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영화계 구원투수, 악투만 날렸나
2008-10-28
글 : 이영진
강한섭 위원장 청문회가 돼버린 2008 영진위 국정감사 현장중계

“이렇게 두들겨 맞은 적은 없었다.”

2008년 국정감사를 지켜본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의 말이다. 10월17일 오전 현장시찰을 겸해 서울 강남의 허리우드 현상소에서 영화인들과 면담을 가진 뒤 여의도로 자리를 옮겨 오후 2시30분부터 시작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이날 국감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물등급위원회 3개 기관을 대상으로 했으나, 문방위 소속 위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영진위 강한섭 위원장에게 질의를 집중했다.

강한섭 영진위 위원장

이날 국정감사에서는 한국영화 위기 타개책을 갖고 있는가, 영진위가 진행해왔던 사업은 공정하고 투명한가 등과 같은 기본적인 질의는 물론이고 취임 이후 5개월 동안 강 위원장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 일일이 열거됐다. 국정감사 자리에서 피감기관 대표에게 충분한 해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강 위원장은 최소한의 의사조차 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평. 한 영화인은 “위원들의 질의에 상충되는 답변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그가 지녔다는 청사진이 실체가 있는 것인지 더 의심스러워졌다”고까지 말했다. 위기에 봉착한 한국영화의 유일한 구원투수임을 자부했던 강 위원장의 사실상 첫 번째 등판. 하지만 영진위 내부 직원들조차 한숨을 거듭 내쉬었던 2008년 영화진흥위원회 국정감사를 요약해 지상 중계한다.

울긋불긋, 다시 색깔론 등장하다

한선교: 지난 10년 좌파정권에서 우리 영상문화쪽이 얼마나 편향적으로 일을 해왔습니까. 인정하십니까? 저번에 업무보고 때 그런 점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속기록 가져올까요?

강한섭: 영화계 내부에서 그런….

한선교: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중략)… (4기) 위원들이 중요한데 좌파 성향의 전임 위원들이 바로 자기들과 똑같은 정서를 가진 사람들을 뽑아놨으니 이 위원회가 제대로 돌아갈 것인가가 첫 번째 걱정입니다. 제 말이 맞다고 생각하세요, 틀리다고 생각하세요?

강한섭: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4기 영진위 구성의 근거가 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선교: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은)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자기쪽 사람을 또 뽑아놓고 나가는 추천위원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 점은 인정하시죠?

강한섭: 인정합니다.

올해 국정감사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색깔론이 다시 등장했다. 색깔론은 맨 먼저 4기 영진위의 구성 과정부터 표적삼았다. 한나라당 한선교 위원은 4기 영진위 구성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에 “3기 영진위 위원 9인 중 5인이 참여했다”면서 이를 규정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은 “결단코 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 위원장은 4기 영진위가 “좌파 성향의 3기 영진위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은 받아들일 수 없으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은 문제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취임 뒤 강 위원장은 “4기 영진위 구성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는 민주주의의 탈을 썼지 실은 사이비 정파들의 약탈 민주주의였다”면서 “임원추천위원회 위원들이 심사 기준대로 심사를 안 했다”고 말한 적 있다.

한 위원 질의에 대한 강 위원장의 답변은 곧바로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반격을 받았다. 민주당 이종걸 위원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얼치기 진보주의자들이 이너서클을 만들어 자의적인 영화정책을 만들었고, 그들의 농단으로 인한 정책 실패가 한국영화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강 위원장의 주장을 언급하며, “이전 문화정책의 실패 원인을 그렇게 한 표현으로 할 수 있다면 당시 책임자인 장관이 매를 맞아야 할 것 같다. 이창동,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이너서클의 중심이냐”고 물었다. 이에 강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이창동, 김명곤 전 장관님의 작품을 존경한다.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다. (이너서클은) 이분들을 지칭한 것이 아니”며, “자신은 영화계를 이념으로 좌우하지 않는다”고 물러섰다. 민주당 장세환 위원은 “과거 영진위가 조성한 투자조합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는 등 2기, 3기 영진위를 무시하고 폄하하는 발언을 했는데 근거가 있느냐”고 캐물었다. 민주당 천정배 위원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그들만의 패거리를 영속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던 강 위원장은 실은 (이 시스템의) 수혜자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그들만의 패거리에 속하지 않았던 강 위원장이 이 제도를 통해서 (영진위에) 진입했다. (그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단체사업지원 뚜렷한 해명은 미흡

김을동: (영진위의 단체사업지원은) 국민들의 세금을 특정 이념 지향의 운동단체들에 지원하는 격이어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략)… 단체사업지원이 실제로는 이념적 조직들의 후원금으로 전용된 것 같은 의혹이 있습니다. …(중략)… 4기 영진위는 (과거) 단체사업지원의 실패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하고 있으며 어떤 개선 방안을 갖고 있습니까?

강한섭: 그동안 단체사업지원에 어느 정도 쏠림현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심사위원 구성, 심사과정, 지원 등에 있어 그런 쏠림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중략)… 노력하겠습니다.

색깔 시비는 이전 정부와 3기 영진위의 ‘정치적 성향’에서 점화돼 단체사업지원으로 옮겨 붙었다. 친박연대 김을동 위원은 “최근에 불거졌던 한-미 FTA 협상 반대 시위와 광우병 대책회의 촛불시위에 참가한 영화단체가 51개에 달한다”고 말하고 “이들 대부분이 영진위의 지원을 받는 단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도 보도자료에서 “한국독립영화협회는 대외적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영진위의 지원을 독식하며, 영화계의 새로운 문화권력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진위의 단체사업지원에 색깔 공세가 쏟아지자 민주당 의원들은 해묵은 이념 논쟁을 거두라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정작 강 위원장은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 10년 동안 3천억원이 넘는 돈을 썼지만” 한국영화산업이 결실을 거두지 못한 이유는 “(지원금이 영화 발전에 직결되지 않고) 단체들의 조직 강화 비용에 많이 흘러간 것 아니냐”는 성윤환 위원의 질의에 대해 강 위원장은 “영화계에서 그런 사실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식으로 에둘러 인정했다. 2007년 영진위 지원 총액 340억원 중 단체사업지원에 들어간 액수는 불과 7억4천여만원이며, 관련 인사가 3기 영진위 비상임 위원이었다는 이유로 특혜 시비가 불거진 한독협과 여성영화인모임 등에 지원된 액수가 실은 단체사업지원액의 “2∼3%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이다. 대신 강 위원장은 “(특혜 시비는) 결국 정상적인 단체 말고 외곽단체만 지원하라는 주장”이라는 민주당 최문순 위원의 질의에 대해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지나친 쏠림현상은 막아야겠다”고 반복해 답변했다.

지난 성과는 외면… 새로운 청사진은 부족

이종걸: 지금 (영화계) 상황은 어렵습니다. 비슷하게 표현하면 ‘얼치기 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로 인해 영화마저도 폭격맞고 있어요. …(중략)… (취임 뒤) 5개월이 지났는데 지금 청사진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고요. (2009년 영진위 예산) 나온 것만 봐도 여러 가지 평가가 있는데,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한섭: 네. 이미 8월 말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세 시간 반이나 했습니다. 그 이후 날로 악화되는 경제상황과 영화계의 투자율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업들을 구상하고 실시하고 있습니다. 10월27일 영화의 날을 기념해서 그날 오후에 본격적인 영화계 불황 타개책을 발표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공급 위주의 정책에 매몰되어 시장을 창출하지 못했다’며 과거 위원회의 정책 실패를 수차례 거론했던 강 위원장은 어떤 새로운 비책을 가진 것일까. 하지만 국정감사에서 강 위원장이 내놓은 것은 많지 않았다. 이미 3기 영진위 때부터 논의됐던 중대형 투자조합을 경색된 한국영화 투자활성화의 해법으로 강 위원장이 제시하자, 한나라당 최구식 위원은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기보다 막연한 낙관으로 들린다”고 질책했다. 과거 영진위의 투자조합 정책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던 강 위원장에 대한 힐난이기도 했다. 문방위 위원들은 강 위원장이 지난 영진위의 성과를 지나치게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은 “영진위를 영상문화중심도시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은 지난 정부에서 결정됐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재확인된 사안”이라며 “7월3일 임시회의에서 영진위 부산 이전은 아직 결론이 안 난 상태”라고 발언한 것은 무슨 의미냐고 따졌다.

시네마테크, 독립영화전용관, 미디어센터 등을 위해 이전 영진위가 전체 500억원 규모의 복합상영관 설립을 추진해왔고 이에 따라 올해 120억원 예산을 편성했지만 예산을 키우려는 강 위원장의 과욕 때문에 이마저도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 아니냐는 민주당 위원들의 지적도 잇따랐다. 강 위원장은 “3기 영진위가 구상한 사업이지만 파트너인 서울시와 공식적인 미팅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양해각서 체결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면서 “복합상영관이 한국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민주당 천정배 위원의 같은 질의에 대해서 강 위원장은 “(새로운) 복합상영관 사업은 건국 뒤에 정부가 한국영화계에 첫 번째 주는 귀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내년으로 이월된 예산을 포함해 사업 예산을 확보할 것”이라고 답했다.

유통구조 선진화, 공정한 시장경쟁을 강조했던 강 위원장이었지만 정작 이날 국정감사에서는 별다른 진전을 내놓지 못했다. 멀티플렉스의 무료초대권 남발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에 따라 추진키로 되어 있던 영진위의 공정경쟁환경특별조성위원회가 왜 아직도 구성되지 않았느냐는 문방위 위원들의 질의에 대해 강 위원장은 “이번주 월요일(10월13일)에 5인의 위원으로 구성됐고 결제를 끝냈다”고 두 차례 발언했다가,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의 같은 질의 때는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통계의 오류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민주당 천정배, 한나라당 이정현 위원의 지적에 대해서 강 위원장은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만 답했다. 영진위가 통합전산망 시스템을 관리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알고, 또 실시간 집계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면, 관련 법 개정 등 국회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외려 도움을 청했어야 하는 대목이다. 바깥에서 보기에 영진위의 올해 예산 집행률이 30% 미만이라는 사실(민주당 전병헌)과 영진위 내 소위원회가 제대로 결성되지 않아 합의제 기구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창조한국당 이용경) 등의 지적은 위기 상황에서 영진위가 영화계의 여론을 수렴해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대책을 추진하지 못한 것 아닌가라는 비판이었지만, 강 위원장은 “불황 때문”, “소위원회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라고만 답했다.

폭언 질문에 “내 별명은 벌컥 강한섭”

최문순: (KTB 영화다양성을 위한 투자조합 논란과 관련 해명자료 내려던 직원을 제지하고) 폭언하셨죠? 입에 담지 못할 폭언하셨다고 듣고 있습니다.

강한섭: 제 별명이 벌컥 강한섭입니다. 그래서 제가 책임지고 있는 공기관에서 정의롭지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잠시, 잠시, ‘뭐 XX’ 딱 한번 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해당 직원에 대한 욕설이 아니었습니다. 이 영진위를 바로잡아야겠다, 하는.

최문순: 하여튼 폭언하셨죠?

강한섭: 그것은 폭언이라기보다는 제 자신에 대해서, 제 능력에 대해서 한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최문순: 폭언을 자기한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부하 직원하고 이야기하다가! 사과하십시오! 사과하십시오!

강한섭: 그 폭언한 것에 대해서 정말 유감입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최문순: 앞으로 벌컥대지 마십시오!

영진위 직원들에 대한 강 위원장의 부적절한 언행도 국정감사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영진위 직원들에 대한 강 위원장의 폭언과 욕설이 내부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위원장은 “임신한 여직원이 왜 휴직계를 내느냐, 퇴직을 해야지. 다른 사람도 못 들어오게”라는 내용의 차별적 발언을 한 적 있느냐고 최 의원이 묻자, “그런 말을 절대 한 적 없다”며 “(사실로 확인되면) 책임지겠다. 사퇴뿐만 아니라 저의 모든 공직을 걸고 맹세하겠다”고 답변했다.

진성호 의원이 문화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제기했던 ‘KTB 영화다양성을 위한 투자조합 논란’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려고 했던 직원을 제지하고 폭언했느냐는 추가 질의에 관해서 강 위원장은 결국 사실을 인정하고 폭언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강 위원장의 처신이 영진위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계속됐다.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이 영진위 노동조합이 10월16일 발표한 ‘강한섭 위원장,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면 영진위도 필요없는가’라는 성명을 두고 “영진위를 제대로 장악하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강 위원장은 “장악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의 지적은 영화계 일각과 관련 부처에서 공감하는 내용이라고 성 의원이 지적하자 “아직 저는 영화계로부터 전반적인 신망을 받고 있으며 그런 우려는 아주 일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은 “영진위 직원들이 (위원장) 손아귀 안 동전이나 조약돌이냐”고 따져 묻고 “어떻게 (위원장이) 장악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설화진흥위원회, 말 대신 일하라"

안형환: 구설수에 많이 오르시네요. 앞서도 그 발언을 놓고 문제가 많았던 것 같은데. 이런 말씀 하신 적 있습니까. “한국영화산업은 대공황이다. 내년과 내후년에도 정상화되지 않으면 영화산업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

강한섭: 예. 사실입니다.

안형환: 만약에 우리 경제부총리가 ‘한국경제는 대공황이다. 정상화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붕괴될 우려가 있다’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강한섭/ 그것과 맥락이 좀 다릅니다. 한국영화 위기지만 충분히 살려낼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안형환: 이것 보세요. 언론은 의도대로 보도하지 않습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그런데 이런 발언이 외신에도 보도되고. 국내 언론에도 보도되고. 영화진흥위원회는 공공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위원장의 발언이 그 영역에 끼치는 심리적 파장이 상당히 큽니다. 대학교수 시절 평론에서는 과장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금 신분으로서는 사실 가려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번 국정감사는 3기 영진위의 사업 및 4기 영진위의 계획에 대한 꼼꼼한 평가보다는 강 위원장에 대한 청문회에 가까웠다. 이러한 안타까움은 따지고 보면 지난 5개월 동안 강 위원장이 제공한 측면이 적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아니라 설화(舌禍)진흥위원회냐”는 타박과 “정치인으로서는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 다음 선거 때 출마하라”는 비꼼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린 이는 비단 강 위원장 혼자였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말 대신 일하라”는 국회의 계속된 주문을 받은 강 위원장, 그가 항상 말하던 “새롭고 입체적인” 정책을 공개할 시점은 과연 언제일까. 확실한 건, “한국영화산업은 대공황이다”라는 극단적 비관과 “올해 말에 위기 탈출이 가능하다”는 극단적 낙관을 동시에 내놓았던 강 위원장에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관 주도 벗고 일정한 성과

99년 5월 영진위의 탄생에서 4기 강한섭 체제까지

관 주도의 영화진흥공사가 합의제 민간기구인 영화진흥위원회로 탈바꿈한 것은 1999년 5월28일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간섭 대신 지원하겠다”며 문화대통령을 자임했던 김대중 정부는 약속을 지켰고, 관련 법 개정을 통해 9인 체제의 영화진흥위원회가 출범했다.

1기 영진위의 경우 이른바 신구 갈등으로 인해 초반 위원장 교체, 위원 사퇴 등 적잖은 진통을 겪긴 했다. 그러나 투자조합을 중심으로 한 한국영화 제작 활성화 정책은 대기업 및 창투사 자본의 유입, 젊고 유능한 감독 및 제작자의 등장, 한국영화 관객 증대와 맞물리며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이충직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교수가 책임진 2기 영진위가 주목한 것은 작은 영화에 대한 배려였다. 한국영화산업이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커지는 동안 시장에서는 저예산·예술영화 등이 배제되기 시작했고, 결국 2기 영진위는 현장 영화인들의 요구에 발맞춰 각종 다양성 영화 지원책을 마련했다.

<한겨레> 기자 출신인 안정숙 위원장이 이끈 3기 영진위의 경우,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했다고 볼만 하다. 한국영화의 외형은 커졌지만 수익률은 개선되지 않자 해외시장에서 출구를 찾아야겠다는 영화계와의 교감으로부터 출발했다. 서울예대 교수로 일했던 강한섭 4기 영진위 위원장은 취임 전후로 “이전 영진위가 공급 위주의 단기적인 정책에 몰두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영화산업을 ‘대공황’ 상태로 만든 이들은 “책임져야 한다”는 비난도 했다. “자신은 입체적이고 중장기적인 정책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시비야 쉽게 가릴 수 없다 해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과거 영진위의 정책들이 ‘함께 가자’ 였다면, 적어도 강 위원장 체제의 4기 영진위가 지금까지 내놓은 비전들은 ‘나를 따르라’에 가깝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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