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의 작품은 의외로 영화화된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긴 한다. 무시무시한 어른 악당들과 그들을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애어른이 주인공인데다가 갈 데까지 가는 폭력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한 이른바 아동용 책을 영화화한다면 대체 그 영화의 주요 타깃층은 누구? 이쯤되면 로알드 달의 작품을 영화화하겠다는 감독 앞에서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게 연상되지 않는가. “그러니까 자네는 애들 동화를 원작으로 R등급으로 만들겠다는 건가 지금?” 여하튼 90년대 이후 영국과 할리우드는 4편의 로알드 달 원작 영화를 내놨다. 하나같이 재미있다. 가장 훌륭한 아동용 영화는 가장 무시무시한(세상의 진실을 품고 있는) 아동용 영화라는 진실은 여기서도 완벽하게 통한다.
<루크와 마녀> (The Witches, 1990)
니콜라스 뢰그 | 안젤리카 휴스턴, 얀센 피셔, 블렌다 블레신
*시놉시스/ 자동차 사고로 부모가 죽자 할머니와 살아가는 소년 루크는 여행 도중 투숙한 호텔에서 마녀들의 집회를 몰래 엿보다가 들켜서 생쥐로 변하고 말지만 결국 마녀의 흉계를 막아낸다.
*로알드 달스러움/ 애들을 생쥐로 만드는 영화는 원래 좀 무시무시하다(애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밟혀죽을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생쥐의 꼬리까지 잘라버리는 영화라면 더욱. <루크와 마녀>는 정말 저연령층 애들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200자평/ 이 영화의 공신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세명의 장인이다. 초현실적으로 기묘한 걸작 <워커바웃>과 <쳐다보지 마라>의 니콜라스 뢰그 감독. 셰어를 제외하면 마녀 역에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을 안젤리카 휴스턴. 그리고 짐 헨슨의 마법과도 같은 특수효과들. 기예르모 델 토로가 리메이크할 예정이다.
<마틸다> (Matilda, 1996)
대니 드 비토/ 마라 윌슨, 엠베스 데이비츠, 팸 페리스
*시놉시스/ 지적이고 초능력이 있는 소녀 마틸다는 전직 투포환 선수 교장과 지적 수준 떨어지는 멍청한 가족의 박해를 견뎌내고 결국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허니 선생님과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로알드 달스러움/ 히틀러를 능가하는 폭군 교장선생은 아이들을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다가 집어던지는 게 취미다. 물론 영화에서도 이 가학적인 취미는 여전하다. 그래도 영화의 등급은 PG(모든 관객이 관람 가능하나 보호자 동반 권고).
*200자평/ <장미의 전쟁> 같은 막가파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 대니 드 비토는 로알드 달 원작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즐거운 소품을 만들어냈다. 마틸다 역을 맡은 마라 윌슨(<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매력도 그에 못지않다.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James and the Giant Peach, 1996)
헨리 셀릭/ 사이먼 캘로, 리처드 드레이퍼스
*시놉시스/ 동물원을 탈출한 코뿔소에 부모를 잃고 사악한 이모들에게 학대받으며 자라던 고아 제임스는 마법으로 거대해진 복숭아를 타고 베짱이, 지네, 지렁이 등 많은 벌레들과 함께 꿈의 도시 뉴욕으로 향한다.
*로알드 달스러움/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함께 로알드 달의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다. 다만 마음 여린 아이들이라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가학적인 제임스의 이모들이 등장하는 영화의 초반부를 견뎌내지 못했을지도(게다가 영화의 초반부는 실사영화다).
*200자평/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에 이어 팀 버튼과 헨리 셀릭이 또다시 손잡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 로알드 달 원작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비주얼을 보여주지만 원작의 매력을 완벽하게 살리지는 못하는 편이다. 클레이메이션보다는 특수효과를 이용한 실사영화로 다시 만들어진다면 좋을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2005)
팀 버튼/ 조니 뎁, 프레디 하이무어, 데이비드 켈리
*시놉시스/ 기겁하게 가난한 빈민 가정의 찰리와 무례하고 버릇없고 재수없는 일단의 아이들이 황금 티켓에 당첨돼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견학갔다가 한명한명 끔찍한 방식으로 처단당하기 시작한다.
*로알드 달스러움/ 원작은 로알드 달의 가장 인기있는 대표작인 동시에 가장 소름끼치는 아동 학대극이다. 로알드 달은 버릇없는 애들은 이렇게 벌을 받는다고 아동 독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게 틀림없다. 팀 버튼 영화는 원작의 에센스를 가감없이 화면에 담아낸다.
*200자평/ 가히 사도마조히즘적인 아동용 블록버스터의 최고봉. 영화의 분위기가 팀 버튼 영화 중에서도 가장 기분 나쁘게 뒤틀려 있는 탓에 해피엔딩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팀 버튼 영화로서는 평가를 좀 박하게 받은 편이지만 그보다 나은 평을 돌려받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