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는 애초 먹음직스런 드라마가 아니었다. 와인 소재 <떼루아>도 망한 터에 동종 이탈리아 음식 파스타는 굳이 맛 안 봐도 알 만했다. 주방의 살풍경이야 케이블TV 서바이벌 요리프로그램이 백배는 앞서 가고도 남았다. 간장 광고하는 부드러운 남자 이선균이 ‘까칠한 마에스트로’(<베토벤 바이러스>)나 ‘버럭 범수’(<외과의사 봉달희>)를 넘어설 가능성도 지극히 희박했다. 공효진의 캔디는? 결정적으로 공효진은 단 한번도 캔디를 연기한 적이 없었다(바로 전작은 못난이 중의 못난이 <미쓰 홍당무>였다). 첫 방송 13.3%라는 낮은 수치는 이 모든 부정적인 기대치에 대한 당연한 화답이었다. 그러나 <파스타>는 이 모든 식상함을 뒤집어엎었다. 시청률은 상승했고, 연장방송은 신속히 결정됐으며, <파스타>를 촬영한 식당의 파스타 매출이 증가했다. 20~30대 여성들의 입은 파스타를 먹으면서 <파스타>의 사랑을 품평하느라 바빴다. 21.2%. 기존 멜로와는 사뭇 차별화된 현실감있는 멜로드라마라는 평가가 반영된 <파스타> 종방 시청률이었다.
“<파스타>는 캔디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달랐다.”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는 <파스타>의 매력을 새로운 여성형에서 찾는다. “예전 캔디를 대표하던 김희선의 캐릭터를 보면 일하다가 혼나고 밤에 혼자 남아 일하면 실장님이 초밥 사가지고 와서 거들어주는 게 공식이었다. 그런데 파스타의 실장(셰프)은 다르다. 실컷 혼내고 지나가면서 한마디 던지는 게 전부다.” ‘서유경’은 연애가 성사되는 순간, 일을 모두 놓아버리고 순종적인 여성형이 되는 기존 멜로드라마의 인물들과 달리 연애의 자장 안으로 진입한 뒤에도 주방 막내로서 행해야 할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는다. 또래의 시청자들은 연애와 일이 대등한 가치를 갖는 서유경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찾고 공감했다. 살아있는 캐릭터는 결국 스토리를 뛰어넘는 파워가 됐다. 나비픽쳐스 조민환 대표 역시 <파스타>의 매력을 캐릭터에서 발견한다. “<파스타>에 과연 내러티브가 존재하고 있는지는 고민해볼 문제다. 주방 보조가 정식 요리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별반 새로운 스토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선균과 공효진이라는 캐릭터가 부딪치면서 생기는 멜로적 감수성만으로도 <파스타>는 극의 탄력을 형성했다”고 말한다. 결국 <파스타>에서 스토리는 주가 아닌, 시청자의 반응이 오는 쪽으로 옮겨가는 부차적인 역할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캐릭터 중심의 <파스타> 성공이 최근 극장에서 부진한 멜로드라마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보경사의 심보경 대표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멜로 장르는 지금과 달리 메인 장르였다. <접속>은 트렌드를 따르는 드라마가 아닌 미술, 음악, 스토리 등 모든 분야에서 트렌드를 앞서 나간 반면에 지금의 로맨틱 장르는 트렌드를 담기에 급급하다”며 한발 뒤처진 충무로 멜로영화의 현실을 지적한다.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를 연출한 박흥식 감독은 부진의 이유를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가 지닌 허점으로 돌린다. “멜로영화들이 인물 묘사보다 전체 이야기에만 치중하다보니 관객을 끝까지 붙들어둘 동력을 얻지 못한다. 인물의 죽음은 곧 생생함의 결여이고, 원래 목적하던 감정 전달에도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곧 개봉할 미스테리 멜로영화 <된장>의 최태영 프로듀서는 “<걸프렌즈>의 원작 소설은 성공했지만, 영화는 공감을 얻지 못한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멜로영화들은 트렌디한 소재만 가져온다고 관객이 쉽게 반응할 거란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익숙한 플롯을 뛰어넘는 사실적인 묘사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충무로 멜로영화에 식상한 관객의 기대도 회복할 수 없다” 결국 <파스타>의 성공은 부진한 한국 멜로영화가 맛본 늦은 깨우침이자 가장 빠른 대처가 될 것이다.