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겨울영화 74편 올가이드 [8]
2001-11-30
글 : 김혜리
그리고도 이렇게나 많이

극장에서 온기를 구한다면 적당한 영화들이 있다. <줄리엣을 위하여>는 임신중에 암 선고를 받은 여주인공과 가족의 이야기. 익숙한 소재지만 다큐멘터리 출신 감독 솔베이 안스파흐의 침착한 시선이 예기치 못한 담담한 감동과 성찰을 끌어낸다. <작별>은 자매애 이상의 자매애를 통해 일상의 일부로만 여겨지는 가족관계의 운명성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서로를 의지하던 자매가 동생이 사랑에 빠지면서 새로운 비극에 빠진다. <뷰티풀 데이즈>(가제)는 <인생은 아름다워>에 미소지은 관객의 감성을 노크하는 휴먼코미디. 나치가 주둔한 체코 시골마을의 순박한 사람들 사이에 피어나는 웃음과 사랑을 그린다. <댄싱 앳 더 블루 이구아나>는 옷을 벗어도 드러나지 않는 스트리퍼 다섯명의 진실을 일주일간의 생활기록을 통해 들춰보는 드라마. 위로는 때로 사람 이외의 존재에서 온다. 일본영화 <하치 이야기>는 17개월을 함께한 주인에게 변함없는 순정을 바친 개의 실화를 담았고 <누와지>는 시시각각 변모하는 구름의 이미지를 통해 임신한 감독이 태중의 아기에게 쓴 러브레터와 같은 독특한 작품이다.

온기 정도로는 언 몸이 녹지 않는다면 열정의 드라마를 곁눈질해볼 일이다. <사랑>은 산과 계곡, 언어 장벽을 타넘는 격렬한 러브스토리.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젊은 목수가 휴가를 떠난 남국에서 16살의 소녀를 만나 탈주로 이어지는 사랑에 휘말린다. <바벳의 만찬>의 가브리엘 악셀 감독 작품. 스페인에서 온 에로틱스릴러 <루시아>에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실연한 웨이트리스 루시아. 연인 로렌조가 입에 올리던 섬에 당도한 그녀는 남자친구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여자들과 만난다.

액션과 코미디는 제철이 따로 없는 기본 메뉴다. 토니 스콧 감독의 <스파이 게임>에서는 은퇴 직전의 CIA 요원 로버트 레드퍼드가 위기에 처한 부하 브래드 피트를 구조하는 마지막 미션에 뛰어든다. <블랙 호크 다운>은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하고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전쟁영화.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특수부대가 1993년 소말리아 군사지도자를 공격한 실제 사건을 다뤘다. <후 이즈 클레티스 타웃?>(가제)은 크리스천 슬레이터 주연의 액션스릴러. 원제로 짐작할 수 있듯이 뒤바뀐 정체성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증오의 대상인 저널리스트로 오해받은 사기꾼이 20년 전 사라진 보석과 연관된 싸움에 휘말린다. 송승헌의 출연작으로 미리 홍보된 원규 감독의 <석양천사>는 컴퓨터 범죄를 소재로 세 여전사의 액션을 펼친다. 앤디 가르시아 주연의 <언세드>는 아들의 자살로 진료를 포기했던 심리학자가 맞이하는 새로운 도전을 다룬 심리스릴러다.

코미디로는 졸업고사 부정을 범했다가 심술궂은 친구에게 들켜 곤욕을 치르는 대학 4학년생들의 소동을 그린 <슬래커즈>, 성전환자 배구팀의 유쾌한 성공담 <철의 여인들>이 있다. <크로코다일 던디 인 L.A>에서는 폴 호건이 옛 모습 그대로 도시생활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야생동물을 휘어잡는다. <걸스 온 탑>은 독일 여성판 <아메리칸 파이>. 오르가슴의 정체가 참을 수 없이 궁금한 세명의 사춘기 소녀가 온갖 모험을 시도한다.

선댄스 각본상 수상작 <하이 아트>는 또다른 색깔의 여자들 이야기다. 알리 시디가 전설적인 사진작가를 만나 새로운 세계에 매료되는 성취욕 높은 잡지 편집인으로 분한다. 인도영화 <마야>는 성인식이라는 이름으로 12살 소녀의 심신을 찢어놓는 폭력적인 악습을 침착하게 고발한다.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에 현존하는 생지옥을 기록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로드무비 <칸다하르>도 개봉관으로 나선다.

가을 개봉을 계획했다가 스케줄을 변경한 영화들도 겨울 극장가를 노크한다. 코언 형제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권투를 통해 성역할의 굴레를 벗어난 소녀의 생명력을 보여준 <걸 파이트>, 19세기의 자매 도끼 살인사건과 과거의 진상을 취재하는 사진작가의 현실을 병치한 캐슬린 비글로의 복귀작 <웨이트 오브 워터>, 파시즘의 전성기에 독일을 방문한 미모의 여배우를 둘러싼 열정의 소용돌이를 그린 <꿈속의 여인>, 폴란드 배경의 형사버디무비 <건 블라스트 보드카>와 워싱턴 정치스릴러 <컨텐더>, 성적 욕망의 어두운 그늘을 그린 타이영화 <잔다라>, 호타루 가와지리 요시아키의 유혈액션애니메이션 <뱀파이어 헌터 D>가 관객과의 조우에 재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