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반두비> 내가 여기 있어요, 우리 손을 잡아요
2009-06-30
글 : 강병진
이주 노동자와 여고생의 무정부의적 로맨틱코미디 <반두비>

이주 노동자와 여고생의 만남을 그린 <반두비>는 지금 거품에 싸여 있다. 청소년을 위해 만들었다는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고, 이주 노동자와의 소통을 시도했다는 영화가 인종차별적인 안티세력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반두비>는 정말 논란이 촉발될 만한 영화일까. 오히려 <반두비>는 담백하고 경쾌한 리듬의 멜로영화다. 단, 누군가는 영화에 등장하는 ‘MB’의 기호가 불편한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이주 노동자와 여고생이 눈을 맞추는 모습이 보기 싫을 뿐이다. 여기서 <반두비>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왜 불편하고, 왜 보기 싫은가. 아마도 그 답은 지금의 한국을 설명할 것이다.

어쩌면 보고 또 본 이야기다. <반두비>가 꿈꾸는 방식은 <꽃보다 남자>가 상상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만약 재벌2세와 사랑에 빠진다면?’이란 가정에서 재벌2세를 이주 노동자로 치환시킨 게 <반두비>다. 다시 말해 금잔디가 이주 노동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면 어땠을까. 금잔디가 구준표를 만나서 그의 집에 갔는데, 그곳에서 정원의 잔디를 깎고 있는 이주 노동자를 만나 여차저차해서 사랑에 빠졌다면? 구준표를 만난 금잔디는 별 다섯개짜리 호텔 스위트룸과 뉴칼레도니아를 오가지만, 이주 노동자를 만난 금잔디는 땀냄새가 진동하는 공장과 외국인 보호소를 찾아야 한다. 구준표의 금잔디는 자본의 달콤함과 무서움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주 노동자의 금잔디는 남자친구 덕에 자신이 딛고 사는 나라의 무서움을 겪는다. 결국 구준표를 만난 금잔디는 질투의 대상인데, 이주 노동자를 만난 금잔디는 안타까움의 대상이다. 그러니 두 여자의 미션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구준표를 얻으려는 금잔디는 자본의 포근한 품에 안기더라도 일단 자존심을 지켜야 하지만, 이주 노동자를 사랑하는 금잔디는 당장 결혼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남자가 추방될 판이다. <반두비>는 뜻하지 않은 사랑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현실을 체감하게 된 금잔디의 이야기다.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절대 순정만화로는 기록되지 못할 하이틴 로맨스 영화다.

신동일 감독의 ‘관계 3부작’ 마지막 편

<반두비>의 금잔디는 여고생 민서(백진희)다. 그녀에게 사랑은 여름방학과 함께 찾아온다. 방학 동안 원어민 강사에게 영어를 배운다는 친구들이 부러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그날, 민서는 우연히 주운 지갑을 빼돌리려다 지갑주인인 이주 노동자 카림(마붑 알엄)과 다투게 된다. 다짜고짜 경찰서에 가자는 카림에게 민서는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사라진다. 다음날 새벽, 그들은 각자의 사고 때문에 경찰서에서 다시 만난다. 카림은 소원을 말한다. 1년치 임금을 떼먹은 사장을 찾아달라고. 민서는 카림과 길을 나서지만, 여전히 그와 함께 걷는 건 꺼림칙하다. “나에게서 3m 떨어져서 걸어!” 함께 악덕사장을 찾아나섰던 그들은 점점 많은 걸 함께한다. 같이 밥을 먹고, 탁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 사이에 놓인 거리도 좁혀진다. 그러나 그들이 딛고 있는 곳은 방글라데시에서 날아온 이주 노동자나 과외를 받지 못하는 여고생이나, 둘 다 편히 살기 힘든 나라다. 민서에게 이 여름방학은 어떤 추억으로 남게 될까.

신동일 감독은 전작인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와 <반두비>를 ‘관계 3부작’으로 묶어 설명한다.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을 관계가 그의 영화에서는 기어이 맺어진다. 속물 지식인과 신념으로 가득 찬 해맑은 청년이 만나고, 상류층 외환딜러와 노동자 계급의 요리사가 만났다. 이번에는 여고생과 이주 노동자가 만난다. 만남의 과정을 볼 때 <반두비>는 전작보다 더 큰 우연에 기대고 있다. <방문자>의 두 남자는 죽음의 위기에서 만났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두 남자는 사회적 계급장을 떼고 군대의 계급장을 달면서 만날 수 있었다. <반두비>의 두 남녀는 로맨틱코미디에서 봤을 법한 운명적 해프닝을 통해 만난다. 작위적이라는 비판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신동일에게 이들의 만남은 간절한 듯 보인다. 전작인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관계의 파국을 향해 전진하는 반면에 <방문자>가 긍정적인 관계 형성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계층의 관계 맺기는 동상이몽이나, 현실에서 소외된 두 사람의 만남은 ‘연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가장 천대받는 계층인 이주 노동자와 부족한 집에서 살고 있는 공부할 돈이 없는 고등학생, 그중에서도 여성의 만남 또한 신동일에게는 연대의 가능성이 충분한 조합일 것이다. 만약 이주 노동자가 아닌 구준표와 금잔디의 만남이었다면 신동일은 분명 파국을 그렸을 것이다.

MB시대의 결과물인 그 소녀들

민서와 카림이 한국사회 안에서 같은 좌표에 위치한다는 점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신동일 감독이 제일 먼저 떠올렸다는 경찰서 장면은 그중 하나다. 카림은 싸움을 말리려다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서, 민서는 돈으로 자신을 희롱을 하던 부잣집 아들을 응징했다가, 경찰서로 끌려온다. 이주 노동자와는 다른 위치에 있는 듯 보이나, 사실상 민서도 돈과 성적인 공격에 시달리는 처지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카림이 민서의 원어민 선생 하인즈를 만나는 장면은 두 사람의 ‘글로벌’적 좌표를 묘사한다. 미국인 영어선생 하인즈가 “한국 여자들은 다루기 쉽다”고 말할 때, 미국인과 한국인, 한국인과 이주 노동자의 관계는 겹쳐서 떠오른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문제 삼았던 민서의 안마서비스 장면은 ‘이주 노동자 =여고생’이란 등식을 과격하면서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감독은 카림이 손으로 염색기계를 돌리고 있는 장면과 민서가 손으로 안마서비스를 하는 장면을 이어붙였다. 카림은 고향에 있는 가족을 위해서, 민서는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손으로 일한다. 목적은 다르지만, 이들은 각자 한국에서 꿈꾸는 행복을 위해 일하고 있다. <반두비>는 이 두손이 서로를 맞잡는 이야기인 셈이다.

자칫 비루하게만 보일 수 있는 만남이지만 <반두비>는 발랄함을 잃지 않는다. 인상이 좋은 이주 노동자가 성실히 일하고, 자신의 종교의식을 경건히 치르는 모습은 관객이 이 만남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배려다. 성적으로 거세된 이주 노동자가 아닌 욕망의 주체로서 한 남자를 그린다는 점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반두비>의 발랄함을 지탱하는 건 민서의 캐릭터다. 극중 민서는 한국영화사상 가장 정치적이자, 가장 당돌한 여고생이다. 라면을 먹으면서 <YTN 돌발영상>을 보고 <한겨레21>을 읽는가 하면, 한국 여자를 우습게 아는 미국인 영어선생이든 악덕기업주든 분노에 그치지 않고 격파에 나설 줄 안다. 안마서비스업소에서 만난 담임선생을 놀려먹을 수 있는 여유와 장난기도 있다. 게다가 가방에 달린 촛불소녀 배지까지. 민서를 놓고 한국영화에 나타난 여고생의 진화로 설명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촛불소녀의 흔적을 간직한 민서가 한국 여고생 캐릭터의 최신 버전 ‘업뎃’인 것은 분명하다. 민서를 둘러싼 사회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MB’의 기호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민서는 편모 슬하에서 버릇없이 자란 아이가 아니라 소녀들을 얌전히 살 수 없게 만든 MB시대의 결과물이다. 신동일은 지금 같은 시대에서는 금잔디도 민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또한 그래서 더더욱 지금 같은 시대에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금잔디들을 향한 소박한 응원

감독의 말에 따르면 <반두비>는 ‘로맨틱코미디’다. 다만 이주 노동자를 만난 금잔디는 마냥 꿈만 꿀 수 없다는 게 차이다. 그래서 신동일은 단서를 붙인다. “무정부의적 로맨틱코미디가 아닐까? (웃음)” 민서는 카림을 통해 사랑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시선까지 감내해야 한다. 아마도 민서에게 이 여름방학은 가장 치열하게 사랑했고, 그래서 가장 많이 자란 시간이었을 것이다. 민서는 카림을 만나 자신의 좌표를 알게 됐고 그를 통해 ‘오픈 더 마인드’의 태도를 얻었다. 결국 이방인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이야기가 <반두비>다.

지금 <반두비>는 민서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한국의 좌표를 가리킨다. <반두비>의 등급과 관련한 논쟁, 그리고 <반두비>의 제작 단계부터 결집된 안티세력의 공격은 영화 속 세계와 바깥세계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 이면에 숨은 통제의 그림자와 이방인을 향한 과격한 적대심은 현실에서도 전면에 나타나는 중이다. 그 때문일까. 카림을 추억하며 방글라데시 음식을 즐겁게 먹는 민서의 마지막 등장이 그저 흐믓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민서는 어떻게 살아갈까. 학교까지 그만둔 이 소녀는, 나아가 MB시대의 소녀들은, 정말 잘 살 수 있을까? <반두비>는 이처럼 위기에 놓인 한국의 금잔디들을 향한 소박한 응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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