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을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 백태가 낀 혀를 크게 내보이며, 중간중간 빠진 치아도 숨기지 않고 있는 힘껏 노래를 부른다. <로큰롤인생>는 평균 나이 80살의 로큰롤 코러스 밴드 ‘영 앳 하트 코러스’의 이야기다. 일견 소소해 보이지만 여기엔 잊기 힘든 감동과 가르침이 있다. 노인과 록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둘의 만남이 환상의 궁합으로 완성된다. 음악과, 삶, 죽음을 소재로 한 영화가 취해야 할 가장 바른 태도랄까. <로큰롤인생>는 2008년 미국은 물론 유럽의 관객을 울리고 웃겼고, 미국 4개관에서 상영을 시작해 121개관까지 극장을 넓혀갔다. 상업적 요소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 이 영화가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올해 미국 인디영화계의 최고 화제작 중 한편이자 놓칠 수 없는 감동 다큐멘터리 <로큰롤 인생>를 미리 살펴보았다. 22명의 로큰롤 주인공들은 무슨 노래를, 어떻게 부른 걸까.
영화의 감독인 스티븐 워커는 TV 다큐멘터리 출신 연출자다. <로큰롤인생> 역시 영국 <채널4>의 TV 버전이 먼저다. 스티븐 워커는 작업 파트너이자 영화의 프로듀서인 샐리 조지와 2006년 런던에서 “꽤 재미난 쇼”를 보러 갔다. 70살에서 90살 미국 노인들이 하는 로큰롤 콘서트. “기괴한 컨셉이라 생각”한 이 공연은 당시 유럽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 동영상 웹사이트 유튜브에서도 화제였다. 워커는 일단 “공연장이 꽉 차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꽉 채운 사람들이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그리고 수염 난 92살의 할머니 아이린 홀이 무대에 올라 더 클래시의 <Should I Stay or Should I Go>를 불렀을 때, 그는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여기 삶과 죽음에 대한 뮤지컬이 있군.”
90살 할아버지의 ‘Bitch’에 작은 웃음
이후 워커와 조지는 당시 프로그램 계약이 체결되어 있던 <채널4>에 기획을 가져가 제안했다. <채널4>는 흔쾌히 “Yes”라 말했고, 그렇게 완성된 프로그램은 “꽤 많은 주목을 받으며” 호평 속에 방영됐다. TV 프로그램 성공에 힘입어 워커는 영화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좀더 영화적인 오프닝, 영화적인 사운드를 위해” 편집을 한 뒤 LA영화제에 출품했다. 영화 버전은 TV 버전에 비해 감독 자신의 내레이션이 20% 정도 더 적다.
‘영 앳 하트 코러스’는 1982년 매사추세츠주 노스앰튼에서 결성된 노인 코러스 밴드다. 당시 두번의 세계전쟁을 모두 다 겪은 사람들이 주요 멤버였고 노스앰튼예술위원회 총감독인 밥 실먼이 꾸렸다. 처음엔 밴드 멤버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위주로 공연을 했다. 하지만 밥 실먼은 1984년 폴란드의 한 여성이 비틀스의 <Let It Be>를 부르는 걸 보았고 그 모습에 고무돼 선곡의 범위를 넓혔다. “그냥 감정적으로 이상하게 몰입됐다.” 최신 유행하는 노래부터 자신이 “빠져 있던 60년대 음악”, 그의 자식인 13, 16살 아이들 아이포드에 들어 있는 노래까지 그는 새로운 악보를 밴드에 내밀었다.
물론 처음엔 반대가 심했다. “마약 냄새가 난다”, “너무 두드린다”는 불평이 이어졌다. 하지만 회원들에게 ‘십장’이라 불리는 밥 실먼은 그들을 설득해 ‘전혀 새로운 록음악’을 연출해냈다. 회원들은 can이란 단어가 71번이나 등장하는 더 포인터 시스터스의 <Yes We Can Can>에 힘들어했지만 확실히 그렇게 완성된 ‘영 앳 하트 코러스’의 <Yes We Can Can>은 남다르다. 50년은 더 산 그들이 부르는 콜드플레이의 <Fix You>도 색다르다. 90살 할아버지가 소닉 유스의 <Schizophrenia>를 부르며 작게 오문 입으로 ‘Bitch’를 내뱉는 모습에선 작은 웃음이 난다. 밥 실먼은 코러스 노인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가져와 도전 거리를 던져주었고, 코러스 노인들은 그 노래에서 더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냈다. ‘영 앳 하트 코러스’의 로큰롤을 듣다 보면 절로 ‘아, 뭔가 더 재밌는 게 가능하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쓰지 않으면 잃어버린다.” “20년 뒤엔 내가 이 노래로 성공하겠다.” 90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연한 인생의 진리를 로큰롤로 들려준다.
삶과 죽음을 담은 노래가사에 주목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담기까지 스티븐 워커 감독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2006년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영 앳 하트 코러스’의 단장인 밥 실먼에게 다큐멘터리 촬영 승낙을 받지 못했다. 밥 실먼은 이미 몇 차례 경험한 “기분 나쁜 다큐 촬영”을 이유로 워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동안 코러스의 노인들을 다녀간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모두 그들이 하는 음악보다는 “노인네들이 로큰롤을 한다는 자극적인 사실”에만 매달렸다. 노인들의 연주를 제대로 담을 마음이 없으니 완성된 다큐멘터리의 사운드도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워커는 달랐다. 그는 처음 영화화를 떠올렸을 때 무엇보다 ‘코러스 노인들의 가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끄러운 드럼 비트와 기타 리프에 휘감겨 뭐라 중얼거리는지도 모를 로커들의 노래와 달리 ‘영 앳 하트 코러스’ 노인들의 노래는 가사의 내용을 정직하게 전달한다. “<Should I Stay or Should I Go>는 어느새 삶과 죽음에 대한 노래로 들렸다. 밥 딜런의 <Forever Young>은 드라마가 되었다. <Road to Nowhere>마저 없던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티븐 워커는 그 내용이 가능한 한 더 잘 들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빅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으로 작업하겠다고 밥 실먼에게 약속했다. “관객이 콘서트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실제하는 음악 속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워커는 카메라를 켤 수 있었다. <로큰롤인생 영@하트>에서 중요한 건 실제, 실재하는 이야기다.
스크린에서 음악은 종종 주인공들의 인생을 반전시키는 모험이자 선물이다. 영국 하층 노동자 계급이 행복을 발견하는 순간(<풀 몬티>)이나 일본의 따분한 여고생들이 잊지 못할 추억을 챙기는 방법(<린다 린다 린다>) 혹은 늘어진 일상에 지친 샐러리맨이 새로운 삶의 문을 여는 도구(<쉘위댄스>). <로큰롤인생 영@하트> 역시 음악을 새로운 촉매로 사용한다. <왕과 나> <마이 페어 레이디> 같은 오페라나 컨트리, 포크 음악에 익숙해 있던 노인들은 콜드플레이, 소닉 유스, 프린스의 노래에 놀란다. 그리고 빠져든다. 거칠고 갈라지는 음성으로 록을 부르면서 새로운 흥을 얻는다.
음악, 청춘영화에서 익히 봐왔던 구조들은 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있다. 하지만 노인들은 음악을 삶을 반전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로큰롤인생 영@하트>에서 음악은 그냥 주인공들의 삶이다. 음악이 삶을 바꾸고 그 삶이 다시 음악이 된다. ‘영 앳 하트 코러스’의 실제 일상을 6주 뚝 떼어내 완성한 이 영화는 시간과 음악이 이미 하나가 된 풍경, 그 실재를 담는다. 그리고 그 풍경은 다른 어떤 청춘, 음악영화도 들려주지 못한 삶의 교훈을 건넨다. 반전은 사실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 죽음은 사실 끝도 별것도 아니라는 것. 진정한 젊음이 그려지는 순간이다.
멤버들의 죽음을 넘어 쇼는 계속된다
연출자 스티븐 워커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언뜻 보기에 매우 편하게 찍힌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촬영의 시작은 <Alive and Well> 공연 6주 전이고 카메라는 밴드 멤버들의 집과 연습실 등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모습과 말을 담는다. 공연의 메이킹 영상과 같은 구조다. 왜 영화의 시작이 공연 6주 전인지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냥 신기한 밴드를 우연히 발견하고 촬영을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스티븐 워커는 리허설 도중 죽은 두 멤버의 에피소드도 별다른 장치없이 이야기에 담는다. 아니, 묻는다. 그는 충분히 드라마틱할 수 있는 실화의 소재를 두고도 써먹지 않는다. “공연 때 돌아오겠다던” 밥 설비니가 끝내 부고의 소식으로 멤버들을 마주했을 때 카메라는 교도소 위문공연으로 향하는 버스의 외관을 잡는다. 설비니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동료들의 모습에 카메라는 관심이 없다. 스티븐 워커는 멤버들이 공연을 무사히 마친 뒤 밥 실먼에게 조용히 묻는다. “공연을 계속 한 이유는 뭔가요?” 밥 실먼은 답한다. “왜 공연을 했냐고 묻지만 역으로 어떻게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암 치료센터에 다니던 조의 죽음 때도 마찬가지다. 스티븐 워커는 노인, 로큰롤, 죽음, 교도소 공연처럼 ‘맛있어 보이는 재료’들을 영화의 구성에 맞춰 배치하지 않는다. 그는 음악과 삶이 하나가 된 순간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 이는 그가 촬영 전 2개월 동안 코러스 멤버들과 가족처럼 지내며 얻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가 ‘영 앳 하트 코러스’를 통해 배운 삶에 대한 자세 덕이다. 다시 물어 공연 6주 전이 영화의 시작이 된 건 스티븐 워커가 6주 전에 카메라를 켰기 때문이다. 매우 단순하지만 이는 <로큰롤인생 영@하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이 단순한 세계 속에서 삶과 죽음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 그림이 된다. 필요없는 무게를 떨쳐낸다. 동료의 죽음을 옆에 두고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끝이 없는 풍경 속 쇼는 멈추지 않는다. 영 앳 하트 코러스의 공연은 27년째 계속되고 있다.
‘영 앳 하트’가 세계인의 주목을 끌기까지
유튜브가 낳은 80대 스타들
‘영 앳 하트’를 알아본 건 미국보다 유럽이었다. 게이 코러스 밴드 새들스로 유명한 이들의 근거지 노스앰튼도 “문화적인 열기가 충만한 커뮤니티”지만 “유럽에 돈 있는 단체가 많은 것 같다”는 도라 할머니의 말처럼 ‘영 앳 하트’를 자주 부른 건 미국보단 유럽이었다. 1996년 로테르담의 한 문화단체가 초청 공연을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영 앳 하트’는 유럽 투어에 들어갔다. 첫 공연 <Road to Heaven>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영 앳 하트는 그 기세를 이어 영국·아일랜드·웨일스·캐나다·하와이·호주를 여행하며 공연했다. 베를린과 런던, 로테르담에서는 수차례 앙코르 초청공연을 했고, 노르웨이에서는 국왕 앞에서도 노래를 했다. 이들의 공연은 동영상으로 촬영돼 유튜브 사이트에 올라갔고, 런던에서 부른 밥 딜런의 <Forever Young> 영상은 조회수 150만을 넘기며 일종의 ‘유튜브 현상’을 낳았다. 2007년 10월에는 이들의 공연 영상을 담은 DVD <BACK TO BACK>이 발매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