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 다큐멘터리영화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 줄거리를 봤을 때 이 영화를 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이 영화는 일본 다이지에서 매년 돌고래 사냥을 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사냥을 멈추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가, 인간이 바다를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특별히 뭔가를 더 알려주지도 않을뿐더러, 보고 있자면 마음이 매우 아프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다. <BBC> 디지털 라디오 포드캐스트에서 이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고 흥미로우며 감동적인지를 듣고 나서였다(영어권 독자여! <BBC> 라디오 프로그램 <마크 커모드와 사이먼 마요의 영화리뷰> 포드캐스트를 들을지어다). 커모드는 “이 영화 마지막이 셰익스피어 연극 못지않다”고 했다. 나는 티켓을 사서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다. 이 영화가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 인기상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극장에는 나 외에 다른 관객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필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는 분명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지만 영화를 만든 운동가의 열정, 헌신과 창의성이 잘 드러나 있었다. 나는 감동받고 영감받았으며,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극장을 나와 햇볕 아래 서서 특별한 기운이 충천함을 느꼈다.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만약 지금 내 옆에 위험에 처한 돌고래가 있다면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 돌고래를 구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명동에는 돌고래는 한 마리도 없었고, 좀 걸어다니다가 초콜릿 도넛을 먹었다.
좀 우습다는 것은 나도 안다. 도넛을 먹으면서 나는, 내가 영화를 보고 얻은 기운을 이런 평범한 일에 써야 하는 것이 슬펐다. 이 우스운 감정은 상당히 낯익은 것이었다. 전에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많다. 예를 들어 절박한 상황에서 이용당하는 전쟁 피란민에 대한 영화가 샴페인에 캐비어가 나오는 리셉션으로 이어지는 경우. 샴페인을 마시는 모두가 그 영화에서 영감을 받고 강한 동기를 갖게 되었겠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있는 결과를 가져올 만큼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나아가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는 알코올 기운만큼 또는 내 초콜릿 도넛의 알칼로이드만큼만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은 너무 비관적인 듯하다. 영화가 사람에게 주는 동기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지만, 영화는 책이나 다른 미디어처럼 사람을 교육하고 의견을 형성하고 기존 관념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 영화가 일군의 운동가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이 잘 만든 영화를 보고 의견을 바꾸면 그것만으로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을 본 사람이 앞으로 돌고래 쇼를 보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야생 돌고래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도넛을 다 먹을 때쯤 나는 조금 더 낙관적이 되었다.
영화비평가로서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은 극히 제한되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이번주 세계를 바꾸려는 내 작은 시도는 독자에게 그 영화가 극장에서 사라지기 전에 보게 하는 것이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도넛에는 신경 쓰지 말기를. 도넛 맛은 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