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최후의 순간, 그의 피를 간직하려…
2009-08-11
글 : 문석
공공의 적 또는 공공의 우상, <퍼블릭 애너미>가 비추는 대표적 갱들의 얼굴

<퍼블릭 에너미>는 이른바 ‘공공의 적 시대’(1931~35)를 주무대로 삼는 영화다. 이 시대는 기존과 다른 스타일의 새로운 갱들이 속속 출현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알 카포네를 비롯한 1920년대 갱들이 금주법 시행으로 오히려 확장된 지하 주류산업과 치솟는 주가라는 안정된 기반 위에서 ‘범죄 비즈니스’를 꾸려갔다면, 대공황 전후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정처없이 이곳저곳을 돌며 은행강도와 납치, 살인 등을 저질렀던 30년대의 갱들은 무정부주의, 심지어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었다. <퍼블릭 에너미>가 존 딜린저(조니 뎁)는 물론이고 프리티 보이 플로이드(채닝 테이텀), 프레드 바커(랜스 베이커), 앨빈 카피스(지오바니 리비시), 베이비 페이스 넬슨(스티븐 그래험) 등 이 시대의 대표적 갱들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필연적이다(여기서 빠진 주요인물이라곤 보니와 클라이드 커플과 머신건 켈리 정도다).

‘영광의 1위’는 알 카포네

‘공공의 적’(Public Enemy)이라는 어휘를 가장 먼저 쓴 건 <시카고 트리뷴>의 프랭크 J. 로시였다. 그는 당시 시카고를 주름잡던 범죄자들을 언급하면서 이 말을 썼고 10명의 순위를 함께 적었다. 당시 영광의 1위를 차지해 ‘공공의 적 1호’(Public Enemy Number One)로 불린 인물은 당연히 알 카포네였다. 그리고 1931년에는 제임스 캐그니 주연의 <공공의 적>(Public Enemy)이 공전의 성공을 거두면서 이 말은 본격 유행을 타게 된다. 이 말을 이어받은 건 FBI의 수장 에드거 J. 후버였다. 1931년 그는 이 새로운 갱들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갱들을 단순한 범죄자나 질서파괴자가 아니라 ‘적’으로 규정한 FBI는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중은 갱단을 ‘공공의 친구’로 받아들였다. 치솟는 물가와 만연한 실업, 부패한 관료 등에 넌더리났던 당시 미국인들은 기존 체제와 사회적 가치를 전복하던 이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에게 팁을 후하게 뿌리고 다니는 이들은 차라리 현대의 로빈후드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들은 각종 매체에 자신들의 모습을 노출하기를 좋아했고, 선정적 저널 또한 이들을 이용하려 했기에 갱들은 사실상 대중 스타로 떠올랐다. 이처럼 뜨거운 인상을 남긴 까닭에 이들은 훗날 영화, 소설, 음악 등 대중문화 속에 숱하게 등장하게 된다.

존 딜린저와 ‘보니와 클라이드’

존 딜린저

가장 널리 알려진 공공의 적은 존 딜린저(1903~34)다. 경찰관 여럿을 살해했고 20여곳의 은행을 털었으며 탈옥까지 2번 성공한 그는 살아 있는 전설이 되기에 충분했다. 놀라운 점은 그가 화려한 범죄 경력의 대부분을 1933년 9월부터 1934년 7월까지, 그러니까 10개월 만에 쌓아올렸다는 사실이다. <퍼블릭 에너미>에 소개되지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딜린저는 120달러를 훔친 죄로 8년 반 동안 감옥에 있다 1933년 5월 가석방됐다. 그해 9월 은행강도로 ‘복귀’하지만 재수없게 곧 경찰에 체포된 그는 일당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한다. 이후 딜린저 갱단은 미국 중서부 지방의 은행을 연속적으로 털어 모두 3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다시 부주의한 실수로 붙잡혔다가 나무 권총으로 간수를 속여 두 번째 탈옥에 성공한 딜린저의 ‘2기’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를 공공의 적 ‘넘버 원’으로 꼽은 FBI가 전력을 다해 추적했기 때문이다. ‘리틀 보헤미아 사건’ 이후 시카고에서 숨었던 그는 1934년 7월22일 바이오그래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던 중 FBI 요원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그가 갱스터영화 같은 최후를 맞던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흘린 피를 손수건과 치마에 적셨다. 피를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싶어 할 만큼 딜린저는 대중의 우상이었다.

딜린저 못지않게 대중의 인기를 누린 갱은 ‘보니와 클라이드’, 즉 보니 파커(1910~34)와 클라이드 배로(1909~34)다. 흔히 ‘배로 갱단’으로 알려진 이들은 은행뿐 아니라 소규모 상점이나 주유소까지 털었지만, 함께 벌인 ‘선행’ 덕분에 의적 취급을 받기도 했다. 납치한 경찰관이나 피해자를 죽이는 대신 돌아갈 차비까지 쥐어주며 풀어주곤 했기 때문이다. 또 각종 매체에 실린 이들의 사진, 그중에서도 멋진 자세로 권총을 들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는 보니의 모습은 모던한 느낌마저 심어줬다. 물론, 보니 파커가 강도행위에 가담해 총을 쏘며 살인을 했다는 세간의 믿음은 소문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난 뒤 흘러나온 여러 증언은 그녀가 운반책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 커플은 최후의 순간까지 장렬한 삶을 살았다. 1934년 5월23일 매복 중이던 경찰들은 이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에 기관총을 갈겼고, 보니와 클라이드는 각각 50발씩 총알을 맞고 즉사했다. 우연히 만나 불같이 사랑을 나누고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함께했던 보니와 클라이드는 대공황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퍼블릭 에너미>에서 FBI 요원 멜빈 퍼버스(크리스천 베일)가 쏜 장총에 맞아 죽는 프리티 보이 플로이드(1904~34)는 18살 때 우체국에서 3달러50센트를 훔친 것을 시작으로 범죄세계에 뛰어들었다. 그 또한 은행강도를 비롯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1933년 6월의 ‘캔사스시티 대학살’이었다. 그와 패거리는 캔사스시티 유니온철도역에서 강도짓을 하려다 FBI 요원 1명, 캔사스시티 형사 2명, 오클라호마시티 경찰관 1명을 살해했다. 그는 딜린저보다 앞서 ‘공공의 적 1호’로 낙인찍혔고 퍼버스를 비롯한 FBI 요원들에 의해 사살됐다. 5년 뒤 플로이드는 노래로 부활해 전설이 됐다. 1939년 전설적인 포크싱어 우디 거스리가 발표한 <발라드 오브 프리티 보이 플로이드>는 “어떤 놈은 권총으로 너를 털고 어떤 놈은 만년필로 터네”라는 가사를 담아 공공연히 더 큰 ‘도적질’을 하는 지배 계층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루즈벨트 대통령 친구 납치했던 카피스

베이비 페이스 넬슨(1908~34)은 13살 때부터 절도로 소년원을 오갔던 타고난 갱이다. <퍼블릭 에너미>에서 그랬듯, 그는 존 딜린저의 ‘2기’ 활동에서 주축 멤버로 활약했다. 대중에게 로빈후드 이미지를 풍겼던 다른 갱들과 달리 넬슨은 진짜 악당 냄새를 풍겼다. 다혈질인 성격을 주체하지 못해 12명의 경찰관과 숱한 구경꾼을 살해했던 그는 ‘탈신화’된 갱이었다. 앨빈 카피스(1907~79)는 마지막 ‘공공의 적’으로 기록된다. 그가 프레드 바커 등 바커 형제와 함께 결성한 ‘카피스-바커 갱단’은 납치를 주특기로 삼았다. 1933년 양조업자를 납치해 10만달러를 챙겼던 이들은 곧 은행가를 납치해 20만달러를 뜯어냈다. 간단해 보이던 이 비즈니스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구를 납치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대통령의 관심 속에서 펼쳐진 거대한 수사로 조직이 삽시간에 괴멸된다. 카피스의 유일한 행운은 산 채 붙잡혔다는 점이지만, 이후 알카트라즈 감옥에서 26년을 보냈으니 그의 운도 대단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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