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0억>의 엔딩 크레딧에서 신민아의 자리는 세 번째다. 박희순, 박해일, 그리고 신민아.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자리는 아니다. 대신 그녀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자리다. “제일 마지막에 있어도 좋아요. (웃음)” 혹시 남자배우들에게 묻어가려는 것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제 신민아는 더이상 묻어가기도 힘들 만큼 도드라진 배우다. 크레딧의 맨 앞에 위치한 작품이 없지도 않았다. <무림여대생>이란 제목은 극중에서 신민아가 맡은 소휘를 지칭한 단어였다. <키친>은 주인공 모래의 갈등과 번민만으로 가득 찬 영화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지금 신민아는 “부담없는” 자리를 찾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담은 줄이되, 마음껏 모험을 할 자리다. 최근 신민아의 작품들이 비교적 적은 예산의 영화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녀는 “현실적인 감성을 조금이나마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약간 벗어나 있더라도 거품이 없고, 부담이 없고, 그래서 마음껏 숨쉴 수 있는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10억>에서 연기한 유진도 신민아와 캐치프레이즈를 공유하는 여자다. 낙오가 곧 죽음인 서바이벌 게임에 뛰어든 8명의 사람들 가운데 유진은 너무 튀지도 않고, 처지지도 않았던 마지막 생존자다(스포일러가 아니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자칫 무난해 보일, 그래서 다른 인물들에게 묻힐 지도 모르는 유진은 오히려 신민아에게 모험이었다. “가만 보면 바른말만 해요. 묘한 애라는 건 있지만, 실체는 그려지지 않죠. 그래서 더 힘들었어요. 우리끼리는 유진이가 현실에서는 왕따였을 거라고 했어요. (웃음)” 유진의 실체를 만들려 한 신민아는 결과적으로 감독에게 “어떤 이야기든 눈을 부릅뜨고 말하는” 무서운 여자가 됐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유진의 반응은 어떤 게 맞는 건지, 왜 얘는 대사들이 다 비슷한 건지 따져 물었다. “사실 전 별로 그런 기억이 없는데,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웃음) 제가 변했나 싶기도 했어요. 아마도 배우로서 가질 법한 욕심이었겠죠. 튀면 이상한 캐릭터지만, 그래도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갖고 싶은 게 있으니까요.”
17살 때 <화산고>로 데뷔한 신민아는 10년이 지나 26살인 지금, “배우가 재미있고 부담없는 직업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10년은 긴 시간이지만, 신민아에게는 규정속도다. “제가 좀 더딘 편이에요. 한 작품씩 할 때마다 배우고 부딪혀봐야 깨닫는 게 많아요.” 아직 어떤 작품의 신민아로 기억되는 것보다 외모로만 이슈가 되는 것에 대해 조급함을 가지지도 않았다. 물론 소주든, 노트북이든, 샴푸든 신민아의 CF는 종목과 상관없이 의류CF처럼 보인다. 한국의 모든 여배우가 겪는 일이지만 행사장의 신민아는 특히 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고, “각선미 남부럽지 않죠?” “이 정도는 돼야 초미니죠!” 등의 자극적인 캡션으로 기사화된다. 당연히 축복이다. 그리고 신민아도 그렇게 생각한다. “작품으로도 평가받고 싶죠. 그런데 지금으로선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저는 상업적인 배우지, 연기파 배우는 아니니까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이젠 제 복이 아닐까 싶어요. (웃음)” 신민아는 욕심을 줄이면서 현재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좌표를 확인하는 중이다. 이쯤되면 신민아의 소주CF 카피는 그녀의 일기장에서 발췌한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1kg만 빠져도 다르고, 1inch만 줄어도 좋고, 1cm만 줄어도 편하다고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