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사로잡을 현란한 CG도 화려한 액션도 없다. 스웨덴의 시린 겨울, 뱀파이어 소녀와 왕따 소년의 사랑을 그린 <렛미인>은 뱀파이어 영화도 아름다울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둔다. 공허한 침묵이 전하는 이 기이한 공포에 당신이 매혹당할 확률은 100%다. 뱀파이어 동화 <렛미인>의 책장을 넘겨본다.
‘할리우드가 망쳐버리기 전에 하루빨리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스웨덴영화 <렛미인>이 <클로버필드>를 연출한 매트 리브스 감독에 의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기로 결정됐을 때 <롤링 스톤>은 마치 리메이크가 순도 100%의 이 영화를 훼손시키기라도 한다는 듯, 어서 빨리 차가운 북구에서 온 아름다운 동화를 볼 것을 촉구했다. 뱀파이어 영화이자 성장영화, 멜로드라마, 그리고 블랙코미디까지 온갖 장르가 뒤섞인 장르의 집합체 <렛미인>은 그 어떤 장르에도 구애받지 않는 독특하고도 기이한 영화다. 왕따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판타스틱한 사랑 이야기. 아니 한편의 시, 한장의 이미지에 가까운 영화. 디즈니 영화에서라면 결코 볼 수 없을 순수한 감정의 세계가 불러들인 파고는 컸다.
<타임스>는 “올해 가장 독창적이고 잘 만든 영화”라며 <렛미인>을 향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버라이어티>는 “화려한 편집, 컴퓨터 효과 없이 공포를 전달한 영화”로 공포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이 작품을 열렬히 환호했다. 트위치필름(www.twitchfilm.net)은 “충분히 우상화될 만한 순간이 존재하는 영화”로 이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을 수식했으며, 로튼토마토(www.rottentomato.com)는 100점 만점이라는 이례적인 평가로 흠잡을 곳 없는 이 영화의 완벽을 보증해주었다. 트라이베카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으로 호명되며 로버트 드 니로가 건네주는 2만5천달러의 상금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렛미인>은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스웨덴예테보리영화제, 에든버러국제영화제 등 전세계 영화제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았다. 연출을 맡은 43살의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은 스웨덴의 기예르모 델 토로,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의 테리 길리엄에 비유되며 가능성있는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1년에 고작 20편의 영화가 생산되는 영화의 불모지, 영화 역사상 줄곧 잉마르 베리만으로 수식되던 스웨덴영화계는 이제 자국을 대표할 또 하나의 훌륭한 계보를 잇게 됐다.
왕따 소년, 뱀파이어 소녀를 만나다
독일, 영국 등의 유럽 12개국에 번역된 스웨덴 작가 욘 린퀴비스트의 베스트셀러 <Let the Right One In>을 각색한 <렛미인>(Let Me In)은 초대받지 않으면 결코 인간의 방에 들어올 수 없는 뱀파이어의 속성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이야기의 중심엔 왕따를 당하는 12살 소년 오스칼이 있다. 햇빛에 바스라질 것 같은 금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연약한 체구의 소년에게 저항은 불가능하다. 범죄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고 나이프를 들고 나무에 위협을 가하면서 상상 속 자신만의 복수를 키워나가는 게 전부인 소년. 게다가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의 무관심은 그를 힘겹게 한다. 변화는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소녀 이엘리를 통해서 온다. ‘12살쯤’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온통 미스터리투성이인 소녀는 외로운 오스칼에게 선뜻 손을 건넨다. 검은 머리, 또렷한 눈동자, 자신있는 태도. 자신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외양과 성격의 소녀를 통해 오스칼은 성장기의 설레는 사랑을 깨닫게 되고 겁쟁이에서 벗어날 것을 결심한다.
르네 클레망의 <금지된 장난>과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의 중간쯤 위치할 영화가 틀을 깨는 부분은 이엘리의 등장과 함께 마을에 피가 모두 사라진 채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는 순간부터다. 아이들이 순수한 사랑을 가꾸는 동안 어른들은 뱀파이어 장르영화의 일반적인 희생자와 하등 다를 바 없이 기습적인 습격과 피를 빨리는 끔찍한 모습으로 차례차례 죽임을 당한다. 이엘리가 사람의 피를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는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렛미인>을 장르의 컨벤션 안으로 끌어들이며, 이야기를 단순히 아이들의 세계에 가두지 않고 곧장 어른의 세계로 진입시킨다. 어둡고 음습한 뱀파이어 호러 장르의 습성은 이엘리에게 감염당한 마을 여자가 밝은 태양을 두려워하고, 뱀파이어를 만난 고양이의 털이 쭈뼛쭈뼛 서는 모습, 피가 아닌 사탕을 먹은 이엘리가 토한다거나 이엘리가 관을 연상시키는 욕조에서 수면을 취하는 장면, 오스칼의 피에 흥분하는 이엘리의 본능, 그리고 이엘리에게서 나는 악취를 통해 기정사실화된다.
“한 세기 공포영화 중 가장 훌륭한 영화”
알프레드슨 감독이 친구의 소개로 원작을 접한 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일이다. 음악이나 책에 관한 한 철저히 ‘사적인 취향’을 고수하던 그이지만 왕따 소년들의 어두운 세계와 성장기의 사랑 이야기를 뱀파이어에 버무린 원작은 그 자체로 충격이자 매혹이었다. 감독은 ‘100권가량의 소설과 대본을 읽었을 때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이 특수한 감정’에 오스칼과 같이 왕따를 당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자신의 분노에 찬 경험을 덧붙인다. 20년간 코미디를 만들어온 감독은 장르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도 곧 생애 첫 호러 작품을 영화화할 결심을 세운다. “난 뱀파이어의 신화에는 무지한 사람이다. 뱀파이어는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한다는 정도밖에 알지 못했다. 원작자인 린퀴비스트가 각색을 했는데, 장르에 관한 한 전적으로 그의 설명에 귀기울이고 그에게서 수업을 받듯 모든 것을 배웠다.”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장르에 대한 통달도 없이 그는 “한 세기 동안 나온 공포영화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공포영화 연출 데뷔전을 치른다.
그럼에도 영화에는 뱀파이어 하면 으레 등장하는 박쥐도, 뱀파이어에 대항해 그를 처단할 나무 말뚝도 마늘도 등장하지 않는다. “키포인트는 뱀파이어리즘의 디테일에 관한 그래픽적인 사항을 가능한 한 제거하는 것이었다.” 왕따, 폭행, 성적 암시 등 거칠고 잔혹하고 어두운 인간의 불완전성을 조명한 소설은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로 탈바꿈한다. 360페이지 분량의 소설 중 불필요한 플롯과 주제들을 과감히 삭제하고 감독은 성장기 아이들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만을 결이 고운 체에 걸러낸다. 이엘리에게 피를 공급하는 나이 든 남자 하칸이 원작에서 소아 성도착자로 그려졌다면, 영화에서는 불분명하지만 연인 혹은 아빠의 느낌을 주는 데서 그친다. 뱀파이어가 가진 섹슈얼한 이미지를 배제하고자 아이들 역시 성장을 하기 전인 12살 나이로 그렸으며, 원작에서 표현된 이엘리의 양성애적인 성향을 불분명하게 표현하여 둘의 감정을 육체적인 선까지 발전시키지 않는다. 그녀에게 흡혈은 쾌락이 아닌 단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문제일 뿐이다. 단 쓸데없는 감상과 향수에 치우치는 것만은 경계했다. 감정의 과잉으로 철지난 히트곡을 들을 때의 싸구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그는 가장 건조한 방법을 동원, 오히려 감정의 극대화를 꾀한다.
“만약 베르메르가 선혈이 낭자하는 호러를 만들었다면 이런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렛미인>이 보여주는 눈쌓인 북구의 풍광을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에 비유했다. <우유 따르는 여인>에서 창문으로 스며들던 은은한 빛과 주변의 소음은 모두 배제된 채 병에서 따라지는 액체의 형태와 소리만이 존재하는 세계. <렛미인>은 그림 속 고요와 침묵의 세계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음악도, 빠른 편집도 없다. 단 50컷의 CGI가 영화 속 첨단기술의 전부. 화려한 액션과 CGI를 통해 블록버스터로 진화한 뱀파이어 영화 <언더월드>가 발전시킨 기존의 흐름과는 사뭇 동떨어진 세계다.
<렛미인>은 1980년 대 초반, 스톡홀름의 북부 블랙버그를 배경으로 한다(실제 촬영지는 스웨덴 외곽지역, 루엘라였다). 어둠과 추위, 눈은 이곳의 주민들에게 떼어놓을 수 없는 생활이다. 알프레드슨은 옴짝하기도 힘든 추위에 파묻혀 바로 내 등 뒤의 아픔도 돌아보지 않는 스웨덴의 공기를 스크린에 불러 온다. “배경이 된 1982년의 스웨덴은 지금 생각하는 핫한 80년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당시 우리는 철의 장막 뒤에서 가려진 반쪽의 삶을 살고 있었다.” 평균 영하 30도의 혹한, 낮이 오로지 다섯 시간밖에 지속되지 않는 스웨덴의 겨울. 그곳의 겨울은 가혹하다. 아침엔 모두 한 가지 신문을 읽고, 저녁엔 낡은 스낵바에 앉아 정치인들이 해안에 좌초된 잠수함에 대해 말하는 무료한 곳.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려면 차라리 덴마크로 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엄격하게 얼어붙은 땅.
온갖 소음이 차단딘 스웨덴의 시린 겨울
네덜란드 출신의 촬영감독 호이트 반 호이테마는 회색 일광을 잡아 스프레이-라이트(물안개 같은 빛)로 만들어 촬영 바로 직전에 뿌림으로써 애잔하면서도 외로운 <렛미인>의 어둠을 창조해낸다. 아날로그 방식은 얼어붙은 카메라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정글짐, 얼음이 꽝꽝 얼어붙은 호수, 운동장… 세트로 제작된 평범한 공간은 호이트의 섬세한 손길에 의해 초자연적이고 마술적인 공간으로 진입한다. 공기를 불러오는 순간, 프레임과 프레임 바깥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르네상스 화가의 작품은 <렛미인>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중요한 지침서였다.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의 시스틴 성당에서 표현된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빛이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의 밑바탕이었다면, 독일 출신의 작가 한스 홀바인의 그림 <에드워드 4세의 어린 시절>은 그 속에 존재하는 기괴함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림 속 왕자는 프레임 안에 존재하지만 바깥을 바라본다. ‘이상하고도 소름끼치는’ 그림 속 왕자의 시선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프레임 바깥을 그려 담으려는 <렛미인>의 카메라와 정확히 닮아 있다.
프레임 바깥에서부터 전달되는 감흥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운드에도 여지없이 반영된다. 감독 스스로 “음소거를 하고 본다 해도 스토리 파악과 감정이입에는 무리가 없다”고 할 정도로 <렛미인>은 스웨덴의 것인 침묵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끌어온다. 마치 ‘두꺼운 털모자를 귀에 덮고 있는 것처럼’ 눈 내리는 스웨덴의 겨울은 적막하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침묵 속으로 알프레드슨은 공포의 자락을 끌어들인다. 소리가 차단된 공간 속 귀를 울리는 것은 창문을 두드리는 부드러운 빗소리, 욕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같은 희미한 소리뿐이다. 특정 소리에 집중해 그 주변은 침묵으로 프레임 아웃시키는 방식을 쓴다. 관객은 바짝 다가붙은 마이크를 통해 아이들의 심장 소리, 심지어 눈꺼풀을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영화 속 노래는 스웨덴의 록그룹 ‘록시트’의 멤버인 페르가 쓴 단 한곡뿐, 겨울의 소리를 재연한 영화 속 모든 음악은 ‘워터폰’이라는 아날로그 악기를 사용했으며, 모든 소리 역시 아날로그 방식에 기초, 직접 녹음한 리얼 사운드들이다. 뱀파이어의 공격신마저 개구리와 동물들, 배우가 내는 숨소리를 혼합하여 만든다. 심지어 이엘리가 인간의 목을 깨무는 소리는 배우가 소시지를 베어먹는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인공적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소리와 침묵을 통해 <렛미인>은 세상의 온갖 소음에 묻혀버린 미세한 소리를 끌어들인다.
이엘리는 오스칼의 또 다른 나
“들어가도 되니?” “들어가게 해줘.” 뱀파이어 이엘리는 오스칼의 집 문 앞에서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허락을 구한다. 인간의 초대 없이는 진입하지 못하는 차단의 공간. 오스칼이 머뭇거리는 순간, 규칙을 깬 이엘리의 온몸의 구멍에서는 피가 솟구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그녀의 불행 앞에서 오스칼은 선뜻 손을 내밀고 둘은 어른들이 보는 세상의 차이와는 다른 둘만의 새로운 관계, 인간을 성장시키고 자유롭게 해줄 사랑과 신뢰를 형성한다. 알프레드슨은 외형부터 너무도 대조적인 인간 소년 오스칼과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가 사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하나의 캐릭터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엘리는 오스칼의 거울이자 그가 원하고 되고 싶어하는 대상이다. 현실 세계에서 폭력에 대항하기엔 너무 나약한 오스칼이 감춰둔 분노의 상징이자 환상인 것이다." 영화는 오스칼이 이엘리가 떠난 빈방을 걸어다닐 때, 그리고 이엘리가 떠나는 장면에서 그녀가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암시한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스칼이 따뜻한 손으로 차가운 유리에 손자국을 내지만 결국 손자국이 사라지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렛미인>은 결국 우리가 익히 아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서의 뱀파이어가 아닌 살기 위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늑대와 같이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뱀파이어의 이야기다. 그리고 12살을 300년 산 뱀파이어보다 더 힘들게 12살의 한해를 겪어냈을 성장기를 가진 당신 마음속에 존재하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가 은유가 되는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 <렛미인>의 신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