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온 와이어>는 매우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장영엽 기자가 잘 정리해놓아 굳이 재론하고 싶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대목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필리프 프티의 이야기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도전에 성공한 뒤 경찰에 체포된 그는 빌딩 아래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서 질문공세를 받는다. 왜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건넜냐고. 왜 그 위험한 행동을 했냐고. 왜 목숨을 걸고 줄타기를 하냐고. 프티는 관객에게 말한다. “내가 한 일은 거대하고 신비한 것이었는데 기자들의 질문은 그저 ‘왜’였어요. 하지만 내 일의 미덕은 ‘왜’라는 게 전혀 없다는 거죠.” 그 말은 프티가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특별헌 주의주장을 펴기 위해 이 무모한 도전을 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정말이지 영화를 보노라면 그는 순전히 행위예술 차원에서 줄타기를 한 듯 느껴진다. 그리고 그 예술품에는 ‘산다는 게 다 줄타기 아니겠냐’는 뜻이 담긴 것 같고. <왕의 남자> 속 장생과 공길처럼 비장한 마음은 아니었겠지만, 필리프 프티 또한 외줄을 타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과 그 본질을 드러내려 한 게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영화만큼 줄타기와 유사한 것도 없다. 영화는 그 출발부터 자본과 예술이라는 경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타넘으면서 성립됐다. 추구하는 예술세계와 자본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많은 감독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 점이 영화라는 예술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할리우드 고전영화, 여러 유럽영화계의 사조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가 그랬듯이 자본과의 적절한 긴장은 영화 안에 예상치 못한 힘을 불어넣어줬다. 근래 들어 이 힘의 균형은 깨지고 있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우아한 줄타기 실력을 뽐내며 자신의 세계를 스크린 안에 펼쳐내는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허우샤오시엔, 장 뤽 고다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지아장커, 난니 모레티, 기타노 다케시 등이 그들이다. 상업영화라는 영역에서도 독특한 색채를 유지해온 스티븐 스필버그, 폴 그린그래스, 서극 또한 비슷한 경우다. 이번 특집은 이들 거장 감독 12명의 신작 미리 보기다. 허우샤오시엔과 지아장커의 무협영화에서부터 장 뤽 고다르의 현대사회에 대한 관찰, 기타노 다케시의 폭력 탐구, 스티븐 스필버그의 3D애니메이션 혁명에 이르기까지 소문만 무성했던 프로젝트들의 실체를 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주에는 좋은 소식과 아쉬운 소식이 하나씩 있다. 좋은 쪽은 그동안 ‘객원기자’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일해왔던 김성훈, 이주현이 그냥 ‘기자’가 됐다는 사실이다. <씨네21>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아쉬운 일은 바쁜 와중에도 글맛을 전해줬던 김연수, 김중혁 두 소설가가 지면을 떠나게 됐다는 사실이다. 예정된 이별이지만 오랜 친구를 잃는 듯한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문학과 영화 사이에서 멋지게 줕타기했던 두분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