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한 살인범. <용서는 없다>에서 류승범은 꽤 난이도 높은 도전을 했다. 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지만 더 멀리 내다보고 싶은 연기 인생에서 중요한 단락을 지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익숙한 친근함 때문일까. 류승범을 상당히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라듸오 데이즈>(2007) 이후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나 백현진 감독의 단편 <디 엔드> 정도를 제외하면 오랜만의 주연이다. 야심차게 준비하던 강풀 원작의 <29년> 프로젝트는 좌초되는 아픔을 겪었고 그동안 거절한 영화도 꽤 된다. 그중 대박난 영화도 있다니 속이 쓰릴 만도 하지만 ‘배우 류승범’은 이런 영화도 하고, 저런 일도 겪으면서 여전히 갈고 다듬는 과정 속에 있다.
그런 점에서 살인범 ‘이성호’ 캐릭터는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다. “지금껏 해보지 못한 역할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분량은 적어도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라는 점에 끌렸다”고 말한다. 그런 애착 때문이었는지 “지금보다 데시벨을 더 낮추고 좀더 건조한 느낌으로 대사를 줄였으면 좋았을걸” 하며 크게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성호는 어렸을 적 상처로 슬픔에 면역이 된 듯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회상장면에 등장하는 내 아역이 나보다 더 연기를 잘한 것 같다”고 웃으면서 과장된 자학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더니 불쑥 인터뷰 전날 봤다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가 너무 좋았다며 얘기를 꺼낸다. “예전에는 에너지 넘치고 어찌 보면 겉멋처럼 느껴지는 것에 끌렸다면 이제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더 깊게 우러나는 감성,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에서 뽑아내는 자연스런 특별함이 더 좋다. 오히려 그런 게 더 세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래서 늘 다시 생각하게 되는 배우들이 바로 숀 펜, 대니얼 데이 루이스, 베니치오 델 토로 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들이다. 자신의 얼굴을 두고 “감히 카메라에 들이밀어선 안되는 얼굴”이라고 거침없이 얘기하는 그는 그들을 향해 “화려한 외모를 지닌 배우들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쌓아온 연륜으로 표정만으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배우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 배우로서 자신의 꿈이기도 한데 그들처럼 얼굴에 세월을 새겨넣으려면 더 배우고 부딪치고 다듬어야 한단다.
그런 점에서 <용서는 없다>와 현재 작업 중인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굵직한 경계선을 그어줄 작품들이다. “지금까지의 내가 감독의 디렉션을 제대로 수행하기보다 다소 흐름에 내맡기는 스타일이었다면 두 작품은 그 디렉션대로 꼼꼼하게 채우고 캐릭터를 만들어간 작품”이라며 “더 먼 미래를 내다보는 배우로서 두 영화는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작품”이란다. 그렇게 류승범은 배우로서 자신에게 더 엄격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