식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 사진을 전시하는 ‘베이비 갤러리’와 마주보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자리랍니다. 참고로 감독 바이런 하워드는 고양이를 4마리나 기르고요, 공동감독인 크리스 윌리엄스는 랩가수의 이름을 딴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른다고 하는데, 이름은 비밀인지 알려주지 않았어요. 말이 나왔으니 미튼스 이야기를 할게요. 처음엔 닥터 칼리코 수하의 악당 고양이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동물배우라는 걸 알게 됐지만, 미튼스를 처음 봤을 땐 한 패거리인 줄 알고 거의 잡아먹으려고 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미튼스가 저를 만난 건 행운이에요. 제 덕분에 굶주림도 해결했고, 동물보호소에서 탈출할 수도 있었거든요. 아 그래요, 저야말로 미튼스에게 배운 것이 많죠. 뛰고 짖을 줄만 알았는데, 한쪽 귀를 내린다든지 귀엽고 착한 표정을 만든다든지 꼬리를 쫓아 빙글빙글 돈다든지 하는 건 미튼스가 아니었다면 절대 몰랐을 필살기죠. 그뿐인가요. 막대기 놀이도 알려줬어요. 정말 중독성 있어요. 날아가는 것만 보면 쫓아가서 물어오고 싶다니까요. 이제 미튼스를 구출했던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 잠시 쉬어가자고요? 그래요, 좋아요. 저도 목이 좀 마르군요.

3D 애니메이션이라 액션신도 더욱 실감나요

동물보호소 사건을 이야기하기 전에 <볼트>가 3D 애니메이션이란 걸 자랑해야겠군요. 빨갛고 파란 셀로판 안경은 잊어주세요. 멋진 선글라스형 안경이 보급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빨강, 파랑입니까? 저의 데뷔작에서 선보일 3D는 이전 수준과 사뭇 달라요.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첫 장면은 TV쇼 <볼트>의 장면이죠.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었을까요. 카메라며 붐마이크 같은 걸 저는 단 한번도 눈치챈 적이 없어요. 그만큼 임무에 충실했다고 봐주세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달리던 그 장면에서도 제가 물고 달리던 폭탄이 가짜였다는 생각도 못했었죠. 그래요 그땐, 닥터 칼리코의 마수로부터 세상을 구하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저는 슈퍼도그니까, 아니, 였으니까요. 아무튼 그 장면은 정말 실감나요. 존 래세터는 두 감독에게 “방송국에서 보여주고 싶도록 만들라”고 주문했다죠. 검은 닌자들이 탄 오토바이 부대와 잠자리처럼 생긴 헬리콥터들의 대도시 추격전을 상상해봐요. 마이클 베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장면인 거죠. 그때의 하늘은 정말이지 손 대면 깨질 듯 파랗답니다. 크리스와 바이런은 영화 속에서 현실과 TV쇼의 차이를 두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인공적인 하늘을 만들었다고 해요. 애니메이션 속에서 현실과 허구를 나누기 위한 방법이었죠. 3D로 본다면 아마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울 거예요. 동물보호소 장면도 3D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에요. 저와 라이노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니 긴장감도 대단할 거예요. 영화를 보실 땐 유리 자동문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봐주세요. 라이노의 아크릴 볼을 물고 침을 뚝뚝 흘리는 덩치만 크고 쓸모없는 개의 입에 대한 묘사는 또 어때요. 너무 실감나서 구역질이 날 정도죠. 애니메이션이 구역질을 유발하기란 쉬운 게 아니잖아요. 이어지는 장면에서 동물보호소 직원이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릴 때와 자동차가 폭발하는 순간도 멋지죠. 검붉은 불꽃이 하늘로 오르는 건 꼭 실사영화 같다니까요.

혹시 눈치채셨나요? <볼트>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말이죠.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믿을 만한 이야기”를 최우선에 둔다는 존 래세터가 2006년 디즈니로 돌아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첫 작품이고, 4년에 걸쳐 발명해 특허받은 ‘레이 페인팅’ 기법이 사용된 최초의 애니메이션이기도 하죠. 레이 페인팅을 설명하기는 조금 까다로워요. 제작자 클라크 스펜서는 “디즈니의 유산이 21세기 기술로 재현됐다”고 말하지만, CG로 핸드드로잉을 표현하다니 조금은 아이러니하잖아요. 하지만 그게 <볼트>의 내세울 만한 장점이라는 데는 동의해요. 혹시 에드워드 호퍼라는 미국 화가를 아시나요? 1920년대부터 60년대까지 활동한 예술가죠. <빈방의 빛> <볕을 쬐는 사람들>이 그의 대표작이에요. <볼트>의 배경은 호퍼의 그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대요. 캐릭터와 전경이 입체감을 가지는 반면에 배경은 부드러운 붓의 터치를 그대로 살려냈죠. 레이 페인팅을 활용한 부분도 이 부분이에요. 현재 이 기술로 10가지가 넘는 브러시 패턴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볼트> 다음에 디즈니에서 준비하는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에도 사용될 거래요. 전체적인 배경처리가 에드워드 호퍼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조명은 <매케이브와 밀러 부인>(1971)의 촬영감독 빌모스 지그문트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 해요. 호퍼의 그림에서 ‘빛’이 기이한 콘트라스트를 던지는 것과 달리, <볼트>에서의 빛은 그보다는 잘게 나눠진답니다. 구석구석 뿌려지고 비쳐져 전체적으로 밝고 부드러운 인상을 줘요. 설마 애니메이션에 무슨 조명이냐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겠죠? 조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할 시간이군요. 조명은 빛을 비추고 거두는 정도의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흰 테이블 위에 빨간 사과가 있다고 생각해봐요. 조명팀에서 하는 작업은 빨간 사과의 그림자와 명암을 표현하는 일에서 끝나지 않아요. 테이블의 흰 면에 붉은 비침이 보이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입체감도 만들어지고요. <볼트>에서 음식들이 끝없이 나오는 뷔페장면이 있다고 말했나요? 정말이지 화려하면서도 실감나는 장면이 될 거라고 조명팀 스탭이 귀띔해줬어요.

안대 한 갈색 불독이 주인공이 될 뻔 했죠

저도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어요. <볼트>의 주인공이 처음에는 제가 아니었다는 거 말이에요. 심지어 제목도 <아메리칸 도그>였다는 것도 알아요. 구글에서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는 거니까 쉬쉬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메리칸 도그>는 <볼트>하고는 아주 다른 이야기였대요. 개가 주인공이고 미국 전역을 여행한다는 설정은 같았지만, 저처럼 하얗고 늠름한 견공은 아니었답니다. 한쪽 눈엔 안대를 한 땅딸한 갈색 불독이었죠. 초반에 공개됐던 스케치를 보면 담배도 피우고, 금발 여성과 대화도 나누는 것 같아요. 이런, 부끄러워라. 저는 페니 하나면 충분한 데 말이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었을 테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였을 거예요. 이런저런 의견의 불일치로 처음에 메가폰을 잡기로 했던 크리스 샌더스(<릴로 & 스티치>)는 결국 디즈니를 떠났고, 존 래세터는 크리스 윌리엄스, 바이런 하워드와 함께, 저 볼트가 세상과 만날 기회를 준 거죠. 제가 어린이와 어른 관객 모두에게 감동과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고요. 생각해보세요. 이제 슈퍼히어로 이야기는 너무 많아요. 새로운 이야기에 도전할 때라고요. 쇼 안에서의 초능력을 진짜라고 믿고 살았던 저와, 냉소적인 고양이, 그리고 TV 중독 햄스터의 만남이라니 재밌지 않나요? 슈퍼히어로물뿐만 아니라 리얼리티TV쇼에 대해서도 고심한 흔적이 보여요. 자화자찬이라고요? 뭐 좋아요. 이런 이야기는 극장에서 제 모습을 확인한 다음으로 미루자고요. 미튼스와 라이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요. 미튼스는 고양이를 기르는 감독들에게 자신을 그토록 꾀죄죄하게 그린 이유를 물어보려고 하는 것 같고, 라이노는 애니메이션의 목소리 녹음에 대해서 궁금증이 많은 것 같네요. 둘 다 캐릭터 사업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에요. 아크릴 볼 속에 들어 있는 햄스터 인형은 생각만 해도 귀여운데 말이죠. 물론, 귀가 쫑긋하고 발바닥이 두툼한 화이트 저먼 셰퍼드만큼 우아하거나 귀족적이진 않겠지만요.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