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바시르와 왈츠를> 실사라면 얼마나 지겨웠겠나
2008-11-21
정리 : 김도훈
아리 폴만 감독이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찍은 이유는

아리 폴만 감독에게 서면 인터뷰 질문지를 보냈으나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수입사쪽에 따르면 현재 아리 폴만은 이스라엘을 떠나 해외 영화제에 참석 중이라고 한다. 아쉬운 마음을 대신하며 아리 폴만 감독이 해외 영화잡지들과 나눈 대화를 발췌해서 싣는다.

<바시르와 왈츠를>에서 주인공 ‘나’로 등장한 아리 폴만 감독(왼쪽).

-왜 학살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 영화를 만든 것인가.
=이유를 설명하자면 길다. 5년 전 나는 마흔이 됐다. 그리고 이스라엘 예비군을 관두고 싶었다. 이스라엘 예비군은 모두 3년이며, 매년 2주에서 1달가량 복무해야만 한다. 내 직업은 영화감독이었으니 예비군에서는 ‘원자폭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 같은 멍청한 정부 광고의 각본이나 써야 했다. 지겨웠고 관두고 싶다고 했더니 그만둘 수는 있지만 군대 심리치료사를 만나야 한다더라. 그래서 20번을 만났다. 마지막 날이 되자 스스로에게 놀랐다. 나의 복무 기억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건 생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시르와 왈츠를>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들을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았나.
=사람들은 내적으로 억눌린 기억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게 마련이고, 또 어떤 기억이든 잊혀진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는 거다. 다만 그건 마치 자동차 사고로 단기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나는 잊어버린 것들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게 바로 이 영화다.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생각했나.
=그랬다. 실사로 촬영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한 중년 남자가 잊혀진 과거를 취재하고, 20여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아무런 영상없이 이야기로만 주절댄다면 얼마나 지겨운 영화가 나왔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반드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은 종종 초현실적이며 기억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 기억으로 향하는 여행을 재현할 수 있는 뛰어난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작업해야만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당신 친구들은 모두 직접 목소리 출연한 것인가.
=9명의 친구 중 7명이 실제로 참여했다. 녹음실에서 직접 인터뷰를 했고 그들의 외양과 목소리를 소스로 애니메이션화했다. 하지만 (영화의 서두에 나오는 악몽을 꾸는 친구) 보아즈와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친구) 카미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얼굴이 등장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배우들이 대신 스튜디오에서 연기한 것이다. 물론 증언은 모두 실제다.

-시사회에서 영화가 끝나자 누군가가 대단히 화를 내며 말하더라. “전형적인 이스라엘영화군. 사실상 그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거잖아. 하지만 내가 알기론 이스라엘군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어!”
=아니. 이스라엘군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그들은 사브라-샤틸라에서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그것은 공인된 팩트다. 이스라엘 정부와 군부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마도 학살이 진행되는 도중에 모든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걸 멈추고 많은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이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인들은 난민촌에 발도 딛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우리는 조명탄을 쏘라는 명령을 받았을 따름이다. 그건 명령이었다. 이유는 우리도 알 수 없었다. 알다시피 전쟁 중에 사병이 명령의 이유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급자들은 다만 너를 깨운 뒤 명령할 뿐이다. “하늘을 밝혀!”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밝혔다. 그러나 조명탄 아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내가 이스라엘 좌파들로부터 받은 단 하나의 비판은, 영화가 충분히 자아비판하지 않는다는 거다. 재미있게도, 내가 보수적인 유대인 사회로부터 들었던 비판은 <바시르와 왈츠를>이 이스라엘인을 나쁘게 묘사해서 유대인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거였다. 언제나 수많은 다른 종류의 이견이 존재한다.

-이런 방식의 다큐멘터리를 또 만들 생각인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절대로! (웃음) 어렵기 때문은 아니다.

-지나치게 오래 걸리기 때문인가.
=아니. 이미 <바시르와 왈츠를>로 끝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하라고? 내가 왜? 나는 뭔가 다른 걸 하고 싶다. 누군가가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큐멘터리로서 이런 방식은 복잡하고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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