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2000년대와 함께 사라지다
2009-12-30
글 : 송경원
브리타니 머피부터 로빈 우드까지, 2009년 말 세상을 떠난 네 영화인의 삶과 죽음

2009년의 막바지, 영화계의 중요한 인물들이 타계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데다 한꺼번에 찾아온 이들의 죽음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배우 브리타니 머피와 제니퍼 존스, 시나리오작가이자 감독 댄 오배넌, 그리고 저명한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의 삶과 죽음을 돌아본다. 편집자

‘울부짖는다’는 이것이었다
로빈 우드 Robin Wood 1931. 2~ 2009. 12

비평은 창작의 그늘에서 자라는 꽃이다. 꽃은 아름답지만 한순간 흐드러지게 피어났다가 덧없이 사라진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여기서 출발할 것이다. 고전은 시간에 풍화되기는커녕 매 순간 우리 앞에 나타나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데 반해 비평은 순간이나마 시대를 풍미했던 글조차도 단지 그 시절에 묶여 있을 뿐이다. 이 먹먹한 좌절감 앞에 많은 평론가들이 재창조의 책임을 저버린 채 걸작과 거장의 그늘에서 편하고 공허한 말잔치를 벌여왔다. 적어도 로빈 우드가 나오기 전까진 쉽게 그럴 수 있었다.

1931년 런던에서 태어난 로빈 우드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영화에 대한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 <싸이코>에 대한 에세이를 실으며 데뷔한 그는 형식상의 엄격함과 도덕적 접근방식을 견지하며 통찰력있는 비평가로 자리매김한다. <Hitchcock’s Films>(1965)의 발표를 통해 단순한 엔터테이너에 머물러 있던 히치콕을 단숨에 거장의 반열까지 격상시키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이후 히치콕, 아서 팬, 하워드 혹스, 잉마르 베르만에 관한 책들을 서술하며 거장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오히려 억압된 것들의 해방을 통해 거장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세월의 먼지에 혹은 오해와 편견에 찌든 때를 벗기고 대중과 만날 수 있도록 평론의 그늘에서 꾸준히 영화를 연마해온 이 통찰력있는 평론가가 캐나다 요크대학 영화학과 명예교수로 퇴직한 뒤 올해 12월18일, 향년 78살로 우리 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로빈 우드의 대표작으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를 떠올리는 것처럼 나 역시 그 책을 통해 이 자유로운 진보주의자가 울부짖는 목소리를 처음 접했다. 영화 이외의 것에 기댄 결과 정치적으로 전도되어 영화를 오독하려 한다는 오해를 사기 쉬운 제목이지만, (심지어 이 책의 부제는 ‘할리우드 영화읽기: 성의 정치학’이다) 나는 ‘울부짖는다’는 표현이 이만큼 절실하게 와닿는 비평을 이전에도 이후에도 읽은 적이 없다. 후기로 갈수록 정치적인 색깔을 뚜렷이 드러낸 그의 글에는 그만큼 스스로 믿는 바를 증명하고자 하는 치열함과 비장함, 그리고 저항정신이 묻어난다. 기존의 ‘위인이론’(몇몇 선구자와 뛰어난 작품들이 영화사를 이끌어왔다는 견해)의 사슬에서 벗어나, 호러영화처럼 싸구려 대중영화 취급을 받던 소외된 장르에서 시대의 징후를 읽어냄으로써 비평의 영역과 책임을 확장해나간 것이다. 마르크시스트이며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게이이기도 한 그에게 평론이란 스스로에 대한 증명인 동시에 주류문화 저편에 억압된 것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작업이었다.

비평은 분명 영화를 뒤쫓는 메아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970년대를 가로지르며 문명의 종말을 예고하던 로빈 우드의 예리한 칼날도 사회주의권이 철저히 무너진 지금에 와서 바라본다면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송이 꽃이 영원할 순 없다고 해서 꽃이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가 화려하게 피우고 간 꽃씨에서 피어난 수많은 꽃들의 노력에 힘입어 버림받고 사라질 수도 있었을 수많은 걸작들을 만난다. 어쩌면 비평가인 동시에 선생이었던 로빈 우드가 남긴 가장 훌륭한 텍스트는 자신의 삶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