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그 진보, 그 집념, 무시무시하구나
2009-12-17
글 : 김도훈
미리 엿보는 <아바타> 제작기와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행보

제임스 카메론의 12년 만의 신작 <아바타>가 12월17일 개봉한다. 아직 영화는 공개되지 않았다. 기자시사회도 12월11일로 느지막이 예정됐다. 올겨울 전세계 영화계의 가장 거대한 이벤트가 될 <아바타>의 개봉을 기다리며 제작과정의 비밀들을 한번 들춰봤다. 무시무시한 기술적 진보와 더 무시무시한 인간적 집념. 그게 바로 키워드다.

<아바타>는 대체 어떤 영화인가. 주연배우 샘 워딩턴이 답한다. “<아바타>가 어떤 영화냐고? X나 기겁할 만한 괴물이다. 사람들 궁둥이를 뻥 하고 걷어찰.” 이 호주 배우답게 입 걸기로 유명한 남자의 말을 한없이 믿고 싶긴 하지만. 글쎄. 샘 워딩턴은 제임스 카메론이 발굴하다시피 한 배우다. <터미네이터4>의 주인공으로 샘 워딩턴을 추천한 것도 카메론이었다. 그러니 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아바타> 찬양은 신에 대한 찬양이나 마찬가지다. 일종의 종교랄까. 심지어 샘 워딩턴은 지난 몇년간 비행기로 미국에 갈 때마다 입국신고서의 직업란에 ‘외계인 사냥꾼’이라고 썼다. 어떤 공항직원은 이렇게 대꾸했단다. “그러시든지.” 이런 상황에서 샘 워딩턴의 답변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까. 게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샘 워딩턴의 X나 기겁할 만한 저 대답은 <아바타>가 한창 촬영 중일 때 튀어나왔다. 그때까지 워딩턴은 <아바타>의 결과물을 본 적이 없었을 거다. 기껏 해야 가는 <아바타>의 모션 캡처 세트장에서 전신 타이츠를 입고 가상의 상대와 연기를 했을 따름이다. 이걸 믿으라고?

피터 잭슨도 탐낸 모션 캡처 세트장 ‘볼륨’

흠, 어쩌면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제임스 카메론이 볼륨(The Volume)이라고 부르는 <아바타>의 모션 캡처 세트장은 예전에 존재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완벽하게 진화한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킹콩>이나 로버트 저메키스의 영화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모션 캡처의 촬영현장을 한번 떠올려보자. 배우들은 몸에 딱 달라붙는데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점들이 잔뜩 그려진 타이츠를 입고 녹색 커튼 앞에서 가상의 상대를 보고 연기한다. 감독과 기술자들은 타이츠 입은 배우의 연기 분량을 작업실로 들고 들어가 디지털 캐릭터로 바꿔내고 디지털 배경을 합성한다.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배우들은 영화가 대체 어떤 모양새로 튀어나올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샘 워딩턴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신들이 보기에는 이 세트가 전부 쓰레기 더미처럼 보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건 개척지다. 내 다섯살짜리 조카는 머리에 박스를 뒤집어쓰고는 자기가 24시간 내내 로봇인 양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로 그런 게 <아바타>의 현장이다.” 대체 어떻게? 그게 바로 <아바타>의 모션 캡처 세트장에 숨은 비밀이다.

세트를 방문한 극소수 미국 언론의 기사를 바탕으로 제임스 카메론의 ‘볼륨’을 한번 눈앞에 그려보자. 볼륨은 피터 잭슨이 <킹콩>에서 앤디 서키스의 퍼포먼스를 캡처하기 위해 만들었던 세트보다 여섯배나 거대하다. 이 비현실적으로 텅 빈 공간에서 배우들은 얼굴에 아주 작고 섬세한 카메라를 부착하고 있다. 카메라는 배우들의 얼굴 근육과 안구와 혀의 움직임을 곧바로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 컴퓨터에 전송한다. 그리고 볼륨의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컴퓨터들(지구에서 용량이 다섯 번째로 큰 컴퓨터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 전송받은 배우들의 연기를 곧바로 디지털 액터로 바꾸는 동시에, 이미 만들어진 가상의 배경과 합성해서 보여준다.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의 모션 캡처를 이모션 캡처(E-Motion Capture)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와 배우들은 촬영과 거의 동시에 최초 결과물을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카메론은 새롭게 개발한 버추얼 카메라를 이용해 마치 실사영화를 찍는 것처럼 신의 움직임을 조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건 정말이지 감정(Emotion)적인 모션 캡처의 진화다. 아직까지 그 비밀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피터 잭슨과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가 <아바타>의 촬영장을 방문한 뒤 차기작에 카메론이 개발한 시스템을 이용하겠노라 선언했다는 사실을 한번 떠올려보자. 자기 기술에 대한 도착적인 똥고집으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가 말이다. 카메론은 자신만의 ‘스카이넷’을 창조했다.

구태의연한, 그러나 카메론이라 다를 이야기

어쨌거나 여기까지는 과거의 이야기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는 이미 완성됐지만 전세계 어디서도 공개되지 않았다. 20여분 남짓한 <아바타>의 몇몇 클립이 <아바타 데이>를 통해 3D로 공개됐을 뿐이다. <아바타>의 클립이 공개되기 전 ‘심지어 안경을 쓰고 볼 필요도 없는 3D영화’라는 풍문이 인터넷을 떠돌았다(제임스 카메론이라면 SF영화에나 등장할 기술도 현실화할 수 있을 거라는 대중의 기막힌 믿음이 만들어낸 풍문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여전히 커다란 편광안경을 써야만 한다. 다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아바타>가 지금껏 공개된 어떠한 3D영화보다도 더 진보한 기술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깜짝쇼를 위한 3D가 아니라 완벽한 가상의 행성 속으로 관객의 의식을 쑤셔넣기 위한 3D 기술을 선사한다. 하지만 <아바타 데이> 직후 나온 해외 평론가들의 표현은 종종 무자비했다. “스머프 포르노”, “우주에서 늑대와 춤을”, “<포카혼타스>가 <헤일로>를 만났을 때”. 기술은 압도적일 지언정 20여분 클립으로 유추한 영화 이야기는 지나치게 구태의연했다는 소리다. 하긴 <아바타>의 이야기는 놀랄 정도로 고색창연한 스페이스 오페라다. 전직 해병대원인 주인공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는 허리 아래가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는 신세다. 그는 인류가 새롭게 개척한 행성 판도라에서 귀중한 광물을 발굴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제이크의 임무는 자신의 의식을 판도라의 토착 종족인 나비((Na’vi)의 몸에 이식한 뒤 나비족의 도움을 받아서 광물의 이권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이크는 나비족의 여자 네이티리(조 살다나)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지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또한 나비족에 감화되면서 판도라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인간에게 오히려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다고? 맞다. 흔한 이야기다. 제임스 카메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건 내가 고교 시절 노트 뒷면에 끼적이던 아이디어를 대본으로 만든 거다. 1940년대와 50년대 고전 SF소설들에서 많은 걸 취득했다. 아주 구식의 어드벤처물, <아라비아의 로렌스> <화성의 존 카터> 등등. 당신들이 금세 알아챌 수 있는 원형(原型)적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구태의연한 이야기가 카메론 영화의 약점이었던 적이 있긴 했는가. 사실 카메론 영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유는 고전적인 테마와 익숙한 이야기 구조 덕 아니었던가. 그는 독창적인 이야기꾼은 아니지만 좋은 이야기꾼이며, 나아가 이야기를 통해 관객의 감정을 건드릴 줄 아는 재능의 소유자다. <에이리언2> 이후 20여년 만에 제임스 카메론과 재회한 시고니 위버의 말을 들어보자. “만약 다른 감독이 나에게 아바타의 몸이라거나 판도라 같은 행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난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카메론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다른 문제다.” 이야기가 관습적이든 아니든 정말 중요한 건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하려는 제임스 카메론의 야심이다. 그는 지금 자기만의 <스타워즈>를 꿈꾸고 있다. 완벽한 자신만의 우주를 완성한 경험이 있는 조지 루카스가 말한다. “우주를 하나 창조한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나는 <스타워즈>로 그걸 해냈다. 카메론이 마침내 거기 도전한다는 게 정말 기쁘다. 세상에는 자기만의 우주를 만들 수 있는 단 몇명의 사람이 있고, 카메론은 그중 하나다. 나는 카메론이 누구보다 한발 더 나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작 중단? 차라리 날 죽여라

중요한 건 <아바타>가 결국 완성됐다는 사실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언제나 영화사의 중역들과 전쟁을 벌이며 영화를 완성하기로 유명하다. 과거를 한번 회고해보자. 1989년작 <어비스>는 당시 영화 역사상 최고 제작비인 5천만달러가 투여된 블록버스터였다. 그러나 제작과정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제작비와 제작기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초과하고 있었다. 이십세기 폭스의 중역들은 피가 말라갔다. 결국 당시 폭스의 대표이던 레너드 골드버그가 현장으로 찾아가 카메론을 만났다. 카메론은 말했다. “당신들이 알아야할 게 하나 있소. 한번 이 영화를 시작했으면 끝내고 말 겁니다. 절 멈추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절 죽이는 거요.” 레너드 골드버그는 증언한다. “그 타오르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그가 정말로 그러리라는 걸 보장할 수 있었다.” <타이타닉>의 상황은 더욱 무시무시했다. <어비스>와 마찬가지로 당시 영화 역사상 최고 제작비를 경신했던 <타이타닉>은 개봉 직전까지만 해도 침몰 직전의 상황이었다. 온갖 언론이 제임스 카메론의 영원한 침몰을 예견했다. 제작비는 2억달러를 넘어서서 끝없이 치솟았다. 당시 프로듀서였던 마티 카츠가 촬영현장을 찾아가서 영화사 중역들의 경고를 전했다. “이미 수백만달러나 예산이 초과했습니다. 당신 친구로서 말하는데….” 카메론이 답했다. “친구? 친구? 친구 따윈 필요없어. 당신은 내 친구가 아니야. 게다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짧은 대화 때문에 11만5천달러나 낭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아바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뉴욕 매거진>의 기사에 따르면 지금 이십세기 폭스의 중역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다. IMDb에 공개된 제작비는 2억3천만달러지만 실재로는 5억달러에 가깝다는 게 할리우드의 예측이다. 만약 <아바타>가 흥행에 실패한다면 이십세기 폭스는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빙산에 부딪친 타이타닉처럼 침몰하고 말 거다. 그래서 폭스는 <아바타> 개봉 바로 다음주에 ‘비밀무기’를 하나 장착해뒀다. 비밀무기의 이름은 <앨빈과 슈퍼밴드2>다. 폭스는 북미에서만 2억1700만달러를 벌어들인 <앨빈과 슈퍼밴드>의 속편이 혹시 모를 <아바타>의 흥행 실패를 보완해주리라 기대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폭스는 이번에도 역시 제임스 카메론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카메론과 <타이타닉> <트루 라이즈>를 함께한 배우 빌 팩스턴은 증언한다. “안돼! 그건 불가능해! 그건 가능하지가 않아! 이런 말들은 제임스 카메론을 발기하게 만듭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막아세우는 영화사 중역들을 위한 짜증과 분노를 따로 머릿속에 저장해놓고 있어요.” 제임스 카메론은 제작과정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영화사 중역들에게 이런 말을 전달한 적도 있다. “중역들에게 이렇게 말해. 당신들은 지금 뒤로 강간당하고 있다고. 지금처럼 머뭇머뭇거리지만 않는다면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을 거라고!” 샘 워딩턴 역시 말한다. “카메론은 깨문다. 만약 당신이 그의 기준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엉덩이를 통째로 물어뜯어버릴 거다. 나이가 들면서 좀 부드러워진 것 같기는 하다만. (웃음) 제임스 카메론은 정말로 최고만을 추구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클라이맥스 액션장면, 굉장한 물건 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누구보다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사람은 제임스 카메론 자신일 것이다. “<타이타닉> 때는 모든 사람이 실패에 판돈을 걸었다. 나는 그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해야 했다. <아바타>는 모든 사람이 성공에 판돈을 걸었다. 나는 심지어 더 열심히 해야 했다. 그들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그가 진실로 멋진 신세계를 창조했는지 아닌지는 12월11일 <아바타>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사회를 갖는 순간 알 수 있을 거다(<씨네21>은 시사와 동시에 특집기사를 준비할 예정이다). 그전에 카메론의 입을 통해 딱 한 가지 비밀을 밝혀보자. “대체 어떻게 촬영해야 할지 무려 2년간 고민했던 딱 한 장면이 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액션장면이다. 어떤 장면인지 절대 말해줄 수 없다. 조금 힌트를 줄까? 모두 실제 배우들에 의해 연기되었으나 전혀 다른 차원의 네 캐릭터가 서로서로 얽혀 있는 장면이다. 어찌나 만들기가 어렵던지 거의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 촬영할지 알아냈고, 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야말로, 굉장한 물건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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