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한국 무술영화 열전’의 프로그래머인 오승욱 감독이 긴 회고를 보내왔다. 이른바 한국의 ‘만주 웨스턴’과 ‘다찌마와리’ 영화를 거쳐 이소룡과 성룡으로 대표되는 홍콩 무협영화와 조우했던 한국 액션영화의 어지러운 기억과 기이한 욕망 속으로 안내한다. 한국 액션영화의 슬픈 역사는 그렇게 기록됐다.
한 사나이가 거리에 들어선다. 사나이는 회한에 잠긴 눈으로 거리를 둘러본다. 그의 어깨 위에는 차가운 눈이 내리고, 그의 상념에 젖은 눈에는 그가 이 거리를 떠나게 된 과거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머리에 이가 득시글거리는 깡통을 든 거지 전쟁고아였던 그는 검은 장갑을 끼고 사람들에게 협박을 하는 주먹 인생이 안되었더라면 절대 생존할 수 없었던 이 거리에 돌아왔다. 거지였던 자신을 거둬들여 밥을 먹여주고 거리의 자식으로 생존하는 법을 알려준 그의 은인이자, 그의 아내를 죽이고 자신을 배신한 복수의 대상인 큰형님을 찾아 그는 이 거리에 돌아왔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난 그는 주먹 하나로 먹고사는 거리의 자식에서 벗어나려 했었다. 그러나 그가 주먹으로 쌓은 원한은 자기 마음대로 이 거리를 떠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가 아무리 개과천선하여 힘든 막노동과 가난한 아내가 지어준 삼층밥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해도, 그가 주먹으로 살아왔던 과거는 그를 용서치 않고 대가를 요구했다. 그는 한팔과 사랑하는 아내, 아버지 같던 큰형님을 잃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이 원한의 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왔다. 긴 세월 동안 복수의 원한은 뼈에 사무쳤고, 이제 그는 자신을 배신한 큰형님을 찾아 목숨을 내놓으라고 할 것이다. 원한의 거리에는 눈이 내리고, 그가 자신이 떠났던 거리를 한발 한발 내딛자, 거리는 숨을 죽이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한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그가 돌아왔다. 1960년대 말 한국 액션영화의 한 장면이다.
일제 강점기 만주와 종로 뒷골목의 이야기
깡패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영화들은 일종의 영웅담이었다. 할리우드 웨스턴이 등 뒤에서 총을 쏘고, 인디언들을 학살한 자신들의 처참한 과거를 미화하여 야만의 시대를 총잡이 영웅담의 신화로 바꿨듯이, 일본의 사무라이영화들이 술 먹고 나오는 적이나 여자와 잠자리를 갖고 나오는 적을 기습하여 암살하는 비겁과 할복의 광기를 무사도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관객을 끌어모았듯이, 한국영화도 뒷골목의 깡패 이야기를 사나이 의리와 개과천선, 반공, 항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영웅담을 만들어냈다. 미국에서 수입한 할리우드 웨스턴과 뒷골목 깡패영화, 만주 항일 활극이 유일한 액션영화였던 60년대 말, 70년대 초 한국의 극장가에 커다란 파도가 밀어닥친다. 홍콩에서 만든 무협영화였다.
중국인들에게는 저 먼 옛날부터 내려오던 영웅담이 있었다. <삼국지>와 <수호지>의 영웅들의 세계와 방랑하는 검객과 무림의 호쾌한 세계를 이야기로 꾸민 무협지다. 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영웅담을 미국인들이 서부의 총잡이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 전하고 그것으로 웨스턴이라는 영화의 장르로 만들었듯이, 중국인들은 60년대에 들어서 등장한 김용과 고룡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만들어낸 신무협소설과 경극이라는 공연예술을 영화에 덧씌워 무협영화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을 거친 한국 땅에 들어와 관객을 매료시켰다. 한국영화의 영웅들은 <삼국지>와 <수호지>의 영웅들과 비슷한 모양새를 지닐 수밖에는 없었지만 완전히 같은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는 오랜 문인 우대의 전통 때문에 무인 또는 검객 이야기 전통이 많지 않았다. 임꺽정과 홍길동, 일지매 같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들을 성공적으로 만든 영화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들의 영웅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일제강점기에 만주와 종로 뒷골목을 무대로 한 이야기였다.
거지로 수표교 밑에서 구걸을 하지만 자신은 저 먼 옛날의 주몽처럼 장군의 아들이라는 태생의 비화를 가진 자가 종로 우미관의 뒷골목에서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주먹 하나로 일본 깡패들과 못된 악당들을 쳐부수는 김두한 이야기나, 북만주에서 평양 박치기 하나로 천하를 휘어잡았던 시라소니의 이야기가 우리의 영웅담이었고, 북만주 벌판과 흑룡강가에서 말을 달리며 자신의 조국을 빼앗아간 일본 관동군과 대결하는 독립군의 이야기가 우리의 영웅담이었다. 웨스턴에서 게리 쿠퍼와 존 웨인이 아가멤논이고 헥토르였듯이, 홍콩 무협영화에서 양산박의 영웅들과 조자룡을 불러냈듯이 우리는 만주에서 종로 뒷골목에서 장동휘, 박노식, 최무룡, 김희라에게 김두한과 뒷골목 깡패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길 원했다. 그런데 홍콩의 무협영화가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관객은 홍콩에서 날아온 외팔이와 무시무시한 무술 고수인 이소룡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제 종로와 명동의 뒷골목 깡패 이야기로 눈높이가 달라진 관객을 끌어모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에겐 홍콩의 쿵후나 일본의 가라테 같은 맨손 무술이 있었다. 맨손 무술이란 무엇인가? 무기를 가질 수 없을 만큼 억압을 받은 자들이 맨몸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자기 방어 수단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무협영화가 나온다. 태권도영화였다.
차리 셸의 무쇠다리, 악당들을 강타하다
70년대 중반에 나오기 시작한 태권도영화들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일본인들과 대결하거나, 60년대의 만주 독립군 이야기의 배경인 북만주의 바람 부는 어떤 곳에서 태권도를 사용하는 영웅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소룡이 등장하자, 우리는 무쇠 외다리의 소유자 차리 셸(한용철)을 불러낸다. 이소룡은 할리우드 웨스턴 <셰인>의 홍콩판이었다. 그는 저 먼 중국의 어느 곳에서 어머니에게 받은 ‘싸우지 말라’는 징표를 지니고 인도네시아나 로마의 화교사회 또는 제국 열강들의 조계지인 상하이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무술을 숨기고 참고 참으며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갈등하다가 결국 싸움을 하고 경찰에게 잡혀가거나, 공중으로 날아올라 경찰을 향해 뛰어들어 총알로 벌집이 되어 죽거나 표표히 떠나간다. 밤이건 낮이건 밝은 햇살이라곤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항의의 표시처럼 습기와 곰팡이로 축축하게 젖은 어느 뒷골목. 사랑스런 아내를 얻어 신혼의 단꿈에 젖은 차리 셸에게 큰형님이 일을 부탁한다. “너밖에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 내가 제일 믿는 것은 바로 너다”라며, 큰형님의 신임에 가슴이 벅찬 새신랑 차리 셸은 기꺼이 아내를 독수공방하게 내버려두고 심부름을 한다. 그가 맡은 일은 절대로 열어 보아서는 안되는 편지를 전하는 것.
어두운 골목의 맨 끝에 빡빡머리의 사나이 조춘이 서 있다. 차리 셸은 큰형님의 편지를 험상궂은 사나이 조춘에게 전한다. 조춘이 펴본다. 클로즈업. “죽여라!” 영문도 모른 채 조춘의 공격을 받던 차리 셸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상황을 파악한다. 그 시각. 그의 아내는 큰형님과 그와 피를 나눈 깡패 형제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치욕에 못 이겨 혀를 물어 자살한다. 아내의 죽음을 깨달은 것일까? 차리 셸의 하얀 나팔바지를 입은 롱다리가 조춘의 빛나는 대머리를 강타하고, 차리 셸은 그를 드럼통에 거꾸로 처박아 드럼을 탄주하는 드럼 스틱처럼 드럼통을 발차기로 강타한다. 불길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돌아온 집에는 아내의 사늘하게 식은 시신이 있다. 그의 분노의 왼발이 한때 피를 나눴던 형제들을 강타한다(<배신자>).
박노식이 외팔이가 되어 사랑했던 아내의 복수를 위해 눈이 내리는 이 거리로 돌아왔다면, 차리 셸은 <돌아온 외다리>(1974)에서 적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던 왼발을 잘리고 어딘가에 버려진다. 술주정뱅이가 된 그는 뒷골목의 술집을 전전하며 술 한잔을 “실례”하며 도둑질해 마시다 잃어버린 다리에 무쇠로 만든 강철 다리를 장착할 수 있다는 희망에 찬 소식을 듣고 사랑하는 애인과 왼발의 복수를 결심한다. 악당들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그 다리병신 자식이 우리한테 복수를 한다고 이를 간다며? 으하하하!!” 악당들은 차리 셸의 재기를 마음껏 비웃고 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무쇠가 돌로 된 포도를 때리는 소리가 난다. ‘철컹! 철컹!’ 골목을 울리는 무쇠 소리는 점점 다가온다. 누군가가 악당들의 신경을 거슬리기 위해 쇠망치로 돌바닥을 내리치는 것일까? 소리는 점점 다가오고 술집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악당들이 놀라 사나이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안심하고 비웃는다. 하지만 그 비웃음을 입가에 지우기도 전에 오함마 같은 차리 셸의 무쇠다리가 악당들의 머리를 당타한다.
원 슛 원 킬!! 빗맞아도 최소한 두부파열이다. 하얀 양복을 입은 작은 키의 사나이가 악당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의 키는 1m가 채 안되지만 태권도 실력은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중과부적. 난처한 상황에 빠진 사내를 보고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상하이 박의 진정한 후계자인 정의한 차리 셸이 가만있을 수 없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양복은 입은 차리 셸이 위기에 빠진 사내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다. 하얀 옷과 검은 옷의 두 사내는 어쩌면 그렇게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지 그들은 나란히 서서 화려한 돌려차기를 연타로 적에게 날리며 수많은 적들을 순식간에 제압한다. ‘이렇게 멋진 돌려차기를 하는 당신은 누구냐?’ 하는데 그들은 오랜 친구였다. 차리 셸이 하얀 옷의 친구를 껴안으려 하자, 친구는 ‘잠깐!’ 하고는 의자를 끌어와 그 위에 올라서 눈높이를 맞추고는 껴안는다(<후계자>).
60년대 말 박노식과 장동휘가 주름잡던 종로 뒷골목과 북만주 벌판에 차리 셸과 태권도가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차리 셸은 자기 소비의 함정과 조악한 폭력영화라는 무시와 천대의 저주에 빠져 후세에 남겨지는 영웅담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70년대 중반 홍콩의 소림사 영웅들이 한국의 극장가를 강타한다. 뒷골목 깡패와 만주의 독립군 영화에서 소재를 넓히지 못한 한국 태권도영화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이소룡이 죽자 제2의 이소룡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설상가상 성룡의 코미디 쿵후영화들이 나와 이제 홍콩 무협영화는 싸구려 폭력영화가 아니라 온 가족이 즐기는 오락영화로 업그레이드되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부는 거리로 들어선다. 그 역시 이 거리를 떠났었다. 스승의 유언은 이곳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가서 무술 수련을 더 하란 것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애인을 자신이 가장 믿는 사형에게 부탁하고 무술 수련을 위해 정든 거리를 떠난다. 그리고 오늘 돌아왔다. 그가 떠난 거리는 이제 그 옛날의 거리가 아니다. 사랑했던 애인은 사형과 결혼하여 애를 낳았고,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떠난 사람은 자신이니 거리는 일본인들의 차지가 되어 피땀흘려 키운 인삼은 모두 그들의 손아귀에 있다. 게다가 사형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다리를 잃고 앉은뱅이가 됐다. 차리 셸 이후, 새롭게 등장한 ‘한국의 찰슨 브론슨’ 바비 킴과 이두용 감독의 태권 시리즈에서 항상 악역을 도맡아 하던 권용문이 나오는 <대적수>(1977)다.
한국 고유 무협영화의 꿈은 사라지고…
베테랑 시나리오작가 윤삼육이 걸쭉한 입담과 한국 고유의 무협영화를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만든 두편의 영화 <신풍객>(1976)과 <무협검풍>(1980)도 있다. 두툼한 입술에 부리부리한 눈을 한 봉두난발의 사내가 마을로 들어선다. 그는 소문난 한양 뒷골목의 왈짜패이다. 그는 벽초의 <임꺽정>에 등장하는 그 시절의 진정한 싸움꾼이다. 그는 윤삼육이란 싸움꾼이 지금까지 삼십육명을 이겨서 붙인 이름이라며 한명 더 해치우면 윤삼칠이로 이름을 바꾸고 또 한명을 해치우면 삼팔이로 바꾼다는 말을 전하며 당신은 뭐했냐고 묻는 기생에게 자신은 지금까지 삼십육명의 계집과 놀아났다고 기생의 무릎을 베고 누워 대답한다. 하하하. 저 먼 옛날 호걸입네 하던 그 시절의 싸움꾼다운 언행이다.
그것은 저 먼 옛날 한국 무협영화가 만들려 애를 썼던 영웅담의 모습이다. 그들은 영웅이지만, 대단히 폭력적인 영웅들이다. 악한 용의 머리를 잘라낸 가브리엘이 피를 뒤집어 쓴 야차의 모습이듯이. 통쾌한 발차기와 주먹질을 하는 무협영화의 주인공들 역시 상대방의 피를 뒤집어쓰고서야 싸움을 끝낸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처럼 사악하고 비겁하며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엇으로 발전해야 했었다. 그래야 영웅담은 신화가 될 수 있었고 우리 역시 한국 무협영화의 신화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콩영화의 영웅담과는 다르고, 할리우드 웨스턴의 영웅담과는 다른 한국 무협영화의 영웅담은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소림사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투항하거나, 스스로 홍콩영화와 비슷해지려 안간힘을 쓰면서 서서히 저 먼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