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클린트 이스트우드] 살아 있는 신화의 연대기
2009-03-19
글 : 김용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어떻게 모순을 포용하고 미국적 초상이 되었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50년대 들어서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우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스스로에게 그다지 확신이 없었다. 대공황이 시작되던 1930년에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연기 수업을 받은 적도 없는 그에게 딱 맞는 기회가 돌아올 리 없었다. 보잘것없는 영화들을 전전하던 그는 TV쪽으로 건너왔고, 마침내 그에게 첫 번째 도약의 발판이 찾아왔다. 세명의 카우보이가 주인공인 인기 시리즈 <로하이드>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192cm에 달하는 이 껑충하고 말수 적은 남자가 카우보이 역을 그럴듯하게 해낸다는 걸 깨달은 주변인들의 추천은, 그를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로 이끌었다. ‘이름없는 남자’ 3부작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가 그것이다. 여기서 이스트우드는 기존 존 웨인 스타일의 선하고 정의로운 카우보이도, 혹은 제임스 코번이나 리 반 클리프가 단골로 맡았던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카우보이상을 만들어낸다. “그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아무에게도 신경 쓰지 않고, 그 누구도 믿지 않으며, 환경 조건에 따라 가능한 한 많은 폭력을 저지르는 데 거리낌이 없다.”(<LA타임스>)

70년대, 더티 하리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다

10년 뒤인 1971년, 이스트우드는 ‘더티 하리’가 된다. “기분이 어때? 네가 운이 좋을 것 같냐 아니냐?”라는 그 유명한 대사와 함께. 자신을 목매달아 죽이려 했던 이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처벌하겠다는 일념으로 불타오르던 1967년작 <집행자>가 이스트우드의 미래를 암시한 것일까. 17년 동안 5편까지 이어진 ‘더티 하리’ 시리즈는, 폭력과의 일대 전쟁을 선포하는 무자비한 샌프란시스코 경찰 하리 캘러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LA타임스>는 <더티 하리> 시리즈가 <이지 라이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을 통해 젊고 무분별한 아웃사이더들을 근사하게 묘사하던 60년대 직후에 등장했음을 지적한다. 하리 캘러헌이 온갖 불법과 폭력을 처단하기 시작하면서, 매력적인 무법자가 사랑받던 시대 또한 사라졌다. “당시에는 다들 범죄자의 권리에만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동료의 복수를 대행하는 하리 캘러헌이 갑자기 등장하면서,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에 좌절하던 사람들은 이에 크게 공명했다.”(클린트 이스트우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아이거 빙벽>

하지만 <더티 하리> 시리즈가 승승장구하는 사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여기 안주하지 않으려 했다. 안정된 TV스타의 길을 버리고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에 출연했던 것처럼, 카우보이 아이콘을 버리고 강직하고 냉혹한 현대물 경찰로 변신했던 것처럼. 그는 연속적으로 똑같은 장르나 비슷한 캐릭터로는 출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새로운 분위기와 테마를 찾아 계속 자신의 폭을 넓혀가고자 했다. 그는 1971년 <더티 하리> 1편을 찍는 동시에 돈 시겔을 설득하여 기이한 시대극 스릴러 <매혹당한 사람들>을 만들었다. 억압된 성적 욕망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사로잡힌 강건한 남자라는 상황이 제시하는 기묘한 아이러니는 익숙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던 그의 욕구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게 한다. 그 상황은 이스트우드가 주연과 연출을 도맡은 첫 번째 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90년대, 도덕적으로 모호한 드라마에 매혹되다

또한 그 어떤 CG의 뒷받침도 없이 실제 암벽 등반 실력만을 발휘하여 완성한 무지막지한 산악스릴러 <아이거 빙벽>, 무적의 알카트라스 감옥 탈출 실화를 배경으로 한 <알카트라스 탈출>, 반자전적 드라마이자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떠돌이 뮤지션 이야기 <홍키통크 맨>, 각종 아웃사이더들이 모인 낡은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한 낙천적인 ‘웨스턴 판타지’ <브론코 빌리>, 웨스턴 고전 <셰인>에 바치는 오마주 성격의 <페일 라이더>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이스트우드는 돈 시겔의 뒤를 이어 1984년 직접 메가폰을 잡은 <더티 하리4: 써든 임팩트>에 이르러선, <더티 하리> 시리즈를 아예 마무리짓고 싶어했던 것 같다. 여기서 하리는 동료나 시민들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여 총을 집어드는 ‘개인’이 아니라, 완벽하게 법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는 이성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제도’의 일부로 기능한다. 대신 예전의 더티 하리를 떠올리게 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여성 캐릭터 앞에서 심각한 분열을 겪는다는 설정은,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얼터 에고(alter ego·분신)와 완전히 결별하고자 했던 결단력을 엿보게끔 한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이스트우드는 좀더 복잡 미묘하며 도덕적으로 모호한 드라마 쪽으로 이끌린다(“나는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데 망설임을 느끼지 않는다. 모든 드라마에는 격렬한 투쟁이 깃들게 마련이다”). <사선에서>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정부 비밀 요원으로, <추악한 사냥꾼>에서 자연과의 대결에 사로잡힌 야심만만한 사내로, 그리고 만장일치의 걸작 <용서받지 못한 자>에선 ‘수정주의 웨스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웨스턴의 신화를 종결짓는 인물인 총잡이 윌리엄 머니로 등장하면서 말이다. 두려워서 총을 들지 못하는 노쇠한 총잡이, 영웅과 악당과 복수와 정의를 구별짓는 모호한 경계선, 필요악을 정당화하는 모순된 논리… 윌리엄 머니는 결국 살아남아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 차가운 경고를 남긴다. “다시 한번 창녀들을 괴롭히면 내가 돌아와 너희 개자식들을 전부 죽여버리겠어.”

<용서받지 못한 자>
<안개 속에 벨이 울릴 때>

이 유명한 대사는, 어찌 보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평생을 걸쳐 개인적으로나 영화 속 페르소나들을 통해서나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언제나 희생자에게 공감했다. 범죄자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동정이나 연민을 느낀 적이 없다. 말하자면 나는 ‘그놈도 불쌍한 놈이지.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기 때문에 저런 끔찍한 죄를 짓게 된 거야’라고 속 편하게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난 이런 놈들은 지구상에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체인질링>의 각본가 J. 마이클 스트랙진스키도 “이스트우드는 정의로운 것을 위해 사회 전체와 맞서는 개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거든다. 소년 시절의 꿈을 기어이 이뤄내며 자신들의 정의를 새롭게 세우는 노인들의 이야기 <스페이스 카우보이>나 제도를 뛰어넘는 사랑을 꿈꾸던 낭만주의자로 나온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다소 예외적인 경우이며, 기본적으로 <앱솔루트 파워> <트루 크라임> <블러드 워크> <퍼펙트 월드> 등의 90년대 영화들은 악에 대한 이스트우드의 혐오를 노골적으로 표출한다.

현재, 보편타당성을 획득하다

노년에 접어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그는 이제 78살이다) 스스로를 ‘자유론자’라고 부르는 골수 공화당 지지자였고, ‘범죄자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고, 약한 자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라는 기본적인 신념을 평생 지켜왔다. 그야말로 자신이 출연한 온갖 대중문화 클리셰와 뒤범벅된 보수주의자의 전형적인 신념이 다소 격 낮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좀더 사려 깊고 진중한 사유를 덧씌우게 된 이스트우드의 신념은 보편타당성을 온전하게 획득하고 있다. 최근작 <그랜 토리노>는 ‘이름없는 남자’와 ‘더티 하리’와 권투 코치 프랭키(<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한 군데 불러 모으면서, 그 자신이 살아 있는 신화가 되어버린 어떤 존재가 부루퉁한 외관 뒤에 감춰졌던 현실에 대한 근심과 사유를 한데 뒤섞는 형상을 등장시킨다. <LA타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는 이스트우드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었을, “내 잔디밭에서 나가”라는 말을 “오늘 한건 해보자”(Make My Day)와 균등하게 들리게 할 유일한 존재다. “나는 그저 영화를 찍는 남자다. 그게 다다.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고, 그 이야기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결과에 대해 누군가가 괜찮다고 생각하면 좋은 거고, 누군가가 싫어한다면 그건 그들 문제다. 나는 거기서 또다시 나아간다.”(클린트 이스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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