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한국적, 작가적, 장르영화에 미래가 있을까
2009-09-17
진행 : 정한석
정리 : 이주현
김영진-이동진-허문영, 영화평론가 3인이 새로운 대중영화의 상을 모색한다
김영진, 허문영, 이동진(왼쪽부터)

[round 1] <해운대>의 1천만 관객 동원과 그 의미

이동진: <해운대>부터 얘기해보자. 1천만 영화는 거대한 사회적 현상과 결합하여 생기는 특수한 경우라 지적되어왔다. 앞의 네편의 1천만 영화는 말하자면 ‘사회적 신드롬’ 속에 1천만명을 넘었다. <해운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이한 사례로 보인다. 이 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산업의 장르화, 분업화, 산업화가 어떤 특정한 지점에 도달했다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재난영화를 관객의 일정한 볼거리로 만들었다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허문영: <해운대>의 경우 할리우드식 하이 컨셉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내 생각에는 이 영화와 비교하기 좋은 영화는 앞선 네편의 1천만 영화보다 지금으로부터 딱 십년 전에 만들어진 <쉬리>가 아닌가 싶다. <쉬리>의 성공은 비로소 한국영화를 산업화 단계로 접어들게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쉬리>와 같은 방식으로 성공하겠다고 달려든 영화는 그 이후 모두 실패했다. 그 대신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당대의 욕망을 자기도 모르게 읽은 영화들이 1천만을 넘었다. <괴물> <왕의 남자> <실미도> 심지어는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다소 그런 면모가 있다. <쉬리>가 이를테면 수공업적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스펙터클 효과의 최대치를 보여줬다면 <해운대>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전면적 운용으로 할리우드식 스펙터클의 근사치를 보여준다. 몇 가지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로맨스, 인간관계의 복잡한 갈등들을 스펙터클의 시각적 효과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보인다.

김영진: 그런데 1천만을 동원한 영화들 가운데 <해운대>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제일 쉬워 보이는 면모가 있다. 그 안에 어떤 뜨거운 발화 지점이 있다기보다 ‘어, 볼 만하네’라는 정도의 느낌을 끌어낸다는 뜻이다. 쓰나미도 압도적이라기보다 후반부로 갈수록 만만해 보인다. 엄정화가 구출된 뒤 오는 그 쓰나미는 이제 무섭다기보다는 만화적으로 보인다.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는 시대의 결핍을 건드리는 게 있었고 내파되는 게 있었다. 블록버스터로는 이례적으로 비극적이었다. <해운대>는 재난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서둘러 봉합해버린다. 이 정도쯤이면 재미있겠지 하는 계산이 있다.

허문영: 잘 계산된 영화가 이렇게 성공한 이상, 지금 현재 추세로 볼 때 감독의 창의성에 대한 투자가 앞으로 과연 이전만큼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봉준호의 <괴물>에, 이준익의 <왕의 남자>에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건 그들의 어떤 예술적 개성을 떠나 독특한 신뢰가 있어 가능했던 것인데,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박찬욱과 봉준호와 이창동에게 영화산업이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계속 지지할 것인가. 그 점이 좀 의문시된다. 하이 컨셉 영화에 자본이 집중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된다는 거다.

이동진: 난 그런 의미에서 1천만이라는 숫자에 착시가 있는 것 같다. <해운대>의 1천만이 산업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미지수라고 본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영화는 영화다>의 흥행이 산업적으로 미친 영향보다 <해운대> 1천만이 산업적으로 미친 영향이 더 적다고 본다. 단, 유사 할리우드 전략은 90년대에 통한 것처럼 2000년대에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해운대>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기술적인 완성도에 있다고 본다. 완성도라는 게 할리우드영화와 일대일로 비교하면 항상 처졌는데 한국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한국 관객이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기술적 완성도를 보고 충분히 즐길 만한 오락영화라고 생각한 것 같다.

김영진: 결국 수년간 대박영화 시스템이 한국영화를 죽여왔다. 이런 시스템이 과연 좋은 건가 싶다. 그러니까 대박 전략이 유효하다 치더라도 과연 그것이 한국영화산업의 재기에 도움이 될까 싶다. <해운대>는 그 안에 감독의 야심이 안 보인다. 광안대교 CG 활용은 참 재미있다. 싼티 나면서 재미있다. 그런 장면에서 감독의 색이 보이는 거다. 하지만 쓰나미 몰려오는 장면에서는 무언가 끓어오르는 게 없다.

허문영: 해운대 1천만이라는 성과의 산업적 영향력이 크지 않을 거라는 두 사람의 의견에 나는 약간 유보적 입장이다. 일단 <해운대>의 동아시아쪽 흥행 결과, 중국 개봉 성적을 기다려보아야 한다. <쉬리>가 나왔을 때 <쉬리>의 파괴력 중 하나는 내수뿐 아니라 동아시아 시장에서 굉장히 큰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해운대>가 동아시아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으로 판명난다면 이런 부류의 블록버스터 전략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round 2] <국가대표>, 관객을 압도해야 하나 그에 맞추어야 하나

김영진: <해운대>가 무언가 던져놓고 겸손하게 수습하는 식이라면, <국가대표>는 애초 문제제기 방식을 과격하게 하는 것 같다. 관객에게 일부러 생채기를 주려 한다. 재미있기는 한데 차마 눈물은 안 나더라. 노골적으로 울리려고 하니까 말이다. 얼핏 세련되어 보이지만 실은 우악스런 방식으로 내러티브를 짜는 게 아닌가. 시나리오를 읽으며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감독이 이걸 어떻게 찍을까 궁금했다. 실제 영화에서는 요령있게 넘어가고 봉합하더라. 그럼에도 다소 쑤셔넣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내러티브 방식은 말하자면 반칙을 넘어 변칙은 아닌가. 이게 정통적인 대중영화로서 오래갈 수 있는 방식인가 생각하면 다소 회의적이다.

이동진: 이 영화는 딱 평균치의 관객을 울리고 웃긴다. 우연이 아닌 건 김 감독의 지난 세편의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음악도 잘 쓰고, 가족관계를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지도 잘 안다. 그러면서 위선 같은 게 없다. 감독이란 자의식에 휩쓸리지 않는다. 이번에는 그 소재가 스키점프였던 거다. 그런 식으로 바꿔가면서 만든다. 감독의 본성이라기보다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영진: <국가대표>는 선형적인 감정들이 아니라 굉장히 덜그럭거린다. 그러다 갑자기 설명될 수 없는 캐릭터도 나온다. 종종 개연성을 무시하고 갑자기 눈물을 보인 다음 넘어간다. 이런 식의 감정처리 방식이 유효할까 묻는 거다. 상업영화가 가져야 할 어떤 표준 방식에 이런 식으로 변칙을 쓸 때 어느 정도 생명력이 생길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그걸 자꾸 상업영화의 표준으로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대중영화가 대중을 안다고 영화를 만들면 프로페셔널한 면모가 사라진다. 감독은 뾰족해야 하고 관객은 압도당하길 바란다. 그런데 점점 수평이 되고 있다. <해운대>도 그렇지만,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나서도 ‘야 죽인다’ 이런 느낌보다 ‘그냥 재밌네’ 정도다. 그런 정도가 지금 상업영화나 대중영화의 파워인가.

허문영: 영화산업이 영화관객의 기호를 정확히 읽고 텍스트에 반영해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것 자체는 좋건 싫건 불가피한 일이다. 어느 면에서 정확히 계산된 영화들이 예상대로 상업적 성공을 영화산업 중심부에서 계속 거둬주면 산업이 안정화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 혜택을 누가 볼지는 분명 차후 문제긴 하겠지만 그런 효과 자체를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한국 대중영화의 가장 큰 흥행 패턴 중 하나는 불안정성이었기 때문에, 산업 종사자들은 아마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당연히 좋아할 만하다. 중요한 건 그 효과가 얼마나 가는가 하는 것이다. 다만 할리우드의 예를 보면 그렇게 오래가진 않는다. <고질라>도 그런 경우이지만 90년대 대작들이 계산된 요소만 결합하면서 대중적 성공을 거두려 했을 때 마침내 끔찍한 실패를 거뒀다. 그때쯤 할리우드는 B급 장르영화를 만들던 이들을 중심부로 불러들여 변화를 꾀했다. 그러면서 피터 잭슨 같은 변방의 괴짜 예술가들이 개성적인 대작들 만들어내는 희한한 시대가 열린 거다. 한국은 어떤 단계를 밟을 것인가. 예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해운대>나 <국가대표>의 흥행 성공은 적어도 상업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표준적인 호소력을 예상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동진: 시기적으로 90년대 말 2000년 초까지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는 충무로가 관객을 이끌었거나 도약한 느낌이었다. 열매를 맺게 하는 영화들,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열매를 정확히 따서 먹는 영화들에 가깝다. 그런데 이 열매를 따먹기만 하는 영화들이 자꾸 거듭 소비되기만 하면 관객이 지레 질리는 상황도 충분히 올 수 있긴 할 거다.

김영진: 산업 자체의 패턴으로는 이런 영화들이 승리한 게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충무로 영화인들을 만나보면 투자가 안돼서 왕년의 흥행 감독조차 투자를 전혀 못 받는다고들 한다. 세대 교체가 되고 있고 시스템 안에서 승인된 유형의 영화들이 나오는데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몇편 영화가 대박 치는 시스템이 산업적으로 좋은 건가 싶다. 투자는 계속 잘 안될 거고 그런 유사한 유형의 영화만 만들어질 것이고 실력있는 스탭들은 사장될 것이다.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시장에서 이득을 내고 일자리를 내야 할 것 같다.

[round 3] 대중영화로서 박찬욱과 봉준호의 생존은?

이동진: <박쥐>나 <마더> 경우에는 그 영화들의 흥행이 기대보다 덜 됐다고들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정도 흥행도 놀랍다. 그 감독들의 브랜드 파워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200만명을 넘기겠나. 그 영화들은 굉장히 어둡고 음산하고 감독의 미학적 비전을 끝까지 밀고 간 영화들이다. 감독의 이름값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인데 난 그 반대다. 대단한 브랜드 파워다. 다만 지금 관객은 이전보다 확실히 감독의 브랜드 파워라는 요소에 급격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한국 대중영화에서 그동안 감독의 브랜드 파워라는 건 대단히 큰 특징이었다. 근데 지금은 다 귀찮아하는 것 같다. <박쥐> 보면 끔찍하고 <마더> 보면 기분 나빠지는데 내가 왜 그걸 보고 꿀꿀해져야 하나 생각하는 것 같다. 1천만 영화 5편의 감독 브랜드 파워로만 보면 <해운대>가 제일 약하다.

김영진: 그건 내게도 흥미로운 주제다. 작가의 장르영화들은 2000년대 한국영화에서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게 소진의 단계인지 과도기인지 아직은 판단하지 못하겠다. 박찬욱이나 봉준호만 보아도 그렇다. 1970년대 뉴 할리우드 시네마를 보면 작가들의 야심이 부추겨졌지만 산업과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서 그 시기는 종결됐다. 2000년대 중반 한국영화가 그렇게 보일 때가 있다. <박쥐>나 <마더>는 박찬욱이나 봉준호의 전작들에 비해 어떤 잉여가 있다. 봉준호는 <마더>에서 직각으로 앵글을 줄곧 잡으면서 모자간의 관계를 찍는 모험을 감행했다. 박찬욱의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 전환의 순간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박쥐>는 유독 더 현란한 장면 전환이 많은 영화다. 그만큼 감독이 하고 싶었던 걸 여기저기 배치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이 산업 지형에서는 시효를 다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도 다음 영화를 찍을 때는 다시 어떤 산업적 균형을 맞춰야 하는 건 아닐까 한다. 산업적으로 그 균형을 맞춰줄 제작자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많지 않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허문영: <해운대>가 1천만을 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든 생각은 실은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영화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결국 전형적인 주류영화도 아니고 자의식적인 예술영화도 아닌, 그러면서도 감독의 날인이 깊게 새겨진 한국적, 작가적, 장르영화가 어떻게 되는지를 주시해야 한다. 그 점에서 <박쥐>와 <마더>에 대한 대중적 수용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더 나아가서 류승완과 이재용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상수와 이창동은 또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동진이 말한 것처럼 1990년대 후반 혹은 2000년 2001년에 만들어진 감독 브랜드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라는 게 형성되어 있는 것 같고 또 강해지는 것 같은데 다른 한편에서는 고도로 계산된 하이 컨셉 유사 할리우드영화가 만들어진다. 이때 이런 감독들의 자리가 지금처럼 보존될 수 있을 것인가.

이동진: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관객의 대중적 허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사 본인이 전적으로 매혹되지 않았더라도 인정하고 따라가보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대중은 스스로의 취향에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있고 대중의 몰오류성을 믿는 것 같다. 이제는 대중을 따라가는 게 목적인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더이상 허영이 없는 관객은 작가주의적인 전망을 추구하는 브랜드 파워 감독에 피로 혹은 염증 느끼는 게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될 때 한국 관객이 본인을 따라오는 대중영화에도 곧 염증을 낼 거라는 점이다.

허문영: 어쨌든 대중적 지지도 함께 받으면서 동시에 창의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이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박쥐>를 보면서, 이 시점에서 박찬욱이 타협적인 영화가 아니라 가장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어서 놀랐다. 이렇게 개인적이 영화를 만들어서 200만명이 들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봉준호도 마찬가지다. 영화계 안에서 출구가 있는가를 지적하면 잘 보이지 않지만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일단 프로듀서의 역할이 회복되는 것이 필요하다. 감독의 재능을 살리면서도 대중적 접점을 살리고 집결시키는 유능한 프로듀서가 나타나야 한다. 그 역할을 주요하게 한 것이 1990년대 왕성하게 활동했던 프로듀서들이다. 그런 프로듀서들이 우리가 말하는 감독들이 영화계에 데뷔하고 자기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조력했다. 변방의 감독들이 주류에 들어와 안착하도록 해준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저명한 프로듀서들이 다 그들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한국영화산업계는 무언가 상황이 반대로 되어간다. 프로듀서가 힘을 빼앗기거나 역할이 사라진다. 두 번째는 감독 스스로 스필버그처럼 셀프 프로듀싱하는 것이다. 그 길을 먼저 걸은 건 박찬욱이고, 그 길은 감독들한테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책임감 혹은 역할 능력을 필요로 한 것이다. 그것의 결과도 역시 짐작할 순 없지만 어쨌든 향후 뭔가 계산된 유사 할리우드영화가 아니라 창의적인 개성이 담겨 있으면서 대중적으로 지속적인 영화가 나온다면 그 역할을 하는 감독의 손 안에서이지 않을까 싶다.

[round 4] 새로운 대중영화의 상을 모색한다

허문영: 한편 대대적인 화제가 된 영화는 아니어도 역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있다. <과속스캔들> <7급 공무원> <거북이 달린다>와 같은 영화들. 사실 이전에도 이런 영화들의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 <동갑내기 과외하기>도 그런 영화에 해당할 것이다.

이동진: 나는 <거북이 달린다>가 좀 특수하다고 본다. 할리우드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흥행영화에서 배우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모든 영화를 통틀어서 기획력이 아니라 배우의 힘으로 흥행했다고 말할 만한 영화는 <거북이 달린다> 정도인 것 같다. 다른 영화에선 배우들이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배우 때문에 그 영화의 흥행이 좌지우지됐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거북이 달린다>는 김윤석이라는 배우 때문에 성공한 것 같다. 그게 대외적으로 보일 정도다. 사실 <해운대>에 설경구가 아니라 황정민이 나왔다 해도 흥행 스코어는 별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를 통해 배우의 흥행 보장성을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가 하는 점을 도리어 생각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김영진: <거북이 달린다>는 확실히 나름 매력이 있다. 시골의 나른한 분위기와 삶의 느낌들이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패턴화된 페르소나와 잘 맞아떨어져서 이루어진 겸손한 대중영화다. 결정적인 한방은 없지만 그 정도의 재미를 준다.

허문영: 한국에서 한국식 워킹 타이틀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중소 규모의 매우 뛰어난 아이디어가 담긴 영화들, 주로 로맨틱코미디 장르가 될 텐데 그런 소규모 영화들은 기존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런 유의 영화들에 제일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일본영화 혹은 일본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영화가 주로 실패나 거대한 실패담을 말할 때 일본영화는 2000년도 초·중반에 소박한 성공담을 만들어서 틈새시장에 진입했다. 한국에서 왠지 이야기들이 인물의 정조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동안 일본 장르소설들은 사건, 이야기 구조 안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추리소설 분야를 중심으로. 서사에선 점점 더 일본의 영향이 많아지지 않을까. <킹콩을 들다>를 보면 어쩐지 일본의 소박한 소영웅 영화가 생각난다. 전반적인 방향성 역시 2000년대 초반의 장중하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올해 <워낭소리>나 <낮술> <똥파리> 등이 상당한 수준의 대중적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건 앞서 우리가 얘기했던 대중이 느끼는 기존 감독들의 브랜드에 대한 피로도와도 연관있는 것 같다. 그 영화들을 김기덕이나 홍상수의 신작보다 더 많이 봤다는 건 물론 그 영화가 가진 대중적인 힘도 있었겠지만 관객이 뭔가 새로운 이름을 애타게 찾길 원했다는 징표다. 다수의 욕망이 아닐지라도 상당수의 관객이 새로운 이름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

김영진: <똥파리>와 <낮술>이 흥미로운 건 그 영화가 사이즈가 작아 독립영화로 분류되는 것일 뿐이지 사실 거의 상업영화라는 점이다. 지명도있는 배우를 쓰고 제작 규모를 키워서 10억원 정도의 규모만 됐어도 상당한 상업성을 갖췄을 것이다. 나는 정통적인 상업영화는 차라리 거기서 만들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낮술>을 보면 감독이 그런 리듬을 안 놓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머리를 모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질주하는 내러티브, 결기에 찬 영화로 말해지지만 <똥파리>도 실은 순응적인 영화이지 않은가. 깡패로 살다가 갑자기 착해지면서 위기를 맞는 그런 내러티브 구조 말이다. 선형적으로 뻗어나가는 상업영화에 유사하다.

허문영: 예술영화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의 주류영화 안에서 만들어져왔다. <파이란>처럼 말이다. <똥파리>를 보면 <파이란>이 떠오르는데 이제 주류영화산업 안에선 그런 영화가 안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런 영화가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것일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한국영화산업의 주류에서 비전있는 그런 이야기의 다양성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