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렛미인> 주연 배우,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 인터뷰
2008-11-18
글 : 이화정

“온몸이 얼어붙어 힘들었어요”

영하 30도를 견딘 주연 카레 헤데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배우 카레 헤데브란트(오스칼·사진 오른쪽)와 리나 레안데르손(이엘리·사진 왼쪽). 금발의 머리에 섬세하고 나약한 외모를 지닌 헤데브란트와 검은 머리에 또렷한 눈망울을 지닌 레안데르손은 빛과 어둠을 온몸으로 설명하듯 완벽하게 대조적이다. 전문 아역배우가 전무한 스웨덴의 현실. 알프레드슨 감독은 장장 1년의 공을 들여 마치 오스칼과 이엘리의 영혼을 가진 듯한 두 배우를 캐스팅했다. “실제 뱀파이어를 만난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도망가겠다”는 헤데브란트는 스웨덴의 각 학교를 돌며 진행된 오디션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가짜 피에 둘러싸인 뱀파이어 연기가 독특하고 신나는 경험이었다”는 레안데르손은 오디션 광고를 통해 캐스팅했다.

아름답다고밖에 설명이 안되는 두 배우의 감정선은 알프레드슨 감독의 연출에 의해서 조율된다. “아이들에게 절대 종이에 적힌 대본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직접 큰 소리로 대본을 읽어 아이들이 눈이 아닌 귀로 대본을 익힐 수 있게 했다. “아역배우들과 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네가 어른에게 실망했어’라는 설명은 불가능하다. ‘누가 먹을 것을 가져가서 너무너무 배가 고픈 거야’와 같은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해줘야 한다.” 실제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알프레드슨 감독의 이 방법은 촬영 도중 끊이지 않고 동원돼 사운드에디터들을 힘들게 했다. 두 배우가 표현해야 할 슬픔, 분노, 눈물, 웃음의 감정은 이렇게 단편적인 상황의 조각으로 이루어졌고, 감독은 마지막에 퍼즐을 맞추듯 조각들을 배열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했다.

그 사이 어린 배우들은 스웨덴의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다. 굳이 시리도록 파리해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한 아역배우들의 클로즈업 숏은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촬영은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야외에서 진행해야 했다. 추위는 어린 배우들에게 그 자체로 현실이었다. “온몸이 꽁꽁 얼어붙은 상태에서 연기를 하기란 정말 힘들었다”는 것이 신예 연기자 헤데브란트와 레안데르손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실한 작업이 헛되지 않게, 아이들은 때로 80살 노인의 눈을 보여줄 정도로 대단한 연기를 선사한다.


“섹슈얼한 뱀파이어에서 탈피하다”

원작의 내용을 경험으로 공유하는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

20년간 코미디 작품을 주조로 해온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은 TV와 영화를 오가며 각본, 연출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치밀한 계산과 짙은 감성이 어우러진 연출로 2008년 최고의 감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영화의 인기만큼 원래 원작을 영화화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들었다.
=소설을 읽고 영화화하겠다는 사람들이 린퀴비스트의 집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내가 40번째인가 그랬으니까. 우리가 첫 대면했을 때 욘은 이미 나를 알고 있었고 내가 만들었던 작품들을 맘에 들어했기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그래, 이 사람이면 적격일 듯싶다’고 생각한 것 같다.

-뱀파이어 장르를 만들면서 뱀파이어 장르에 관한 한 무지를 선언했다.
=<렛미인>은 처음 도전해본 호러 작품이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린퀴비스트에게 전화를 해 뱀파이어가 마늘이랑 빛을 싫어하는 게 맞냐고 물어볼 정도로 뱀파이어쪽에는 무지했다. 그러나 당신이 개에 관한 코미디를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전세계에 있는 개에 관한 코미디를 다 보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그보단 작품에 관해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일들을 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매달리기보다 비슷한 선례들을 찾는 것에 더 치중하는 것 같다.

-거칠고 잔혹하고 어두운 인간성을 그린 원작의 암흑에 한줄기 빛을 가미했다. 기존 뱀파이어 영화와도 확연히 달라지는 지점이다.
=전형적인 뱀파이어들은 어느 정도 성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렛미인>의 이야기를 전혀 섹슈얼한 면으로 보지 않았다. <렛미인>은 너무도 순수한 이야기다. 이엘리가 양성구유자라거나 함께 사는 남자 하칸 역시 원작의 소아 성애자라는 설정 역시 모두 빼버렸다. 그런 캐릭터가 호러적인 요소를 위해 작위적으로 사용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극중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내가 평범한 소녀가 아니어도 괜찮니?’ 하고 같은 질문을 2번이나 던진다. 성적인 행동이나 표현이 없더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인 1982년대는 당신 자신의 어린 시절과 겹쳐진다고 들었다.
=원작을 접했을 때 내가 매료된 이유는 이 책이 나의 기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험을 가졌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일이 벌어졌을 때 실제는 두려움을 느낄 수 없다. 두려움은 어두운 지하실에 간다거나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다. 어릴 적 난 형이 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때의 경험은 기괴한 공상으로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비극, 아이들의 왕따, 블랙유머까지 <렛미인>에는 이 모든 감정들이 조화롭게 들어차 있다.
=20년 전 스톡홀름에서 잔인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난 당시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 살아서 그날을 기억한다. 피로 뒤덮인 시체들이 있는 거리의 바로 옆 공원, 바로 옆 거리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강아지와 산책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일상은 흘러간다. 내가 만일 곧 사형선고를 받은 암환자를 그려야 한다면 비통해하는 여인 대신 아이의 생일날 왕관을 쓰고 있는 여인으로 가정할 것이다. 숨을 수도 울을 수도 없이 그녀는 계속 왕관을 쓰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한스 알프레드슨이 감독인 것을 비롯 형, 부인 등 가족 모두가 영화 패밀리다.
=내 영화학교는 아버지의 촬영현장이었다. 그곳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영화를 배웠다. 아버지가 영화 감독이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난 촬영장에서 놀았고 아버지로부터 영화 촬영에 관해 들어왔다. 집에서도 아버지는 항상 영화 업무가 큰 일이었다. 때문에 내 목표는 내 일을 가정에까지 가지고 오지 않는 것이었다. 촬영할 때는 일에만 집중하는 편이라 한번은 친구들과 현장을 방문한 아들에게 아들 친구들이 ‘너희 아버지는 무엇을 하시니?’하고 묻자, 아들이 ‘글쎄,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고 무언가 종이에 적힌 것을 읽어.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불평을 해’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스톡홀롬의 로열 드라마틱 시어터에서 열린 코미디 연극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것 전에는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를 했었다. 장르와 형식에 상관없이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전세계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었다.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제안도 끊이질 않는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나, 이미 많은 유럽 감독들이 할리우드 진출 제안에 흥분해 졸작을 만들고 스스로를 영화감옥에 가둔 전례가 있다. 영어로 말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은 매우 환상적일 것 같다. 많은 시나리오를 읽고,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긴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 난 느리고 스웨덴식인 내 방식대로 진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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