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면서 자극이 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처음 김지운 감독과의 대면이 생각난다. <조용한 가족> 시나리오를 본 뒤 처음으로 그를 대면했을 때 글에서 느꼈던 익숙하지 않은 유머나 낯선 캐릭터에서 전해졌던 느낌들로 나도 모르게 누굴까 한껏 기대를 품게 했던 이 신선한 발상의 소유자는 내 예상과 달리 참 말이 없었다. 첫 만남 뒤로는 목소리를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의 첫 영화 <조용한 가족>은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영화 <반칙왕>은 그의 입지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역시 신선한 아이디어로 <커밍아웃>을 만들어내는가 싶더니 드디어 네 번째 작품 <쓰리-메모리스>로 함께 작업하게 되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사물을 조금은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 김지운 감독과의 만남, 그와 함께하는 작업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그는 여전히 말수가 적고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모습이다. 아마 모자를 벗은 그의 모습은 오늘 사진 촬영하면서 처음으로 본 것 같다. 새삼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유달리 까맣다고 느껴졌다. 특히 까맣게만 보이는 그의 눈동자 속으로는 정확히 읽어내기 어려운 호기심이나 통찰력 같은 게 느껴지곤 한다. 사물을 많이, 동시에 더 깊이 볼 수 있는 게 바로 김지운 감독의 힘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이번 영화 <쓰리-메모리스>에서 그가 소개할 새로운 미스터리가 몹시 궁금하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내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보여지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