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 <팔레스타인>
2009-10-10
글 : 이주현

<팔레스타인> The Time that Remains
엘리아 슐레이만 |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 2008년 | 109분 | 월드 시네마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됐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거나 쫓겨나거나 도망쳐야 했다. 소수의 사람들은 고향땅에 머물렀지만 일상은 한시도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동시에 감독 엘리아 슐레이만 자신의 이야기다. 데뷔작 <실종의 연대기>(1996)로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신인영화상을, 두 번째 작품 <신의 간섭>(2002)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던 엘리아 슐레이만은 ‘팔레스타인 영화의 자존심’답게 7년 만에 다시한번 팔레스타인 땅이 배경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었다. 역사적 사건에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갔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의 풍자는 여전하다.

부모님 세대의 기억과 감독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팔레스타인>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나뉜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거주지인 나자렛을 점령한 1948년을 시작으로 영화 속 엘리아(감독 본인이 연기)가 초등학생이던 때, 인티파다가 일어나고 아버지가 죽은 때,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예고 없이 점프한다.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고, 부모 세대가 남긴 유산을 그들 각자의 방식대로 물려받는다. 테러의 양상도 변하고, 삶의 방식도 변한다.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떼놓고 볼 수 없는 영화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순간을 탁월하게 묘사한 역사영화로 볼 순 없다. 선동적 메시지를 분명히 던지는 정치영화로 오해해서도 안 된다. 술레이만은 대단한 선동가나 예술가 쪽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화라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아는 명민한 감독에 가깝다. 드러내놓고 선동하거나 예술인 척하지 않지만 결국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웃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웃게 만들고 그런 다음 씁쓸한 마음으로 다음 장면을 쫓아가게 만든다. 그의 장기다. 그렇게 <팔레스타인>은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들로 넘친다.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이 세운 ‘분리장벽’을 장대높이뛰기 폴을 사용해 훌쩍 뛰어넘는 장면은 짧지만 강하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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