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코코 샤넬> 관람 가이드 A to Z [1]
2009-09-01
글 : 강지영 (GQ KOREA 패션디렉터)

오늘도 백화점의 명품관 1층 쇼윈도는 샤넬이 장식한다. 샤넬의 유명한 트위드 재킷을 입은 마네킹들이 샤넬의 저명한 퀼팅백을 들고 몸을 30도로 뒤튼 채 여성들의 혼을 빼놓는다. 그러니까 이런거다. 영화광인 당신에게 샤넬이라는 이름은 손바닥만한 가방을 기백여만원에 팔아먹는 사치스러운 명품 기업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번 가정해보자. 만약 코코 샤넬이 옷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요즘 여자들 인생 꽤나 갑갑했을 거다. 샤넬은 여성들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땅에 질질 끌리는 드레스의 밑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어깨에 메는 숄더백을 처음으로 디자인했다. 장례식에나 입고 가던 검은색을 가장 세련된 색으로 탈바꿈시켰다. 현대 여성들이 입는 실용적인 현대 의복은 코코 샤넬이라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로부터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다. 패션 역사의 장 뤽 고다르 ‘코코 샤넬’과 영화 <코코 샤넬>을 A부터 Z까지 풀어보자. <GQ KOREA> 패션 디렉터 강지영의 글은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줄 것이다. (김도훈)

Avant 아방

영화 <코코 샤넬>의 원제는 <Coco Avant Chanel>. ‘샤넬’이 되기 전의 ‘코코’라는 뜻이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샤넬이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전의 역사만을 그린다.

Books 책들

영화가 영감을 얻은 에드몽드 찰스 룩스의 <샤넬과 그녀의 세계: 친구, 패션, 명성>은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 국내 출간된 바이오그래피는 <코코 샤넬>(앙리 지멜 지음·작가정신 펴냄), <코코 샤넬-내가 곧 스타일이다>(카타리나 칠코프스키 지음·유영미 옮김·솔출판사 펴냄)가 있다. 아이들을 위한 위인전을 원한다면 <여성에게 자유를 선물한 패션의 혁명가, 코코 샤넬>(미셸 퓌에크, 브리지트 라베 지음·다섯수레 펴냄)를 참조하시길.

Coco Chanel 코코 샤넬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던 여인

코코 샤넬은 오랫동안 오해받았다. 탐욕스러운 유미주의자이자 상류사회를 위해 헌신한 세헤라자데 같은 여자, 정부는 두되 남편은 원치 않았던 방탕한 쾌락주의자, 검약한 여자들도 거울 앞에서 탄식하게 한 사치와 낭비의 상징적 방조자. 조지 버나드 쇼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여성으로 퀴리 부인과 코코 샤넬을 꼽았을 때 대중은 퀴리 부인을 20세기의 정신적인 유산이자 위인으로 칭송하면서도 샤넬은 물질 사회의 필요악으로 마지못해 인정했다. 그러는 한편, 라듐의 발견보다 카디건 슈트의 발견에 소심하게 열광했다. 그 시절의 여자들에게 샤넬은 본능이었다. 남자들조차 “샤넬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여자가 아니다”라고 했으니까. 코코 샤넬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종류의 찬사와 비판에 냉담했다. 끊임없이 줄담배를 피우고 커트 머리를 흔들면서 신랄한 어조로 짓이기듯 말했다.

그녀는 집에서 쿠키나 집어먹는 한가한 여자들을 혐오했다. 시종에게 양말을 벗기게 하는 돈 많은 여자들을 위해서는 만들 옷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상류층 흉내내기에는 관심이 없었고 남자들의 호의를 위해 가녀린 척하는 일은 태생적으로 못했다. 왜냐하면 샤넬 자신이 그런 연약한 인생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으므로. 가브리엘 샤넬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컸다. 자라서 돈벌이를 위해 재봉사가 됐지만 바느질에 서툴렀다. 훗날 “바느질하는 순간보다 떨어뜨린 바늘을 찾는 데 더 많은 순간을 썼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소녀 샤넬은 가난하고 불행했지만 한편으로는 낙천적이고 쾌활했다. 마음 속에는 섬광 같은 야심도 있었다.

카바레 가수 시절, 샤넬은 자신의 지정곡이었던 <누가 코코를 보았니?>에서 따온 명랑한 이름 코코를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카바레에서 만난 남자의 별장에 살면서 그 시절의 패셔너블한 창녀와 정부는 모두 목격했다. 그때 본 돈 많은 여자들의 옷차림이란 모자에 과일을 붙이는 식의 비현실적인 허세였다. 남의 돈으로 차린 부티크에서 샤넬은 드레스의 코르셋을 빼고 모자의 깃털을 떼어내고 구두 굽을 잘라냈다. 여자 옷에 처음으로 주머니를 달고 재킷을 만들었다. 그녀는 “낮에는 애벌레 모양의 옷이, 밤에는 나비 모양의 옷이 필요하다. 애벌레 모양은 편하고 나비 모양은 사랑스러우니까. 여자에게는 기어다니는 드레스와 날아다니는 드레스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코코 샤넬의 옷은 공작 부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20세기의 여자를 위한 것이었다. 카멜리아의 부유하고 섬약한 뉘앙스에 감싸인 이미지, 이를테면 머리에 동백꽃을 꽂고 진주 알을 세면서 강아지 등이나 쓰다듬는 여자는 샤넬의 여자가 아니다.

코코 샤넬은 그 자신이 진품과 모조 진주를 섞어서 목걸이를 만들고 발목이 드러나는 바지를 입는 활동가였으며 강에서는 플라잉 낚시를, 초원에서는 말타기를 즐기는 진보적인 여자였다. 또한 누구보다 맹렬하게 살았으며 “쉬는 것만큼 나를 피곤하게 하는 건 없다”고 말하는 일중독자였다. 알려진 것처럼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했지만 한편으로는 늘 쓸쓸해했고 마음이 약했다. 언제나 사랑을 원했지만 정작 사랑에는 불운했다. 당대의 유명인사인 스트라빈스키, 달리, 피카소와 장 콕토의 구애를 받았어도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는 모두 요절하거나 사고로 잃었다.

그녀는 나이 든 어느 날, 스스로를 ‘마음이 고약하고 화를 잘 내며 도둑에다 거짓말쟁이, 엿듣기의 명수’라고 자조적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린 가브리엘 샤넬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일요일이 제일 싫다던 샤넬은 오랫동안 살아온 파리의 리츠호텔에서 일요일에 죽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문객들은 그녀가 평소 숭배하던 흰 꽃을 약속처럼 바쳤고 오직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만이 빨간 꽃을 무덤가에 놓았다. 샤넬이 떠난 뒤 사람들은 샤넬을 얘기할 때 장 콕토의 말을 꺼냈다. 그 어떤 말보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을 제대로 표현한 문장들이었으므로.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잔인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자. 분노, 변덕스러움, 친절함, 유머, 반짝이는 생각, 검소함, 그리고 관대함이 샤넬이라는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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