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Melancholia
라브 디아즈/필리핀/2008년/480분/메가박스9/오후 2시
정치적이고 실험적이며 시적이기까지 한 걸작. 안토니오 쉐라드 산체스, 라야 마틴, 카븐 드 라 크루즈, 말하자면 ‘필리핀 영화의 무서운 아이들’을 지금 선두에 서서 이끌고 있는 라브 디아즈의 신작이다. 줄리안, 알베르타, 리나 그들은 실패한 혁명 전사들이다. 지금은 과거에 대한 상처를 안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은 잊혀지지 않았으며 혹은 알베르타의 남편 레나토처럼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다. 줄리안은 자신의 기억과 필리핀 영화의 역사를 관통시켜 영화로 만들 계획을 한다. 영화는 8시간이라는 긴 상영시간동안 과거, 현재, 대과거, 그리고 다시 현재라는 시간을 오가며 이들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라브 디아즈는 단순하게 정치적인 주장을 강조하는 대신 인간의 불행과 행복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시적이고 음악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성찰한다.
<멜랑콜리아>는 디지털 영화의 극단적인 한 경향을 경험하는 것으로도 가치가 있다. 지난 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했던 라브 디아즈의 걸작 <엔칸토에서의 죽음>과 동전의 양면으로 놓고 보아도 무방하다. <엔칸토에서의 죽음>이 재난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와 픽션을 섞어 접근하는 서사시였다면, <멜랑콜리아>는 잊혀지지 않는 상처의 기억을 노래하는 구슬픈 노래 같다. 밀림에서 쫓기던, 그리고 세상으로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알베르토의 남편 레나토는 생사의 기로에서 자신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적는다. “이 세상에는 왜 그렇게 많은 슬픔과 비애가 있는 걸까? 행복은 단지 개념일 뿐인가? 삶이란 그저 인간의 고통을 측정하기 위한 과정일 뿐인가? 언젠가 우리가 서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당신을 다시 보지 못할까봐 그게 더 두려워.” 긴 상영시간이 부담되지만 한 번 통과하고 나면 오랫동안 잊지 못할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