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디스트릭트9> 21세기형 SF를 보여주마
2009-10-22
글 : 김용언

1982년, 우주선이 지구에 왔다. 그런데 맨해튼, 시카고, 워싱턴이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상공이다. 우주선은 석달 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닐 블롬캠프는 데뷔작 <디스트릭트9>에서 ‘낯선 친숙함’을 흥미진진한 SF스릴러의 틀에 솜씨 좋게 녹여넣으며 전대미문의 ‘요하네스버그 SF’를 완성했다. 쓰레기로 꽃을 만드는 엔딩신이 안겨주는 기묘한 감동처럼, <디스트릭트9>은 그렇게 닳아빠진 에일리언물이 진화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씨네21>은 이 영리한 데뷔작을 기념하며, 블롬캠프의 악전고투 제작기와 함께 SF작가 배명훈과 SF평론가 김상훈이 텍스트 안팎을 넘나들며 읽어낸 기고문을 준비했다.

최대한 비할리우드적으로 영화 찍기

독창적인 데뷔작 <디스트릭트9>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2008년 초여름, 미국 곳곳에 ‘인간 전용’(For Humans Only)이라는 아리송한 광고물이 게재됐다. 닐 블롬캠프 감독, 샬토 코플리 주연의 SF영화 <디스트릭트9>의 티저 광고물이었다. 행인들이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이름은 제작자 피터 잭슨뿐이었다. 이 영화가 첫선을 보인 곳은 일반 시사회장이 아니라 만화광/게임광/영화광들의 축제인 샌디에이고 코믹콘이었다. 영리한 선택이었다. 관객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영화가 뭘까 궁금해하며 시사회장에 들어섰고, 그날 밤 코믹콘 행사장은 발칵 뒤집어졌다. 인터넷 상의 거대한 영화웹진 cinnematical.com, ain’t it cool news 등은 “올여름의 진정한 승자가 출현했다”, “화성인이 <매드 맥스>를 만났다!”라는 뉴스를 긴급 타전했고, 그 소식을 들은 웹 사용자들의 트위터 역시 불이 붙었다. 제라드 버틀러가 웃통을 벗어젖힌 <300> 이후 코믹콘이 이토록 많은 입소문을 생산해낸 영화는 달리 없었다. 결과는 누구나 알다시피 대박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8월14일 개봉한 <디스트릭트9>은 첫주 3735만4308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이 영화 제작비는 3천만달러였다). 10월 초까지 전세계 수입은 무려 1억6292만7216달러에 달한다.

그리하여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이 지나간 지금,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출신 닐 블롬캠프는 미국에서 가장 핫한 아이콘이자 스마트한 루키다. 이른바 제3세계, 그러니까 미국이나 유럽의 몇몇 부유한 나라들, 일본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서 독창적인 SF의 구현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품는다면, <디스트릭트9>이 바로 그 해답이다. 닐 블롬캠프의, 그리고 <디스트릭트9>의 성공은 현재 가장 인기있는 할리우드 신화의 레퍼토리가 되었다.

80년대 하드코어 SF에 대한 관심

1979년생,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출신인 닐 블롬캠프는 어린 시절부터 ‘SF광(SF Nerd)’이었다. 그는 특히 80년대의 하드코어 SF액션영화들에 강하게 매혹되었다. “<에이리언> <터미네이터> <프레데터> <로보캅> 같은 영화들이 어쩌면 <디스트릭트9>을 만들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관객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이 영화가 그같은 사나운 80년대의 분위기를 갖게 하고 싶었다.” 18살 때 캐나다로 이민간 뒤 그는 비주얼 이펙트 아티스트로 정식 커리어를 시작했고, 20대에 접어들어 각종 뮤직비디오와 상업광고, 단편영화의 연출을 맡았다. 때로는 수공업적이고 레트로한 감수성으로, 때로는 하드SF의 그것에 맞닿는 정교하고 견실한 비주얼로, 그의 SF적 감수성은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게 반짝거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유명한 게임 <헤일로>에 관련한 단편을 연달아 작업한 것도 이 무렵이고,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Alive in Joburg) 등의 단편으로 주목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로보캅, 파충류를 닮은 외계인, 뭉툭한 로봇, 사이보그 등을 연달아 등장시켰고 남아공, 중국, 이스라엘 등의 이국적인 배경을 선호했다. 통상적으로 ‘SF적이 아닌 것 같은’ 공간에 그 오브제들이 등장하는 순간의 낯선 매력은 급등했다.

2005년 그의 작업물은 마침내 유니버설쪽의 눈에 들었다. 유니버설과 폭스는 막 <헤일로>의 영화화 작업을 시작하던 참이었다. <헤일로>의 프로듀서를 자청했던 피터 잭슨은 “완전히 새롭고 흥분되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신인”을 찾던 중 유니버설쪽이 건넨 자료에서 블롬캠프의 작업물을 발견했다. 첫 미팅을 가진 즉시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피터 잭슨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무려 1억2500만달러에 달하는 예산이 책정된 거대 프로젝트 <헤일로>가 닐 블롬캠프에게 돌아왔다. “나는 몇주 만에 0에서 100으로 올라갔다. 미친 짓이었다.”(닐 블롬캠프)

5개월 뒤 재앙이 닥쳤다. 갑자기 <헤일로>의 작업 중단 통보가 내려진 것이다. 어떤 이유도 없이, 그저 끝이었다. 피터 잭슨과 닐 블롬캠프는 충격에 빠졌다. 이후 알려진 바로는 유니버설과 폭스 사이의 세력 다툼이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피터 잭슨이었다. 다시금 ‘제로’로 굴러떨어진 닐 블롬캠프는 낙담한 나머지 밴쿠버로 돌아갈 짐을 싸고 있었고, 잭슨이 그를 붙잡았다. “닐은 몇달 내내 <헤일로> 디자인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결과물에 엄청나게 전율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이 패배감을 승리로 바꿔버려야 했다. 독립적으로 재정을 조달할 수 있을 정도의 예산으로, 거대 스튜디오의 변덕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는 오리지널 영화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이 순간에 대해 블롬캠프는 이렇게 회상했다. “피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너의 영화를 프로듀스하면서 잘 풀리게 돕겠다. 네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라, 라고. 피터 잭슨은 신인감독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프로듀서였다.”

불시착한 미래의 이미지, 요하네스버그

시작은 블롬캠프의 2005년 단편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부터였다. 이 단편 안에는 미래의 <디스트릭트9>의 단초가 모두 들어 있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우주선이 느닷없이 등장하고, 지구에 불시착한 흉악한 외계인들이 초라한 거주지에 머물고, 주민들은 “그들이 오고 나서부터 우리는 덜 안전해졌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 단편의 첫 구상에 대해 블롬캠프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야기가 먼저 있고, 그에 맞는 도시를 고른 게 아니다. 그 정반대다. 요하네스버그는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 장소였다. 캐나다로 이민간 뒤에도 그곳의 광적인 사회·정치학적인 구도는 항상 나의 관심사였다. 사실상 그 험난한 곳은 인류의 미래를 재현한다고까지 여겨졌다. 그곳에 갈 때마다 나는 내가 미래에 불시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 안에 SF적 설정을 대입시킨다면 어떨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고 싶었다. 요하네스버그에 전형적인 에일리언 스토리를 대입시키자, 도시의 심각한 문제점들과 함께 이야기가 자신만의 생명력을 얻으며 자라났다.” 사실상 이 단편에 등장하는 마을 주민들의 천진한 불평은 외계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당시 남아공의 큰 문제로 불법이민자였던 짐바브웨와 나이지리아인들을 향한 불평이다. 블롬캠프는 인터뷰에 응한 주민들을 속일 생각은 없었다고 다소 민망한 듯 변명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매우 추하고 더럽게 형상화될 외계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당시의 전반적인 외국인 혐오증과 비슷한 종류일 것이라 확신했고 그 노림수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니까 요하네스버그는, 닐 블롬캠프와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와 궁극적으로는 <디스트릭트9>의 시작과 끝이다.

새 장편에 착수하면서 블롬캠프는 단편의 아이디어를 더 확장해나갔다. 그 외계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들 종족의 특이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된 단 한명의 지구인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게 해서 차츰 구체화된 외계인들의 기원은 이러했다. 외계인 ‘프런’들은 지구와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안드로메다 갤럭시에 위치한 어떤 행성 출신이다. 그들은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행성들을 돌아다니며 조국에서 필요로 하는 온갖 자원을 채취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다가 까닭모를 바이러스로- 아마 그들이 어디선가 가져온 자원에서 비롯된- 우주선의 지도자층이 모조리 몰살된다. 이 종족은 원래 꿀벌이나 개미들처럼, 맨 꼭대기의 권력자층이 온갖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아래 계층은 지시받은 역할만 수행한다. 바이러스 때문에 우두머리들이 몰살당하고 나자 그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자신들을 발견한 뒤 폭력을 가하는 지구인들에 맞서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긴 세월을 보낸다. 그렇게 20년 넘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군집적인 종족의 ESP가 진화하기 시작한다. 그들 중 누군가, 한명이 마침내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물론 단편을 찍었을 때처럼, 블롬캠프는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의 대립 구조가 충분히 정치적인 메타포로 각인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데뷔감독이며, 첫 영화가 심각해질수록 관객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래서 풍자적인 우화를 선택했다. 의식적으로 정치·사회적인 부분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려 했다. 그건 관객이 보고 판단할 문제다. 가장 중요한 건 흥미진진하고 쿨한 SF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그 점이 어쩌면 이 영화가 교묘하게 도망간다는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다.”

세트장이 필요없는 현실 그대로의 남아공

<디스트릭트9>의 주요 촬영지인 소웨토의 치아벨로 지구는 <디스트릭트9>의 상황, 즉 주민들이 외계인들을 쫓아내는 상황 그대로였다. 쓰레기 매립지 위에 살던 주민들은 당국에 의해 강제로 20km 떨어진 보조주택으로 퇴거당했다. 케이프타운의 조 슬로보 비공식 거주지에 살던 이들도, 아발라리 베이스 묜돌로의 주민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알렉산드라 지역은 짐바브웨와 말라위의 불법이민자들을 향한 남아공 주민들의 폭동으로 철저하게 파괴됐다. 증오와 편견, 인종차별이 어디에나 횡행했다. 그러니까 블롬캠프와 미술감독 필립 아이베이는 따로 거대한 세트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의도하지 않게 <디스트릭트9>은 2008년 남아공의 현재를 증거하는 충실한 기록자가 된 셈이다.

이는 또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기간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기도 했다. 특히 영화의 제목은 ‘디스트릭트 식스’(District Six)를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케이프타운의 도심부 주거지역인 디스트릭트 식스는, 1966년 정부에 의해 ‘백인 전용’으로 명명되었고 그에 따라 6만명의 흑인들이 강제로 철거되어 25km 떨어진 지역으로 이전되었다. 또한 19세기 후반 남아공 식민의 역사도 끼어든다. 남아공을 차지하려던 영국인과 보어인(네덜란드 계열)의 격렬한 전투 이후, 지금까지도 보어인들과 영국인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다. 영화 속에서 비커스를 쫓는 MNU의 용병 대장 쿠버스가 그 점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네덜란드 억양을 진하게 남발하는 비커스는 보어인, 그러니까 일부 남아공 사람들에게는 즉각 ‘하층민’으로 분류되는 사람이며 쿠버스는 영국계다. 비커스를 향한 쿠버스의 경멸과 폭력은 거기서부터 비롯된다.

이같은 척박한 역사를 배경으로, 요하네스버그의 촬영은 예상을 뛰어넘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시선을 어디에 두더라도 깨진 유리 조각, 콘크리트, 녹슨 철조망, 화염, 오염투성이의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최대한 창조적이 되도록 노력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닐 블롬캠프) 거기다가 블롬캠프는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스타일과 전통적인 영화 화면을 뒤섞고 싶어 했다. 시네마베리테 방식을 극한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이 영화가 가능한 한 비할리우드적이 되길 바랐다.” 영화의 많은 부분은 CCTV 자료화면처럼 보이고, 교묘한 모큐멘터리 양식으로 촬영된 푸티지들이 수없이 삽입되며, 남아공 방송 공사와 <로이터> 등의 통신사에서 제공받은 실제 뉴스 화면들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 심지어 블롬캠프는 리얼리즘을 더 강화하기 위해 신인 배우들에게 즉흥연기를 요청했다(외계인들과 비커스가 대화하는 장면은 99% 철저한 즉흥 연기였다). “나 역시 이같은 다큐멘터리 스타일이 시네마틱한 느낌을 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도구가 발전할수록 좀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리얼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판타스틱한 사건들이 훨씬 더 흥미롭고 강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가.”

외계인들의 이미지를 잡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블롬캠프가 원한 외계인의 이미지는 스필버그의 귀여운 ET도 아니었고,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처럼 무시무시한 유기체 덩어리도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벌레’에 가까웠다. 이 외계 종족의 특징적인 피라미드 구조 때문에 그는 더더욱 곤충의 이미지에 집착했고, 그러면서도 ‘두발로 걷고, 인간의 형상을 아주 조금은 갖추고 있’어야 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심리상태는 상대방이 인간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지 않으면 진심으로 감정이입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캐나다의 이미지 엔진사에서 전체적인 외계인 이미지를 디자인했다. 기본적으로는 벌레의 외골격에 게나 왕새우 같은 갑각류를 매치시키는 구조였다. 또한 두발로 걷는 인간의 느낌을 주기 위해 가느다란 허리와 다리를 만들었다.

외계인 이미지의 정밀한 사실성은 흔히 떠올리는 퍼포먼스 캡처로 이뤄진 게 아니다. 영화 속 프런들은 대낮의 조광을 통해 관객의 눈앞에 전면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의 흉측한 외양은 지나칠 만큼 사실적이기 때문에 그 어떤 신비화도 불가능하다. 이 이미지는 어떻게 구현된 걸까? 블롬캠프는 외계인 역(실상 모든 외계인을 혼자 연기한)을 맡은 제이슨 코프 주변에 통상적인 모션-캡처 카메라가 아닌 라이브액션 카메라만을 설치했다. 그 카메라에 찍힌 데이터들은 즉시 이미지 엔진사의 애니메이터에게 넘어갔다. 그가 제이슨의 움직임을 트래킹하여 애니메이트시킨 다음, 촬영분에서 배우를 지워낸 뒤 디지털로 만들어낸 외계인의 모습을 대신 끼워넣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블롬캠프는 이것을 ‘퍼포먼스 캡처’가 아니라 ‘로토메이션’(rotomation: 로토스코핑에서 순수 애니메이션까지를 혼합한 다단계 애니메이션 컨트롤 방법에 붙인 별칭)이라고 불렀다. 배우의 겉모습에 디지털 이미지를 입히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고된, 그러면서 자연스러움을 배가시킬 수 있는 작업이었다.

어쨌든 지금 시점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결단코 속편의 여부일 것이다. 명백하게 속편을 암시하는 저 결말은 뭔가? 영화 속에서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종족의 정체와 구체적인 디테일은 뭔가? 비커스와 외계인 크리스토퍼 존슨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쏟아지는 질문에 블롬캠프는 신중하게 답했다. “디스트릭트9으로 돌아가기 위해 슬슬 준비할 때가 되었다. 혹은 디스트릭트10.” 제작사쪽은 당장 속편 계약을 채근했지만, 문제는 아직 블롬캠프의 머릿속에 분명한 속편 줄거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당장 차기작은 <디스트릭트9>과 상관없는 SF물이며, 아마 그것이 끝난 다음에야 ‘요하네스버그 SF’ 이야기는 다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가장 속상한 쪽은 아마도 <헤일로>를 놓친 유니버설과 폭스가 아닐까.

남아공의 샤샤 바론 코언

비커스 역의 샬토 코플리

<디스트릭트9>의 초반, 카메라 앞에서 실실 쪼개는 주인공 비커스에게 솔직히 호감을 느끼긴 힘들다. 그는 뭐랄까, 너무 샌님 같고 소시민 같고 믿음직스럽지 않다. 우리가 자주 보던 할리우드영화에서라면, 비커스는 초반에 등장하여 깐죽거리다가 곧 외계인한테 목숨을 잃는 단역일 것만 같다. 게다가 불청객 외계인 ‘프런’에 대해 다른 이들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폭언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 그런 인물이기까지 하다. 그러다가 불의의 사고로 외계물질에 노출되고, 그는 점점 더 자신이 혐오하던 존재로 변해간다. “시작된 지점과 180도 다른 곳에서 끝나는 캐릭터는 언제나 내 마음을 사로잡는 존재였다.”(닐 블롬캠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날아온 블롬캠프의 오랜 친구, 샬토 코플리가 비커스를 연기했다. 코플리는 장편영화 출연 경험이 전혀 없는 생짜 신인이지만, 블롬캠프는 그의 숨겨진 재능을 잘 알고 있었다. “샬토는 맘만 먹으면 어떤 캐릭터로든 변신하여 당신을 감쪽같이 속여넘길 수 있다. 말하자면 남아공의 사샤 바론 코언 같은 남자다. (웃음) 한번은 주변 친구들 모두에게 자신이 ‘증인보호프로그램’을 받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게 한 적도 있다.” 블롬캠프는 요하네스버그에서 테스트 촬영 당시 친구 코플리에게 카메라 앞에서 대충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관료적인 캐릭터인 비커스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닐 블롬캠프) 코플리는 별 생각없이 MNU라고 쓰인 조끼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섰고, 그 순간 블롬캠프는 “이런, 제기랄!”이라고 내뱉었다. 그는 피터 잭슨에게 달려가 자신이 찍은 촬영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어요. 그는 연기를 한 적도 없고 엄청나게 강한 남아공 억양을 쓰지만,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찾던 비커스예요”라고 단언했다. 피터 잭슨의 대답은 간명했다. “그러도록 하지.”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