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충무로 영화제의 배우들] 디스 이즈 홍콩!
2009-08-25
글 : 주성철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키워드로 고전과 현재의 만남을 꾀하고 있다. <씨네21>은 여러 프로그램들 중에서 특별히 인물들에 초점을 맞춰봤다. 특히 ‘씨네 아시아 액션!’ 부문을 위시한 홍콩영화 프로그램은 2000년대 이후 홍콩영화계의 일목요연한 총정리라 할 정도로 야심차다. <절청풍운>의 고천락과 오언조, <친밀>의 정이건과 임가흔, <재생호>의 유청운 등은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한다. 지금껏 그 어떤 영화제와 비교해도 ‘홍콩영화의 현재’라는 의미에 가장 가까운 프로그램이다. 더불어 ‘어제’를 추억하는 ‘레트로’ 섹션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주최하는 신성일 회고전과 미국 대중문화의 가장 독보적인 아이콘 중 하나인 마릴린 먼로 회고전이 눈에 띈다. <씨네21>은 8월24일(월)부터 9월1일(화)까지 열리는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에 공식 데일리지로 참여할 예정이다.

올해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홍콩영화들의 향연이다. 유청운, 고천락, 오언조, 웅흔흔, 정이건, 임가흔 등 초청 리스트도 화려하다. 우리가 만나게 될 그 작품들 속에서 추천 배우들을 꼽아봤다. 그리고 관람이 여의치 않다면 라이벌 배우의 얼터너티브 초이스를 추천한다.

시작하자마자 죽더니…

<재생호>의 유청운

<재생호>는 역시 유청운이 주연하고 위가휘가 연출했던 <매드 디텍티브>(2007)를 떠올리게 하는 미스터리 드라마다. 누아르풍의 작품은 아니다. 1998년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현장에서 아버지 토니(유청운)는 죽고 어머니 맨디(임희뢰)와 딸 ‘멜로디’와 아들 ‘오스카’는 살아남는다. 멜로디는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뒤 작가지망생인 멜로디는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을 써나가기로 결심한다. 과거 그 사고로 인해 실제와 반대로 나머지 가족들이 다 죽고 아버지 혼자 살아남았다는 설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유령이 된 맨디와 멜로디, 오스카가 아버지 곁에 나타나 그를 돌봐주기 시작한다. 게다가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그들이 토니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과 유령의 경계가 지워진 것이다. 소설과 별개로 실제 현실의 맨디와 오스카도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멜로디가 앞을 보지 못하고 홀로 살아가는 소설 속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나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현실의 딸과 가상세계의 아버지는 같은 처지가 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유청운이 사고로 죽으니 팬들은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그는 영화 속 소설로 다시 살아난다. 말 그대로 ‘재생’. <매드 디텍티브>적인 판타지를 가족영화로 재구성했다고나 할까. ‘인간과 유령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나중에는 그 사고로 인해 누가 살아남았고 죽었는지까지 무의미한 단계로 나아간다. 평화로운 그 가족의 집 창문을 늘 오가던 피크 트램은 이제 이승과 저승을 잇는 열차처럼 묘사된다. 두기봉과 함께 1996년 ‘밀키웨이 이미지’를 설립하여 현재에 이르는 위가휘 감독은 두기봉이 ‘밀키웨이의 실제 브레인’이라 말할 정도로 탁월한 아이디어와 시나리오 창작, 프로모션 능력을 발휘한다. <재생호>는 위가휘 특유의 초현실적 무드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두기봉 영화에서 보여지던 그런 느낌들을 머리 속에서 ‘재생’하며 겹쳐보면 더욱 흥미로울 듯. 더불어 현재 홍콩에서 막 개봉해 흥행 돌풍을 이어가는 <절청풍운> 역시 유청운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 프리뷰용 스크리너조차 없어 보지 못한 이 작품은 이번 영화제에서의 관람이 거의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나 다름없다.

Alternative Choice: 역시 유청운의 <절청풍운>

격투기 파이터의 비릿한 매력

<군계>의 여문락

아마도 작품 편수는 물론 그 성과적인 측면에서 여문락(1981년생)은 현재 홍콩영화계의 가장 탁월한 차세대다. <무간도> 시리즈로 함께 주목받았던 진관희가 완전히 도태된 지금, 아니 사실 그 ‘진관희 파문’이 터지기 전부터 여문락은 그보다 앞서나갔다. <용호문>(2006), <와호>(2006), <총애>(2007), <남아본색>(2007), <화화형경>(2008) 등은 물론 2007년작인 <군계>는 <푸른 이끼>(2008)와 더불어 여문락 단독 주연의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준 작품이다. 비중은 적어도 팡호청의 <경박한 일상>(2007) 등에서 보여준 가볍고도 느슨한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최근 이병헌의 출연작이기도 한 쩐 안 훙(트란 안 홍) 감독의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도 모습을 비췄는데, 물론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쩐 안 훙이 <씨클로>(1995)의 양조위에 이어 주목한 ‘홍콩의 얼굴’이 바로 여문락이다.

상당한 팬을 거느린 <군계>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소년 시절 부모님을 살해한 나루시마 료(여문락)는 교도소에서 구로카와(오진우)에게 가라테를 배운다. 약해빠졌던 그가 구로카와로 인해 내면의 분노에 눈뜨게 되고 출감 뒤 격투기 파이터로서의 인생을 산다. 유덕화가 엽위신 감독과 더불어 가장 주목한다고 말한 정보서 감독의 <군계>는 아직도 연재가 진행 중인 원작의 야수성을 잘 살려낸다. 참혹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원작의 묘사 수위를 낮추면서도 나루시마 료의 잔인한 성장과정을 꽤 밀도있게 그려낸다. 여문락은 시뻘건 눈에 혀를 낼름거리는 나루시마 료 특유의 비릿한 느낌에 잘 녹아들었다.

Alternative Choice: <구교구>의 진관희

홍콩 누아르 같은 바람피기 대작전

<대장부>의 증지위

팡호청은 현재 홍콩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니 이제는 ‘유망한 신인감독’이라는 표현이 더이상 어울리지 않는 젊은 거장이다. 2003년작인 <대장부>는 <너는 찍고, 나는 쏘고>(2001) 등 팡호청 감독의 장르를 헤집는 초창기 유머 감각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제목도 ‘대장부’고 ‘2002년 실제 있었던 일에 바탕하고 있다’는 자막부터 뭔가 비장하게 시작하지만 이내 그것은 아내가 없는 14시간 동안 바람을 피우려고 갖은 작전을 고안해내는 유부남들의 코믹한 행각을 그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명단부터 화려한 증지위, 진소춘, 두문택 등의 네 남자는 아내가 공항으로 떠남과 동시에 전혀 흔적이 남지 않도록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을 준비하고, 성능 좋은 콘돔을 마련하며, 절대 휴대폰은 안되니 새 전화카드를 사서 택시 한대를 대절해 ‘바람’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낸다. 하지만 냄새를 맡은 아내들은 즉각 비행기에서 내려 그들을 추적한다.

팡호청 감독은 바람 피우려는 네 남자의 행각을 거의 무협영화 혹은 필름누아르 스타일로 완성한다. 성공적인 바람을 위해 향을 피우는 증지위의 모습은 <무간도>에서 조직의 번성을 기원하던 그의 모습과 똑같고, 카메라를 든 흥신소 직원들을 상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마치 홍콩누아르의 총격전처럼 묘사한다(카메라가 바로 총이어서, 몸을 날려 카메라를 찍는 모습이 영락없이 <영웅본색>이요 <첩혈쌍웅>이다). 이 유부남 조직을 이끄는 증지위의 모습은 시종일관 폭소를 자아내며, 성질이 급해 일찍 비아그라를 먹어서 하루 종일 되는 일 없이 발기한 상태로 보내는 두문택의 모습도 귀엽다. 장르의 연금술사처럼 팡호청 감독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특별출연한 양가휘와 진백상, 그리고 정말 카메오로 등장하는 알란탐, 홍금보의 모습도 반갑다.

Alternative Choice: <야수형경>의 황추생

닮은꼴 배우 총출동, 올해의 장면!

<추영>의 오진우

<무간도> 시리즈의 ‘황 국장’ 황추생과 더불어 오진우만큼 열혈팬들을 거느린 배우도 없을 것이다. 국내에는 <쌍웅>(2003)의 악당, <무간도2: 혼돈의 시대>(2003)의 새 보스 예영효, <익사일>(2006)의 네 친구 중 한명 정도로 얼굴을 비췄지만 오진우는 홍콩영화 마니아 사이에서 패스워드 같은 존재다. ‘홍콩의 알 파치노’라 불릴 정도로 다재다능한 카리스마를 뽐내는 그는 아주 가끔 직접 연출도 하는데 <추영>은 <성사>(2007)를 함께 연출했던 맥자선과 다시 한번 공동 연출한 코믹무협 드라마다. 5명의 쿵후 마스터들이 전설의 보물지도를 놓고 격렬하게 싸운다. 절세고수 창(오진우)은 무림을 떠돌며 유유자적하는 인물이지만 어쩌다보니 사건에 휘말린다. 그들이 대립하는 사이 지도는 실종되고 만다.

오진우가 무협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외지만 그는 홍콩 무협영화의 거장 호금전 감독의 오랜 팬이다. <추영>은 바로 호금전의 작품 중 가장 희극적 요소가 많은 <천하제일>(1983)을 떠올리며 만든 영화다. 헤어스타일이 눈에 띄는 오진우는 방랑자처럼 떠돌며 역시나 악기까지 잘 다루는 매력적인 고수인데 <추영>에는 프랑스 향수도 등장하는 등, 역시 오진우가 출연한 <비협소백룡>(2004)처럼 ‘퓨전 사극’이라 보면 될 것 같다. 그래도 지붕을 그림처럼 날고 소용돌이가 이는 몇몇 무협신들은 무척 황홀하다. 압권은 보물지도를 두고 다투는 일군의 무리들이다. <연인>의 유덕화, <영웅>의 이연걸, <사학팔보> 등 무술영화 시절의 성룡을 ‘못생기게’ 닮은 3인조를 등장시키는데 정말 배꼽 잡게 만든다. 성룡을 닮은 이는 영화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재키 찬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영화 속 그의 이름은 ‘재키 탕’). 심지어 실제 성룡의 아들인 방조명이 영화에서 그와 대화하는 장면도 있다. 라스트신은 더 압권인데 그 세명 외에 주걸륜, 사정봉, 임현제 등 현재 홍콩 스타들의 닮은꼴 엑스트라들이 대거 등장해서 뒤엉킨다. 홍콩 희극영화로서는 거의 ‘올해의 장면’이라 해도 좋을 정도. 그런데 실력으로서 그들 위에 군림하는 자가 바로 오진우이니 그의 ‘자뻑’에 두손 두발 다 들게 된다.

Alternative Choice: <살파랑>의 임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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