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무법자> (1966)
1950년대 후반 텔레비전 시리즈 <로하이드>에서 농장의 미남 감독관으로 첫 주연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후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발탁되어 스파게티 웨스턴의 ‘이름없는 사나이 3부작’으로 옮겨간 뒤에는 질겅질겅 시가를 씹어대는 거칠고 비정한 사나이로 돌변한다. 이 둘의 차이는 그 부드러운 미소와 찡그림만으로도 확연하다. 이름없는 사나이 3부작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성공적인 첫 번째 연기 변신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수는 별로 없지만 말을 잘 타고 피곤함과 체념에 젖은 걸음걸이를 가졌다”는 걸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린 남자의 시가와 언제나 장전된 총은 오랫동안 그의 도상이 됐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당신이 시키는 건 다 하겠어. 담배만 빼고”라고 말할 정도로 담배를 싫어했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어이 친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하나는 장전된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땅을 파는 사람이지. 어서 파”라며 말하는 것조차 피곤하다는 투로 윽박지르던 그의 대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고독한 방랑자> (1982)
<고독한 방랑자>(원제 <홍키통크 맨>은 싸구려 술집을 돌아다니며 연주하고 노래하는 가수를 뜻한다)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무명의 컨트리 가수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구두 세일즈맨에서 별 볼일 없는 서커스 단장이 된 뒤에도 진정한 카우보이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인물 <브롱코 빌리>(1980)의 그 주인공과 앞뒷면을 이룬다. 꿈을 좇는 사내들이라는 주제로 묶인다. <브롱코 빌리>에서 그가 좀 나사 빠진 카우보이였다면 이 영화에서는 건들거리는 예술가다. 그는 나이 어린 조카를 데리고 허름한 술집을 전전하면서 지내는데, 마침내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인정받아 그토록 꿈에 그리던 녹음을 하게 된다. 하지만 더이상 폐병을 이기지 못한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어딘가 처연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서너번 등장하는데. 실력이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페인트 유어 웨곤>(1969)을 제외한다면 그가 영화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장면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의외의 명장면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 (1992)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렇게 돌아오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냉혹한 신화적 총잡이로 살아온 그가 서부의 늙은 승냥이로 돌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니 자기가 만들어서 이룩한 신화의 계보를 이렇게 냉혹하고 처량하게 끌어내려 파산시킬 줄 누가 알았을까. 몇개의 유명한 장면이 있는데 그걸 스파게티 웨스턴에 나왔던 그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이건 장르만 유사할 뿐 완전히 다른 인간이다. 처음 사람을 죽였노라 겁에 질린 신출내기 총잡이에게 허망한 선배 총잡이로서의 교훈을 던질 때, 후반부 쓸쓸한 모습으로 퇴장할 때 그가 선보인 연기의 가치는 이미 많이 말해져왔다. 그럼 윌리엄 머니가 악당들의 소굴로 들어가 악당보다 더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르던 순간은 어떤가. 이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주인공 윌리엄 머니를 피에 굶주린 짐승, 살인기계로서의 본성을 지닌 집행자인 것처럼 보여준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
그 유명한 대사.“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하오. 단 한번도 말해본 적 없는 거요.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번만 오는 거요.” 1965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이방인으로 찾아온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그날 밤 망설이는 시골 여인 프란체스카 존슨(메릴 스트립)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집을 나섰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말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사이자 동시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연기인생에서 한 가장 로맨틱한 대사다.
하지만 그 장면보다 더 가슴을 치는 곳은 그가 장대 같은 빗줄기 속에 우두커니 서서 식료품점에서 나오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볼 때다. 차에서 저 여인이 내려 자기에게 오기를 기다리는 그 몇초간. 늙은 육체가 한마디 말없이 마지막 사랑을 호소하는 그 순간. 물 기운에 헝클어져 무너져내린 머리칼과 가늘고 단단하게 뜬 눈. 그러나 상대방은 망설인 다음 오지 않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는 이 영화의 전에도 후에도 이만큼 강렬한 로맨스를 연기한 적이 없다. 물론 메릴 스트립이라는 당대 여배우와의 합이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그래도 빗속에 서 있던 그의 어깨를 잊을 수가 없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2004)
보호자 또는 대체부모 그러나 어딘가 완전한 보호와 양육을 약속하기에는 부족한 어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런 인물을 종종 탁월한 연기로 완성해낸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늙은 트레이너 프랭키 던은 그 정점이다(그리고 <그랜 토리노>의 왈트 코왈스키는 좀더 고약한 그 후속인물쯤 될 것이다). 프랭키는 여자 복서를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매기의 끈질긴 청에 못 이겨 드디어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이다.
친딸과는 불화를 겪는 이 노인이 수양딸이나 다름없는 매기를 정성으로 가르치고 보살핀다. 불행하게도 링에서의 사고로 매기가 불구가 됐을 때도 그녀를 아끼는 건 그녀의 가족이 아니라 프랭키다. 그는 영화에서 그녀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몇 가지 행동을 하는데, 물론 약물을 투여하여 그녀의 뜻에 따라 저세상으로 보내주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강력하다. 하지만 프랭키가 “나 이제 일어나 이니스프리로 가리…”로 시작하는 예이츠의 시를 다정다감하고 유머러스하게 읽어주는 이 장면은 쉽게 지나치기에 너무 자애롭다. 코에 안경을 걸치고 예이츠의 시를 읽어주는 백발의 노인 프랭키 혹은 클린트 이스트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