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순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들 셋을 두고 일본 미스터리 3인방이라고 규정해버렸다. 일본 미스터리가 한국에서 빅뱅 현상을 일으킨 지 벌써 3, 4년이 되어가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세 작가의 작품들이 가장 고르게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것은 세 사람의 작품 성격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독자들 역시 뚜렷한 취향의 차이대로 골라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화차> <이유> <모방범> <외딴집>의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파 미스터리에 뿌리를 둔 채 ‘누가’보다는 ‘왜’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며 희생자와 가해자 양쪽 모두의 콘텍스트를 꼼꼼하게 관찰하는, 그러면서도 따뜻한 휴머니즘의 시선을 견지하는 인류학자에 가깝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여섯 번째 사요코> <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 <밤의 피크닉>의 온다 리쿠는 그래픽 소설을 보는 듯한 최대로 간결한 묘사들(거의 연극 지문에 가까운)과 대사들을 즐겨 차용하며, 작품의 챕터마다 신문연재소설을 보듯 ‘클리프행어’를 제시하는 마무리로 속도감있게 진행시키곤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팬시하고 순정만화적인 감수성을 잊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둔다. 치명적인 미약(媚藥)을 숨긴, 온다 리쿠의 예쁜 미스터리는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여성 독자들에게 더 많은 호응을 얻는다.
그렇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떨까. 철저하게 극적 재미를 추구하는 그의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만큼이나 사회적인 문제들을 자주 등장시킨다. 고베 대지진과 90년대 거품경제와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환야>), 소년법의 부조리함(<방황하는 칼날>), 명문학교 입시와 사교육 열풍(<호숫가 살인사건>), 스포츠 과학(<아름다운 흉기>) 등을 다루는 그의 관심사는 전방위적이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와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지점은, 사회적 이슈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20세기 중반의 하드보일드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드라이한 문체는 극명하게 사건과 행위 위주의 전개 방식을 지향한다. 감정은 휘발되고, 독자들은 등장인물과 함께 다음 퍼즐의 조각을 찾아 매 페이지를 바쁘게 내달려야 한다. 결과적으로 종종 ‘읽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소재주의라는 함정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만큼이나 동시대의 현실 감각을 놓치지 않는 재능에 감탄하게끔 만들어버린다. SF, 사회파 미스터리, 본격 미스터리, 메디컬 스릴러, 블랙코미디(특히 이 부분이 놀라운데 <괴소소설> <독소소설> <흑소소설> 시리즈는 히가시노의 다른 작품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호시 신이치나 쓰쓰이 야스타카풍의 냉소적인 비틀기 솜씨의 만만찮은 공력을 과시한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왕성한 소화력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회파 엔터테인먼트라고 해야 할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대 엔지니어 출신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곳곳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이력이 짙게 배어 있다. 그가 가장 뛰어난 개성을 발휘하는 부분은, ‘이과’(理科) 감수성을 유감없이 작품 속에 녹여내며 트릭의 차원을 단숨에 높이든가 반박 불가능한 개연성을 확립할 때 드러난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는 비교적 ‘정통적인’ 미스터리 작가로서도 일정 정도 뛰어난 경지에 올라 있다. 여학교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연쇄살인사건을 결합한 <방과 후>라든가 머더 구스 동요를 이용하여 기분 나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자아내는 밀실 살인 <백마장 살인사건>, 한정된 시간과 공간, 인물을 통해 본격 미스터리의 쾌감을 맛보게 하는 <호숫가 살인사건>과 <옛날에 내가 죽은 집>, 몇번이고 번복되며 새로운 단서를 찾아내게 하는 언어유희 <악의>, 범인을 처음부터 알려주고 그 다음 범죄를 어떻게 숨길 것인가를 따라가는 도서 미스터리의 전형 <브루투스의 심장>, 심장외과 혹은 인간 복제기술, 전두엽 절제수술, 뇌이식 등 과학과 의학의 굵직한 이슈들을 드라마화한 <사명과 영혼의 경계> <레몬> <숙명> <변신> 등을 보라.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쓸 수 있는, 그가 써야지만 설득력과 논리를 양쪽 모두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과학적 요소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다. 다시 말해 ‘탐정 갈릴레오’로 불리는 물리학자 유가와가 등장할 때, 우리는 그 어떤 작가들과도 단연 구별되는 위치에 오른 히가시노 게이고를 조우하게 된다.
유가와가 등장하는 작품은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용의자 X의 헌신>과 함께 단편집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이다. 일단 천재 물리학자라고 설정된 유가와의 직업 자체는 그야말로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명탐정 캐릭터의 연장선상이라는 데서 흥미롭다. 19세기 말 비약적으로 발전한 골상학과 생리학, 생물학 등을 바탕으로 시스템 내의 오류를 바로잡는 과학자이자 사회의 환부-범죄를 도려냄으로써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의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한 캐릭터가 바로 셜록 홈스로 대표되는 명탐정이었다. 물론 이 흐름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면서 거리를 직접 뛰어다니며 스스로가 범죄에 맞부딪힘으로써 그 심리와 생리를 이해하는 하드보일드 탐정 혹은 직업 경찰로 바뀌지만, 만일 2000년대에도 명탐정을 부활시키고자 마음먹었다면 과학자야말로 가장 적당한 대역이 될 것이다.
순진한 왓슨이 “홈스, 이건 불가능해! 이건 인간이 한 짓이 아니야!”라고 경탄하면, 홈스는 왓슨의 미신적이고 비논리적인 사고를 태연하게 하나하나 격파하면서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해보이곤 했다. ‘갈릴레오’ 시리즈에서도 유가와는 갖가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이는 것)에 맞닥뜨리지만 그 안에 숨겨진 과학적 논리 혹은 수학적 논리의 패턴을 더듬어가며 결국 더 깊은 곳에 숨겨졌던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해명해내고 만다. 다시 말해 유가와는 자신에게 ‘도전’을 해오는 범죄 퍼즐에 흥미를 느끼고 가설을 세운 다음 그것을 입증해 보이는 일련의 실험과정으로서 범죄를 대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유령이 벌이는 소동 ‘폴터가이스트’의 정체라든가, 유체 이탈을 통해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듯 보였던 병약한 소년의 진실을 파헤치는 등 유가와는 ‘퍼즐’로서의 추리소설의 성격에 가장 걸맞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을 제시함으로써 지적 쾌감의 흥분까지 안겨준다. “내가 이 무서운 트릭을 눈치챈 것은 자네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서였어. 이시가미가 수학 시험 문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한 말이 있었지. 선입견의 맹점을 찌른다는 이야기. 기하학 문제인 듯이 보이고, 사실은 함수 문제를 낸다는 것. 같은 패턴이야.”(<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화목한 가족 출신이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른바 ‘정상적인’ 가족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 결핍(이라고 믿어지는 것)을 메우고자 하는 시도야말로 주인공들의 무시무시한 생활력이거나 끔찍한 욕망의 원동력이 된다. 이 경우 발생하는 무리수라면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 <도키오>나 <유성의 인연>처럼 감동적인 코드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니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자칫 따분해질 수 있는 설교. “듣자하니 자네도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하더군. 그래도 혼자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 문제는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닐까? 자네 같은 사람에 비하면 교고쿠는 처치 곤란한 쓰레기라고 할 수 있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아.”(<변신>) 두 번째, <백야행>과 <게임의 이름은 유괴>로 대표되는 세계관이다. 세상과 다른 어른들이 나를 버렸으니 나도 세상을 버리고 짓밟으며 내가 바라는 위쪽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지극한 이기심과 응석의 변명. “인간이 모두 평등하자는 건 환상일 뿐이라는 게 그의 오랜 철학이었다. 이 세상은 불공평과 차별로 가득 차 있다. 언젠가 반드시 최상층의 인간이 된다. 지배자가 된다.”(<브루투스의 심장>) 세 번째, 치매와 청소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붉은 손가락>처럼 어쨌든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게 된 타인들이라도 ‘가족은 가족이니까’라는 심정으로 그 어떤 단점이나 참혹한 기억마저도 ‘가족의 사랑’으로 덮어버리려는 광적인 몸짓. “그건 결국 내가 시킨 거나 마찬가지야. 그래서 그 녀석 인생에 상처를 내는 일만은 기필코 막아줘야겠어.” (<호숫가 살인사건>)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에 아버지 없는, 어머니 없는, 혹은 혼외정사로 태어난, 심지어 부모를 죽인 이들이 수없이 등장하면서 이런저런 문제점 많은 세계관을 드러낸다고 해서, 그것이 작가의 진짜 속내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일 것이다. 이를테면 <호숫가 살인사건>의 참담한 결말에 대해 “부모 자식간의 끈끈한 정 이야기”라며 “치유와 재생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필자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라고 쓴 일본의 어느 잡지사 평이 책 표지에 실려 있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사회적 콘텍스트를 가족의 파괴라는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해버릴 때 발생하는 문제점, 그러니까 ‘사회파 엔터테인먼트’에서 ‘사회파’를 빼버리고 순전히 엔터테인먼트로만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원한 상황은 아닐 텐데 하는 근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들은 때로 화를 자초한다. 여성 독자에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열에 일곱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왜? 다름 아닌 여성 캐릭터 때문이다. 아름답고, 가녀리고, 연약한 여성들이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으로 청초한 정물화처럼 고개를 다소곳이 외로 꼬고 있으면, 남자들은 그녀들을 지키기 위해 바빠진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세계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 ‘신파’ 감수성이 존재한다. 절대로 건드리면 안되고 더럽혀서도 안되는 순수의 결정체 같은, 떠올리기만 하더라도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궁극의 첫사랑 같은 존재들이 언제나 존재한다. <용의자 X의 헌신>의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을 한” 야스코 때문에 이시가미는 현대의 경찰 제도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맹점을 품은 살인 계획을 완성한다. “어떤 관계를 가져보자는 욕망은 아예 없었다. 자신이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거기에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숭고한 것이 존재한다.” <방황하는 칼날>에서 평범한 홀아비 직장인이던 나가미네가 미키 스필레인의 히어로 스타일로 냉혹한 집행자로 탈바꿈하는 이유는, 어여쁜 십대 딸 에마를 잔인무도한 살인마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좀처럼 찾기 힘든 능동적인 캐릭터로 <백야행>의 유키호, 그 닮은꼴인 <환야>의 미후유 정도를 꼽을 순 있다. 살인을 계획하고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여고생들이 등장하는 <방과 후>의 경우에도 그녀들은 남자 선생님의 눈을 통해 섹슈얼리티의 대상으로 자주 묘사된다. <동급생>에서도 추악한 선생은 자신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고생을 향한 짝사랑 때문에 자멸한다. 하지만 <백야행>과 <환야>의 지독한 악녀 캐릭터 역시, 그녀만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림자 같은 남자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유키호와 미후유의 아이콘처럼 기능하는 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하지만 스칼렛 오하라는 어디까지나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철부지 소녀에 불과했던 초반부 모습에서 “난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어”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맹세하는 순간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은 그녀가 겪는 사건들만을 통해 제시되기 때문에 설득력있다. 유키호와 미후유는 그렇지 않다. 그녀들은 언제나 그녀들을 욕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혹은 그녀들에게 헌신하는 남자들의 시선을 통해 굴절되어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그녀들이 처절한 가난과 불행한 과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온갖 범죄와 살인까지 불사하는 결정적 이유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유키호는 말한다.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미후유는 말한다. “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설사 주변은 낮처럼 밝더라도 그건 가짜야.” 이를테면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 비교해보자.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를 쓰고 타인을 배신하고 살인마저도 서슴지 않는 무시무시한 여주인공이 똑같이 등장하지만, 그리고 그녀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들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서만 재구성되지만, 그녀에 대한 언어들은 풍성하고 입체적이다. 단지 “아름답다”라는 찬탄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괴물 같은 그녀를 어떤 면에서는 동정하고, 이해하고,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용서할 수 없다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유키호와 미후유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들은 자신의 불행한 과거 때문에 타인의 연쇄적인 불행을 서슴지 않고 조장하고 탈취하는 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만, 남성들은 그녀들의 선천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기꺼이 용서하고 이해한다. 독자들에게까지 그 판단의 기준을 강요하는 건 쉽지 않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환야> 출간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미후유를 두고 “남자에게 있어 ‘궁극의 여자’를 창조하고 싶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입을 꼭 다물고 내내 견디는 견실한 여성상은 내 타입이 아니다. 철저히 자신을 위해 사는, 누가 뭐래도 내가 좋다면 좋은 쪽이 더 상쾌하다. 남자주인공 마사야의 기분도 나는 알고 있다. 자신은 너덜너덜해지면서도 여자에게만은 행복을 기원한다. 그런 히로이즘, 그런 남자가 되어보고 싶다는 희망도 있는 거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간의 ‘자연적’ 혹은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정체성에 관심이 많다. 오래전 대학 시절 미식축구부의 여자 매니저였던 동창이 갑자기 등장하여, 당시 쿼터백이었던 주인공에게 “나는 몸은 여자지만 마음은 남자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한술 더 떠, 그의 아내이자 미식축구부의 또 다른 매니저였던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같은 충격적인 오프닝은 성적 소수자들의 비밀스러운 커넥션과 거대한 음모로까지 숨가쁘게 확장된다(<아내를 사랑한 여자>).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딸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딸은 슬픔에 잠긴 아버지에게 “딸의 육체에 내 영혼이 빙의됐다. 난 당신의 아내다”라고 주장한다(<비밀>). 멀리 떨어진 두 지역에서, 똑같이 생긴 예쁜 소녀 두명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 성장한다. 그녀들은 똑같이 엄마(라고 믿었던 존재)의 죽음을 거치며 자신들이 누군가의 ‘클론’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에 맞닥뜨린다(<레몬>).
어쩌면 이처럼 물리적인 정체성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작업은, 미스터리의 경계 자체를 넓히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노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A가 A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A는 B인 척하는 A였고 B는 A인 척하는 B였다. 피해자 혹은 범인의 정체가 반전의 일환으로 사용되던 고전 미스터리의 트릭을 현대적으로 탈바꿈할 때 예전의 설정을 그대로 되풀이할 순 없다. 오로지 성 정체성과 클론까지도 조작할 수 있는 첨단 과학의 위력을 통해서, 혹은 인간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찌 보면 미스터리의 역사를 총집합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 자체가 ‘끝없이 주석으로만 이뤄진 책’으로 되기를 꿈꾸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